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8화 위장 (1)
남아있던 왕국들의 대표들이 반발을 일으킬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저들 모두가 천사들의 지배를 받는 왕국일 줄이야.
처음에는 천사들 중 한 놈만 걸려 보라는 생각에 제물의 결계로 녀석들을 밀어 넣을 생각이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왕국들의 대표로 나선 저들 전부가 천사라고 확인시켜줬으니까.
솔직히 내 쪽에서 봐서는 그냥 평범한 왕국의 귀족 NPC들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입고 있는 장비 등이라던가 하는 걸로 구분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숨어있는 천사 녀석들을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왕 헤르게니아는 다르다.
그냥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녀석들이 천사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다시 물어보았다.
일단 이걸 확실히 알아야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녀석들의 등급은?”
각 왕국에 포진되어 있는 천사들의 등급을 확실히 알아야 이쪽에서도 그에 맞는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
일단 녀석들을 보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반응을 봐서는 저들 중에 대천사가 있을 리는 없을 테고.
만약 대천사가 있었다면.
그녀의 반응이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당장 대천사를 죽인다고 달려들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그런데 지금의 반응은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다소 여유가 있어 보이는 느낌.
그렇다는 건 최소한 여기에 대천사는 없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최상급 천사 정도는 나올 수도 있었다.
이미 제물의 결계를 만든 천사들이 최상급 천사들이니.
이쪽에서도 같은 등급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쭉 왕국의 대표들을 쳐다보고는 마치 김이 빠진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보이며 말해주었다.
“쭉정이들뿐이야.”
“그 말은?”
“최상급 두 마리 정도…… 나머지는 다 상급이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이전에 우리가 본 녀석들은 중급이 고작이었는데.
최상급이나 상급이라면 그보다는 훨씬 높은 녀석들이었다.
뭐 그럼에도 마왕에게 비하면 한참 쳐지는 녀석들인 건 확실하다.
당장 마왕 헤르게니아가 손가락만 놀려도 저 앞에 있는 천사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한 번에 죽어 나갈 테니까.
그 등급의 차이는 절대 무시 못 한다.
하지만 여기서 저들을 죄다 죽였다가는 남아있던 왕국들 전체가 반발할 테고.
그건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니지.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 쪽을 보면서 말했다.
“잠시. 자리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너하고 나?”
지금 일에 대해서 의논이라도 하자는 말인 줄 착각한 카샤스 대공이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내 대답은 전혀 아니었다.
“아니. 저 왕국 대표 녀석들하고 따로 자리 좀 만들고 싶은데.”
“흠. 그냥 명령을 내리면 어차피 해야 할 텐데? 굳이?”
카샤스 대공 입장에서는 타 왕국 녀석들이 반발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하긴.
아직 반쪽이라고는 하나.
제국의 대공에게 왕국의 대표들이 반발하는 건 평소라면 절대 보기 힘든 광경일 테니.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당연할 터.
하지만 지금은 그것과는 별개로 따로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이왕이면 말을 잘 듣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어?”
“흐음. 저들을 쥐어패서 말을 듣게 하겠다는 건 아닐 테고.”
“아. 그건 내 스타일은 아냐.”
카샤스 대공 정도로 강하다면 그렇게 해도 되긴 할 테지만.
여기서는 굳이 무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백 프로 먹힐 것이라 확신하기도 했고.
“흠. 알았다. 따로 자리를 만들어주지.”
곧 카샤스 대공이 휘하의 부하들에게 명령해 일대의 병력을 전부 물려주자 주변에는 나와 마왕 헤르게니아, 카샤스 대공만이 남게 되었다.
재중이 형은 뒤로 물러나면서 내게 물어보았다.
<불멸> 무슨 생각이야?
<주호> 아.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러는데 저 녀석들 전부 천사들이라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재중이 형이 주변 상황을 보고는 곧 눈치챘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불멸> 녀석들을 말 잘 듣는 개로 만들어보겠다?
<주호> 뭐 그런 셈이죠.
그리곤 재중이 형까지 완전히 멀어지자 왕국의 대표들이 오히려 당황하면서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설마 우리를 죽일 생각은…….”
그 말에 내가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죽일 생각이었으면 병력을 물리지도 않았어.”
“흠흠.”
곧 카샤스 대공이 왕국의 대표들에게 말했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으니 병력들을 전부 물리도록.”
그러자 왕국의 대표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내 결정했는지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병력을 물릴 것을 지시했다.
여기서 버티고 있어 봐야 답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그렇게 왕국들까지 전부 먼 거리까지 병력을 물리자.
이곳에는 왕국의 대표와 우리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는 카샤스 대공에게 시선을 보내자 카샤스 대공도 알겠다는 듯 멀리 떨어졌다.
“흠. 카샤스 대공은 왜…….”
“우리와 이야기할 생각이 아니었나?”
의아함을 담은 그 질문들에 다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 너네한테 볼일이 있는 건 나뿐이라서 말이야.”
당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왕국 녀석들이 다소 경직된 듯한 표정으로 나와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았다.
이건 뭔가 찔리는 게 있지 않고서야 나올 수가 없는 표정이지.
저들이 천사군 소속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내 쪽에선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 우리에게는 무슨 볼일이지? 로가슈 왕국의…… 아니. 부 지휘관께서는?”
애써 당황함을 감추려고 하는 그 모습에 다시 웃음이 나왔다.
설마하니 자신들이 천사라는 걸 들켰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도 않을 터.
그런 그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품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보자마자 왕국의 대표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한발씩 물러났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당황한 눈치가 가득했다.
“헉!”
“대천사의…….”
“어떻게 이런 곳에…….”
굳이 대천사의 가호를 쓰지 않더라도.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꺼내는 것만으로 내 존재에 대한 증명을 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천사들이 이걸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
곧 대천사의 검을 다시 품에 집어넣으면서 왕국 대표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이전과는 달리 오만한 눈빛으로 내비치면서.
“설명이 더 필요한가?”
그러자 오히려 천사 녀석들이 더 당황하면서 그 자리에서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감히 저희가 어떻게…….”
“충분합니다.”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미소 지었다.
대천사의 존재는.
이들에게 있어 마왕의 그것과 동급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뿔뿔이 흩어져 경쟁하는 마왕들보다 천사군 쪽이 더 그 질서가 잘 잡혀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자신들이 모시는 마왕이 아니라면 오히려 반발하는 마족들이 있을 테니.
그런 면에서 다루기에는 천사 쪽이 훨씬 수월할 터.
“일어나라. 주변에 보는 눈들이 많다. 저들에게 네 녀석들이 천사라고 아예 대 놓고 광고할 셈이냐?”
내 명령에 왕국의 대표들이 일사분란하게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봐도 지금의 상황은 비정상적으로 보일 테니까.
왕국의 대표해서 나온 이들이.
그게 카샤스 대공군의 부사령관이라고 해도.
동시에 무릎을 꿇는 장면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는 이상에야.
“죄송합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무래도 저 반응은.
자신들이 정체를 들키는 것보다.
대천사인 내가 카샤스 대공군에서 정체를 들키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듯 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내 일을 망치게 되는 셈이라.
“혹시 저들을 다 물리신 이유가…….”
“그래. 네 녀석들이 실수할 것까지 모두 고려한 일이다.”
“역시…….”
정말 쓸데없는 걸 감탄하네.
대체 이런 팔푼이들을 뭘 믿고 왕국의 대표로 보낸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눈치가 있는 한 녀석이 고개를 들면서 내게 물었다.
“이곳에 오신 건…… 역시 제물의 결계 때문입니까?”
그 물음을 한 천사 녀석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주 눈치 없는 녀석만 있는 건 아니구나.”
“감사합니다.”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자 그녀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내게 말해주었다.
‘걔가 최상급.’
그렇단 말이지.
나야 어차피 이 녀석들을 봐도 등급을 모르니까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본 건데.
정확하게 등급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힘들게 눈치 싸움할 필요도 없어졌고.
“최상급이냐?”
“넵! 알아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자 그녀가 시선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녀석을 더 집어주었다.
‘저 녀석도.’
곧 그 녀석까지 호명했다.
“너도 최상급이군.”
“네. 대천사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약 이 녀석들의 등급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으면 분명 약간의 의심이 있을 수 있었는데.
그런 의심은 지금 이 순간에 확실히 날아가 버렸다.
천사라는 걸 알아보는 것도 모자라.
등급까지 확실히 말해주었으니.
일단 녀석들의 대표로 보이는 두 최상급 녀석들이 고개를 숙이자 다른 상급 천사 녀석들은 그냥 바로 숙이고 들어갔다.
여기서 겁대가리 없이 나설만한 배짱을 가진 녀석이 없을 테니.
“소속은?”
“대 천사군 8군단 작전대 소속 이베스입니다.”
“대 천사군 13군단 작전대 소속 로엔입니다.”
“대 천사군 15군단…….”
.
.
소속을 물어보자 각자의 소속을 모두 내게 알려왔다.
들어 보니 하나같이 다른 군단의 작전대에서 온 녀석들이었다.
아마 이건 그들의 왕국이 속한 위치가 달라서 일어난 일일 듯 했다.
지금이야 한 자리에서 모였지만.
애초에 그들은 전부 멀리 떨어진 왕국에서 이곳 타란 제국으로 온 셈이라.
소속이 다를 수밖에.
그리고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저들 역시 내 소속이 궁금한지 다들 침묵을 지키는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말해주는 게 앞으로를 위해서도 편할 듯 했다.
괜히 나중에 귀찮은 일을 만들기 싫다면.
그때 옆에 있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천사의 기운을 내뿜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이분은 중앙 천사군 감찰원 소속이시다.”
아마 마왕 헤르게니아도 이 놀이가 재밌어 보였는지 천사의 기운까지 내뿜으며 적극적으로 끼어들었다.
“헉!”
“중앙 천사군!”
“감찰원……!”
곧 동시에 녀석들이 고개를 조아리면서 외쳤다.
“감찰원 수장 대천사님께 인사 올립니다!”
“감찰원 수장 대천사님께 인사 올립니다!”
“감찰원 수장 대천사님께 인사 올립니다!”
.
.
내 옆에 있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최상급 천사급의 기운을 내뿜으면서 나를 올려세우는 순간.
이 놀이는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대천사에 감찰원 소속.
그건 곧 내가 감찰원 수장이라는 걸 알려주는 셈이라.
그리고 혹여라도 나중에 저들이 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도.
감찰원 소속 정보는 일반 천사들은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어지간해서는 들킬 일이 없다는 소리지.
같은 대천사라도 마주치지 않는 이상에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에게 명했다.
“최상급 천사 이벤스. 로엔. 지금부터 이곳의 지휘는 내가 맡도록 한다. 이의 있나?”
“아닙니다!”
“없습니다!”
지휘 체계가 확실해지자.
그들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정확하게 한 녀석을 쳐다보면서.
아까 분명히 들었다.
5군단에서 온 작전대라고 하는걸.
“일단 저 녀석부터 꿇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