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7화. 먹고 먹히는 싸움 (1)
어느 방송 BJ가 올린 동영상으로부터 시작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등장은 전 서버에 큰 파장을 주었다.
온종일 고대 마룡에 대한 기사만 쏟아져 나올 정도라…….
이 채널을 눌러도 고대 마룡.
저 채널을 눌러봐도 마찬가지.
새로 등장한 네임드 몬스터에 유저들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타란 제국 내전이 외려 고대 마룡에 묻히는 감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마룡 자체가 성마대전 중후반부에나 나오는 그야말로 끝판왕 네임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전 서버의 모든 관심은 오직 이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에 집중되었다.
다른 중요한 일들을 모두 제쳐둘 정도로.
오죽하면 지금 성마대전의 최전선 쪽에 투입됐던 상위 유저들까지도 싹 빠져 되돌아오고 있다는 말이 나올까.
실제 꽤 다수의 유저들이 타란 제국으로 향하는 영상을 공유하면서 그 사실을 입증했다.
조만간 있을 내전과 레이드를 앞두고.
휴식을 위해 VRS에서 나와서 간단히 샤워를 한 뒤.
올라오던 영상을 쭉 살펴보고는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아주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구나.”
타란 제국의 내전만 했다면 이렇게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텐데.
우리 서버뿐만 아니라 다른 서버의 유저들까지도 난리니.
아직 다른 서버에는 우리 서버만큼 성마대전이 진행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런 와중에 툭 하니 튀어나온 고대 마룡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서버 간 격차가 얼마나 나는지 이걸로 확실해졌고.
다른 서버 유저들도 고대 마룡을 찾아 나설 예정이라나…….
하지만 쉽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서버에는 타란 제국의 영토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무리라.
타란 제국 자체가 원래 폐쇄적인 지역이다.
유저들이 멋대로 들어갔다가 당장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반대로 그런 타란 제국이 우리 서버에서는 내전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유저들에게 공개가 되었다.
덕분에 지금 유저들도 마음껏 타란 제국을 활보할 수 있었고.
“어디 보자…….”
현재 모두 휴식을 위해 나와 있는 중이라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승호> 형. 안 자요?
<재중> 어. 아직.
<승호> 타란 제국 상황은 어때요?
<재중> 흐음. 개판? 영상 안 봤어?
<승호> 아. 나오기 전에 잠시 확인하고는 아직 못 했어요.
<재중> 아주 대놓고 불을 질러놓고 나왔으면서 나 몰라라 하다니. 타란 제국 황제가 알면 슬퍼할 거야.
<승호> 하하…….
재중이 형 말대로 불을 질러놓고 나온 건 확실했다.
내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타란 제국의 방어 시스템이 완전히 꺼져버렸으니까.
방어 시스템의 원료로 갈아 넣던 베르탈륨 광석이 동나자 결국 방어 시스템이 그대로 침묵해버렸다.
그 다음은…….
<재중> 지금 난리야.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을 제집 드나들 듯이 날아다니면서 부수고 있거든.
<승호> 타란 제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어요?
<재중> 음. 비공정하고 용기사단들이 나와서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긴 한데. 아슬아슬하지.
<승호> 버티긴 한다는 거네요?
이건 솔직히 좀 놀랍긴 하네.
에센시아 제국에서의 경우는 우리가 아크 드래곤을 막아주었으니 버텼다고 해도.
타란 제국은 그럴만한 무언가가 없을 텐데.
그리고 타란 제국의 가장 큰 전력인 카샤스 대공은 지금 카샤스 대공령에서 뒷짐 쥐고 구경 중이었다.
<재중> 타란 제국에도 일단은 멀쩡한 영웅들이 많으니까. 에센시아 제국하고는 다르게 말이지.
<승호> 그런가요.
<재중> 영웅들을 갈아 넣으면 적어도 시간 벌이 정도는 될 거야.
<승호> 방어 시스템이 없더라도 버틴다는 거군요.
<재중> 그래도 누적된 피해는 무시 못 해. 방어 시스템이 없는 이상 몸으로 때워야 하니까.
어쩌면 원래의 성마대전 역사대로 카샤스 대공이 있었다면.
정말 고대 마룡을 막아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때에는 용신검을 카샤스 대공이 들고 있으니까.
고대 마룡에게 일정 이상 피해를 주고.
용신검으로 고대 마룡을 눌렀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보인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시 머릿속에 스쳐 가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챠밍이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 있을 거라 했던가.
타란 제국 황제나 카샤스 대공을 이용해 먹으려는…….
문제는 지금 상황이 너무 타란 제국 황제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는 거다.
그럼 무조건 카샤스 대공 진영으로 유저들이 붙으려고 할 거다.
누가 봐도 현재의 타란 제국은 위험하니까.
물론 위험한 만큼 타란 제국이 내거는 보상은 더욱 달콤할 테지만.
목숨이 한 번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타란 제국에 붙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카샤스 대공에게 전력이 붙는다면.
내전이 너무 쉬워지려나?
당연히 쉽게 가면 좋긴 한데……
뭔가 되게 아쉬운 그런 기분이 들었다.
<승호> 으음. 이런 말 하면 되게 이상해 보이기는 할 텐데…….
<재중> 응? 무슨 말?
<승호> 너무 쉽지 않아요?
<재중> 내전이? 아님 레이드?
<승호> 으음. 둘 다라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재중이 형에게 말해주자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재중> 하. 너 진짜 무서운 놈이었구나?
<승호> 이왕 하는 거. 다들 혼을 갈아 넣어야 재밌지 않겠어요?
<재중> 그래서 일부러 난장판을 만들어보겠다고?
<승호> 겉으로는요.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능한 몇 가지가 있으니까.
충분히 해볼 만하다.
적어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면.
<재중> 나쁘지 않네. 어차피 나중에는 다 적이 될 녀석들이니까. 여기서 좀 걸러내도 되겠지. 그럼 이 방법은 또 어때? 그리고 이런 방식도 괜찮을 테고…….
역시 재중이 형은 즐겁다는 듯 같이 계획을 짜주었다.
마치 악당들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괴롭힐까 연구라도 하듯.
큰 틀을 잡았지만 혼자서는 약간 막막했던 것들이 재중이 형이 살을 붙여주자 그럴싸한 작품이 되었다.
<재중> 이야. 만약 이거 새어 나가면 우리 둘 다 서버에서 발붙이고 못 살 것 같은데?
<승호> 뭐 어때요.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텐데.
<재중> 무서운 놈 같으니라고.
<승호> 그럼 일단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부터 할게요.
<재중> 오케이. 좀 있다가 따라 들어갈게.
그리고 바로 VRS로 접속해 들어갔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625.
> 로딩 중…….
전에 600대까지는 두 개 분량의 에센시아 기사단을 헤르마늄 광산에 매몰시킨 뒤.
피의 축제로 몰살시키면서 엄청나게 끌어올렸고.
2기사단장도 죽여서 추가로 레벨을 올렸었다.
그 이후에는 딱히 레벨을 올릴만한 상황이 없어서 아직 그대로 유지 중이었다.
레벨이 890인 마왕 헤르게니아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하긴 한데.
마왕과 비교하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
그래도 언제 기회가 있으면 다시 레벨을 더 끌어올리긴 해야 한다.
다른 유저들의 레벨이 상대적으로 아직 높으니까.
뭐 레벨 이상으로 다른 것들을 많이 얻긴 했으니 당분간은 괜찮을지도.
지금은 그보다는 다른 일에 좀 더 집중해야 했다.
접속해 들어오자마자 바로 실피드를 꺼내 들었다.
“카샤스 대공이 안 돌려줬다고 나중에 뭐라 하려나?”
그리고는 그대로 한 쪽 방향을 잡고 한참 동안 날아가서 카샤스 대공령과 거리가 꽤 벌어지자 멈추었다.
“이쯤이면 되려나.”
지도상으로 봤을 때 거의 카샤스 대공령과 타란 제국 수도와 중간쯤 되는 위치였다.
어느 이름 모를 산맥에 내려선 뒤.
바로 인벤에서 용신의 파편을 꺼내 들었다.
더 멀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분명 고대 마룡은 눈치를 챘었지.
그럼 이번에도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는 시스템 창을 열어 화면을 몇 개 띄웠다.
“보자……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과 싸우는 화면이…… 이거네.”
몇 개의 영상을 보다가 그중 하나에 멈췄고.
그리고 그 영상을 중계하던 BJ와 보고 있던 유저들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지금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을 뜹니다.
- 도망가는 건가요?
- 설마 이대로 튀나?
- 타란 제국이 이긴 거야?
- 아닌데. 고대 마룡이 피해를 입긴 했어도 도망갈 정도는 아냐.
- 왜 갑자기 빠지지?
잘 싸우던 고대 마룡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타란 제국에서 빠져버리니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다들 당황하고 있었다.
그걸 알 만한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겠지.
이 먼 거리에서 고대 마룡을 불러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테니까.
고대 마룡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방송하는 BJ들 역시 탈 것을 타고 따라붙었으나.
하지만 그들의 탈 것으로는 고대 마룡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꼬리조차 구경 못 할 만큼 단숨에 거리가 벌어져 버리자 다들 탄식하면서 자신들의 탈 것을 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실피드나 키로아 정도가 아니라면야…….
그 어떤 탈 것을 가져와도 고대 마룡에게는 속도 게임이 안 된다.
그렇게 모두가 고대 마룡을 놓쳐버리고.
시스템의 시간을 쭉 지켜봤다.
“대충 이 정도면 근처까지 왔으려나?”
추격해서 방송할 수 있는 녀석들이 없는 이상 내 쪽에서 알아서 시간을 재야 한다.
그리고 전에 봤던 녀석의 속도를 감안해 봤을 때.
지금쯤이면 충분히 가까이 접근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왔네.”
굳이 감각을 펼치지 않더라도.
저 먼 곳에서부터 고대 마룡이 악을 지르며 날아오는 게 들려왔다.
카아아악!!
그러자 바로 용신의 파편을 인벤에 넣고는 다른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그건 바로 카샤스 대공의 영지로 귀환하는 귀환석.
“고생해라.”
그리고는 바로 귀환석을 써서 카샤스 대공의 영지로 이동해버렸다.
귀환을 하자 이미 유저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 있는지 영지가 북적북적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유저가 많이 몰린 걸 본 게 언제였더라…….
아직은 평화로운 카샤스 대공의 대공령에서 그들은 그간 보지 못한 새로운 아이템들과 용들을 구경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고대 마룡이 거의 반쯤 왔다는 걸 생각도 못하면서.
“일단 떡밥을 한 번 던져볼까.”
이건 일종의 실험이었다.
과연 고대 마룡이 단독으로 있다면 얼마나 유저들이 반응할지.
그리고는 그대로 지금쯤 고대 마룡이 있을 좌표를 게시판에 풀어버렸다.
아무도 모를 정보에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입질이 오지 않았지만.
곧 몇몇 BJ들이 날아가 고대 마룡이 있는 걸 확인한 뒤 기겁해서 다시 영상을 찍어 날랐다.
왜 그곳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정말로 있는 건 확인 되었으니까.
그리고 몇 가지 정보 역시 함께 풀어두었다.
- 타란 제국과의 전투에서 고대 마룡이 피해를 심각하게 입어서 퇴각함.
- 고대 마룡을 레이드하려면 지금이 기회일 듯.
가령 이런 문구들 말이지.
사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잘 알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고대 마룡이 저곳까지 날아가서 쉬고 있다는 건.
이 허황된 말에 무게를 실어주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딱 그런 마음?
그리고 그런 사실들은 몇몇 길드들의 욕심에 불을 질러놓았다.
완벽할 때의 고대 마룡이라면 몰라도.
타란 제국과 계속 싸워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지금이라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 우리가 먼저 잡는다. 괜히 와서 깝치지 마!
- 고대 마룡 건들면 너네나 우리나 다 같이 죽는 거야!
- 선 넘지 마라. 뒤진다. 고대 마룡은 우리 거다.
그 욕심은 경쟁적으로 더 불을 질렀고.
곧 광장을 둘러보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급하게 탈 것을 탄 유저들이 개떼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고대 마룡이 있는 좌표를 향해서.
“하. 정말 이런 걸 낚여?”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들 죄다 타오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