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9화 위장 (2)
이전에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 아래에 있던 중급 천사가 자신의 소속을 5군단 작전대 소속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는 건.
지금의 눈앞에 있는 이 5군단 소속의 천사는.
어떤 식으로는 그 마엘리타라는 천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가 5군단 소속 천사 녀석을 꿇리라는 명령을 하는 순간.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의 신형이 사라지며 바로 5군단 천사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그대로 천사 녀석의 머리와 팔을 잡아 꺾으며 바닥으로 찍어버렸다.
쿵!
“컥!”
최상급 천사 이베스가 곧장 내게 보고했다.
“제압했습니다.”
빠르네.
솔직히 그동안 녀석들이 함께 행동해서 내 명령에 거부감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과는 달리 일체 망설임도 없이 5군단 천사 녀석을 눌러버렸다.
이베스의 행동에 딱 각이 잡혀 있는 것이.
누가 봐도 군인의 그것과도 같은 포스가 느껴졌다.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곧 5군단 천사 녀석의 앞에 가서 서자 녀석의 몸이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단순히 제압을 당해서 나오는 반응인지.
아니면 뭔가 꿇리는 게 있어서 나오는 반응인지는 이제 확인해 보면 되겠지.
“너.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를 아나?”
내 물음에 녀석이 아무런 말이 없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쉽게 대답하지 않을 생각이려나…….
이러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때 옆에 있던 로엔이라는 최상급 천사가 실수했다는 듯 5군단 천사 녀석의 뒷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5군단 천사가 겨우 숨을 쉬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쿨럭!”
“이렇게 바닥에 박힌 상태로는 대답을 못 할 겁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표정하게 말하는 걸 보면 이 로엔이라는 천사 역시 보통은 아닌 듯 했다.
“하긴 그렇겠네. 자. 그럼 한 번 대답해볼까?”
그런데 계속 대답이 없자 천사 녀석의 머리를 발로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어지간하면 붙잡아놓고 천천히 얘기를 들어주고 싶은데 말이야. 내가 지금 시간이 별로 없거든. 말할 생각 없으면 그냥 바로 죽여주고. 어차피 네가 대답 안 해도 크게 상관없으니까.”
그 순간.
5군단 천사 녀석이 고개를 치켜들면서 외쳤다.
“대답…… 하겠습니다.”
딱히 대답을 안 해도 상관없다는 내 태도가 오히려 녀석을 겁나게 했던 모양이었다.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면.
녀석을 살려둘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서로 힘 안 빼고 좋네.”
힘을 뺀다는 말의 뜻을 상상했는지 녀석의 몸이 바로 움찔했다.
“그래서 마엘리타와는 무슨 관계지?”
분명 같은 5군단 작전대 소속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는 관련이 있을 터.
그리고 내 질문에는 이 5군단 천사 녀석이 카샤스 대공군에 들어온 이유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녀석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이번엔 질문을 다르게 했다.
“아니. 질문을 바꾸지. 5군단 전체가 이 일에 관련되어있는 건가?”
이번 질문에는 오히려 다른 최상급 천사인 이베스와 로엔이 반응했다.
둘 다 5군단 천사를 매섭게 노려보는 것이.
이미 녀석을 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대답 잘해야 할 거야. 최상급 천사인 마엘리타 한 녀석이 개입한 것과. 5군단 전체가 개입한 건 아예 이야기가 다르니까.”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섰다.
재밌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가득 보이면서.
“지금 네게 질문하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잘 생각하고 대답하도록.”
“감찰원…….”
“그래. 중앙 천사군 감찰원이라면 5군단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음.
감찰원의 힘이 그 정도로 강한가?
설마 하나 군단 하나를 통째로 날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그런데 여기 있는 천사들 중 누구 하나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 된다.
처음에 감찰원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녀석들이 바싹 쫄아 있었는데.
이건 그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자신이 속한 군단 자체를 없애버릴 힘을 가진 단체.
그런 단체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자체가 무리다.
잠시 머뭇거리던 5군단 천사 녀석이 마치 모기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어렵게 대답했다.
“5군단은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
“네. 사실 5군단에서도 사실 확인을 위해 저희를 파견한 겁니다.”
“사실 확인이라면?”
“그것이…….”
5군단 녀석이 다시 말을 흐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 자리에서 발을 강하게 굴렸다.
쿵!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5군단장에게 가 네 녀석의 책임을 묻도록 하지.”
“헉……! 아닙니다.”
감찰원에 이어 5군단장까지 언급하자 천사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둘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직위인 데다가.
자신 정도는 바로 지워버릴 수 있는 직위일 테니까.
“그러니까…… 오르가 왕국에서 들어오는 헤르마늄 채굴량이 허위 누락 됐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아.
그랬었나?
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 5군단 소속의 천사가 나선 이유가 명확해졌다.
제물의 결계.
특히 타란 제국 수도 전체를 덮을 만큼의 결계를 치려면.
이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해주었듯.
상상 이상의 어마어마한 헤르마늄이 소모되었을 터.
그런 양을 빼돌렸다면.
분명 어디선가는 구멍이 났을 것이다.
마엘리타 녀석이 아무리 잘 숨긴다고 해도 말이지.
“구멍 난 헤르마늄 채굴량을 찾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었다는 뜻인가?”
“네. 처음에는 단순 보고 서류 누락인지 알았는데…….”
“계속 추적하다 보니 아니라는 걸 알았겠군.”
“그렇습니다. 첫 보고서에는 헤르마늄 광산이 무너져 당분간 채굴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아니었다?”
“네. 광산 조사팀이 가보니 멀쩡했습니다. 오히려 이미 필요 이상으로 과다 채굴을 해서인지 매장량이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그런 5군단 천사 녀석의 말에 바로 혀를 찼다.
마엘리타 이 녀석.
처음부터 뒤를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인 건가?
제물의 결계를 쓸 정도의 녀석이라면.
이 정도까지 허술하게 일 처리를 하지 않았을 터.
그렇다는 말은…….
마왕 헤르게니아도 같은 생각인지 말을 꺼냈다.
“나중에 들켜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겠네.”
“아마도. 들킬 때쯤에는 타란 제국에서 일을 시작한 뒤일 테니까.”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려나…….
아님.
뒤가 없기 때문에 대놓고 일을 벌였을 수도 있고.
바로 5군단 천사 녀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5군단에 보고를 하지 않고 왕국 병력을 끌고 단독으로 움직였지?”
“그게…….”
천사 녀석이 대답을 주저하자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이걸 보고하면 네 목이 날아가니까?”
“……맞습니다.”
“5군단에 보고하면 광산 관리 부실로 목이 날아갈 테니 그 전에 수습해 보려고 했지만 쉽게 안 됐겠지?”
“하지만…… 이건 전부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의 소행으로…… 증거만 찾아내면…….”
“그게 저 제물의 결계다?”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5군단 천사 녀석도 자기가 살려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셈이었다.
“그건 관심 없고. 아무튼 너네는 마엘리타와 저 제물의 결계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이거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이젠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으로 5군단 천사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매달리자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 녀석들이 카샤스 대공군에 들어와서 우리 뒤를 치려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히려 그 마엘리타를 잡으러 온 녀석들이라…….
5군단 천사를 빤히 쳐다보면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럼 동아줄을 내려주도록 할까?”
“네?”
“최상급 천사 마엘리타와 제물의 결계를 해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간의 일은 전부 묻어주겠다.”
“헉! 감사합니다.”
어차피 정말 제물의 결계가 해제되면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 녀석들의 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엘리타가 벌인 일도 다 알려질 테고.
이 5군단 천사 녀석의 목이 날아가는 경우의 수는 없다고 봐야지.
그것도 모르는지 5군단 천사 녀석이 연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 그리고 최상급 천사 쉬에르. 에멘스도 관련 있다고 하던데…….”
내 지적에 다른 천사들 뒤쪽에 서 있던 두 명의 천사의 어깨가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알아서 튀어나와. 끌어내기 전에.”
그리고는 바로 5군단 천사 옆에 엎드린 두 명의 천사들이 추가되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마엘리타가 맡고 있던 오르가 왕국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분명 다른 왕국에서도 문제가 생겼을 터.
“쉬에르가 크록스 왕국이라 했던가? 에멘스는…….”
“테난 공국입니다.”
“그러니까 너넨 크록스 왕국과 테난 공국에서 왔겠군.”
“네! 그렇습니다!”
“거기도 헤르마늄 광산이 다 털렸나?”
내 물음에 두 천사 녀석의 고개가 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잘 알겠네.
이미 세 최상급 천사 녀석들이 광산을 싹 털어먹고 나온 모양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너네도 다 모가지 날아가는 거냐?”
“그렇습니다…….”
아주 곳곳에 민폐네.
뭐 이 녀석들은 확실히 목적이 있어서 왔다고 치자.
그런데 다른 녀석들은 뭐지?
고개를 돌려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너네는 목 날아갈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냐?”
내 물음에 이베스가 앞으로 나와서 대답했다.
“타란 제국에 천사군의 세력을 넣을 좋은 기회라 판단했습니다.”
“역시 그런가? 너네 단독으로? 아님 군단에서의 명령이냐?”
“……단독 작전입니다.”
“아주 콩가루 집안이네.”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에 이베스와 로엔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그러니까 이 녀석들도 마엘리타 녀석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후방 보급조인 녀석들이 성과 한 번 내보겠다고 타란 제국에 기웃거린 결과라고 해야 하나.
몇 놈은 자신들의 실책을 묻으려고 온 셈이고.
잠시 녀석들을 한 번씩 둘러본 다음에 물어보았다.
“너네. 대천사인 내가 이 먼 타란 제국까지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내 물음에 최상급 천사 이베스와 로엔은 물론 다른 천사 녀석들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이제야 내가 대천사라는 게 떠오른 거려나.
그리고 그런 대천사가 여기 와 있다는 게 뭘 뜻하는지.
“설마 저희를 잡으시려고…….”
“고작 그것 때문에? 대천사인 내가?”
그 대답에 오히려 녀석들이 안도의 숨을 쉬는 게 보였다.
감찰원 소속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을 잡으러 왔다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말하려는 건 전혀 다르니까.
“역시 제물의 결계 때문입니까?”
이건 이전에 이베스가 물어봤었던 내용이었다.
“뭐 그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내 최종 목표는 타란 제국이다.”
이베스와 로엔은 자신들과 목적이 겹치기 때문에 성과를 빼앗길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고작 최상급 천사 둘이 나서는 것보다는.
대천사인 내가 나서는 게.
훨씬 큰 그림이 그려진다.
머릿속에서 계산이 다 됐는지 바로 녀석들이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다른 말로.
녀석들이 여기서 잘만 하면.
대천사 라인을 타게 된다는 뜻과 다름없을 테니.
다른 천사들도 마찬가지.
내 아래서 움직이면.
어지간한 일은 다 무마된다.
모든 천사들이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이자 나쁘지 않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그래. 차라리 잘 됐다. 너네들. 날 도와서 일 하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