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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77화 (1,377/1,404)

#1377화 침공 (6)

전쟁에서 적이 도망갈 퇴로를 사전에 막는 건 기본 중에 기본.

지금도 그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적이 누군가인지가 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원래라면 마왕군이 적이고 그 상대가 아군이어야 정상이겠지만 딱 지금 상황은 그것과는 반대였다.

헤르마늄 광산 입구가 무너지면서 퇴로가 막힌 에센시아 기사단의 절규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입구가 무너졌어?!”

“어떻게……!”

“젠장! 퇴로가 막혔다!”

우왕좌왕.

이건 딱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던 이들 중 일부는 무너지는 광석 더미에 깔려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본 병사들이 패닉을 일으켰다.

그나마 기사단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혼란이 덜한 듯 했지만.

상대적으로 일반 병사들의 숫자가 많다 보니 서로 밀쳐내는 순간 전열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는 붕괴로 인한 흙먼지가 비산했고 병사들의 비명과 통제가 되지 않아 고함을 지르는 기사단까지.

그야말로 혼란의 장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그런 혼란이 생각만큼 오래 가지는 않았다.

갑자기 한 기사가 크게 하울링을 터트렸다.

“모두 정신 차려라!”

순식간에 다른 이들의 고함과 비명을 눌러버리는 압도적인 외침에 기사단과 병사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는 것 마냥.

다들 더 이상 우왕좌왕하지 않고 그 기사를 쳐다보자 이제야 마음에 들었는지 오더를 내렸다.

“입구가 무너진 이상 광산은 지킬 수 없다. 지금부터는 모두 살아 남는데 주력한다.”

다른 이들보다 빠른 대처와 판단.

만약 무너진 헤르마늄 광산 입구를 사수하는데 억지로 집착했다면 저들은 무조건 여기서 죽었을 것이다.

사방에서 마왕군들이 들이닥치는데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아무런 방어 시설 없이 그들을 막는다는 건 죽여 달라는 말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저 기사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당장 헤르마늄 광산을 지킬 수 없다면 병력을 보전하는 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본 재중이 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신 똑바로 박혀 있는 녀석도 있긴 하네.”

“그러게요. 광산을 지키라고 억지 부렸으면 다 죽었을 텐데. 저 녀석이 기사단장이겠죠?”

“아마도.”

한 번에 혼란에 걸린 주변 병력을 휘어잡을 수 있는 건 기사단장쯤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는 다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과연 저 놈은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으려나?”

재밌는 장난감을 보듯이 말하는 모습에 나 역시 웃음이 나왔다.

저 놈들은 비극이겠지만.

멀리서 보는 우리는 희극이나 마찬가지라.

전사 형도 옆에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에 콜라하고 팝콘만 있으면 딱인데요.”

“그러게. 아쉽네.”

다들 마치 극장에서 구경난 것마냥 옆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는 광산 입구를 내려다봤다.

어차피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는 마왕군이 오지도 않는다.

베인 녀석이 알아서 잘 조절할 테니까.

뭐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야 자리를 뜨면 그만.

누구처럼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편안하게 전쟁 상황을 구경하기만 했다.

나르샤 누나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쪽으로 뚫으려나 봐.”

지금 나르샤 누나가 가리키는 방향은 그나마 마왕군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언덕 방향이었다.

아마 밑에 있는 에센시아 기사단의 시야로 봐도 마찬가지일 터.

좀 전에 빠르게 판단을 내리던 저 기사단장이라면.

이번에도 주어진 선택지 중에 저 곳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단이 앞장서서 이쪽으로 길을 뚫는다. 서둘러!”

사방에서 마왕군이 들이닥치는 이 상황에 확실한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단들이 앞서 달리는 기사단장을 따라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빠져나가야 해!”

“가자!”

“앞만 보고 달려! 무조건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병사들 역시 허겁지겁 줄을 이어 따라 달렸다.

그나마 앞에서 기사단이 길을 터주면 자신들도 살 길이 있을 거라 여겼으리라.

곧 기사단장의 외침이 또 들려왔다.

“비공정까지만 달리면 된다! 전부 힘을 내도록!”

흐음.

비공정으로 이곳을 탈출할 생각인 건가.

뭐 일단은 나쁜 생각은 아니다.

저만한 인원이 단순히 달리기만 해서 이 험준한 산맥을 빠져나가는 건 사실상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그냥 산맥을 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그것도 뒤에 따라붙는 수많은 마왕군을 상대로라면 더 힘들다.

반대로 비공정이라면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었다.

옆에서 챠밍이 조금 걱정이 드는 듯 물었다.

“저들이 이곳을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으응. 재수가 아주 좋다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저들의 운이 정말 좋다고 하더라도.

어려울 것이다.

전사 형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쟤들은 절대 빠져나가면 안 돼. 광산 입구가 먼저 무너진 걸 봤으니까.”

“아…… 정말 그렇겠네요.”

전사 형 말이 맞았다.

에센시아 기사단과 병사들이 헤르마늄 광산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바로 입구를 날려버렸다.

당장은 저들이 정신이 없고 당황해서 모르겠지만.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면 뭔가 많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마왕군이 무너뜨린 것도 아닌데 알아서 헤르마늄 광산 입구가 무너졌으니까.

그렇다는 건 자연 붕괴밖에 없는데.

그동안 잘만 다니던 입구가 갑자기 마왕군이 온다고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이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그럼 저들도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가 일부러 광산 입구를 날려버렸다고.

그리고 그런 일이 가능한 건 사실상 몇 없었다.

자신들 중에 누군가.

기사단이 아니라면 드워프라고 생각하게 될 테고.

결국 마지막엔 드워프라는 결론에 도달하겠지.

전사 형이 내 쪽을 보면서 물었다.

“맞지?”

“네. 정확해요. 한 놈도 살아가면 안 돼요.”

그때 막내별이 궁금한지 내게 물어보았다.

“혹시라도 비공정을 타고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해요?”

“아. 그건…… 절대 안 될 겁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일단 재밌는 건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과연 이것까지 쓰게 될 일이 있을 진 모르겠지만.”

“으음. 그럼 좀 기다려볼게요?”

“아마 꽤 재밌을 거예요.”

다들 궁금해 했지만 이건 마지막을 위해 남겨놓고.

그렇게 다시 헤르마늄 광산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느덧 마왕군들이 개떼처럼 광산 주변으로 몰려들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단 그 숫자만 해도 이미 수천 단위는 가볍게 넘어가는 듯 했다.

지상을 쓸고 다니는 녀석들부터 해서 날개가 달린 놈들은 날아다니면서 주변을 살폈고.

개중에 탈 것을 탄 녀석들도 꽤 보였다.

거기다 엄청나게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개체들도 상당수 있었다.

아마 흔히 말하는 네임드에 가까운 녀석들이 아닐까.

그런데 그들 역시 막상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하고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이건 쉬워도 너무 쉬웠으니까.

버티면서 농성이라도 할 줄 알았던 에센시아 기사단과 병사들은 이미 한참 전에 내뺀 뒤다.

뭐 저들 입장에서야 별다른 교전 없이 헤르마늄 광산을 차지했으니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때 검은 기운이 물씬 퍼져 나와 자신의 몸 자체를 감싸고 있는 한 개체가 보였다.

마치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듯 묘한 형체를 띈 녀석이라…….

그것도 주변 마왕군에게 보호라도 받듯이 둘러싸인 형태라 정체를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딱 저 녀석을 중심으로 마왕군이 모여들었으니.

“저 녀석이 베인이 말한 그 마왕인가 보네요.”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꽤 신기한 형태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마왕이라.

마왕들마다 그 모습이나 특징이 다 다르다는 걸 감안해 본다면.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

직접 붙어보기 전에는 특징을 알긴 어려울 듯 했다.

곧 그 마왕에게서 한 마디 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찾아라.”

아마도 헤르마늄 광산을 버리고 튄 기사단과 병사들을 찾을 생각이려나.

보통은 이렇게 결과를 내면 끝냈겠지만.

생각보다 일처리가 꽤 꼼꼼한 스타일인 듯 했다.

변수가 될 수 있는 잔존 병력까지 처리하려는 걸 보면.

뭐 우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해준다면야.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왕군 병사가 마왕에게 보고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팔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는데 정확히 기사단이 튄 방향과 일치했다.

곧 마왕이 손을 올리자 마왕군들 중 발이 빠른 녀석들과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우르르 그 쪽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는 마왕 녀석이 헤르마늄 광산 입구 앞에 서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확 구겼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았겠지.

아무리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붕괴된 광산에 발을 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지금처럼 입구가 완전히 막혀 있는 때는 더 그렇고.

곧 입구에 손을 댄 마왕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러면 아무도 쓰지 못하겠군.”

마왕은 왜 헤르마늄 광산이 무너졌는지 알 길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적들이 헤르마늄 광산을 쓰지 못하게 됐다는 건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거기다 자신은 손도 대지 않고 일을 해결한 셈이라.

곧 마왕이 누군가 불렀는데 옆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베인 녀석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수고했다.”

마왕의 단 한 마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말은 그 의미가 적지 않았다.

“…… 돌아가면 논공행상이 있을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최상급 마족에게 그 이상의 뭔가를 준다면 기대해 봐도 되지 않으려나.

베인 녀석도 흡족한 듯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뭐 바로 베인에게 마왕 자리를 내어주진 않겠지만.

그만큼 마왕들에게 베인을 인식시켰으니 충분한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다.

이쪽은 그럭저럭 된 듯 하고…….

바로 시선을 돌려 저 멀리 떨어진 비공정 쪽을 쳐다보았다.

“저기는 전투가 일어나는가 보네요.”

수차례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뭔가의 마법들이 번쩍이는 게 이미 따라잡힌 듯 했다.

“가볼까요?”

나와 재중이 형이 산길을 따라 옆으로 이동하자 우리 팀과 마왕 헤르게니아도 뒤를 따랐다.

그렇게 비공정이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가니 대충 상황이 어떻게 된 지 알 수 있었다.

날아오르려던 비공정을 포위하고 마왕군과 병사들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기사단 녀석들은 죄다 비공정에 올라탔는데 병사들은 거의 다 비공정을 타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본 전사 형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병사들을 방패막이 삼아서 지들만 튀려는 거잖아.”

“정말 그러네요.”

굳이 병사들까지 같이 데려온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필요할 때 총알받이로 쓰려고.

곧 병사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비공정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런 기사들의 모습을 병사들이 허망하게 쳐다보며 외쳤다.

“어? 우리는……!”

“기사들이 우릴 버렸어!”

“어떻게 이럴 수가!”

애초에 버릴 생각으로 데리고 온 거라 그런지 기사단 녀석들은 전혀 거리낌 없이 날아올랐다.

병사들을 살려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딱히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나인가.

뭐 어차피 다 죽일 생각이었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웃긴 일이긴 하려나.

그리고는 품에서 한 가지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드워프들이 쥐어준 또 다른 아이템.

바로 그 물건의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비공정에서 강력한 굉음과 함께 비공정이 하늘에서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콰아아앙!!

곧 아까 말했던 막내별에게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재밌는 거 보여준다고 했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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