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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313화 (1,313/1,404)
  • #1313화 내전의 끝 (1)

    마엘리타가 제물의 결계를 쓰면서 가장 우려했던 점은 아마도 천사군이 직접 개입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지금 그 천사군으로 예상되는.

    그것도 중앙 감찰원에서 저 카샤스 대공을 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현재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이 내전 중이니.

    마엘리타는 천사군의 딱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가장 피해야 할 존재들이 상대편에 서 있다니.

    예상할 수 있는 상황 중에 가장 최악의 상황이겠지.

    그런데 여기서 아무런 선택지도 주지 않고 마엘리타를 밀어붙이면 분명히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마엘리타에게 제안을 했다.

    아예 카샤스 대공군에 붙으라고.

    과연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쯤 말했으면 분명히 마엘리타도 수긍할 수 있을 터.

    “타란 제국 황제를 배신하라는 겁니까?”

    그렇게 말하는 마엘리타에게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어차피 필요하면 언제든 버릴 패였지 않나?”

    마엘리타도 본인이 말해놓고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잘 아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만약 중간에 우리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런 선택지가 존재했을 것이다.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요.”

    대천사라는 다른 패가 들어온 이상.

    타란 제국 황제는 마엘리타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제물의 결계까지 써가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야…….

    둘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터.

    무엇보다 내 쪽에 붙으면.

    마엘리타가 해왔던 일들은 전부 무마시켜준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이려면 판이 한쪽으로 확 기울지.

    한참 고민을 하던 마엘리타가 결국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죠.”

    그렇게 마엘리타가 내 제안을 승낙했지만.

    시스템 메시지에는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 호감도가 올라간다든가 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뜰 텐데…….

    이 말은 곧.

    겉으로는 받아들인다 말은 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입장을 뒤바꿀 수 있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꽤 재밌게 구네.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마엘리타가 넘어오긴 했어요.

    <불멸> 넘어오긴 했다라……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주호> 네. 시스템 메시지가 안 뜨더라고요.

    <불멸> 그렇다면 확실하네. 일단 지켜봐. 허튼짓하면 목을 날려버려야지.

    재중이 형은 마엘리타를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 듯했다.

    나도 뭐 크게 다를 건 없지만.

    미래의 대천사가 될 재목이긴 한데.

    그렇다고 반드시 있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마왕 헤르게니아와 같은 마왕도 옆에 있는 판에.

    언제 될지 모르는 대천사를 기다리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가능성이 있으니 지금은 지켜본다는 것뿐.

    수틀리면 이쪽도 굳이 어렵게 끌고 나갈 이유는 없었다.

    곧 마엘리타가 날 보면서 물어보았다.

    “이제 뭘 하면 되겠습니까?”

    “아. 칼질 좀 해 봐.”

    “네?”

    그러자 시선을 올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타란 제국 황제 녀석. 한 번씩 이쪽을 내려다보더라고.”

    “연극이라도 하란 말입니까?”

    “정확해.”

    나와 마엘리타가 따로 자리를 만들고 대화하는 걸 타란 제국 황제가 달가워할 리가 있나.

    아직은 대치 중이니 두고 봤겠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음. 알겠습니다.”

    그러더니 마엘리타가 자신의 순백색 검을 꺼내서 내게 겨눴다.

    폭발적인 기세와 함께.

    그 기세만으로 감각이 찌릿찌릿하게 울리는 걸 봐서는.

    정말 강하긴 한 모양이었다.

    들고 있는 검은 대천사의 검의 그것과는 달리 좀 빛이 덜한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상급의 무기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상대하기 위해 르아 카르테를 꺼내 들자 마엘리타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대천사의 검은 쓰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 말에 주위를 잠깐 둘러보면서 말했다.

    “지금 나 대천사요 하고 광고하고 다니라는 거냐?”

    “흠. 하지만…….”

    아마 대천사가 신분을 위장하고 다닌다는 게 마엘리타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천사 정도의 강자라면 굳이 신분을 감추지 않을 테고.

    이건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에 해주었던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천사 쯤 되면 굳이 신분을 감추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면 내가 별종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따로 준비해둔 말이 있었다.

    “감찰원은 외부로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아. 그렇군요.”

    그제야 마엘리타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베일에 싸여 있는 감찰원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겠지.

    “그럼. 한 수 부탁드립니다.”

    마엘리타도 연극이라는 걸 알기에 진심을 다해 공격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능력 정도는 보여주어야 했다.

    빠르게 거리를 좁히면서 쇄도한 마엘리타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는 순간.

    곧바로 르아 카르테를 횡으로 그어냈다.

    카아앙!

    그러자 내 우측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엘리타의 천사의 검과 부딪히며 쇳소리를 울렸다.

    그리고는 연이어 내 주변을 돌면서 천사의 검을 휘둘렀지만.

    카아앙!!

    카앙!!

    키이이익!!

    대부분의 공격이 허공에서 막히거나 되튕겨지면서 무위로 돌아가자 내 정면으로 마엘리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대천사는 다르군요.”

    저건 상당히 만족한 것 같은 딱 그런 표정이랄까.

    문제는 마엘리타 녀석의 공격을 막아내는 내 손목이 불이라도 가져다 댄 것처럼 열이 올라 부하가 걸렸단 점이었다.

    솔직히 저 녀석의 한 방, 한 방을 쉽게 막아낸 게 아니었다.

    감각을 집중하고 최적의 루트로 막아내었기에 이 정도지.

    조금이라도 놓쳤으면 낭패할 뻔했다.

    전에 마엘리타가 대천사 바로 아래의 무력이라고 했었던가.

    이건 거의 마왕의 그것과 다름없을 정도인데…….

    아마도 내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대천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보여준 것 같으니 떨어지지?”

    “알겠습니다.”

    이 정도 공방이면 타란 제국 황제가 의심을 풀기에는 충분할 터.

    서로 대면하다 뭔가 맞지 않아 전투가 일어났다고 생각할 테니까.

    곧 마엘리타가 공중으로 떠올랐고.

    주변에서 기다리던 다른 최상급 천사들 역시 그를 호위하듯 옆으로 따라붙어 날아갔다.

    한 차례 공방이 끝나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다가왔다.

    다소 불만이 있다는 듯 멀리 날아간 마엘리타를 쳐다보면서.

    “저 녀석. 완전 진심이었는데?”

    “역시 그랬나?”

    “천사의 가호만 쓰지 않았지. 최대치로 힘을 냈어.”

    어쩐지 손아귀가 심하게 욱신거린다 했다.

    연극이라고 해놓고는 아예 대놓고 진심으로 달려든 모양이었다.

    정말 날 한 대라도 쳐보겠다고 달려들었을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대천사인 내가 맞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막 지른 것일 수도 있으려나.

    만약 녀석이 천사의 가호까지 썼다면.

    나 역시 가호를 걸고 마왕의 플레이트까지 꺼내야 했을 수도 있다.

    그래야 상대가 될 테니까.

    “덕분에 녀석도 완전히 믿게 됐잖아.”

    아마 내 실력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면.

    결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툴툴 댔다.

    “다음엔 내가 패줄까?”

    “그래 주면 고맙고.”

    아마도 죽도록 패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수틀리면 한 번 부탁해 볼까.

    “돌아가자.”

    곧장 우리 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니 다들 카샤스 대공과 함께 하늘의 전투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재중이 형이 날 보고는 바로 물어보았다.

    “싸워보니 어땠어?”

    “음. 확실히 강해요. 연극이라 하지 않았으면 저도 진심으로 싸워야 했을 거예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미래의 대천사가 괜히 붙은 게 아니군.”

    “상황은 어때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막상막하. 솔직히 황제가 저 정도까지 선전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엄청나네요.”

    무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의 일전에서 막상막하라니.

    약해졌다고 해도.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 재앙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괴물이었다.

    그런 녀석을 상대로 비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타란 제국 황제가 얼마나 강한지를 잘 알려주었다.

    “목숨을 태운 마지막 전투인가.”

    “그런 셈이죠.”

    높은 확률로 타란 제국 황제는 죽을 것이다.

    정말 고대 마룡의 힘을 가지지 못한다면 말이지.

    아직까지는 오벨리스크의 힘으로 싸우고 있다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연 고대 마룡의 체력과 마력이 먼저 닳을 것인지.

    타란 제국 황제가 나가떨어질 것인지.

    원래라면 한쪽으로 기운 상태에서 개입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더 지켜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여기서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그때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두 번째 페이즈를 넘어 마지막 페이즈로 넘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흡사 전신이 타오르는 것마냥 검은 기운과 붉은 기운이 동시에 휘몰아치면서 고대 마룡을 휘감고 있었다.

    모든 뿔, 비늘과 발톱들 역시 더욱 길게 뻗어 나오며 날카로움을 더 했고.

    전체적으로 더 강력한 전투 형태로 변한 느낌이랄까.

    거기다 기동력 역시 압도적으로 빨라졌다.

    차마 타란 제국 황제의 키로아가 따라잡지 못하고 연신 쫓겨 다녔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검은 용암을 타란 제국 황제가 오러로 파쇄했지만.

    지금은 한 번 부딪힐 때마다 그 오러가 맥을 추지 못하고 강제로 흩어져 버렸다.

    “너무 밀리는 것 같지 않아요?”

    “아무래도 그런가 보네.”

    아마도 타란 제국 황제가 낼 수 있는 최대 출력보다.

    마지막 페이즈로 넘어간 고대 마룡의 출력이 훨씬 상회하는 모양이었다.

    오벨리스크가 꾸준히 마력을 쥐어준다 하더라도.

    최대로 낼 수 있는 상한선이 맞지 않으면.

    지금처럼 한쪽이 밀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전사 형이 고대 마룡 쪽을 쳐다보고는 혀를 찼다.

    “저건 진짜 괴물이네.”

    “그래도 저렇게 오래는 못 싸울 거예요.”

    “그전에 타란 제국 황제가 먼저 죽겠는데?”

    확실히 전사 형 말대로 타란 제국 황제는 물론이고 탈 것인 키로아까지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는 모양새였다.

    “지금이라도 끼어들까요?”

    내 말에 전사 형이 잘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아직 고대 마룡의 남은 체력이 얼마큼인지 모르잖아. 우리가 한 번에 퍼부을 수 있는 화력에는 한계가 있어.”

    “그렇긴 하죠.”

    “스킬 빨로 때워야 하는데…… 안 죽으면 곤란하지.”

    페이즈가 넘어간 고대 마룡을 확실히 잡으려면 가진 모든 화력을 들이부어야 했다.

    직접 싸워서 될 만한 녀석이 아니니까.

    차라리 에센시아 제국처럼 성유와 정령석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타란 제국에서는 그런 물건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성유라면 마 속성이 있는 고대 마룡에게 정말 잘 먹힐 텐데…….

    혹시나 싶어서 이베스를 불러들였다.

    “말씀하십시오.”

    “성유. 준비해둔 것 있어?”

    내 말에 이베스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없습니다. 타란 제국은 천사군의 지원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서…….”

    “그것 참 아쉽네.”

    성유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카샤스 대공이 내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성유는 왜 찾는 거지?”

    “응? 혹시 있어?”

    “아니 없다. 대신 다른 건 가지고 있지.”

    “그래?”

    그리고 이어진 카샤스 대공의 말을 듣는 순간.

    손을 불끈 쥐었다.

    이건.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거 전부 내가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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