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3화 타란 제국 (10)
이미 타란 제국 황제는 용신검 아스카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타란 제국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장로회의 반발을 눌러 가면서까지 실전에 투입할 용들을 가져다 제물로 쓸 정도로.
이건 그만큼 간절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용신검 아스카론이 강해지는 만큼 타란 제국 황제 본인이 강해지는 거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용.
아니.
그보다는 좀 더 상급의 용이 필요한 거다.
용신검을 확실하게 강하게 만들기 위한.
아무래도 양으로 밀어붙이는 건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니까.
타란 제국 황제가 괜히 아크 드래곤이나 고대 마룡 같은 최상위급 용들을 원한 게 아니었어.
물론 그런 용들의 잔해를 얻거나 직접 테이밍이 가능하다면 그 역시도 타란 제국을 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겠지만.
그보다는 황제는 본인의 용신검을 강하게 만드는 데 모든 관심이 쏠린 듯했다.
뭐 타란 제국 황제의 상황이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용혈의 강함이 전부인 타란 제국에서.
본인보다 더 강한 용혈을 가진 카샤스 대공이라는 인물은.
그 존재 자체가 타란 제국 황제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가뜩이나 황제에겐 눈엣가시 같은 장로회까지 손발 들고 나서 카샤스 대공과 접촉할 정도니.
지금의 타란 제국 황제는.
오직 본인이 강해지는 것.
그것만이 최선일 테다.
확실히 눈앞의 카샤스 대공보다 강해지려면 당장은 그 방법밖에 없을지도.
그런데 카샤스 대공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꾸 이상한 점이 하나둘씩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타란 제국 황제가 강해지면 강해지는 만큼.
반대로 카샤스 대공이 그만큼 위험해지지 않나?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카샤스 대공은 그런 것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것 같은 초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일단 의심해볼 만한 건.
타란 제국 황제가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상위의 드래곤인 아크 드래곤의 잔해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잔해를 카샤스 대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타란 제국 황제에게 양보해 버렸다.
물론 그때 보기에는 타란 제국 황제가 용의 맹세를 허락하기 위해 카샤스 대공이 조금 양보를 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용신검이 아크 드래곤의 잔해로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듣고 나서는 아예 생각이 달라졌다.
굳이?
타란 제국 황제가 더 강해질 수 있는 걸 막지 않았다고?
카샤스 대공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어떻게든 용의 맹세가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권을 타란 제국 황제에게 쥐여 준다든지.
혹은 뭔가의 부탁을 도와준지 하는 걸로 말이야.
어떻게 보면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은 경쟁 상대인데.
자신의 상대편에게 더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을 그냥 준다?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카샤스 대공이 그것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는 말은.
알면서도 카샤스 대공이 묵인했다는 뜻이 된다.
카샤스 대공의 진짜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자신이 황제가 되기를 원했다면.
애초에 나를 이곳.
타란 제국으로 데리고 와서는 안 됐다.
이건 순수히 내 추측이지만.
카샤스 대공은 어쩌면 타란 제국 황제 자리를 그다지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카샤스 대공에게 흘리듯이 말을 꺼내보았다.
“혹시 황제가 지금보다 더 강해지기를 바라는 건가?”
“……음.”
내 뜬금없는 질문에 순간 카샤스 대공의 아미가 치켜세워졌다가 곧바로 그 표정을 감추었다.
당황?
아니 저건 그냥 놀랐다고 해야 하려나?
방심하고 있다가 허를 찔린 딱 그런 느낌이라.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군.”
“아니. 뭐 그냥 그런 것 같아서.”
“쓸데없는 소리다.”
그리고는 카샤스 대공이 바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거.
원 역사에서 안 드러났지만 타란 제국 황제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긴 한 것 같은데?
카샤스 대공이 딱히 대답을 하지 않자 나도 더 이상 묻는 걸 그만두었다.
캐봐야 좋을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필요하면 나중에라도 말해 주겠지.
레오나 에센시아도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와 카샤스 대공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듯했다.
마치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도 들었다는 양.
확실히 지금쯤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거든.
그냥 이건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가 될 마음이 없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게…….
카샤스 대공이 고대 마룡을 얻기 위함은.
단순히 본인이 강한 용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님 또 다른 생각이 있는 걸까.
생각보다 이상한 일에 엮인 것 같은 찝찝함이 들어 빤히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자 녀석도 나를 그대로 쳐다 보았다.
“문제가 있나?”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누가 봐도 이상하거든.
상황으로만 보면 얼마든지 타란 제국 황제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오히려 경쟁자에게 힘을 몰아주는 모양새라.
물론 카샤스 대공이 고대 마룡을 소유하게 되면 이야기가 좀 많이 달라지기는 하는데.
그것도 다시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의 양강 구도로 바뀌는 판이 되니.
이건 정말 최악의 상상인데.
카샤스 대공이 고대 마룡을 얻어서 타란 제국 황제에게 준다던가 하는 이상한 그림이 나올 지도 모르고.
원 역사로 보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때는 카샤스 대공이 용신검 아스카론과 고대 마룡을 모두 소유하고 있었다.
반대로 지금의 타란 제국 황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아무래도 역사 공부를 더 해야 하려나?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전사 형. 원 역사에서 타란 제국 황제가 어떻게 됏었는지 기억해요?
<방패전사> 응? 갑자기 그건 왜?
<주호> 아. 뭔가 앞뒤가 맞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요.
<방패전사> 그래? 흐음. 보자. 아마 성마대전 중간에 사망할걸? 언제인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주호> 어떻게 죽은지는 알고요?
<방패전사> 그게…… 좀 이상하지? 아예 역사에는 안 나오거든. 그냥 어느 순간부터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가 되었다는 것만 전해져. 누군가 싹 지워버린 것처럼 기록이 하나도 없어.
맞다.
이게 원래의 성마대전에서의 타란 제국 황제.
지금의 카샤스 대공의 미래였다.
타란 제국 황제이자.
타란 제국 최강의 검.
그리고 그 어디에도 지금의 타란 제국 황제인 카베스 황제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성마대전 중간에 없어질 그런 존재라는 거다.
나나 재중이 형이 카베스 황제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어차피 사라져 버릴 황제에게 줄을 댈 이유도 없고.
그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타란 제국 황제인 카샤스 대공이 훨씬 의미가 있지.
둘 중 한 명을 밀어준다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카샤스 대공이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다.
<주호> 네. 일단 알았어요. 그쪽은 어때요? 무슨 일 없죠?
<방패전사> 카샤스 대공이 직접 데리고 대공저로 가는 건데 뭔 일 있으려고.
현재 마차가 줄지어 가는 중이라 특별히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
그런데 카샤스 대공과 타란 제국 황제 사이를 고려해 보면 당장 뭔가 습격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주호> 아뇨. 혹시 모르니까 주의해 주세요.
<방패전사> 흠? 뭔가 있구나?
그 말에 전사 형에게 내가 들은 것들을 알려주자 곧 알겠다는 듯 전사 형이 다시 말했다.
<방패전사> 카샤스 대공 이거 좀 이상하긴 한데? 왜 역사와 반대로 움직이지?
<주호> 확실히 좀 그렇죠?
<방패전사> 일단 좀 알아볼 테니까 너도 조심하고. 대공저 도착하면 모이자.
<주호> 네. 알았어요.
내 말을 들은 전사 형마저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이건 재중이 형이나 우리 팀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정말 의도를 모르겠단 말이지…….
카샤스 대공이나 레오나 에센시아도 모두 말을 하지 않고 가자 마차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레오나 에센시아도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카샤스 대공 역시 이건 마찬가지라.
그 둘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일단 가장 눈에 띄게 원 역사와 달라진 건…….
황녀인 레오나 에센시아가 이곳에 왔다는 거려나?
그런데 이건 딱히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뭐 에센시아 제국과의 끈이 이어졌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게 다른 점이긴 한데.
당장 레오나 에센시아가 타란 제국 내에서 영향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서.
미래 최강의 영웅 수준으로 강한 상태라면 그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영향을 미치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타란 제국 황제도 딱히 그녀를 견제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카샤스 대공이 지금 이 시점에서 타란 제국에 와 있다는 점이려나?
원 역사대로라면 카샤스 대공은 성마대전에 참가해서 전쟁을 하고 있어야 하니까.
당연히 그가 공백인 상태에서 타란 제국 황제는 제국을 거의 장악해 있었을 것이다.
유일한 경쟁자인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바깥에 나가 있으니.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었을 테고.
그러면 원래 용신검을 이즈음부터 카베스 황제가 소유하고 있었다는 건가?
성마대전에 나간 카샤스 대공이 아니라?
그런데 어떻게 카샤스 대공이 후에 용신검을 얻게 된 거지?
카샤스 대공이 직접 카베스 황제를 죽인 건가?
아님…….
장로회?
아니다.
이건 너무 나갔지.
카샤스 대공의 말대로라면 그 옅은 용혈조차 아까운 놈들이라고 평했으니까.
그런 녀석들이 아무리 모여 봐야 카베스 황제에게는 그다지 위협이 안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휘하의 강력한 영웅들을 거느리면서 건재하듯이.
카베스 황제 역시도 그에 준하는 용기사단을 거느리고 있으니.
아무리 파벌이 나눠져 있다고 해도.
용신검을 가진 타란 제국 황제에게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강한 용혈을 우대하는 타란 제국에서는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이고.
그럼 결국 멀지 않은 미래에 카샤스 대공이 성마대전에서 돌아와 타란 제국 황제를 죽였다라는 것밖에는 말이 안 되는데…….
하지만 지금 카샤스 대공을 보면 딱히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아까 대전에서도 타란 제국 황제가 위협을 했을 때 역시도 그냥 넘기는 느낌이 강했기도 하고.
대체 뭐가 카샤스 대공을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또 다른 변수는 고대 마룡 정도가 있긴 한데…….
글쎄.
이건 또 너무 시기가 안 맞거든.
고대 마룡이 부활해서 타란 제국을 침략하는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이야기라…….
그때 당시 타란 제국의 절반이 불타올랐다고 하니 그 와중에 용신검을 들고 있던 타란 제국 황제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맞지 않다.
게다가 이때의 황제는 아마 카샤스 대공이었을 테고.
이건 전사 형에게 확인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 테지.
<주호> 전사 형. 고대 마룡 부활 이벤트에서 황제가 누구였죠?
<방패전사> 응? 당연히 카샤스 대공이지. 그건 왜?
역시 이것도 아니다.
애초에 카베스 황제는 이 시기에 살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 그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와중에 마차가 대공저에 도착했는지 서서히 속도를 늦추는 게 느껴졌다.
“다 왔군.”
“생각보다 머네.”
“대공저가 크니까.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
“뭐. 부자는 좋겠네.”
“원한다면 너도 이런 곳을 줄 수…….”
“아, 됐어. 여기서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그냥 돈으로 주든가.”
“없던 말로 하지.”
주는 걸 마다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저건 타란 제국에 눌러 살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소리라.
내가 바로 거절하자 카샤스 대공도 깔끔하게 포기해 버렸다.
그렇게 대공저의 성 앞에 도착하자 수많은 용기사들이 줄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무슨 사열식이라도 하는 듯 일렬로 쫙 용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환영식이냐?”
“흠. 복귀는 오랜만이라. 그리고 손님도 있지.”
그러면서 흘깃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는 건.
아마도 타국의 황녀의 방문이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고.
곧 마차에서 내리자 기사단의 함성과 함께 그들 사이로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카샤스!”
레오나 에센시아 뺨치게 미모가 월등한 여인이 등장하더니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달려와 포옹하자 레오나 에센시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카샤스!”
그때 카샤스 대공이 레오나 에센시아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곧 그녀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하나뿐인 내 누님이자, 타란 제국의 재상이시다.”
순간 나와 우리 팀 모두가 당황한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카샤스 대공에게 가족이 있었다고?
이건 역사에 아예 없는데……?
“그리고 나보다 강력한 용혈을 타고나신 분이기도 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