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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71화 (1,371/1,404)
  • #1371화 밀수 (14)

    신의 성배에 대해서는 아직은 말해줄 수 없다.

    마왕 리센츠가 우리와 한 배를 탔다고는 하나.

    그런 사실과는 무관하게 아직 신의 성배에 대한 이야기가 풀리면 안 되니까.

    이 마왕 녀석을 확실히 믿을 수 없는 것도 있고.

    그냥 지금은 경고 정도만 줄 수밖에.

    내 말에 잠시 멈칫했던 마왕 리센츠가 곧 알겠다는 듯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러려면 일정대로 베르탈륨 광석이 도착해야겠지.”

    “뭐 그쪽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베르탈륨 광석은 이동 중이니까요.”

    화련에게 바로 운반하라고 했으니 지금쯤 선적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군.”

    곧 마왕 리센츠에게 베르탈륨 광석의 거래량과 지불해야 하는 대금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일단 1차로 공급되는 베르탈륨 광석은 이 정도인데…… 대금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흠. 당장 마왕성에 있는 자금을 끌어온다면 계약금은 바로 지불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운반하는 베르탈륨의 잔금을 한 번에 전부 받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마왕 리센츠 입장에서는 그렇진 않을 것이다.

    “물건도 받아 보지 않고 잔금을 전부 치르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나.”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장 나 같았어도 같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을 테니.

    “그럼 1차로 거래를 마치고 추가로 다음 계약을 하는 것으로 하죠.”

    “알겠네. 하면. 잔금은?”

    “우리 쪽 사람이 따로 찾아갈 겁니다. 대금은 그쪽으로 보내주시는 걸로 하죠.”

    아무래도 베르탈륨을 운반하는 용병들에게 수금까지 맡기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고 생각했다.

    부피와 무게가 큰 베르탈륨 광석보다는 돈이 들고 나르기 딱 좋을 테니.

    적어도 돈은 이쪽에서 따로 받아야겠지.

    “그런데 베르탈륨으로 된 무구들은 언제쯤 공급해줄 수 있지?”

    마왕 리센츠가 물어보자 슬쩍 시선을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았다.

    베르탈륨 무구를 만들려면 마왕 헤르게니아가 필요하니까.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대답을 해주었다.

    “일단 첫 거래가 정상적으로 처리되는 걸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흐음. 마왕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그럼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을 침공한 이후에. 물건을 보내줄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처음부터 물량이 필요하진 않을 거 아냐?”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전쟁을 치르면서 점점 물자가 부족해지죠. 지금 같이 에센시아 제국까지 전선이 늘어지게 되면 더 그럴 겁니다.”

    자기 집 앞마당에서 싸우는 에센시아 제국과 달리.

    마왕군은 산맥을 통과해 넘어와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거리 자체도 멀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보급이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우린 그 점을 노릴 것이다.

    비싸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바로 마왕 리센츠에게 말했다.

    “일단 베르탈륨 원석부터 팔면서 마왕군과 거래 라인부터 터두세요.”

    “흠. 내 이름을 대면 다른 마왕들과 거래는 충분할 거다.”

    그래.

    우린 바로 그 점 때문에 마왕 리센츠를 고른 거니까.

    당장 우리가 직접 거래를 하러 갔다가는 가격을 눈탱이 맞거나 혹은 불필요한 잡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차차 베르탈륨 무기를 풀면서 마왕군들을 지원해주면 됩니다.”

    그때 마왕 리센츠가 다소 신경 쓰이는 것이 있는지 내게 물어보았다.

    “이 거래가 돈이 된다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그럼 그대들의 대륙이 위험해지지 않겠나?”

    이건 뭐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건가?

    “흠. 내 말은. 이렇게까지 적군을 도와주는 이유가 뭔가 싶어서.”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중간에 나섰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단이 마왕군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건데. 무슨 문제가 될까?”

    “음. 아닙니다. 그럼 전혀 문제없군요.”

    확실히 대륙의 인간들이 마왕군을 지원하는 모양새지만.

    이 상단의 주인은 겉으로 보기에 마왕 헤르게니아다.

    마왕이 마왕군을 지원한다는데 이게 특별히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넌 그냥 주는 물건 잘 받고. 깔끔하게 팔아넘기기만 하면 돼. 대금 제때 넘겨주고.”

    이건 쓸데없는데 관심을 두지 말라는 말을 대놓고 한 셈이었다.

    우리가 타란 제국을 위해 마왕 리센츠를 이용한다는 걸 녀석이 알아봐야 좋은 꼴을 못 볼 테니.

    거래를 위한 관계 그 이상을 넘어가면.

    서로 피곤해진다.

    신의 성배에 대한 것도 그렇고.

    경고 정도는 해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알려줄 순 없다.

    에센시아 제국의 협곡은 거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니 알려준 거지.

    만약 알려주지 않고 할 수 있었으면 그것도 숨겼을 것이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거래 때 뵙겠습니다.”

    “좋아.”

    그 순간.

    잠시 마왕 리센츠의 눈빛이 번뜩였던 것 같은데.

    어차피 녀석이 파고 들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이쪽은 당분간 두고 봐야 할 듯 싶다.

    그렇게 마왕 리센츠와의 거래가 잘 끝나고 난 뒤 저택을 나서자마자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말했다.

    “덕분에 쉽게 거래했어.”

    “흐응. 다른 마왕도 내 이름만 대면 아직도 벌벌 긴다니까?”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네.

    봉인되고 나서 존재감이 잊혀 질 것이라 여겼던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베르탈륨으로 만든 무구를 바로 준비할 수 있을까?”

    당장 제작을 시작해도 마왕군의 침략에 맞춰 물건을 준비하기 빠듯할 것이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공간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내 놓았다.

    “이거.”

    『 마왕군 전용 베르탈륨 보급형 장검 레시피 』

    『 마왕군 전용 베르탈륨 보급형 창 레시피 』

    『 마왕군 전용 베르탈륨 보급형 활 레시피 』

    .

    .

    으음.

    이걸 보고 나니 왜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렇게 자신 있어 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마왕군의 마족들이 쓰는 제작 레시피 자체를 다 가지고 있는데 뭐가 걱정일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두 그 레시피에 관심을 가지고 쳐다봤다.

    전사 형이 놀란 눈빛으로 그 레시피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와. 이거…… 없는 게 없네.”

    “이거면 충분하겠죠?”

    “당연하지. 제작 레시피만 있으면 제작이야 어렵지 않아. 문제는 제작에 필요한 재료인데.”

    “우리에게 넘치는 게 베르탈륨이라.”

    제작 재료와 레시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럼 이제 이걸 제작할 수 있는 장소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 물건은 아무 곳에서나 제작하면 큰일 날 수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마왕군 전용 무구를 대륙에서 제작하려고 할까.

    만약 여기 르바탄 공국의 대장장이에게 이걸 가지고 갔다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역적으로 몰리게 될 터.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타란 제국의 대공령으로 돌아가서 제작 시설부터 처리해야 한다.

    “시간이 많으면 구경이라도 할 텐데. 일단 돌아가죠.”

    르바탄 공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곳에서 얻을 이득을 생각하면 여러 작업을 해놓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러기에는 뒤에 밀려 있는 일정이 너무 많았다.

    ***

    다시 비공정을 타고 대공령으로 돌아오자마자 드워프들부터 찾아갔다.

    전에 넘어오기 전에 카샤스 황제에게 말해 타란 제국의 드워프들을 전부 빌린다고 했었으니까.

    그리고 카샤스 황제는 그런 내 부탁을 제대로 처리해주었다.

    무려 드워프 대장로 바그날을 대공령에 보내놓았다.

    “오랜만입니다.”

    “흠. 필요한 것들은 미리 준비해놓았네.”

    바그날 대장로에게도 대공령에 연구 시설을 만들 것이라 언급해놓았으니 그 역시 이 일에 발 벗고 나선 듯 했다.

    그런 바그날 대장로에게 마왕 헤르게니아를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이제부터 대공령의 비밀 연구 시설의 총 책임자가 될 겁니다.”

    “흠? 이 소녀가?”

    아마도 바그날 대장로는 자신이 총 책임자가 내정될 것이라 여겼던 모양인데.

    여기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왕이라고 밝히는 건 아무래도 무리려나.

    드워프들이 마왕을 좋아할 리가 없을 테니.

    그렇다고 바그날 대장로에게 총 책임자를 맡겼다가는 우리가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에 바그날 대장로에게 말해주었다.

    “사실 아크 드래곤을 만들어낸 이가 이 소녀입니다.”

    “뭐?”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바그날 대장로의 눈은 이미 더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떠져 있었다.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 아크 드래곤은 마왕군에 들어가서 대륙의 국가들을 차례대로 박살내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당연히 아크 드래곤은 마왕군의 네임드로 불리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크 드래곤은 마왕군에서 한 번도 활동을 하지 않고 내 손에 죽었으니까.

    그러니까 아크 드래곤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비밀에 싸여 있었다.

    용과 관련 있는 아이템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바그날 대장로도 아크 드래곤의 드랍품 정도만 우리를 통해 확인했을 뿐.

    실제로 아크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진 못 했으니.

    믿기 힘들겠지.

    “정말…… 인가?”

    “제가 공사다망하신 드워프 대장로를 대공령에 힘들게 모셔놓고 거짓말 하겠습니까?”

    “흐음…… 이거 참.”

    아직도 바그날 대장로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 했다.

    본인이 전혀 놀라지 않는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말일 테니.

    “거기다 헤르마늄과 베르탈륨을 다루는데도 능숙합니다. 천사군과 마왕군의 제작 물건들도 마찬가지고요.”

    “허허…….”

    이젠 놀랍다는 눈빛도 애써 숨기지 않았다.

    내 말대로라면.

    그들이 가진 제작 기술력보다 마왕 헤르게니아의 기술이 훨씬 높다는 말이니까.

    물론 무구를 실제로 제작하는 능력 자체는 드워프들이 월등히 좋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 설계라던가 하는 부분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분명히 앞선다.

    당장 바그날 대장로가 저렇게 놀라는 것만 봐도 그걸 증명하는 셈이라.

    “이거 어디서부터 놀라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

    “놀라시는 건 천천히 하시고요. 그래서 비밀 연구 시설의 총 책임자를 여기 이분에게 드려도 되겠습니까?”

    바그날 대장로가 연신 마왕 헤르게니아와 날 번갈아 보더니 곧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흠. 아크 드래곤을 제작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나야말로 환영이다. 그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총 책임자를 해야겠지.”

    “빠르게 결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바그날 대장로가 안 된다고 생때라도 부리며 그 자리에 드러누워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적어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흠. 우리 드워프들이 헤르마늄과 베르탈륨으로 된 무구를 제련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마법 물품 제작에는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자신들의 부족함 점을 아무 가감 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그리고 그런 단점을 메워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하는 모습 역시도.

    이러니 드워프 대장로에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럼 이 소녀를 어떻게 부르면 되겠나?”

    “음. 그건…….”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앞으로 나서면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헤니아라고 불러 주면 된다.”

    “흠. 그렇게 하지.”

    아무래도 풀 네임으로 말했다가는 마왕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도 있으니까 좀 줄인 듯 했다.

    뭐 나 역시 그쪽이 편하고.

    그때 옆에서 쭉 무언가를 보고 있던 재중이 형이 내 어깨를 툭 건드리면서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에센시아 제국 협곡. 방금 뚫렸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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