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0화 밀수 (3)
빛 계열인 천사들의 무구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광석은 헤르마늄.
반대로 암흑 속성이 주를 이루는 마족들의 무구에는 베르탈륨 광석이 가장 많이 들어간다.
특히 상위의 마왕이나 대천사 급의 무구에는 최상급의 순도를 지닌 헤르마늄과 베르탈륨이 필요하긴 하다.
어지간한 순도로는 그들의 힘을 받아줄 만한 무구를 만들 수 없으니까.
당연히 마왕들과 대천사들의 관심은 그런 베르탈륨과 헤르마늄 광산을 찾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순도의 광석들은.
규모가 큰 광산일수록 더 많은 양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단순히 확률적으로 따져도.
채굴 보유량이 높은 광산들에서 고순도의 광석이 나올 확률이 월등히 높으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성마대전도 어떻게 보면.
그런 관심의 일환이다.
최상급의 순도를 가진 광석들을 찾기 위한.
당장 성마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전선들은 그런 광산들을 끼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마대전은 다른 말로 자원 확보의 전쟁이랄까.
뭐 그렇다고 순도가 낮은 광산들이 필요하지 않냐고 하냐면.
그렇지도 않다.
상당수의 천사군과 마왕군의 장비에 이 헤르마늄과 베르탈륨이 들어가니까.
거기다 각종 마법진을 유지하는데도 들어가고.
그 가장 가까운 예로.
타란 제국 수도를 둘러싼 방어 마법진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의 베르탈륨 광석들이 소모되었다.
한 마디로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얼마나 높은 등급의 광산을 보유하냐가 그 국가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륙에서 최대 규모의 베르탈륨 광산을 보유한 타란 제국은 분명히 압도적인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걸 온전히 캘 수만 있다면.
그동안은 타란 제국 황제가 들쑤시고 고대 마룡이 무너뜨려 제대로 캘 수 없었지만.
하지만 이젠 이야기가 다르다.
화련이 꾸준히 베르탈륨 채굴 작업을 해놓아 정상 궤도에 올랐으니까.
거기다 카샤스 황제까지 나서서 단독 채굴권에 세금 면제까지 해주었으니 그야말로 날개를 단 격이지.
지금부터는 그냥 잘 팔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이걸 어디에 팔아야 가장 이득이 되는가다.
원래라면 타란 제국에 모든 채굴량을 풀어버리는 되는 일이겠지만…….
<화련> 흐응. 잠시만. 지금 베르탈륨 광석을 마왕들에게 팔자고?
<주호> 네. 화련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의외의 질문은 화련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화련 역시도 처음에는 타란 제국에 베르탈륨 광석을 팔 생각이었을 테니.
하지만 내 의견 때문에 전혀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야 했다.
당장 베르탈륨 광산의 소유권은 내게 있으니까.
뭐 딱히 그런 점을 빼더라도.
분명 이 의견은 돈이 된다.
누구보다 돈을 버는 데 관심이 있는 화련이 이 제안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말도 안 되지.
곧 화련이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화련> 확실히 돈은 되겠네.
<주호> 역시 그렇죠?
<화련> 전량 타란 제국에 푸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유저들이 베르탈륨이 들어간 무구를 비싸게 사줄까?
화련의 말이 맞다.
베르탈륨이 들어간 무구는 기본적으로 암흑 속성을 띄게 된다.
그런데 당장 여러 국가의 소속된 대부분의 유저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마왕군이다.
<주호> 아무래도 유저들을 상대로 비싸게 팔긴 어렵겠죠. 마왕군을 상대해야 하는데…….
<화련> 무기가 암흑 속성이면 마왕군을 상대로 잘해봐야 평타니까. 물론 훨씬 높은 순도를 가진 베르탈륨 무구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주호> 같은 돈이면 차라리 헤르마늄으로 된 무구를 구하겠죠.
<화련> 맞아. 마왕군을 상대하려면 헤르마늄이 월등하게 좋잖아.
순도가 높은 헤르마늄이나 베르탈륨이 들어간 무구는.
당장 부르는 게 값이다.
기껏 큰돈 들여 그런 무구를 구했는데.
상성상 먹어주지 않는 무구라면 반쪽짜리나 마찬가지니까.
<화련> 천사군이 적이 되지 않는 이상. 베르탈륨 무기들은 유저들에게 환영받진 못할 거야. 방어구라면 또 모르겠지만.
화련 말대로 베르탈륨 무기는 유저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가격이 대폭 떨어질 터.
반대로 방어구라면 그나마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당장 무기 만들 베르탈륨도 부족한데 방어구까지 만들기는 무리지.
<주호> 방어구는 무기보다 인기 없어요.
<화련> 나도 알아.
같은 순도의 광석이 들어간다면.
무기 쪽이 압도적으로 비싸진다.
물론 무기를 구하고 나면 방어구 생각이 날 테니.
그때쯤 가서 팔면 된다.
뭐 아직은 먼 이야기지.
<화련> 그래서 베르탈륨을 마왕군에다가 팔자는 거지?
<주호> 네. 마왕군이라면. 유저들보다 최소 몇 배는 더 높은 가격을 쳐줄 겁니다. 잘 받으면 열 배는 가볍게 넘겠죠.
<화련> 걔들은 천사군을 상대해야 하니까.
필요한 곳에다가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판다.
이건 장사의 기본 아닌가.
그리고 화련은 그런 장사를 가장 잘하는 사람 중에서도 제일 앞에 서 있다.
그러니까 그녀가 여기서 거절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런 화련도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화련> 타란 제국 영지에서 채굴하는 베르탈륨을 마왕군에다가 내다 파는 걸 카샤스 황제가 허락할 것 같아? 잘못하면 대륙에서 역적으로 내몰릴걸? 마왕군에 지원하는 국가로?
화련 말대로 혹시나 걸렸을 경우.
리스크가 커도 너무 크다.
당장 다른 제국들과 왕국들이 죄다 몰려들어서 타란 제국을 친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성마대전 최대의 적에게 베르탈륨을 팔고 있으니.
역적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지.
하지만 그런 만큼.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주호> 장사란 게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니에요?
<화련> 나도 알아. 이번 장사가 얼마나 큰 돈이 되는지. 조금만 리스크가 적으면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은 사업이라고.
아무리 화련이라고 해도.
이번 거래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동안 작업해둔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판이니까.
여기서는 화련을 한 번 안심시켜줄 필요가 있으려나?
<주호> 아. 카샤스 황제는 절대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
<화련> 확실해?
<주호> 네. 안 그래도 에센시아 제국을 견제할 방법으로 마왕군을 택한 사람이 바로 카샤스 황제니까요.
물론 선택지를 준 건 나지만.
결정은 카샤스 황제가 했다.
앞뒤가 좀 꼬이긴 했지만 결론은 같다.
카샤스 황제는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적어도 타란 제국 내에서 문제가 생길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카샤스 황제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우리가 하는 일을 덮어줄 거니까.
<주호> 뒷배가 황제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요?
<화련> 흐응. 그렇단 말이지? 그럼 판매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확실한 마왕군과의 끈이 없으면 시작도 못 해볼 건데?
<주호> 벌써 잊었어요? 저 마왕군하고 직통으로 연락이 됩니다.
베인 녀석을 통해 작업을 하면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베인이 이 건을 거부할 리가 없다.
오히려 당장 무릎을 꿇고 매달릴 정도다.
무려 마왕군에 베르탈륨 광석을 공급하는 일이니까.
그것도 대륙 최대의 베르탈륨 광산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을.
에센시아 제국으로 통하는 협곡으로 한 건.
여기다 베르탈륨 공급 건으로 한 건.
이 큰 건들이 제대로 성사만 된다면.
마왕군 내에서 베인 녀석의 입지는 폭발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베인의 입지가 올라가면.
그만큼 마왕군을 더 많이 움직일 수 있게 되겠지.
잘하면 변방의 마왕성 같은 거라도 하나 가질 수도 있으려나?
뭐 거기까지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주호> 아. 그리고 판매는 제 3국을 통해서 할 거예요.
<화련> 흐응? 들킬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겠다?
<주호> 그렇죠. 아무래도 타란 제국과 마왕군의 직거래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잖아요.
혹시나 이번 베르탈륨 거래가 다른 국가에 들킨다고 해도.
타란 제국은 바로 발뺌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어야 한다.
중간에 제 3국을 끼워 넣는 건.
그런 일의 일환이다.
그러자 화련이 한술 더 떠서 말했다.
<화련> 할 거면 유통 경로를 몇 곳 더 거쳐.
<주호> 여러 국가를 쓰자는 건가요?
<화련> 그래. 아니다. 아예 시작점부터 유령 국가에서 시작하면 되겠네. 이건 페이퍼 국가라고 해야 하려나? 말이 웃기긴 한데.
<주호> 서류상에서만 존재하는 국가를 만든다?
<화련> 맞아. 여차하면 덤탱이 쓸 나라지. 파고들다 보면 어느 한적한 산맥에 작은 성 하나 있는 곳이면 적당해. 어쨌든 국가는 국가니까.
어째 경험담처럼 들리는 건 내 착각일까.
<화련> 베르탈륨 이동과 운반에는 용병들만 쓰고.
<주호> 그래도 될까요? 분실 위험도 있는데…….
<화련> 돈 주고 처리하는 게 제일 확실해. 끊고 맺는 게 편하잖아.
<주호> 꼬리가 붙거나 장난질 치면 바로 제거하라는 뜻으로 들리네요.
<화련> 잘 아네.
베르탈륨 광석을 몇 번에 걸쳐 이동시켜 흔적을 지운다.
돈은 우리에게로.
광석은 마왕군에게로.
중간에 흔적은 남지 않는다.
<주호> 무슨 범죄 작당 모의하는 것 같네요.
<화련> 다들 하고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
으음.
아무래도 진짜 경험담인 듯 하다.
<화련> 중간에 준비는 내가 할 테니까 넌 마왕군하고 이야기나 잘 해놔.
<주호> 저야 고맙죠.
아무래도 화련은 자신이 직접 손을 대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 했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에 반대할 이유가 없고.
잘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하게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주호> 아, 혹시 헤르마늄도 같은 방법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화련> 에센시아 제국에서 나는 헤르마늄 말이지?
<주호> 네. 드워프들이 도와주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쪽에서 운반까지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화련> 흐응. 그건 이번 구축할 페이퍼 국가들을 이용하면 될 거야. 중간에 몇 번은 돌려야 하니 시간은 좀 늦어지겠지만 적어도 들킬 위험은 없어지니까.
그러더니 화련이 내게 물어보았다.
<화련> 헤르마늄은 유저들에게 팔 거지?
<주호> 뭐 그렇죠. 아무래도 비싸게 사주지 않을까요?
내 말에 화련이 동의했다.
<화련> 앞으로 마왕군을 상대하려면 헤르마늄이 귀해질 거야. 물량을 풀기 시작하면 타란 제국으로 개떼처럼 몰려들겠는걸?
베르탈륨은 마왕군에게 판다.
반대로 헤르마늄은 유저들에게 팔고.
둘 다 제일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 가는 케이스였다.
당연히 값은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특히 헤르마늄은 그야말로 돈을 다발로 싸들고 찾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주호> 네. 곧 베르탈륨으로 무장한 마왕군이 들이닥칠 테니까요.
베르탈륨으로 된 무기를 막으려면.
같은 헤르마늄으로 만든 무기를 써야 하는 건 상식이다.
앞으로는 필수품을 넘어.
없으면 곤란할 지경이 되겠지.
값이 비싸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화련> 한쪽은 밀수고. 다른 한쪽은 대륙을 판 역적이라…… 꽤 재밌겠네.
화련은 이 상황이 너무 즐거운 듯 했다.
맞다.
양쪽 다.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수 있으니까.
리스크가 큰 만큼.
돌아오는 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화련> 그럼. 어디 대륙 전체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어 볼까나?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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