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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54화 (1,254/1,404)

#1254화 타란 제국 내전 (10)

세 번째 베르탈륨 창고를 털어버리고 난 뒤.

통로를 따라 움직이던 중 금속의 정령을 품에 넣고는 바로 어두운 통로 벽으로 붙었다.

주변에 퍼트렸던 감각들이 강렬한 경고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몸을 숨기자 놀란 금속의 정령이 내게 물었다.

“왜?”

“쉿. 뭔가 온다.”

그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먼 통로 방향에서 몇몇 용기사들이 앞다투어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흐음.

아무래도 위쪽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면 이제와서 다수의 용기사들이 부랴부랴 달려올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가장 앞에 달려오는 건.

누가 봐도 일반 용기사가 아닌.

그들의 장인 용기사단장이었다.

딱 봐도 입은 갑옷부터가 차이 나는데 다가 뒤따르는 용기사들의 쩔쩔매는 태도를 볼 때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베르탈륨이 공급이 안 돼?”

“모르겠습니다. 용기사들을 보내서 파악하라고 했는데…….”

그러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은 듯 달리다 말고 용기사단장이 뒤로 돌아 대답했던 용기사의 정강이를 그대로 후려갈겨 버렸다.

퍼억!!

“윽!!”

와.

저거 진짜 아플 건데.

그냥 가만히 서서 차도 아플 텐데.

달려가던 도중에 맞은 거라 충격이 몇 배는 될 터였다.

그런 와중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틴 건 칭찬해 줄만 했다.

“모른다고 하면 다야? 지금 당장 방어 시스템이 무너지게 생겼는데!”

용기사단장의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역시.

베르탈륨 창고들을 턴 보람이 있구나.

아직 완전히 방어 시스템이 무너진 건 아니지만.

시스템의 주 연료가 되는 베르탈륨 광석이 부족한 건 분명히 영향을 주고 있었다.

굳이 방어 시스템을 부수지 않더라도.

들어갈 연료만 끊어버리면.

지금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보급이 끊긴 창고가 어디 어디야?”

“넵. 후작님! 현재 보고 받기로 1창고가 완전히 비었다고…….”

그 말에 더 빡친 건지 후작이라 불린 용기사단장이 뒤따르던 용기사들을 연신 두들겨 팼다.

“내가 창고 관리 똑바로 하라고 했어 안 했어? 어? 미친 거야? 죽고 싶어?”

“시……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얼어 죽을. 당장 베르탈륨 광석의 공급이 막혀 방어 시스템이 무너지면 그 목부터 날아갈 줄 알아.”

그리고는 다시 호통을 쳤다.

“멀뚱히 서서 뭐해? 당장 안 달려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빨리 알아 와!”

그러자 용기사들이 꽁지에 불이 붙은 것마냥 전력으로 튀어나갔다.

아마 남아서 저 용기사단장에게 후드려 맞는 것보다는 저게 나으리라.

그렇게 모든 용기사들이 튀어나간 뒤.

갑자기 용기사단장이 내 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응?

설마 날 눈치챈다고?

아니나 다를까.

“거기 벽 너머. 뭐 하는 놈이냐?”

쳇.

들킨 건가.

최대한 기척을 죽인다고 죽였는데.

아무래도 은신 상태가 아닌 지금 상황에서는 완전히 기척을 감추는 건 불가능했던 것 같았다.

특히 저런 상위의 NPC를 상대로는 더 그럴 테고.

‘들켰어?’

‘아무래도.’

‘그럼 싸워야 해?’

‘그건 아직 모르겠다.’

금속의 정령이 조금 불안한 눈치로 쳐다보자 걱정말라는 듯 웃어주었다.

‘여차하면 튀면 돼.’

‘그래. 쟤 되게 쌔 보이는데.’

금속의 정령이 보기에도 용기사단장의 기세가 범상치 않은 듯했다.

용기사단장이란 직책이 있고.

거기다 후작 작위까지 있다?

그렇다면 영웅의 끝자락 쯤 들어가지 않을까.

정면에서 붙는다면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저 녀석에게는 휘하의 부하들이 다수 있는 반면.

내 쪽은 단독으로 싸워야 한다.

일단은…….

한 번 떠볼까.

전에 용기사단장에게 어떻게 경례를 했더라?

기억 속에 다른 용기사단들이 했던 것을 얼추 기억해낸 뒤.

그대로 따라 경례부터 했다.

“후작님을 뵙습니다!”

“흠. 다른 용기사단 녀석인가.”

그러더니 뭔가 의심스러운 듯 날 빤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지금 한참 경계한다고 바쁠 텐데.”

“그건……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해 순찰을 명받았습니다.”

“순찰이라…… 너. 어디 소속이냐?”

갑자기 용기사단장이 소속을 물어오자 순간 당황했지만.

빠르게 머릿속을 회전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용기사단의 구조를 알 리가 있나.

그러다가 하나의 이름에 딱 생각이 멈췄다.

이게…… 되려나?

아니.

지금은 안 된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여차하면 튀어나갈 수 있게 검에 몰래 손을 가져다 댄 뒤.

생각나는 이름을 말했다.

“테이먼 단장 휘하의 용기사단입니다.”

테이먼이라는 말에 순간 누군가 하고 떠올리던 후작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을 꺼냈다.

“타누스 후작의 아들 놈인가…….”

얼추 떠올려보니 중립인 원로회의 수장이 타누스 후작이라고 했었던가.

그리고 그 아들이 테이먼이었다.

내 입에서 테이먼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구기더니 이내 손을 휘저었다.

“젠장. 테이먼 녀석의 용기사단에게까지 지원 요청이 간 건가. 나중에 귀족 회의에 가면 타누스 후작에게 쪽을 팔겠군.”

손을 휘저은 건 아마도 가라는 뜻인 듯했다.

“뭘 보고 있어? 당장 안 꺼져?”

“아……! 넵!”

약간 어리버리한 느낌이 들게 말을 더듬은 듯 바로 그 자리를 이탈했다.

그런데 저 후작 녀석이 다시 나를 불렀다.

“아니다. 날 따라와라. 현 상황을 들어야겠다.”

아.

그냥 좀 보내주지.

속으로 인상을 쓰면서도 겉으로는 웃음을 다해 후작의 옆에 붙었다.

“그래. 지금 베르탈륨 창고의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지?”

이걸 어디까지 말해야 하지?

1창고는 챠밍이 털었고.

3창고는 내가 털었다.

그리고 남은 창고 중에 4창고는 방금 전 금속의 정령이 거의 다 먹어치운 상황이었다.

이제 멀쩡히 남아 있는 건 2창고와 5창고뿐.

베르탈륨 수급이 엉망이 된 건, 다섯 개의 창고 중에 무려 세 개가 탈탈 털렸기 때문이었다.

“지금 파악 중에 있습니다.”

“쯧.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고작 창고 하나 털렸다고 방어 시스템이 흔들리진 않아.”

그나마 머리가 좀 있긴 한가 보네.

얼마 지나자 앞서 달려나갔던 용기사단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

“그게…… 3창고도 비었다고 합니다.”

3창고가 비었다는 말에 후작의 표정이 심각하게 구겨져 버렸다.

“그럼 두 개 창고가 비었다는 말인데…… 이러면 방어 시스템이……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는…….”

그때 좀 더 뒤늦게 달려왔던 녀석이 숨이 턱까지 차서는 후작에게 보고했다.

“4…… 4창고도 비어있습니다!”

“뭐?”

설마 하니 4창고까지 비었다고 할 줄 몰랐는지 후작의 표정이 샛노랗게 변했다.

“대체 경비를 어떻게 섰길래 창고가 세 개나 털릴 때까지 아무도 몰라!”

“그게…… 고대 마룡 때문에 다 차출되어 올라가다 보니 인원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변명을 해보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그것도 수습이 절대 불가능한 정도로 벌어진 일었.

후작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바로 결정을 내린 뒤 말했다.

“흉수를 찾는 건 나중이다. 이미 털린 창고는 잊어버려.”

“그럼?”

“남은 두 개의 창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모든 인력을 남은 창고 경비에 투입해. 물 샐 틈 없이 지켜.”

“옙!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베르탈륨 광석 도둑을 찾기 위해 얼마 없는 인력을 더 분산하는 건 포기한 듯했다.

그래야 남은 창고라도 지킬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기도 했고.

후작이 아주 머저리는 아닌 듯하네.

이제 경비가 줄었으니 여기서 빠져나갈 수만 있으면 베스튼데.

아쉽게도 저 후작은 날 빼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다른 용기사단들 틈에 섞여서 다시 남은 창고로 돌아가게 되자 짧게 한숨을 쉬었다.

“졸지에 돌아와 버렸네.”

그러자 품에 있던 금속의 정령이 머리를 내밀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고 안이네?”

“어, 어쩌다 보니. 안에도 순찰을 돌라는데.”

정작 도둑은 여기 있다.

다들 들어오지도 않을 도둑 찾아 애먼 곳만 찾아다니고 있고.

아니.

이미 들어와 있으니 그건 아닌 거려나.

주변에는 용기사단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며 창고 안까지 수색을 하는 중이었다.

입구에도 지키고 있는 녀석들이 넷이나 되고.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우르릉!!

쿠그긍!!

베르탈륨 창고 천장이 크게 흔들리면서 벽에 균열이 생기는 게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란 용기사단들도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방어 시스템이 꺼지진 않겠지?”

“설마…….”

“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아무래도 베르탈륨 광석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방어 시스템이 약해져서 생기는 일인 듯했다.

아직 버티고는 있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군.

바로 챠밍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상황은 어때?

<챠밍> 아직은 안 들켰는데. 언제 와요?

<주호> 나도 가고 싶은데 중간에 붙들렸어.

<챠밍> 잡혔어요?!

<주호> 아. 그건 아니고. 꼼짝없이 용기사단이 돼서 경비 서는 중이야.

<챠밍> 그럼 못 빠져나와요?

<주호> 일단 기회를 보고 있어.

<챠밍> 정 안 되면 여기서…….

<주호> 아니. 넌 잘 숨어만 있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내가 말할게.

<챠밍> 알았어요. 바로 말해요.

그대로 뒀다가 챠밍이 뛰어나올 것 같아서 말렸지만.

당장 나도 나갈 방법이 없었다.

흐음.

어쩐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할 수 없다는 듯 금속의 정령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 있는 거 갉아 먹고 있어 봐.”

“해도 돼?”

“어차피 쟤들은 광석에는 관심 없어.”

눈에 보이는 도둑을 찾으려는 거지.

그 안에 파고들어서 먹고 있는 애를 찾는 건 불가능이었다.

허락하자마자 바로 금속의 정령이 베르탈륨 광석 사이로 들어가더니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게 야금야금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저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금속의 정령이 다시 내게 돌아오자 물어보았다.

“얼마나 먹은 거야?”

“껍데기만 빼고 다.”

“와. 너 무섭게 먹는다.”

친밀도가 올라갔다는 시스템 메시지는 워낙 많이 울려서 잠시 꺼둔 상태였다.

여기서 더 올라갈 친밀도가 있긴 한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베르탈륨 광석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금속의 정령이 더 강해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무려 타란 제국에서 비축해둔 베르탈륨 창고 다섯 개 중 두 개 분량을 먹어치운 셈이다.

이 정도면 없던 힘도 솟아날 분량이지.

보자.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면 분명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텐데.

지금까지 총 네 개 분량의 베르탈륨 창고를 털었다.

그럼 남은 건 딱 하나의 창고뿐인데.

과연 이걸로 얼마나 방어 시스템이 굴러갈까.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외쳤다.

“광석이…….”

“무슨 일이야?”

“광석들 안이 비었어!!”

그리고는 용기사 중 하나가 횡하게 내부가 파여져 있는 광석산을 보고는 절규했다.

저거 다 금속의 정령이 파먹었는데.

급히 다른 곳도 겉을 파보았더니 마찬가지인지라, 급히 용기사단장에게 가서 보고를 올렸고.

돌아오는 건 머리 깨지는 소리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경비를 서면 다 털어갈 때까지 모른단 말이냐!”

“아닙니다! 전부 눈에 불을 켜고!”

“그럼 광석이 발이 달려서 도망이라도 간 거냐!”

그럴 리가 없지.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용기사단장이 창고에 있던 모든 용기사단을 바깥으로 불러냈다.

그렇게 나오자마자 모인 용기사단을 한 번씩 다 쳐다보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용기사단장의 검에서 검기가 맺히더니 내가 나온 방향으로 정확하게 쏘아져 날아왔다.

호오.

이것 봐라?

어렵지 않게 바로 검기를 피해내자 용기사단장이 나를 노려보면서 외쳤다.

“너! 대체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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