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화 용 수호자 (11)
순간적인 용마족의 신체 변형 공격에 잠시 위기가 있었지만 재중이 형과 카샤스 대공이 동시에 내 앞을 막아서면서 일단 한숨 돌리게 되었다.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용마족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상한 괴음을 내었고.
곧 카샤스 대공이 다시 전면에 서면서 용마족과 일격을 치고받기 시작했다.
확실히 아직 정면 대결은 좀 버거운 면이 있었다.
바로 막내별에게서 힐이 들어오자 내려갔던 체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어때? 할 만해?”
그러자 르아 카르테를 쥐고 있던 손을 살짝 쥐었다 폈다.
다행히 스펙 차이로 인한 경직 같은 충격은 오지 않는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의 능력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잠시는 붙을 만해요. 아까처럼 이상한 공격만 나오지 않으면요.”
“아마 숨겨둔 패가 더 있을 거다.”
처음 공략하는 상대가 어려운 것은.
이런 변칙적인 공격을 알 수가 없다는 것.
“설마 날개가 그대로 검으로 변형돼서 찔러올 줄은 몰랐죠.”
“검이 여러 개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항상 염두에 두고 싸워. 등 뒤의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변형되어 들어오면 나도 당한다.”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면에선 시야가 닫지 않는.
사각지대인 용마족 녀석의 등 뒤에서부터 변형이 시작되면 어지간해서는 눈치채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변형되는 시간이 너무 짧아.
눈으로 보고 눈치챈 다음은 늦는다.
그때 재중이 형이 슬쩍 팁을 주었다.
“변형되기 전에 어깨 쪽을 잘 봐.”
“어깨요?”
“그래. 아주 미세하지만 녀석의 어깨가 잠시 경직된다.”
하.
그 짧은 사이에 그런 차이까지 알아낸 건가.
“참고할게요.”
“카샤스 대공이야 저 딴딴한 몸으로 때운다지만 우린 아니니까.”
확실히 지금 카샤스 대공은 용마족 녀석의 공격 중 일부는 그대로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버텨내는 중이었다.
물론 막내별의 힐도 한몫하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장비가 굉장히 좋은 듯했다.
타란 제국 대공의 방어 장비라…….
결코 능력치에서는 부족하지 않을 터.
거기다 카샤스 대공 자체도 강력한 영웅이니까.
“다시 한 번 해보죠.”
“아아. 나도 다시 끼어들어야겠다. 카샤스 대공 혼자서는 무리네.”
재중이 형이 카샤스 대공이 점점 용마족 녀석에게 밀리는 것을 보고는 바로 고대 마룡의 창을 들고 전투에 참전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재중이 형의 반대편으로 뛰어들어서 완전히 세 방향으로 녀석을 에워쌌다.
카샤스 대공과 일대 일 이었던 상황에서 나와 재중이 형이 각각 다른 대각선 뒤쪽에서 공격을 하자 용마족 녀석의 용의 날개가 검과 창에 찢겨서 점차 진한 피를 흘려대기 시작했다.
“카학!!”
고통스러운지 마치 몬스터의 그것과 같은 괴음을 지르는 용마족을 보면서 재중이 형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대 마룡의 창을 뻗어 용마족의 날개 끝을 찢어냈다.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라고. 너 같은 괴물을 상대하려면 우린 쪽수로 싸워야 해서.”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셋이 둘러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마족 녀석에게 강한 일격을 한 번도 날리지 못한 상태라.
만약 단독으로 싸웠다면 벌써 누군가 하나는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르지.
그러다 보니 카샤스 대공도 전에 없이 진지하게 굳은 표정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여기 와서 저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데?
순간 용마족 녀석에게서 눈에 띄는 확연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카하!!”
녀석의 등에 있던 용의 날개와 마족의 검은 날개가 동시에 활짝 펼쳐지면서 붉게 달아오르더니 그 날개들 사이로 강렬한 마력이 압축되었고 곧 어마어마한 압력을 사방으로 터트리기 시작했다.
전조를 본 재중이 형이 급하게 외쳤다.
“쳇, 원형 근접 광역기다! 빨리 떨어져!”
보통 저런 광역기의 경우 시전자의 근처에 접근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시전자에 가까울수록 그 피해가 압도적으로 커지니까.
바로 카샤스 대공이 뒤로 빠졌고.
나와 재중이 형도 빠르게 뒤로 몸을 날렸다.
파아아앙!!
그리고 재중이 형이 말했듯이 용마족 녀석읠 중심으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으로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카샤스 대공은 대검을 들어서 몸을 방어했고.
우리 역시 각자의 무기를 정면으로 올려 녀석의 방사형 폭발 스킬을 막아냈다.
그러자 겹쳐서 앞을 막은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에서 동시에 빛이 나며 내 몸으로 덮치는 충격을 일정 부분 상쇄해 주었다.
쿠구궁!!
“무슨 평범한 광역기가 필살기 같냐.”
“그러게요.”
단순한 스킬이지만 위력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흙먼지가 비산하면서 흩어지자 순간적으로 주변의 시야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감각을 활성화하면서 폭발 속의 녀석을 감지하자마자 바로 이를 깨물며 재중이 형에게 외쳤다.
이건…….
뭔가 다르다.
“형! 녀석의 중심으로 주변의 공기들이 빨려 들어가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으로 흩어졌던 흙먼지들 사이로 뭔가의 붉은 기운이 강하게 응축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광역기?
아냐.
보통은 광역기를 쓰고 나서 바로 다른 광역기를 쓰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예 없다는 건 아니지만.
저런 전투형 네임드는 보통은 그러지 않으니까.
그렇다는 건.
다른 형식의 공격인데…….
그리고 계속 동태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라버렸다.
마치 용마족 녀석의 신체를 바싹 낮춘 상태에서 두 다리를 바닥에 강하게 찍어 박은 것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거기다 용의 날개와 검은 날개가 하늘로 크게 뻗어져 올라간 상태에서 붉고 검은 기운들을 줄기차게 그 사이로 빨아들였다.
마치 그 기운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녀석의 정면으로 하나의 팔이 거대한 포신처럼 변형이 되어 그 위로 수백 개의 비늘들이 날카롭게 들어 올려져 있었다.
설마…….
흡사 거대한 용의 그것과 비슷한 방식을 보자마자 재중이 형에게 외쳤다.
“형! 브레스!”
“어. 나도 봤어!”
용마족.
그것도 마왕에 버금가는 녀석이 모은 브레스를 이런 좁은 곳에서 쏘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쿠오오오!!
곧 우리 팀들 역시 변화를 느낄만큼 강렬한 기운들이 용마족을 중심으로 모여들자 다들 놀란 눈빛을 보냈다.
바로 전사 형이 잡고 있던 고대 용기사들을 용기사단장들에게 맡기고는 우리에게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타이탄 라지 쉴드를 앞으로 치켜들고.
그런데 갑자기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사 형을 만류했다.
“안 돼! 저건 못 막아!”
그 말을 듣자마자 전사 형의 발이 못 박힌 듯 그 자리에서 바로 멈춰버렸다.
단순 방어력 면에서는 타이탄 풀 플레이트와 라지 쉴드를 든 전사 형이 카샤스 대공보다 높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렸다.
“용마족 최강의 무기 용마포는 이런 광산 하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날려 버릴 수 있어.”
왜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사 형을 말렸는지 알 것 같았다.
광산 하나를 쓸어버린다는데 그 정도 위력이면 아무리 전사 형이 단단하다고 해도.
방어력을 넘어서는 위력에 체력이 먼저 닳아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방어야 된다고 해도 대미지는 계속 들어올 테고 체력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그러더니 마왕 헤르게니아가 인상을 확 쓰고는 말했다.
“하. 저 새끼. 광산째로 우릴 날려버릴 생각인 거야?”
우리를 적당히 상대해 주는 게 아닌.
그냥 아예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인지 용마족 녀석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마치 광산 따위는 무너져도 전혀 상관없다는 듯.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었다.
“저거 막을 수 있어?”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장 아크 드래곤의 브레스 정도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힘들어.”
위력이 그 정도라는 건가.
확실히 아크 드래곤의 브레스면 제국 일대를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 비슷한 브레스라면 결코 위력이 부족하지 않을 터.
그런 미친 위력의 브레스를 지금 이 좁은 광산에서 쏘겠다니…….
저놈도 어지간히 미친 녀석이었다.
“용마족이 그렇게 불리한 것도 아닌데 왜?”
전사 형이 의아하다는 듯 물어보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혀 아니라는 듯 말했다.
“용마족은 더 광활한 공간에서 전투해야 진짜 능력이 나와. 지금은 오히려 녀석에게 족쇄나 마찬가지야.”
그 말에 전사 형이 어이없다는 듯이 용마족을 쳐다봤다.
“와. 지금 저게 약해진 상태라고?”
“그래. 초고속 기동으로 싸우는 놈을 이런 좁은 곳에 처박아두니까 저런 식으로밖에 못 싸우지.”
순간 나와 재중이 형도 혀를 내둘렀다.
단순히 근접 전투가 강한 녀석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실제 능력의 대부분을 봉인하고 싸우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녀석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이 않았을지도 모르겠고.
손발 묶고 싸우고 있는 건 우리뿐이 아니었던 거다.
바로 고개를 돌려 우리 팀을 바라보았다.
유저인 우리야 당장 귀환을 한다고 해도.
용기사단들은 광산이 무너지면 그대로 전멸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기사단이면 뭐하나.
광산이 통째로 무너지면 다 압사당할 텐데.
던전 형태인 광산이 무너지는 건 솔직히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전에 헤르마늄 광산에서 비슷하게 무너뜨려 본 적이 있으니까.
전체를 무너뜨리진 못했지만.
그것만 해도 기사단 정도는 확실히 죽는다.
“전부 빠져나가라고 해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어. 우리라도 빠져나가자.”
그러면서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면 말했다.
“무너져도 알아서 빠져나올 수 있죠?”
“너희들 걱정이나 해.”
설마 광산 자체를 무너뜨릴 것이라 생각하지 못해서 대처가 좀 늦어졌다.
바로 화련에게도 연락했다.
<주호> 여기 문제가 생겼어요.
<화련> 아. 왜? 지원은 안 돼. 여기도 바빠.
<주호> 그게 아니라. 광산이 곧 무너질 겁니다.
<화련> 뭐? 그게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주호> 이쪽 네임드가 화나셨나 보죠. 얼마 안 남았어요. 다들 빠져나가요.
<화련> 진짜? 아씨. 그러면 용기사단은?
화련 역시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당장 우리는 빠져나간다고 해도 용기사단은 전멸일 테니까.
<주호> 뒤는 다시 생각하죠.
<화련> 하아. 용기사단 전멸하고 나면 황제가 날 들들 볶을 건데.
<주호> 정확히는 절 볶겠죠.
황제도 문제지만 장로회 역시도 문제다.
둘 다 피곤해지겠는데…….
이대로 성과 없이 전멸이면 앞으로 할 계획들에 꽤 치명타다.
그때 챠밍이 달려오더니 내게 말했다.
“지금 저 브레스 캔슬시키면 안 돼요?”
“할 수 있겠어?”
“일단은 해볼게요.”
그러더니 챠밍이 아이셔스 스태프를 들어서 용마족 녀석에게 강렬한 빙계 광역기를 날렸다.
오래 차징을 못해 위력이 약하지만 그것만을 바라고 한 건 아니니까.
곧 용마족 녀석의 주변으로 얼음 빙벽이 세워지면서 녀석을 완전히 얼려버렸다.
“됐……!”
챠밍이 두 손을 꽉 쥐면서 외치는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전혀 멈추지 않았어.”
순간 챠밍의 빙계 광역기가 용마족의 날개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그대로 와해되면서 수증기로 흩어져 버렸다.
설마 마왕급의 스킬이 먹히지 않을 줄이야.
그렇다는 건.
이하의 어지간한 스킬들은 죄다 먹히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잠시 용마족 녀석을 보고는 고민했다.
이제 곧 풀 차징된 브레스가 터져 나올 터.
휴.
여기서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일단 다들 튈 준비하고 있어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의아한지 내게 물었다.
“뭘 하려고?”
“일단 광산이 부서지는 걸 최소한으로 해보죠.”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꺼내 들고는 앞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이거 안 되면 저도 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