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53화 (1,353/1,404)

#1353화 재건 (12)

타란 제국의 내전은 제국군과 대공군 어느 한쪽이 우세하게 전개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둘 다 피 터지게 싸우다가 골로 갔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예 한 쪽 세력이 완전히 압도한다면 절반으로 끝나야 하는 피해가 서로 치고받다가 둘 다 피해가 누적되었으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키메라까지 설쳐대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제국군과 대공군 병력들을 괴멸시키는 사태까지 일어났었다.

당장 타란 제국 전역을 유지할 적정한 병력조차 구성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카샤스 황제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이곳저곳에 병력 공백이 나기 시작했을 터.

이런 상황에서 성마대전으로의 병력 파견?

꿈도 못 꾼다.

거기다 지금은 에센시아 제국의 잠재적인 침략 위협까지 고려해야 했다.

어디로 병력을 내돌리고 할 상황이 아니라는 거지.

결국 카샤스 황제가 선택한 건.

타란 제국의 병력이 아닌.

외부의 인력.

그러니까 바로 우리다.

카샤스 황제가 이마를 손으로 짚더니 크게 한숨을 쉬고는 내게 푸념했다.

“솔직하게 병력을 파견하고 싶어도 남는 병력이 없다.”

“왜? 막상 맡아 보니 개판이야?”

“그래. 당장 수도 방위만 해도 벅찬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제국 외곽 국경은 포기해야 할지도 몰라.”

“정말 개판이네.”

어느 정도 부족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부족할 줄은 몰랐다.

국경 수비를 포기한다는 말은.

곧 타란 제국의 영토를 포기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지금의 병력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급하게 남아 있는 용기사들을 국경 외곽으로 돌리면 어떻게든 국경 수비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걔들이 하루종일 날아다닐 게 아니라면. 무리겠지.”

내 말에 카샤스 황제가 다시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전대 황제가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성룡들을 너무 많이 죽여 버렸어. 가뜩이나 용기사도 부족한데 말이지.”

“타고 다닐 용은 더 부족하다?”

“그래.”

그런 카샤스 황제의 푸념에 그가 들고 있는 용신검을 빤히 쳐다보았다.

“전대가 용신검의 제물로 죄다 써버려서?”

“그렇지.”

“참 그 녀석은 가고 나서도 민폐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전대 황제가 아주 똥을 제대로 싸질러 놓고 갔다.

나라 살림을 말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먹고 살 걱정까지 해야 하는 수준까지 만들어놓았으니.

이제와서는 죽어버린 녀석에게 따질 수도 없고.

결국 남은 뒤처리는 카샤스 황제의 몫이다.

“황금으로 된 왕관이 아니라 흙더미를 뒤집어쓴 것 같네.”

“부정할 수 없군.”

갑자기 몇 년은 늙어 보이는 카샤스 황제에게 위로를 보내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시급한 일들이 있었다.

“외부의 침입은?”

내 물음에 카샤스 황제가 잠시 뭔가를 떠올리는 듯 하더니 말을 꺼냈다.

“왕국의 연합군들 말하는 건가?”

“그래. 아직 타란 제국에서 나가지 않았을 것 아냐.”

어떻게 보면 그 연합 세력들은 타란 제국 내에 폭탄을 심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비록 최상급 천사들 같은 구심점들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위험은 존재했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면 이쪽이 먼저일 지도.

품속에 폭탄을 가지고 전쟁에 임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카샤스 황제가 손가락을 툭툭 의자를 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타란 제국 외부로 강제 추방하는 안을 고려하는 중이다.”

“타란 제국을 완전히 폐쇄하겠다는 거야?”

“지금은 방법이 없지. 그들을 타란 제국에 그대로 놔두는 것 자체가 제국에는 위험이다.”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면.

아예 추방을 한 다음.

타란 제국의 국경을 걸어 잠그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방식을 고수하기도 했고.

실제 타란 제국은 완전히 폐쇄적인 국가니까.

하지만.

과연 지금도 그 방법이 먹힐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을 추방하면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여기는 거야?”

내 물음에 카샤스 황제가 불편한지 살짝 인상을 구겼다.

“아니. 국경을 넘기 위해 다시 움직이겠지.”

강제로 추방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어차피 자기 제국에서 주인이 추방한다는데 거부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한 번 타란 제국에 발을 들여놨던 녀석들이다.

특히 유저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터.

집요함으로 치면 유저들 만한 녀석들이 없다.

그 욕심의 정도가 어지간한 마족은 우스울 지경이다.

거기다 문제는 또 다른 데 있었다.

“왕국 연합군들을 완전히 추방하고 다시 국경을 막으려면 엄청난 병력이 필요할 거야. 최소 이전의 타란 제국 수준은 되어야 할걸?”

막는다고 다시 넘어오지 않을 녀석들이 아니다.

그럼 결국 되풀이될 터.

그들을 죄다 틀어막으려면 이쪽도 병력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타란 제국은 당장 병력이 부족했다.

카샤스 황제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 결국 돌고 돌아 병력이 문제군.”

타란 제국 같은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병력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게 부족하니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이건 카샤스 황제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아니.

누가 와도 이 문제는 바로 처리할 수 없었다.

어딘가에서 병력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들어온다면 또 모를까…….

갑자기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

내가 왜 이 생각을 하지 못 했지?

“병력이 부족한 게 문제겠지?”

“그래. 하지만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지.”

카샤스 황제의 말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당장 해결할 수 있어.”

“뭐?”

병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죽하면 내게 베르마 제국까지 가달라고 한 게 아니었던가.

뭐 일단은 타란 제국의 대공의 위치니까 파견을 명하면 가야하는 게 맞긴 한데.

상황에 등 떠밀려 두 손 놓고 가는 건 사양이다.

적어도 준비는 해놓고 난 뒤 가는 게 맞지.

“모험가들.”

“모험가?”

“그래. 그들을 이용해.”

생각해보면.

이전 성마대전 시대에는 거의 대륙의 모든 병력들이 타란 제국으로 몰려든다.

남은 최후의 보루인 타란 제국으로.

그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성마대전에서 타란 제국은 다국적을 가진 연합군의 성격을 띤다.

그때도 충분히 가능했었는데.

지금은 안 될 게 뭔가.

뭐 그 주체가 NPC들과 유저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오히려 따지고 보면 유저들이 NPC들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유저야 애초에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곳이 어딘가가 문제지.

필요하다면.

국가 따위는 얼마든지 갈아탈 준비가 된 것이 바로 유저들이다.

“모험가들에게만 타란 제국을 개방해.”

“으음…….”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한 제안을 하니 카샤스 대공도 꽤 난감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란 제국 자체가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모험가를 믿지 못하겠지.

그런 카샤스 황제에게 한 가지 커다란 떡밥을 주었다.

“유저들. 그러니까 모험가들은 돈이 아주 많거든.”

“응? 그게 무슨?”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돈을 펑펑 써댄다고.”

“흠.”

“그리고 쪽수도 엄청나게 많지.”

언제든지 풀 준비가 되어 있는 돈을 잔뜩 싸들고 우르르 몰려오는 병력.

지금 타란 제국에 필요한 건.

다름 아닌 그 유저들이다.

“모험가들은 애초에 국적을 따지지 않아. 그들에게 이득만 된다면.”

“음. 그들에게 이득이 될 만한 것들을 타란 제국에서 제공하라는 말로 들리는군.”

“절반은 맞아.”

솔직히 카샤스 황제가 생각하는 것만큼.

타란 제국에서 일부러 나서서 뭔가를 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타란 제국.

그 존재 자체만으로.

유저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환경일 테니까.

“그냥 타란 제국민으로 받아들이기만 해도 돼. 모험가들은 그것만으로도 두 손 들고 반길 테니까.”

당장 타란 제국 소속이 되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탈것인 용들을 거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돈과 시간을 들이면.

최강의 탈 것들을 구할 수 있게 되니까.

거기다 타란 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장비 역시 최상.

기본적으로 용에서 나오는 재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무기와 방어구, 악세서리는 다른 왕국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다.

타란 제국의 사냥터 역시도 마찬가지.

유저들이 충분히 만족할만한 최상의 사냥터가 사방에 즐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왕국에서 영웅이 되는 것보다.

제국에서 주는 영웅 버프가 월등히 좋다.

귀족 직위를 받을 때도 왕국보다 몇 단계는 윗줄로 쳐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

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제국민 소속이지.

에센시아 제국이나 베르마 제국, 요하스 성국에서는 아직 유저들을 정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고려해 본다면.

타란 제국민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유저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타 제국보다 먼저 유저들을 선점하는 게.

제국 규모를 키우는데 훨씬 도움이 되겠지.

만약 내가 타란 제국의 대공 정도가 아니었다면.

절대 이런 논의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란 제국의 황제와 앉아서 독대가 가능한 나니까.

유저들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말 그것만으로 가능하다는 건가?”

“날 한 번 믿어 봐. 언제 내가 손해보는 일을 하는 거 봤어?”

내 물음에 카샤스 황제가 크게 웃어버렸다.

“확실히 넌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지.”

“그래. 당장 모험가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병력 공백을 상당히 채울 수 있을 거다.”

“용기사단도 개방하라는 건가?”

“필요하다면. 아니다. 필수적으로 해야겠네.”

타란 제국의 용기사단.

전용 탈 것과 기사단 장비가 제공되는 것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강력한 기사단 버프까지도 주어진다.

거기다 조금만 직위가 올라가면 용사 버프를 얻을 수 있고.

기사단장까지 올라가면 거의 영웅에 해당하는 능력까지 받을 수 있다.

만약 유저들을 용기사단에 채용할 수 있다면.

강제적으로 퀘스트를 내려서 타란 제국을 보호하는 일까지도 가능할 테지.

유저들도 타란 제국의 기여도를 쌓기 위해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기여도를 쌓아야 상위 퀘스트와 귀족 작위.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상위 용 경매 시장의 거래도 모험가들에게 풀어줘.”

“음. 그렇게까지?”

“어. 그래야 타란 제국에 돈이 펑펑 돌아가. 당장 부족한 제국 재건 비용도 전부 그들에게서 충당할 수 있어.”

좋은 등급의 용은.

구하기 힘든 만큼이나 부르는 것 자체가 값이다.

그런 용들을 과연 유저들이 그냥 두고 볼까?

절대 아니지.

천금을 들여서라도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경매에 참가할 것이다.

뭐 다시 되판다거나 해서 용이 타란 제국 외부로 유출되는 것까지 우리가 염려할 이유는 없다.

그것만으로도 더욱 소문이 붙어 타란 제국으로 유저들이 몰려들 테니까.

남들보다 더 귀하고 좋은 것.

이게 바로 성마대전에서 유저들이 악착같이 버티면서 원하는 것들이다.

타란 제국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쥐어 준다면.

반대로 유저들은 타란 제국의 검이 되어줄 것이다.

카샤스 황제를 빤히 쳐다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팔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팔아야 해. 지금은 그게 가장 빨리 타란 제국을 재건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지은이 : 란델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181-251-9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