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8화 용신검 아스카론 (4)
타란 제국 황실에서 용신제의 일정이 공표되고 나자 제국 전체가 분주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국 내의 여러 이벤트 중에서도 가장 큰 일정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 행사가 중요하고 큰 만큼이나 당연히 타란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참여해야 했다.
그중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호> 오랜만이에요.
<화련> 연락하는 걸 보니 타란 제국으로 넘어왔나 보네?
<주호> 뭐 그렇죠. 도착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화련> 그럼 와서 이쪽 일 좀 거들어.
<주호> 베르탈륨 광산 말이죠?
<화련> 응. 이게 뚫릴 것 같으면서 안 뚫리네. 여기 몬스터들이 장난 아냐.
어지간하면 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 화련이 저러는 걸 보면.
각 제국의 최고 규모의 광산들의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다는 걸 잘 증명해 주었다.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은 그나마 제국의 기사단이 길을 쓸어 주어서 편하게 다녔던 거지.
화련은 그런 지원을 바랄 수도 없는 처지니까.
남들 몰래 베르탈륨 광산을 파고 있는데 자력으로 뚫으려면 보통 힘든 게 아닐 것이다.
당장 고대 마룡은커녕 베르탈륨 광산에서 자리를 잡고 사냥하는 것도 벅찰 정도겠지.
<주호> 아. 그보다 먼저 처리할 일이 있어서 아직은 안 되겠어요.
<화련> 무슨 일인데? 좋은 퀘스트 받았어?
<주호> 그런 건 아니고요. 용신제라고 알아요?
<화련> 용신제?
<주호> 네. 귀족들이 전부 소집된다고 해서요. 화련도 참여하나요?
<화련> 으음. 아마도 가긴 가야겠지? 다른 귀족들하고 트러블 나지 않으려면 귀찮아도 가봐야 해.
딱히 화련은 용신제에 그렇게 관심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당장 베르탈륨 광산을 공략하는 데 더 관심이 있겠지.
그쪽이 화련에게는 훨씬 남는 장사일 테니.
화련 입장에서는 이번 공략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해.
그간 들인 자금이 적지 않을 텐데 혹시라도 어긋나면 그 손해를 전부 떠 앉아야 한다.
반면 용신제는 그런 화련의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만약 이걸로 다른 귀족들이 꼬투리라도 잡게 되면 그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기도 하고.
신흥 귀족이 용신제에 참여하지 않는 건.
기존 귀족들에 대한 반항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사사건건 태클을 걸지도 모르겠다.
귀족이라는 게 반은 명예로 먹고사는 녀석들이니.
화련이 귀찮아하면서도 참가한다고 하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주호> 그럼 조만간 보겠네요.
<화련> 응? 너 귀족도 아닌데 용신제는 뭐하려고? 일반 유저들은 딱히 이득 볼 것도 없을 거야.
<주호> 음. 전 그쪽은 아니고요.
<화련> 뭐야? 괜히 궁금하게. 빨리 말해 봐.
<주호> 이거 알면 같이 타란 제국 감옥에 갇히게 될지도 몰라요?
<화련> 너 또 이상한 짓 꾸미고 있구나?
화련은 그동안 내게 당한 것이 많다 보니 슬쩍 말만 꺼내도 바로 눈치를 챘다.
<주호> 그냥 역사를 좀 바꿔놓아 볼까 생각 중이죠.
<화련> 하아. 미치겠네. 네가 나서면 더 확 바뀔 거 아냐. 안 그래도 너무 변화가 많아서 골치 아픈데.
<주호> 그래요?
<화련> 넌 요즘 게시판도 안 봐? 곳곳에서 숨겨져 있는 유적들을 들쑤시고 희귀한 아이템들을 뽑아내고 있잖아. 아예 왕국을 통째로 먹은 길드도 나오고 있고. 그쪽은 좀 시골 왕국이라 아직 여파가 적긴 한데. 그래도 이미 역사가 너무 많이 바뀌었어.
역시.
우리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유저들 역시도 각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공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미래의 역사를 알고 그걸 죄다 써먹어 가면서.
<화련> 그나마 여긴 제국이라 아직 유저들이 진출은 못 했는데. 너 같은 녀석들 몇이 와서 엎어 버리면 그것도 금방이라고.
<주호> 음. 저 같은 녀석들이 많을까요?
<화련> 아! 이건 실수. 너 같은 녀석은 절대 없겠지. 어느 미친놈이 넘어오자마자 아크 드래곤을 잡아대겠어. 참, 네가 아크 드래곤 잡았다고 아주 소문이 쫙 퍼졌더라.
<주호> 그래요?
<화련> 게시판에 그걸로 계속 떠들썩하던데. 본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증명은 못하지만. 너 레벨 갑자기 오른 게 그거 때문 아니냐고 난리야.
본 사람이 없는 건 확실하다.
애초에 유저들이 에센시아 제국에 넘어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주호> 지금쯤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겠죠.
<화련> 그래. 누가 영웅 시스템을 퍼트려 준 덕분에. 지금 그거 판다고 왕국을 먹거나 작업하는 애들 엄청 많아.
영웅이나 용사 후보 시스템은 예전에 전사 형을 통해서 우리가 퍼트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얻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화련 말대로 왕국을 통째로 먹어 버리는 방법이 있었다.
그럼 한 자리라도 확실히 차지할 수 있을 테니.
할 수 있는 문제를 떠나서라도.
만약 왕국 자체를 보유하게 된다면.
기여도 문제에 꽤 자유롭게 될 것이다.
로가슈 왕국을 소유한 내 쪽은 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주호> 혹시 다른 연합들이 왕국들을 노리고 있어요?
<화련> 응. 다들 서로 간섭 안 되는 위치에 가서 작업 중이던데?
역시.
이쪽이 빠르다는 걸 다들 눈치챈 듯했다.
나처럼 제국의 기여도를 폭발적으로 얻지 못하는 이상에야.
저게 가장 빠른 길이긴 할 테다.
<주호> 조만간 마주치겠네요.
<화련> 성마대전에서?
<주호> 뭐. 그렇죠. 다들 영웅 자리 하나씩 꿰차고 오겠죠?
<화련> 그래 봐야 왕국의 영웅은 약해.
이건 화련의 말이 정답이었다.
괜히 제국이 있는 게 아니다.
같은 영웅이라도 등급에서 꽤나 차이가 날 테다.
<주호> 나중에 갈아타면 문제 없죠.
<화련> 그것도 되겠네.
성장하는 게 문제지.
어느 선 이상으로 성장하고 나면.
그냥 갈아타면 그만이다.
다른 제국의 영웅으로 말이지.
뭐 그때는 그만큼 기여도를 다시 쌓긴 해야 할테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제국에서 시작하는 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이라.
아니면 화련처럼 대놓고 돈으로 발라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지금도 보란 듯이 타란 제국의 귀족위를 돈으로 사버렸지 않는가.
<주호> 화련도 용사 후보 시스템 얻었어요?
<화련> 응. 이거 완전 좋더라고. 레벨 한도도 뚫어주고. 버프도 어지간한 종족빨보다 좋아.
음.
저 정도로 좋아지려면 어지간한 기여도로는 안 될 텐데.
설마…….
<주호> 혹시 기여도도 돈 주고 산건 아니겠죠?
<화련> 왜 아니겠어.
역시 그랬나.
<화련> 좋은 제도가 있더라고. 용의 신전에 기부하면 기여도 올라가거든.
<주호> 하아. 왠지 힘이 빠지는 것 같네요.
누군 그 고생을 해서 올렸는데 말이야.
그리고 용의 신전이라면.
아마 아이샤 황녀가 제사장으로 있는 그곳일 테다.
<화련> 꼬우면 너도 돈으로 질러.
<주호> 전 사양하죠.
듣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생각 났다.
<주호> 혹시 다른 녀석들도 그런 식으로 올릴까요?
<화련> 아마 그럴걸? 돈 좀 있다는 애들은 다. 너도 넋 놓고 있다가 바로 따라잡힐 거야.
<주호> 어차피 자기보다 한참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잡지 못하면 크게 의미가 없을 거예요. 버프까지는 모르겠지만.
용사 후보 버프는 한 번에 들어오는 경험치 제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경험치를 풀어줘도 그냥 저냥 적당한 몬스터들만 잡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최소한 자기보다 몇 십 레벨은 높은 걸 잡아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 유저가 과연 얼마나 있나 싶기도 하고.
당장 몇 명 생각이 나긴 하는데.
그런 녀석들 말고는 어렵지 않을까.
<화련> 네 말이 맞아. 그래서 우리도 가능성 있는 애들만 몰아주고 있거든.
<주호> 그거 기대되네요.
과연 화련이 얼마나 강한 괴물들을 키워낼지는 두고 봐야겠지.
아마 다른 연합들도 같은 식으로 접근할 것이다.
화련 말대로 각지에서 유적을 파서 아이템들을 쓸어 담고 있다면 그걸로 스펙을 올려서 나올 테고.
<화련> 아무리 그래 봐야 너만큼 해먹는 녀석들은 없겠지만.
<주호> 하하…….
아.
그러고 보니 이 말을 화련에게 해주어야 했다.
<주호> 고대 마룡요. 그거 이미 타란 제국 황제가 눈치채고 있어요.
<화련> 흐음. 그래?
<주호> 알고 있었어요?
<화련> 어렴풋이? 계속 베르탈륨 광산 근처에 황실 용기사들이 돌아다니더라고.
<주호> 그러다 뺏기는 거 아니에요?
<화련> 안 그래도 방법을 찾고 있어. 타란 제국 황제가 나서면 소유권이 있더라도 뺏길 건데…….
이래서 화련이 빠르게 처리하려고 했던 건데.
성마대전의 상황이 너무 급격하게 변한 것과 아크 드래곤 일까지 겹치면서 불똥이 화련에게 튀어 버렸다.
이건…….
내 쪽에서 해결해 줘야겠지.
그리고 안 하면 나 역시 손해니까.
<주호> 그거 제가 처리해 줄게요.
<화련> 정말? 어떻게? 이건 돈으로 발라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이야.
<주호> 전에 타란 제국 대공에 대해서 말한 적 있죠?
<화련> 갑자기 그 대공은 왜?
<주호> 그 카샤스 대공이 저하고 친분이 있어요.
<화련> 설마 거기까지 손이 닿은 거야?
<주호> 그냥 하다 보니까요.
<화련> 하. 여기 공작이라도 만나기 힘들 텐데.
<주호> 놀라는 건 거기까지 하고요. 일단 제가 카샤스 대공하고 다리를 놓아드릴게요.
다리를 놓아준다는 내 말에 잠시 화련이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바로 내 뜻을 알아차린 듯 물어왔다.
<화련> 카샤스 대공을 대리인으로 삼으라 이거지?
<주호> 역시 이해가 빠르시네요.
돈이 걸린 일이라 그런지 화련의 이해도는 남달랐다.
<화련> 베르탈륨 광산의 소유권 계약을 카샤스 대공과 새로 맺어서 소유권을 방어하라는 거잖아. 카샤스 대공이라면 타란 제국 황제도 함부로 못하니까.
역시 화련도 알고 있었다.
이곳 타란 제국의 현실을.
지금 이 제국의 실세는 둘이다.
타란 제국의 황제.
그리고 카샤스 대공.
둘이 세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러니까.
타란 제국 황제에게서 베르탈륨 광산을 보호하고 싶다면.
카샤스 대공의 그늘 아래 들어가는 건.
최적의 선택이다.
<주호> 카샤스 대공이라면 베르탈륨 광산의 이권을 충분히 지킬 수 있어요. 고대 마룡 레이드가 끝나더라도.
그리고 카샤스 대공의 권역 안에 베르탈륨 광산이 들어간다면.
카샤스 대공의 세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도 그렇지만.
이곳 타란 제국의 베르탈륨 광산 역시도 최대 채굴량 규모를 자랑하는 광산 중에 하나니까.
타란 제국 황제에게서 제대로 지킬 수만 있다면.
카샤스 대공에게 어느 정도 떼어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일종의 보호세라고 봐도 될 테고.
<화련> 되기만 하면 오히려 전보다 더 안전하게 캐겠네.
<주호> 그렇죠. 타란 제국 황제가 내전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라면요.
<화련> 만약 내전이 일어나면?
<주호> 흐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 가능성을 없애 버리려고 지금 작업 중이라서요.
<화련> 하아. 너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화련이 아무리 궁금해하더라도 이건 절대 알려줄 수 없다.
이건 내 목도 같이 날아가니까.
<주호> 그럼 카샤스 대공저로 오세요.
<화련> 너 지금 대공저에 잇어?
<주호> 친분이 있다고 했잖아요.
<화련> 일단은 왕자라 이거지?
<주호> 그런거죠 뭐.
<화련> 알았어. 조만간 다시 봐. 어차피 용신제에 가야 하니까.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카샤스 대공을 찾아갔다.
“계약을 하나 맺어줬으면 하는데?”
“무슨 계약 말이지?”
“타란 제국의 숨겨진 베르탈륨 광산. 이거 네가 보호해 줘야겠어.”
“숨겨진 베르탈륨 광산이 있다고? 그리고 보호?”
“어, 일단 소유권은 있는데. 제국 황제가 뺏으려고 하면 방법이 없거든.”
“그런가. 규모는 어떻게 되지?”
“대공이 본 그 어떤 곳보다 클 거야.”
그러자 바로 카샤스 대공이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겼다.
“내가 얻게 되는 이득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카베스 황제와 부딪히지 않을 수 없거든.”
그러니까 그 이상의 뭔가를 내어놓으라는 건데.
“베르탈륨 광산의 지분 2할이면 어때?”
“2할…… 인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에 조금 더 쓰기로 했다.
2할로는 못 움직이시겠다 이거지?
“3할. 이 이상은 못 줘. 그럴 거면 그냥 타란 제국 황제에게 넘겨버리고 말지.”
“4할로 하지. 그럼 타란 제국 황제는 내가 막아주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필요하면 내 군사까지 쓰도록 하지.”
이건 화련과 합의를 봐야겠지만.
<주호> 카샤스 대공이 4할 달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화련> 너무 주는 거 아냐?
<주호> 대신 카샤스 대공이 무조건 막아 준다네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아예 하나도 못 먹는 것과.
부분이라도 확실하게 먹는 것.
선택의 여부는 화련에게 넘어갔다.
그러자 잠시 고민을 하던 화련이 이내 수락했다.
<화련> 좋아. 딜. 우리가 먹을 게 좀 줄어들긴 하겠지만. 확실하게 먹을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아.
그런 화련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주호> 이제 한 팀이네요.
그것도 카샤스 대공이라는 우산을 겹쳐 쓰는 사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