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6화 제물의 결계 (15)
제물의 결계 안으로 카샤스 대공군이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그들 역시도 제물이 되는 거다.
그것도 타란 제국군과 싸워서 양측이 죽어 나간다면 제물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테고.
거기다 타란 제국의 시민들 역시 그런 제물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고대 마룡.
시간이 지날수록 고대 마룡 역시 제물의 결계에 마력을 뺏길 텐데.
문제는 이 고대 마룡이 우리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에게는 카샤스 대공군이나 타란 제국군이나 어차피 먹이감 정도로 보일 테니.
안 그래도 타란 황제와 최상급 천사들까지 상대해야 할 판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대 마룡이라…….
“안에 들어가면 지옥이겠네요.”
그것도 제물의 결계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그 안의 모든 존재들의 힘이 타란 제국 황제에게 넘어간다.
환경만 따져보면 우리에게 거의 최악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아. 너무 불리하지.”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힘을 흡수해서 마신급의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제물의 결계 안으로 들어가면 그런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을 더 올려주는 셈이라.
우리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고대 마룡은 점점 약해질 테고.
타란 제국 황제는 반대로 점점 강해질 테지.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고대 마룡이 약해진다고 해도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을 잡을 수 있을까?”
이미 본 것도 있고.
고대 마룡이 약해졌다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그렇다고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을 잡을 수 있냐는 또 다른 문제라.
이게 최상급 천사 몇이 옆을 거든다고 해결될만한 문제는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고대 마룡을 잡을 수 있었다면.
이전에도 몇 번은 시도했을 것이다.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지금은 고대 마룡의 힘을 뺏어서 황제가 그만큼 강해지고 있으니까. 오래 지나지 않아 힘의 차이가 역전될 거야.”
“그런가…….”
결국 누군가 중간에 개입해야 이 사태가 해결된다는 뜻이다.
그때 전사 형이 옆으로 오더니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유저들 아주 난리가 났다.”
“네?”
“지금 제물의 결계 안에. 타란 제국에 붙었던 유저들이 다수 있는 것 같거든.”
“으음…… 그거참. 재수가 없네요.”
“완전 똥 밟은 셈이지.”
전사 형이 보여주는 영상을 보니 타란 제국을 미처 벗어나지 못했던 유저들이 제물의 결계에 힘을 뺏겨 죽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 이거 뭐야? 체력이 계속 빠지잖아.
- 너도 그래?
- 한참 전부터.
- 무슨 경고 하나 뜨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 야. 체력 물약 더 없어?
- 당장 내가 쓸 것도 없어.
- 너네 여기서 로그아웃하면 조땜.
- 맞아. 아까 나갔던 애들 다 죽었다더라.
- 살려면 남아서 계속 물약 빨아야 함.
- 젠장. 나가지도 못하고 이게 대체 뭐야.
- 고대 마룡은 아무도 안 잡아?
- 미쳤냐? 저거 잡을 체력이 어딧어. 가만히 있어도 죽을지도 모르는데.
- 최대한 피해 다녀. 여기서 뒤지면 개죽음이다.
- 당장 운영자 호출해.
제물의 결계에 들어가 있는 유저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저들 모두 타란 제국군에 붙어서 한 건 해보려는 유저들이었겠지만.
“황제가 자기 제국민들까지도 제물로 삼는 판에…….”
“유저들을 신경 쓸 리가 없겠죠.”
“줄을 잘못 타도 한참 잘못 탔는데?”
“거기다 황제라면 유저들의 힘까지 전부 흡수하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제국민을 제물로 삼아도 부족했다고 판단했다면요.”
전에 봤던 타란 황제의 성정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자신을 위해 이용 해먹을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하는.
그러니까 유저들의 목숨 따위는 애초에 타란 제국 황제에게 관심거리도 아니었다.
전사 형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운영자가 욕깨나 먹겠어. 이대로면 타란 제국 황제에게 붙었던 유저들이 성마대전에서 전부 탈락이니까.”
어차피 유저들은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성마대전에서는 그 한 번이 중요했다.
일단 죽어버리면 탈락이라.
아마 빗발치는 항의에 고생 좀 하겠는데.
그리고 우리 역시 딱히 타란 제국군에 붙은 유저들의 목숨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그들이 죽어 나가거나 힘이 제물의 결계에 흡수된다면 그만큼 또 황제가 강해진다는 점이었다.
“황제가 아주 작정했네요.”
유저들이 가장 많이 모여든.
딱 그 시간대에 일을 벌였다.
“유저들도 전혀 모르고 당했으니. 노렸다고 봐야지.”
만약 유저들을 살려줄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경고를 했을 것이다.
저런 식으로 강제 참가가 되는 게 아닌.
지금은 참가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긴 하지만.
전사 형이 날 빤히 쳐다보고는 물어보았다.
“혹시 쟤들 살려줄 생각이냐?”
그러면서 영상 속에서 죽어 나가는 유저들의 모습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마요.”
“난 또 저것들 살려준다고 나서면 어쩌나 했다.”
“지금 쟤들 살려주면 호구 소리 듣기 딱 좋을걸요.”
“하긴 그래.”
타란 황제에게 힘을 뺏기는 건 뺏기는 거고.
그렇다고 굳이 나서서 우리 반대편에 섰던 유저들을 살려줄 만큼 아량이 넘치는 건 또 아니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손짓을 하더니 말을 꺼냈다.
“그래도 다 죽으면 곤란하긴 해. 쟤들 목숨이 타란 제국 황제에게 힘을 주니까.”
“네. 그렇겠죠.”
내 대답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살리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네. 살려지면 살리는 거죠.”
“그래. 죽으면 내버려 두는 거지. 하다 보니 살려지는 애들은 그냥 운이 좋은 거고.”
우리 둘 다 딱히 유저들을 살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재중이 형 말대로.
운이 좋으면 사는 거다.
그때.
저 멀리서 뭔가 묵직한 발 굴림 같은 진동들이 감각에 전달되었다.
“형. 카샤스 대공이 도착한 것 같아요.”
“아아. 슬슬 도착할 때가 됐지.”
아마도 최단 거리에 진군 속도까지 올려서 시간을 단축시켰을 것이다.
내가 아는 카샤스 대공이라면 말이지.
이미 장로회의 병력을 품에 안은 이상.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도 없을 테고.
그렇게 기다리길 얼마나 됐을까.
산맥 사이의 대로로 카샤스 대공군이 서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로는 수많은 비공정들과 용들이 날아들면서 그 위용을 더 했고.
그리고 카샤스 대공 역시 그 선두에서 곧장 우리에게 날아와 착지했다.
“내가 많이 늦었나?”
“아니. 딱 좋게 도착했어.”
아마 조금 더 늦었으면 카샤스 대공군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타란 황제에게 무한정 시간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적당한 시간에 도착한 카샤스 대공에게 웃으면서 그간의 일을 전달했다.
그렇게 타란 제국 수도의 상황을 파악한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이 미친놈이…… 기어코.”
아무래도 타란 제국 수도의 제국민들을 제물로 삼았다는 점이 카샤스 대공을 분노케 한 듯 했다.
“어려운 싸움이 될 거야.”
“휴. 역시 그렇겠지.”
바로 뒤에 도착한 아이샤 타란은 제물의 결계에 놀랐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제국민들을…….”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로서는 결코 상상도 하지 못 할 짓을 지금 타란 제국 황제가 저지르고 있으니까.
미래 성마대전의 최강 영웅 중에 하나인 그녀가 보기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거다.
정말 마왕군에서나 할 법한 일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
“지금의 타란 제국 황제는 악마군요.”
“딱히 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 그리고 악마는…….”
내 말에 레오나 에센시아의 눈길이 분노하는 카샤스 대공과 아이샤 타란에게 가서 닿았다.
아마 그동안 함께 하면서 서로 꽤 친해졌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 진심으로 분노하는 중이라.
“하…… 잡아야죠.”
손을 불끈 쥐는 걸 봐서는 레오나 에센시아는 이미 결심한 듯 했다.
두 사람을 도와주기로.
얼마 뒤 수많은 카샤스 대공군의 병력들이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진형을 갖춰갔다.
개중에는 장로회의 수장인 타누스 후작도 보였고.
그리곤 곧장 내게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살았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슬쩍 챠밍을 바라보자 챠밍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주호> 잘 챙겼지?
<챠밍> 네. 오빠. 스태프에 가득 챙겼어요. 떨어진 구역이 멀어서 다 비공정들을 찾는데 고생 좀 했지만. 결국 다 찾아냈거든요.
<주호> 고생했어.
어쨌든 살려준 건 살려준 거고.
챙길 건 챙겨야지.
더불어 이젠 타누스 후작에게 목숨 빚도 만들었다.
우리 입장에선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간단하게 타누스 후작과 시선을 나눈 뒤 주변을 보자 카샤스 대공군 역시 상당수의 유저들을 데리고 온 상태였다.
과연 저들이 여기 동참할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퀘스트로 치면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지금 타란 제국 수도에 걸려 있는 제물의 결계는 일단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었다.
거기에 안에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역시도 들어가 난동을 부리는 상태였고.
무엇보다 그 고대 마룡조차도 못 나오는 상황이라.
잘못하면 안에서 고대 마룡과 싸우다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꼭 타란 제국군이 아니더라도 말이지.
완전 목숨을 걸어야 하는 퀘스트.
이런 퀘스트는 성마대전에 참가한 유저들에게는 심각한 반발을 일으킬 것이다.
카샤스 대공에게 바로 전달했다.
“다른 왕국들하고 모험자들에게 지금 상황을 전달하고 참가할 녀석들을 추려봐.”
“알겠다.”
우리가 아닌 카샤스 대공이 유저들에게 전달하는 순간.
그건 바로 퀘스트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아마 그 퀘스트의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유저들에게서 반응이 왔다.
“와 씨. 이거 무슨 퀘스트가…….”
“미친 거 아냐?”
“들어가면 못 나온다고?”
“안에는 고대 마룡도 있는데?”
“체력이 계속 깎이는 건 또 뭐냐…….”
“그럼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아냐?”
“타란 제국 황제는 그 와중에 더 세진다고?”
“그 와중에 타란 제국군하고 싸우고…… 고대 마룡도 있고. 난이도 미쳤네.”
“정말 깰 수 있는 거 맞아?”
맞다.
미친 난이도.
문제는.
그 보상이 그들이 생각하는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카샤스 대공이 보장할 수 있는 건.
이전에 이미 다 내걸었으니까.
죽을 확률은 압도적으로 높은데 반해.
추가 보상이 없는.
어떻게 보면 유저들에게는 이게 최후의 시험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전사 형이 보여주었던 영상을 유저들이 확인했다.
제물의 결계 안에서 죽어나가고 있는.
타란 제국군에 붙었던 유저들의 절규를.
오죽하면 운영자까지 나오라고 할 정도라.
그런 곳에 자신들을 밀어 넣겠다고 하자 다들 반발하기 시작했다.
“보상이 엄청나면 또 몰라. 큰 차이도 없잖아.”
“아…… 이렇게는 못하지.”
“우린 포기.”
“완전 죽으러 들어가라는 소린데. 안 해.”
“살아 있어야 성마대전을 하지.”
“고대 마룡을 잡는 건 아쉽지만…….”
웅성웅성.
순식간에 유저들의 반발이 일어나며 몇 개의 왕국이 동시에 카샤스 대공군에서 빠져 나가버렸다.
아마도 타란 제국군에 속했던 유저들의 몰살이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듯 했다.
곧 왕국군들이 카샤스 대공군에서 빠져 이탈하자 카샤스 대공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쟤들. 따라 들어가 봐야 황제에게 힘을 가져다 바칠 뿐이야.”
“그런가?”
“그리고 저들이 상대해야 할 타란 제국군의 왕국군들은 이미 괴멸 상태야. 데리고 들어갈 필요 없어.”
“흠. 알겠다.”
그런데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몇 개의 왕국은 그대로 눌러앉아 이탈하지 않았다.
흐음.
이것 봐라?
상식적으로는 전부 다 이탈해야 정상인데.
유저들의 판단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재중이 형도 이상함을 눈치챈 듯 슬쩍 눈길을 주더니 말했다.
<불멸> 저 녀석들. 아무래도 안에 천사들이 섞인 것 같지?
<주호> 네. 유저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남을 리가 없잖아요.
물론 고대 마룡을 잡기 위해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는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전달했다.
“아마 저 안에 천사들이 숨어 있을 거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눈빛을 반짝이며 입술을 적셨다.
마치 먹이를 찾아낸 딱 그런 눈빛으로.
“찾아서 다 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