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1화 내전의 끝 (9)
타란 제국성 지하에서부터 뿜어진 브레스에 커다란 통로가 생겨났고 거기서부터 튀어나온 키메라의 모습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이 상황에서 겨우 살아남은 타란 제국군들과 카샤스 대공군들이 그랬다.
“저건 대체 뭐지?”
“아군인가? 용족…… 이잖아.”
“아냐. 저렇게 생긴 용족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용족의 기형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게.
키메라가 가진 날개의 형태부터가 용족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애초에 저 날개 자체가 천사의 날개니까.
그러던 중 눈썰미가 좋은 한 녀석이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어……? 저거 천사들의 날개 아냐?”
“뭐? 설마.”
“잘 보라고. 전에 성마대전 전선에서 본 적이 있어.”
“그럴 리가…….”
말해놓고도 믿기지 않아 하는 녀석들과 그걸 듣고도 믿지 못하는 녀석들까지.
때론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 이해가 따라가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고.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증명해줄 녀석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왕국 군사로 위장해 타란 제국에 침투한 천사들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천사 날개라고?”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야?”
키메라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하얀 날개는 천사들의 그것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당연히 천사들은 그걸 알아봤고.
그러다 보니 경악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형태라.
어느새 지상으로 올라온 우리를 발견한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이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내게 달려와 물었다.
“대천사님…… 저게 무슨…….”
“우리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니. 맞아. 저거 너네들 거다.”
내 확답에 이베스와 로엔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대천사가 맞다고 하면 그게 진실일 테니.
꼭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들 눈으로 봐도 저건 천사의 날개였다.
이베스가 당황함을 애써 감추고는 내게 물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보는 그대로야. 저기 있는 건 용족과 천사를 합친 키메라다.”
키메라라는 내 말에 다시 한 번 이베스와 로엔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을 들었다는 듯.
당황함도 함께 보이면서.
“아. 그리고 저 키메라의 베이스는 그…… 에멘스던가? 아무튼 그 녀석일 거다.”
“에멘스?”
“말도 안 돼. 어떻게…….”
“뭐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됐어. 그러니까 너네는 이제부터 저걸 적이라고 판단해라. 다른 녀석들에게 그렇게 전하고.”
내 지시에 이베스와 로엔이 바로 눈빛을 빛내면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명령 받듭니다.”
당황한 건 당황한 거고.
명령은 명령이다 이거지?
그때 의아한 것이 있는지 이베스가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저걸 만든 것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만약 타란 제국에서 만든 것이라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모든 천사군을 동원해서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그 말에 다시 한 번 손을 저었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서.
“아냐. 저걸 만든 건. 오히려 천사군이다.”
“예?”
“천사군이 왜…….”
천사군이 만들었다는 말에 또다시 이베스와 로엔의 동공이 흔들렸다.
믿기 힘든 말을 들었다는 듯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천사군이 아니라 어떤 대천사가 만든 거다.”
“대천사라니요?”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로엔이 내게 물었다.
“혹시 감찰원이 여기로 온 이유가 그 대천사를 조사하기 위함이십니까?”
흐음.
이걸 알아서 오해해주는 건가?
딱히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오벨리스크의 흔적을 쫓아왔다가 겨우 알아냈지. 대천사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반 천사들 입장에서 대천사가 이런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들이 너무 큰일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바로 이베스에게 물었다.
“천사군에서 키메라 제작은 어떤 죄에 속하지?”
굳이 대천사가 아는 걸 확인하려 묻는다고 생각했는지 이베스는 의심 없이 착실하게 대답했다.
“키메라 제작은 금기에 속합니다. 제물의 결계와 마찬가지로 둘 다 금기입니다. 그리고 등급으로 치면 둘 다 최상단에 등록된 금기입니다.”
역시 그랬나.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자 그녀는 크게 상관없다는 듯 미소만 지었다.
마왕 헤르게니아도 저런 기술을 가지고 있긴 한데.
어차피 마왕이 그런 걸 한다고 금기라고 할 녀석들 자체가 없었다.
마족 세계에서는 마왕이 곧 법이라.
제물의 결계야 천계고 마계고 한 번 망할 뻔해서 그런지 서로 안 쓰는 모양이다만.
“만약 천사군에서 쓰는 걸 확인된다면?”
“날개를 찢기고 힘을 봉인당하고 유배시킵니다.”
그 말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서 물어보았다.
“봉인지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흐음.
이게 또 그렇게 된다 이거지?
곧 내가 가지고 있는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떠올렸다.
대천사 루스 그 녀석.
과거에 금기를 어기고 봉인된 게 분명하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금도 봉인되어 있으려나?
그때 챠밍을 비롯한 우리 팀도 빠르게 내게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 그게…….”
그리고는 짧게 있었던 일들을 추려 말해주자 다들 놀란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키메라는 처음 봐요.”
그것도 용족과 천사들의 조합이라.
어지간해서는 볼 수 없는 조합이었다.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 할 것 없이 긴장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키메라…….”
“강해 보이네.”
“계속 안 움직이네요?”
전사 형도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지금 움직인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키메라의 날개가 활짝 펴지더니 급격한 가속을 걸어 튀어 나갔다.
그리고 그 방향은 바로 타란 제국 황제가 있는 곳이었다.
하늘에서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가속을 붙일 수 있는 능력이라.
용족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기동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걸 느낀 건 타란 제국 황제도 마찬가지일 테고.
자신을 공격하러 날아들자 빠르게 두껍고 붉은빛이 섞인 반달형의 오러를 휘둘러 키메라를 공격했다.
콰아아!!
하지만 그런 오러는 키메라가 한 손을 크게 휘두르자 바로 터져나가더니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전사 형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고대 마룡의 비늘까지 찢어내던 황제의 오러를 고작 저런 식으로 없애 버린다고?”
자세히 보니 키메라의 팔은 모두 용의 비늘로 덥혀 있었다.
그 위로는 붉은 광석들이 몇 겹으로 겹쳐져서 그 팔을 보호하고 있었고.
심지어 거기서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들은 끊임없이 주변으로 유형의 기운들을 두텁게 내뿜었다.
그와 함께 천사의 것으로 보이는 하얀 기운들마저 키메라의 팔을 감싸면서 다시 한 번 방어막을 형성했다.
저건 거의 사중으로 된 보호막이라고 해야 할까.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이 거의 통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어찌어찌 기운들과 붉은 광석을 부순다고 해도 용족의 비늘까지 치면 그 방어력이 만만치 않으니까.
곧 타란 제국 황제에게 근접한 키메라가 기분 나쁜 듯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키에에엑!!”
그대로 다시 팔을 휘두르는 순간.
콰아아앙!!!
마치 하늘에서 포탄이라도 터지는 것마냥 거대한 폭음이 터지며 타란 제국 황제의 몸이 지상으로 빠르게 튕겨져 추락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카메라의 두 팔이 뼈가 뒤틀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거대한 대포처럼 변형이 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두 천사 날개가 뒤쪽으로 꺾이듯이 펼쳐져 붉은 기운과 하얀 기운을 함께 빨아들여 앞으로 전달하는 모습이 보였다.
콰드드득!!
그렇게 그 포대의 방향을 추락하고 있는 타란 제국 황제를 향해 맞추는 순간.
거센 기운들의 조합이 두 팔의 중심을 향해 가득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응축된 기운들이 포대의 정면을 향해 붉은 빛을 발했다.
쿠우우우!!
몰려든 기운들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거. 브레스 이상으로 힘이 뭉쳤어.”
“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변형된 팔에서 응축된 붉고 하얀 기운 두 발이 강렬한 스파크를 내며 마치 레이저가 뿜어져 나가듯 지상으로 빠르게 떨어져 내렸고.
그 기운들이 지상에 닿는 순간.
콰아아앙!!!
강력한 섬광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닿는 모든 것을 터트려버렸다.
“크아아악!!”
타란 제국 황제 역시 그 폭발 안에서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붉은 폭발과 하얀 빛의 폭발이 동시에 얽히면서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그 사이로 거센 스파크가 연이어 폭발의 폭풍을 타고 거칠게 대지를 갉아먹었다.
일대가 삭제라도 된 듯 폭발만 보이는 광경이라니.
거기다 그 폭발의 후폭풍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까지도 영향이 미쳤다.
자세를 낮췄음에도 피해가 들어왔는지 체력 역시도 떨어졌고.
얼마나 위력이 강하면 이렇게까지…….
한참을 대지를 할퀴던 폭풍이 걷히자 그 중심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한가운데는 타란 제국 황제로 보이던 녀석이 형편없이 흙 속에 파묻혀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 상황을 자세히 본 나르샤 누나도 놀란 눈을 감추지 못하고는 말했다.
“세상에…… 저 황제를 단 한 방에?”
나르샤 누나가 놀랄 수밖에 없는 게.
우리가 지하에 가 있는 동안 고대 마룡과 끝없이 치고받은 게 지금의 타란 제국 황제였다.
그런데 그런 황제가 지금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하고 키메라에게 당했다.
안 놀라는 게 이상하지.
아무리 고대 마룡과 싸우고 있다고 힘이 떨어진 상태라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릴 줄이야…….
전사 형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날 보면서 물었다.
“저거 대체 얼마나 강한 거냐?”
“음. 아마 어지간한 마왕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얼마나 강한지 감도 안 잡힌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주었든.
지금은 키메라가 폭주하는 중이라 모든 힘을 쏟아낸다고 가정했을 때.
저 힘이 오래 유지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 안에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당장 저 변형되는 기술을 몇 번만 지상으로 떨어뜨리면.
타란 제국 수도는 삭제된 듯 사라져버릴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키메라 녀석의 두 팔이 빨갛게 달아올라 열기가 가득한지 수증기가 끓어오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몸 전체도 마찬가지였고.
등 뒤로 뻗어 나온 하얀 날개 역시도 빠르게 열을 식히는지 마찬가지로 외부로 열을 내뿜고 있었다.
“과열된 몸을 식히나 봐요.”
내 말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기술을 계속 쓸 수 있으면 그건 너무 사기지.”
완전히 침묵한 타란 제국 황제를 확인한 후 곧 키메라의 시선이 고대 마룡에게 가서 닿았다.
마치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보는 것마냥.
기뻐하는 눈빛으로.
“키하아!!”
저거 좀 위험해 보이는데…….
고대 마룡 역시 타란 제국 황제와 싸운다고 상당히 힘을 소진한 상태일 것이다.
반면 키메라는 아직 그 힘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그때 전사 형이 멀리 크레이터 중심을 쳐다보면서 내게 물었다.
“황제. 지금 잡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