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화 내전의 끝 (8)
“튀자고?”
“그래. 빨리.”
그간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렇게 재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별히 위험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 말은 곧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저 키메라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일 것이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억지로 우리 팔을 잡아당기자 강한 힘에 의해 우리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대로 우리를 끌고는 원래 지하로 들어왔던 방향을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우리 뒤쪽의 오벨리스크로부터 강렬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정확하게는 오벨리스크에서 나온 빛을 휘감고 있는 키메라에서부터 나왔다.
“저건……?”
“폭주야.”
곧 재중이 형과 함께 자세를 바로 잡으며 그대로 바닥에 착지해서 마왕 헤르게니아 옆을 따라 달리며 물었다.
“이렇게 도망갈 정도로 위험한 거야?”
“응. 쟤. 아무리 봐도 미완성 같거든.”
그러자 의아한지 재중이 형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말했다.
“미완성이면 오히려 약한 거 아닌가?”
“아니. 절대 약하지 않아.”
그리고는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그년이 저 용족과 천사가 합쳐진 키메라를 실험해보려고 여기 온 것 같거든. 그런데 중간에 우리가 와서는 끝까지 완성시키지 못 했어.”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은 시간이 더 필요했는데 우리가 현장을 덮치면서 망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건 전에 에멘스라는 녀석이 시간만 벌면 된다고 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려나?
우습게도 정작 본인이 저 키메라가 되어버렸지만.
“그리고 저걸 너무 급하게 만들면서 이성은 완전히 날아가 버렸어. 아까 봤지? 다른 천사를 물어뜯는 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우리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키메라가 된 에멘스가 쉬에르를 물어뜯어 난도질해놓는 모습을 확실하게 눈앞에서 봤으니까.
“원래라면 이성까지 가진 상태로 키메라가 되었을 텐데. 지금은 그냥 힘만 센 괴물일 뿐이야. 그것도 오벨리스크의 힘을 가져다 쓰는 괴물. 힘 조절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을 걸.”
마왕에게서 괴물이라는 평가를 받다니.
그 말은 곧 저 키메라가 얼마나 강한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재중이 형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저 녀석이 힘자랑하는 타이밍을 피하자는 거군.”
“맞아. 지금 바로 옆에 있으면 저걸 제일 먼저 상대하는 게 우리가 될 테니까.”
강한데다가 이성도 없다.
그 상황에서 바로 근처에 우리가 있으면.
타겟이 우리가 될 뿐이었다.
마왕 헤르게니아는 그런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거고.
굳이 우리가 앞서 상대한다고 힘을 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괴물은 괴물들이 상대해야지.”
그러면서 천장을 올려다보자 그녀가 원하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고대 마룡과 타란 제국 황제 말이야?”
“응. 아마 지금쯤이면 위쪽에서도 이쪽의 이변을 눈치 챘을 걸?”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벨리스크에 문제가 생기면 타란 제국 황제가 제일 먼저 알겠군.”
“지금 오벨리스크에서 힘을 가져다 쓰는 게 타란 황제니까요?”
“그래. 오벨리스크는 하난데. 힘을 가져다 쓰는 게 둘이 되면 어떨 것 같아?”
“당연히 표가 나겠죠.”
원래라면 타란 제국 황제 혼자서 오벨리스크의 힘을 독식했겠지만.
저렇게 키메라가 된 에멘스가 힘을 가져다 쓰게 되면 타란 제국 황제에게 돌아갈 수 있는 몫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아니지.
어쩌면…….
반대로 키메라가 오벨리스크의 힘을 전부 흡수해버린다면 어떨까.
나와 거의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타란 황제가 지금쯤 똥줄 타고 있겠는데.”
고대 마룡과 싸우다가 갑자기 쓰던 힘이 없어져 버리면.
그것도 팽팽한 싸움을 하고 있다가 그런 상황이 오면 당연히 밀려버리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타란 제국 성 전체가 뭔가의 충격에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의 거대한 폭격에 맞은 것마냥 바닥마저 크게 흔들리자 겨우 균형을 잡아 다시 달려나갔다.
곧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고 그대로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순간.
위쪽에서부터 뭔가가 감각에 걸려들었다.
잠시 멈추라고 하려다가 누군지 확인하고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자 그곳에서는 카샤스 대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뭔가의 큰 물건 주머니를 들고서.
저 얼굴이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이네.
급하게 뛰어올라오는 우리를 발견한 카샤스 대공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내가 너무 늦었나?”
카샤스 대공은 우리가 이미 일을 처리하고 올라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반가운 것도 잠시.
웃음과 함께 카샤스 대공의 옆을 스쳐 지나면서 그대로 달려나갔다.
“뭐해? 튀어!”
“어?”
그리고 그 옆으로 재중이 형과 마왕 헤르게니아가 동시에 달려 지나가자 어리둥절 해하면서도 이미 카샤스 대공의 발은 우리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설명하자면 길고. 무조건 튀어야 해.”
“지하에서 일이 잘못된 건가?”
“음. 좀 많이 꼬였어.”
일을 실패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카샤스 대공이 짧게 한숨을 쉬는 순간.
갑자기 지하 계단에서부터 뭔가의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마왕 헤르게니아도 발견했는지 급하게 외쳤다.
“브레스!”
분명히 용족과의 키메라라고 했으니 브레스를 쓸 수 있는 건 당연한 거려나?
그리고 그 위력은.
이전에 봤던 고대 마룡의 그것과 거의 흡사한 듯 했다.
지하와 계단을 포함해 통로를 모두 녹여버리면서 그대로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거대한 빛기둥을 보면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눈에 띄게 환한 기운이 겹쳐 보이는 걸 봐서는.
성 속성의 무언가가 브레스에 섞여 있는 듯 했다.
아마도 저건 키메라가 된 천사의 속성인 모양이고.
쿠구구궁!!!
그와 동시에 타란 제국성이 지하에서부터 붕괴되듯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만약 아까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을 듣지 않고 저곳에 버티고 있었다면.
지금쯤 피할 곳도 없는 지하에서 브레스를 맞고 싹 녹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거의 백프로 확률로 그렇게 됐을 것 같다.
지금도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계속 하늘로 솟구치는 중이라.
타란 제국성이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본 카샤스 대공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고대 마룡이 지하에 한 마리 더 있는 거냐?”
오죽하면 카샤스 대공이 이런 말을 할까.
“아니. 저건 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용족이 키메라로 쓰였다는 걸 설명하려니 좀 깝깝한 느낌인데.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용족하고 천사하고 키메라가 된 거야.”
“뭐……?”
“만약 황제가 마지막까지 살아 있으면 대천사를 죽이러 가겠는데?”
“방금 대천사라고 했나?”
“그 어미 용족과 천사를 키메라로 만든 게 대천사니까.”
마왕 헤르게니아의 설명에 카샤스 대공이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대천사가 왜…….”
“왜긴 왜야. 여길 새로운 키메라 실험의 장으로 만들고 싶었나 보지. 용혈이 강한 용족 정도면 최상의 재료니까.”
그 말에 카샤스 대공이 이를 바득 갈았다.
“감히……!”
이건 카샤스 대공에게 있어서 천사군의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타란 제국 황제도 그렇게 느낄 수도 있으려나.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추측하듯이 말했다.
“어떤 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수준이면 용혈이 굉장히 강했을 거야.”
카샤스 대공은 용족과 천사를 키메라로 만들었다는 말에 잠시 혼란을 겪은 모습이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이 아는 리스트를 쭉 훑어보다가 곧 알겠다는 듯 말했다.
“지하에 전대 황제의 용인 키로아의 어미가 살아 있었다.”
카샤스 대공의 설명에 우리 모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정도 등급은 되는 용이어야 지금의 저런 출력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황제가 꽤 씁쓸해 하겠군.”
“그래?”
“아주 어릴 때부터 옆에 있던 용이었으니까. 지금은 키로아로 바뀌었지만.”
그런 사이라면 타란 제국 황제가 냅다 키메라로 쓰라고 던져주진 않았을 텐데…….
그렇다는 건.
대천사가 황제 몰래 키메라로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일단 올라가지.”
길을 아는 카샤스 대공이 올라가는 길을 앞장서자 이전보다 훨씬 속도가 올라갔다.
가지고 있던 주머니는 내게 던져주면서.
“급하게 온다고 많이 챙기진 못 했다. 그리고 이제 이게 의미가 있을진 모르겠군.”
카샤스 대공에게 주머니를 받아서는 그대로 인벤에 집어넣고는 웃어보였다.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왔던 길을 되돌아 얼마나 올라갔을까.
지상으로 올라와서 본 타란 제국성의 상황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고대 마룡과 타란 제국 황제와의 싸움에 무너지고 있었는데.
거기다 새로운 괴물이 등장했으니까.
마왕 헤르게니아가 먼저 발견하고는 말했다.
“헤에. 우리보다 먼저 올라왔네.”
그러자 재중이 형이 한 곳을 가리켰다.
지하에서부터 하늘로 그대로 뚫려버린 커다란 구덩이를.
“저기로 바로 올라왔나 본데.”
우리는 뛰어 올라왔고.
키메라는 날아서 일직선으로 바로 왔으니 빠를 수밖에.
그리고 지금 하늘에는 묘한 대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대 마룡과 싸우던 타란 제국 황제도 이미 손을 털고는 올라온 키메라를 노려보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고대 마룡 역시 새로운 적을 경계하며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졸지에 삼파전이 된 모습이네.”
“그러게요.”
키메라를 쳐다보자 용족의 그것과 달리 천사의 날개를 활짝 펼쳐 하늘을 날고 있었다.
신체는 용의 그것인데 날개와 일부 몇 부위만 천사라…….
기괴하다면 기괴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타란 황제 역시 전혀 상상도 못 했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키메라의 신체 전체에.
오벨리스크로 보이는 붉은 조각들이 비늘처럼 덥혀 있었다.
심지어 머리에는 거대한 붉은 뿔들이 돋아난 데다가.
가슴에는 거대한 오벨리스크 덩어리가 심장처럼 박혀 전신에 화려한 붉은 빛의 스파크를 공급하며 그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그걸 본 마왕 헤르게니아가 혀를 찼다.
“저 키메라 녀석. 오벨리스크를 조각내서 아예 자신의 몸에 융합시켰어.”
“그런 것도 돼?”
“키메라 자체가 어차피 서로 다른 힘을 융합시켜서 만든 존재니까. 거기서 하나쯤 더 올린다고 전혀 이상하진 않아.”
그리고는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당연히 성격이 다른 힘을 합쳐 안정적이진 않겠지만. 키메라가 그런 것 신경이나 쓸까. 제 몸이 다 부서져 나가도 신경도 안 쓸 걸?”
그렇게 말하고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싸우다 자신의 신체가 박살나더라도. 지금 눈앞에 훨씬 더 좋은 신체가 있잖아.”
마왕 헤르게니아의 설명에 나와 재중이 형, 카샤스 대공의 시선이 전부 한곳으로 몰렸다.
“설마…… 고대 마룡을?”
“응. 맞아. 키메라는 고대 마룡의 신체를 흡수하려고 할 거야.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