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61화 (1,361/1,404)

#1361화 밀수 (4)

헤르마늄과 베르탈륨 밀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일단은 카샤스 황제의 허락.

타란 제국 황제인 그가 이 일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밀수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화련에게는 확실하다고 해두었지만.

주변을 둘러싼 상황이 바뀌면 얼마든지 말이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카샤스 황제에게 가서 단판을 지어야 한다.

아마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에센시아 제국으로 나가 있는 베인 녀석에게 다른 마왕들과 다리를 놓아달라고 하는 것.

이건 직접 만나도 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베인을 통해서 일을 성사시켜도 되기는 할 것이다.

오히려 이쪽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밀수를 하기에는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베인도 우리에게는 꼬리라고 할 수 있었다.

후에 문제가 생기면.

끊어내야 하는 꼬리.

뭐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여기에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업까지 고려해보면 당장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

<주호> 그럼 바쁘게 움직여야겠네요.

<화련> 나도 덕분에 바빠지겠어.

화련은 헤르마늄과 베르탈륨의 생산과 유통을 도맡아 할 예정이었다.

이쪽 일을 전부 다 맡기는 게 어떻게 보면 위험부담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어쨌거나 한 배를 탔으니까.

막대한 이득을 위해서 화련과 잠시 손을 잡는 건 절대 나쁘지 않을 것이다.

<화련> 내 쪽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연락할게. 너도 준비 잘 해놔. 생산 시설 최대로 늘려놨는데 그때 가서 팔 곳이 없다고 징징거리면 달려가서 엉덩이를 차줄 테니까.

<주호> 그거 참 무섭네요.

아마 그 상황이 오면 정말 칼을 들고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화련은 돈으로 손해 보는 걸 좋아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적어도 이득이 걸린 일에서는 확실할 테니.

화련과의 연락을 끊은 뒤 바로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됐어?”

“역시 한다고 하네요.”

“그래. 고양이가 생선을 마다할 리 없지.”

“그것도 엄청나게 큰 생선이죠.”

무려 대륙에서 가장 큰 두 광산을 양손에 두고 주무르는 일이었다.

규모 면에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그 어떤 일들보다 크다.

그것도 그냥 파는 것도 아닌.

밀수로 최소 몇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를 남겨 먹는 장사니까.

“전 카샤스 황제 좀 만나고 올게요.”

“그쪽이 최우선이긴 해.”

“그럼 형은 사장님에게 미리 이야기 좀 해주세요.”

“알았다.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은 내 쪽에서 처리하도록 하지.”

타란 제국만큼 복잡하게 일 처리를 해야 하는 곳이 에센시아 제국이다.

“필요하면 레오나 황녀에게도 도움을 청해도 될 거예요.”

“드워프들을 움직이려면 말이지.”

이번 일의 핵심은 에센시아 제국에 소속된 드워프들이다.

그들이 헤르마늄 광산을 무너뜨려 줘야 밀수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레오나 황녀가 손을 거들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할 거예요.”

이미 타란 제국이 전쟁의 피해에서 회복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한 번 도운 전력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헤르마늄 광산 일도 그 복구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된다.

“하긴. 에센시아 제국의 전력을 떨어뜨려 놓으면 타란 제국에 그만큼 위협이 줄어드니까.”

“네. 그리고 이 일은…… 에센시아 제국의 차기 황제를 정하는데도 분명 크게 작용하게 될 거예요.”

차기 황제.

내 입에서 황제라는 단어가 나오자 재중이 형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호오. 거기까지 노려보시겠다?”

“네.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번 협곡의 통한 마왕군의 습격은 에센시아 제국에 지대한 피해를 입힐 거예요.”

“그럼 지금의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입지가 상당히 떨어지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당장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황제라는 게 괜히 황제가 아니니까.

어지간한 일로는 황제를 끌어내릴 순 없다.

정말 국가가 망할 위기에 처하거나 황제 스스로가 물러나지 않는 이상에야.

아니면 누군가 역모를 해 국가를 전복시켜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만한 전력을 가진 이는 에센시아 제국에 없다고 봐야 했다.

거의 모든 권력이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몰려 있으니까.

타란 제국처럼 대공이 더 나은 선택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절대 아니다.

결국 에센시아 제국을 먹으려면.

어떻게든 직접 에센시아 제국 황제를 끌어내려야 한다.

혹은 그에 준하는.

엄청난 대적자를 만들어 내거나.

재중이 형이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너, 레오나 에센시아를 차기 황제로 만들 생각이지?”

“하하…… 눈치채셨네요.”

“타란 제국도 그렇지만 에센시아 제국 역시도 혈통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비록 레오나 에센시아가 후계 순위에서는 상당히 밀린다고 해도. 어쨌든 직계는 직계다. 뒷배경만 잘 받쳐주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 되겠지.”

여기서 재중이 형이 말한 뒷배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다.

“밀수로 막대한 부를 축척해서 레오나 에센시아를 밀어 준다라…… 그림은 나쁘지 않네.”

황제든 뭐든 해 먹으려면.

일단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금이.

타란 제국 같은 경우야 애초에 카샤스 황제가 대공령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자금에서 자유로웠다.

가진 세력 역시 이미 상당한 규모로 구축한 상태였고.

거기다 타란 제국의 가장 강력한 용기사단들이 카샤스 황제를 따르기까지 했으니.

뒷배경만 따지고 보면 시작점부터 레오나 에센시아와 아득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반면 레오나 에센시아는 아무것도 없다.

자금도.

세력도.

심지어 소유한 영지까지 전무하고.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배경이 없죠.”

운영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불리하게 배경을 만들어놨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좋지 않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힘만으로 대륙 최강의 영웅이 되는 걸 보면.

개천에서 용 나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기적이었다.

뭐 그때의 성마대전에서는 에센시아 제국 자체가 망하니까 딱히 황제가 될 일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아직 에센시아 제국은 망하지 않았고.

레오나 에센시아는 그때와 다르게 우리와 타란 제국 황제의 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

거기에 르아 카르테를 얻는 시점이 압도적으로 빨라진 것도 있으려나.

이미 무력은 부족하지 않다.

무려 정령왕들이 레오나 에센시아의 르아 카르테에 번갈아가면서 머무는데 무력이 부족할 리가 있나.

그러니까 이제 필요한 건 그에 걸맞는 자금이다.

잠시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아예 방향을 틀었다.

“따로 이야기할만한 일이 아니겠네.”

“그럼?”

“레오나 에센시아하고 카샤스 황제하고 모아놓고 같이 이야기를 해야겠어.”

“음. 그럼 그렇게 하죠.”

***

얼마 뒤 카샤스 황제의 집무실에 나와 재중이 형, 레오나 에센시아.

그리고 현재 카샤스 황제의 업무를 보좌하는 재상, 아이샤 황녀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슬쩍 아이샤 황녀를 바라봤다가 괜찮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카샤스 황제가 알게 되면 그녀도 알게 될 테니까.

카샤스 황제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굳이 다 바쁜데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라고 한 이유는?”

만나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모이라고 하니 카샤스 황제도 궁금했을 것이다.

“음. 조금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리고는 베르탈륨 광산에 대한 이야기를 카샤스 황제에게 말해주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마왕군에 팔 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레오나 에센시아와 아이샤 타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카샤스 황제는 아예 한숨을 푹 쉬어 보였고.

“너, 지금 네가 한 말이 얼마나 문제가 될지는 생각해보고 하는 말이야?”

“어, 알아. 그런데 말이지. 에센시아 제국을 침범하는 마왕군이 강해지면 결국 누가 이득을 보지?”

내 말에 카샤스 황제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이건 레오나 에센시아와 아이샤 타란 역시 마찬가지.

마왕군에 베르탈륨을 내다 판다는 게.

단순히 금전적으로 이득을 보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세 사람이 모두 눈치챘다.

곧 아이샤 타란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에센시아 제국이 그만큼 피해를 보겠죠. 그럼 에센시아 제국이 타란 제국을 침략할 여유가 아예 사라질 거예요.”

“네. 하지만 거기까지만 보면 안 됩니다.”

“무슨 뜻이죠?”

“천사군.”

내가 천사군을 언급하자 세 사람이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

“다들 알겠죠. 에센시아 제국이 위험해지면 결국 천사군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할 겁니다.”

그러자 아이샤 타란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한 가지 단어를 꺼냈다.

“요하스 성국.”

“정답.”

“천사군이 직접 나설 수도 있겠지만…… 요하스 성국을 움직이는 편이 겉보기에는 좋을 거예요. 정말 전황이 나빠진다면 천사들이 직접 개입할지도 모르겠지만요.”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천사들은 에센시아 제국에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건 아직 말할 필요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네. 단순히 에센시아 제국 좀 건들고 끝날 문제는 아니죠. 베르마 제국을 다른 제국들과 왕국들이 지원하듯. 에센시아 제국이 무너지면 곤란한 주변 국가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분명히 지원 갈 겁니다.”

한 마디로 에센시아 제국 땅을 배경으로 제 2의 성마대전이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성마대전의 전선이 한없이 길어진다는 뜻이기도 했고.

“후방 국가들도 이젠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싫어도 지원하겠네요.”

“네. 그러니까 마왕군의 규모를 더 키워줘야죠. 연합군을 상대로도 절대 밀리지 않을 만큼요.”

내 말에 카샤스 황제가 바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마왕군을 도와주는 게 타란 제국을 돕는 일이라는 거냐?”

“적의 적은 아군이라잖아. 그리고 단순히 돕는 걸로 끝나지 않아. 마왕군의 막대한 자금력이 죄다 타란 제국으로 흘러들어온다.”

“정확히 말하면 네게 들어가겠지.”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그 엄청난 돈을 어떻게 쓸 줄 알고?”

카샤스 황제가 궁금한지 내게 물었다.

“흠. 무슨 계획이지?”

“뭐…… 돈이 필요한 곳에 좀 풀어볼 생각이야. 타란 제국에도 좀 풀 거고.”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레오나 에센시아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레오나 황녀.”

“네?”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의아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다음 대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되어볼 생각. 혹시 있어요?”

“……네?”

깜짝 놀란 레오나 에센시아만큼이나 카샤스 황제와 아이샤 타란도 놀란 눈빛을 보였다.

카샤스 황제가 굳은 눈빛으로 날 쳐다보면서 물었다.

“설마 레오나 황녀의 군자금으로 쓸 생각이냐?”

“정답.”

확언을 해주니 셋 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다시 한 가지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의 에센시아 제국이 너무 멀쩡하거든요.”

“마왕군이 침략하면 충분히 약해지지 않나요?”

흐음.

황제가 될 생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가 보네.

“아뇨. 그 정도로는 한참 부족해요. 전쟁 전에 팔다리 하나쯤 끊어놓고 시작해야 균형이 맞죠.”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에센시아 제국의 팔다리는 바로 이거다.

“그러니까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 좀 무너뜨려 주세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