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4화 깨어나는 마룡 (12)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기다리자 카샤스 대공에게 부축 받아 몸을 일으킨 아이샤 황녀가 다시 한 번 내게 말했다.
“고대 마룡. 깨워야 해요.”
“그 말…… 진심입니까?”
내 진지한 눈빛에 아이샤 황녀가 핏기 없는 얼굴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
이거…….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선택지인데.
물론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충분히 대처할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까지 데리고 들어온 거지만.
현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진 않으니까.
이곳 봉인지에서 일어나고 일들 중에 지금 우리가 손 댈 수 있는 부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껏 해야 모든 이를 살려서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는 정도일까.
“잘못하면 고대 마룡을 제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날뛸 수도 있어요.”
그래.
고대 마룡을 풀어주는 것까지는 뭐…….
괜찮다 치자.
그 뒷감당이 문제지.
솔직히 지금 고대 마룡을 풀어주면 어떻게 될지 나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 쪽을 쳐다보자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생각 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괜찮은데?”
“네?”
“고대 마룡.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신중한 선택을 할 것 같았던 재중이 형마저 그렇게 말하자 잠시 고민에 들어갔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라…….
이렇게 뒤를 알 수 없는 상황을 선택하는 건 나나 재중이 형이나 그렇게 선호하는 상황이 아니기는 한데.
재중이 형을 다시 쳐다보니 피식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어차피 이대로 뚫고 나가려고 해도 누구 하나 죽는 건 마찬가지일 거야.”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우리를 포위해오는 타란 제국의 영웅들을 쭉 둘러보았다.
확실히 누구 하나 쉬워 보이는 녀석들은 없었다.
특히 용마족에게 피해를 입어 회복을 하고 있는 저 공작 둘.
저들은 결코 쉽게 상대할 수 없을 터.
잘못하다가 발이라도 묶이게 되면 빠져나갈 시간이 부족했다.
당장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 죽어도 될 만한 이들이 없다는 것도 문제.
하나 같이 다 살려서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변수가 필요하겠네요.”
“그래. 저 녀석들도 어쩌지 못하는 변수 말이야.”
지금.
이곳에서 그만한 변수를 만들어 낼 존재는.
딱 하나뿐이다.
아이샤 황녀도 이것까지 고려해서 내게 제안을 한 거였나…….
우리 팀을 쭉 돌아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죽을 순 없죠.”
성마대전에서는 한 번 죽으면 바로 아웃이다.
고작 이런 곳에서 죽기에는 너무 아깝지.
카샤스 대공과 아이샤 황녀.
레오나 에센시아와 마찬가지로.
여기선 우리 목숨도 하나뿐이니까.
결정을 내리자마자 바로 아이샤 황녀에게 물었다.
“고대 마룡. 확실히 깨울 수 있습니까?”
“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고대 마룡의 봉인지는 타란 제국의 사원과 구조가 같아요.”
역시 아이샤 황녀는 알고 있었네.
건축 구조가 거의 흡사하다는 걸.
그렇다는 건 아이샤 황녀가 이곳 봉인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왜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쪽이 아니다.
일단 살고 봐야지.
“뭐 복잡한 건 나중에 하죠. 고대 마룡을 깨우는 데 필요한 건 없나요?”
그러자 아이샤 황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강한 용혈이 필요해요.”
“용혈이라…….”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카샤스 대공 쪽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강한 용혈이 뜻하는 건.
그저 그런 용혈이 아닌.
황족이 될 만한 수준의 용혈일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이샤 황녀와 카샤스 대공.
하지만 아이샤 황녀는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회복이 더딘 상태였다.
여기서 더 그녀의 피를 뽑아 댔다가는 살려 보기도 전에 죽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문제는.
카샤스 대공이 여기서 빠지게 되면 전력이 미친 듯이 곤두박질치게 된다.
그나마 지금 저 타란 제국의 포위망을 형성한 녀석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카샤스 대공의 힘이었다.
그가 버티고 있으니까 쉽게 달려들지 못하는 거겠지.
재중이 형이 포위망을 쭉 쳐다보더니 말했다.
“카샤스 대공이 빠지면 아주 개판이 되겠네.”
“네. 미친 듯이 달려들겠죠.”
결국 그 공백을 막으면서 버텨야 한다는 건데.
어쩌면 이쪽이 생존 확률이 더 낮지 않을까.
모험을 걸어야 한다라…….
그때 전사 형이 앞으로 나와서 내게 말했다.
“아주 잠시라면. 발뭉의 스킬로 묶어 둘 수 있긴 해.”
챠밍 역시 마찬가지.
“얼음 결계로 못 넘어오게 하면 시간을 꽤 벌 수 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아이샤 황녀에게 물었다.
“얼마나 시간이 필요합니까?”
그러자 아이샤 황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답을 주었다.
“봉인지를 활성화시키고 결계를 해제하는 데 대략 10분 정도면 될 거예요.”
10분이라는 말에 나를 포함해 우리 팀 모두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불멸> 흠. 생각 외로 너무 긴데?
<주호> 그러게요. 버틸 수 있을까요?
<불멸> 어쩔 수 있나. 해 봐야지.
서로 의견을 주고 받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좋아요. 해 보죠. 어차피 이 길 밖엔 없을 것 같으니까.”
이게 아이샤 황녀과 카샤스 대공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다.
고대 마룡이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 어떻게 했었는지를 고려해 본다면 말이지.
아마 고대 마룡을 제어하지 못하면.
타란 제국이 반타작 나는 상황까지 갈 텐데.
“그리고 타란 제국에도 피해가 갈 겁니다.”
내 우려의 말에 아이샤 황녀의 표정이 굳어버렸지만 이미 결심을 한 듯 말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봐야겠죠.”
“그런가요.”
아이샤 황녀 입장에선 불편한 일이긴 해도.
어차피 이미 타란 제국 황제가 칼을 쥔 상황에서 사정을 봐주는 것도 이상한 일이기도 했고.
가장 좋은 스토리는 타란 제국이 온전히 카샤스 대공의 손에 들어오는 것이지만.
그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타란 제국 황제는 언제가 되었든.
한 번은 눌러야 하는 상대다.
곧 아이샤 황녀와 카샤스 대공이 뒤로 빠졌고.
우리 팀과 레오나 에센시아.
마왕 헤르게니아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서서히 봉인지 안쪽으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재중이 형이 고대 마룡의 창을 앞으로 들어올리며 말했다.
“저 녀석들은 우리가 포위망을 피해서 더 안쪽으로 밀려간다고 생각할 거야.”
“그래 주면 더 고맙죠.”
그 증거로 우리가 뒤로 계속 빠짐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포위망을 좁혀오기만 할 뿐.
덤벼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뒤로 물러섰을까.
봉인지의 중심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오자 아이샤 황녀가 신호했다.
“지금부터는 저와 카샤스가 움직이지 못해요.”
“네. 지금부터는 전쟁이네요.”
곧 아이샤 황녀의 몸에서 이전에 타란 제국의 사원에서 봤던 환한 빛이 퍼져 나갔고.
그 빛이 카샤스 대공까지 완전히 덮어 버리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타란 제국의 제사장 아이샤 황녀의 힘으로 고대 마룡의 봉인이 해제되고 있습니다. 》
《 봉인 해제까지 남은 시간…… 10:00 》
《 9:59 》
《 9:58 》
.
.
카운트인가?
일종의 퀘스트 같은 메시지가 뜨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는 무조건 버티는 겁니다.”
전사 형이 앞으로 나서면서 발뭉에 내장된 마왕의 결계를 펼치면서 외쳤다.
“그래. 버텨보자!”
이쁜소녀 역시 앞으로 나섰고.
토르를 크게 휘두르며 화려하게 전력을 끌어모았다.
“해 봐요!”
챠밍은 아예 마왕의 스태프를 바닥에 찍고는 그 자리에서 얼음 결계를 시전했다.
카아아!!
쩌저적!!
동시에 앞을 전부 가리는 높고 두텁게 생성된 얼음 결계에 다들 감탄했다.
오직 버티기만을 위한 결계.
막내별은 챠밍 옆에 붙어서 마력 회복 스킬을 시전했고.
회복은 아예 포기한 채로.
가진 모든 마력을 챠밍에게 쥐어줄 생각인 듯했다.
확실히 저렇게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을 터.
그때 얼음 방벽 너머에서 당황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뭐야?”
“결계?”
“이것들이 지금 뭐하자는 거지?”
그리고는 이윽고 얼음 방벽을 때리는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아앙!!
콰앙!!
쿠우웅!!
퍼어엉!!
얼음 장벽 반대편에서 뭔지도 모를 화려한 공격이 계속 이어지며 얼음 장벽을 강타해댔는데 다행히 얼음 방법이 터진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걸 위해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대기 중이긴 해도.
뚫리기 시작하면 거침없이 밀려올 테니.
마왕 헤르게니아가 꽤 놀란 듯이 얼음 결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왕의 결계네?”
“알고 있어?”
“그럼 몰라? 이 마왕 결계가 얼마나 유명한데.”
흐음.
이거 나중에 다른 곳에서 가서 쓰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기려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뭐해?”
“응? 아…… 뭐. 나도 나름대로의 준비랄까.”
계속해서 뭔가가 터지며 깨져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곧 챠밍이 외쳤다.
“이제 제 마력이 못 버텨요!”
마왕의 얼음 결계가 강한 건 맞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들 역시 강한 편이었다.
정확히는 쪽수가 너무 많다고 해야 하나.
저 얼음 결계는 챠밍의 마력을 먹고 방어력을 행사하는 중인데.
그 마력이 공격당하는 만큼 고갈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다만.
난 그 마력 고갈을 해결할 방법이 있거든.
곧 인벤에서 무수히 많은 베르탈륨 광석들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헤…… 그건?”
“음. 보조 배터리라고 하면 모르겠네.”
그리고는 르아 카르테를 들어 베르탈륨 광석들을 일일이 내려쳤다.
그 순간 내 마력이 확연히 끓어올랐고.
동시에 챠밍에게 스킬을 시전했다.
【 마력 전이! 】
그러자 베르탈륨 광석의 마력이 죄다 챠밍에게 끌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앞으로 막고 있던 얼음 방벽이 더욱 더 진하게 형성되면서 굳은 벽을 쳤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마력을 흡수하고 또 흡수하고 또 흡수했다.
【 마력 전이! 】
【 마력 전이! 】
【 마력 전이! 】
.
.
.
그 모든 마력들은 죄다 챠밍에게로 전해졌고.
챠밍은 그 마력을 바탕으로 얼음 방벽으로 들어오는 모든 공격을 마력으로 상쇄해 버렸다.
이건 거의 무한의 얼음 결계라고 해야 하나?
같은 마력을 들고 오거나.
혹은 더 강력한 한 방을 쓰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뚫을 수 없는.
최강의 방패.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 광경을 보더니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다.
“와…… 진심 사기다.”
“크큭. 그렇지?”
나도 안다.
사기.
그런데 사기면 어떤가.
일단 쓰고 살고 봐야지.
그렇게 얼음 결계로 버티면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타란 제국의 제사장 아이샤 황녀의 힘으로 고대 마룡의 봉인이 해제되고 있습니다. 》
《 봉인 해제까지 남은 시간…… 0:40 》
《 0:20 》
《 0:10 》
.
.
시간이 다 되고 시스템 메시지가 울리는 순간.
《 고대 마룡이 봉인에서 풀려납니다. 》
“이제 어떻게 되나 한번 두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