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0화 타란 제국 (7)
다른 제국에는 없지만.
타란 제국에만 존재하는.
꽤나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건.
용의 혈통을 잘 나타내 주는 일종의 제약.
이른바 용의 맹세.
용의 심장을 걸고 맹세한 계약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이건 어떻게 보면 용의 혈통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다.
혈통을 타고 났기에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약점이기도 하고.
만약 이 용의 맹세를 걸고 했던 계약을 어길 시에는.
아마 심장이 터져나간다고 했던가?
용의 혈통을 가진 이들의 심장은 다르게 말하면.
하나의 드래곤 하트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진짜 강력한 용의 그것과 비교하면 꽤 손색이 있긴 해도.
그리고 이 용의 심장이 강하면 강할수록.
돌아오는 제약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이게 꼭 약점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게.
실제 자신이 죽을 수준의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용의 혈통이라는 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그 본인이 강력하다는 걸 뜻하니까.
한마디로 본인이 강한 만큼.
용의 혈통으로 오는 계약의 힘이 더 커진다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은.
현 타란 제국 내에서.
용의 혈통 순혈도의 끝자락에 있는 녀석들이었다.
제약의 강도 역시 상상 이상이겠지.
아마 일반적으로 이 둘에게 용의 혈통을 걸 만한 계약은 아무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쳤다고 제국 황제와 대공에게 그런 계약을 걸까.
이건 당장 목이 날아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지금 저들은 절대 내 목을 날리지 못하거든.
그러니까.
현재 저들에게 용의 혈통을 걸고 계약을 걸 만한 이는 내가 유일하다는 말도 된다.
이런 내용은 전사 형이 성마대전 시대의 역사를 알아보면서 전부 알려주었던 것들이었다.
설마 이걸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은 나도 몰랐지만 말이지.
용의 혈통을 건 맹세를 언급하자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조금은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카샤스 대공이 날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았…….”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그런 것도 안 알아보고 왔을까.”
안다.
이 용의 맹세는.
황족에게나 전해지는.
일종의 타란 제국의 비밀에 속할 테니까.
다른 말로.
황족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용의 맹세를 언급하고 있으니 둘 다 기가 찰 수밖에.
타란 제국의 황제 역시도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차갑게 소리를 낮춰 내게 물었다.
“용의 맹세를 건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아는가?”
“알 만큼은 압니다.”
애초에 원역사를 다 보고 왔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뭐 처음에는 그냥 최대한 아껴두려고 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저 둘에게 동시에 용의 맹세를 언급할 수 있는 기회도 아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개별적이라면.
아마 제국이 무너지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어지간해서는 들어주지 않을 테니.
이건 다른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 만한 녀석들은 거의 다 알고 있지 않을까.
다른 녀석들이 아직 타란 제국에 진출하지 못했기에 어차피 써먹지도 못하겠지만.
아니.
그보다는 이 정도 거물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이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화련조차도 타란 제국에 도착하고 돈으로 작위까지 사들였음에도.
아직 타란 제국의 황제나 카샤스 대공과는 한 번 얼굴조차 마주친 적이 없을 정도니까.
다른 녀석들은 말 안 해도 뻔하겠지.
경쟁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정작 문제는.
이 용의 맹세는 아무리 상황이 좋다고 해도.
타란 제국의 황제와 카샤스 대공은 절대 해주지 않을 것이다.
말 한마디로 자신들의 목숨줄이 오가는 맹세인데.
과연 쉽게 해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맹세를 하지 않을 확률이 너무 높다.
어떻게 보면 저 둘에게 있어서 손해만 있을 제약이기도 하니까.
굳이 용의 맹세까지 해가면서 고대 마룡을 손에 넣을 필요까지는 없겠지.
고대 마룡이 없더라도.
지금도 저들은 충분하다고 할 만큼 강하니까.
반대로 당장 눈앞에 마왕군이 처들어오고 난 뒤에는 늦다.
그땐 고대 마룡을 잡는답시고 맹세고 뭐고 할 여유조차 없을 테지.
쓸 수 있다는 아마도 지금뿐일 것이다.
타란 제국 황제가 날 빤히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안다면 우리가 용의 맹세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런 황제의 말에 카샤스 대공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감안해 본다면.
이례적으로 마음이 맞은 경우라고 해야 하나?
그만큼 용의 맹세가 주는 압박감이 이들에게는 강하게 존재한다.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선 챠밍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주호> 역시 이걸로는 부족하겠지?
그런 내 말에 챠밍이 웃음을 보이면서 답했다.
<챠밍> 네, 오빠. 저들이 그 정도로 호구는 아니니까요. 얻을 것 없이 손해만 볼 계약을 해줄 리는 없어요.
그때 챠밍이 내게 자신의 로브 뒤로 감쳐진 스태프를 살짝 보여주면서 눈빛을 보냈다.
<챠밍> 그러니까 저들이 혹할 정도의 먹음직한 먹이를 보여 줘야죠.
<주호> 흐음. 과연 이걸로 먹힐까?
<챠밍> 둘 다 용이라면 껌뻑 넘어가잖아요. 충분히 될 거예요.
챠밍의 확신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가진 패 중에.
이보다 더 저들을 유혹할 수 있는 물건은 없다.
최고의 패이자.
하나밖에 없는 패이기도 하고.
뒤를 바라보고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자 형 역시도 흔쾌히 말했다.
<불멸> 나쁘지 않네. 저런 대어들을 낚으려면 우리도 그만큼 보여 줘야겠지.
<주호> 네. 그럼 한 번 해보죠.
용의 맹세는 우리가 고대 마룡 레이드를 뒤통수 맞을 부담 없이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이건.
일종의 투자나 마찬가지다.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더 큰 걸 얻기 위한 밑거름이지.
바로 고개를 돌려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제 쪽의 추가 좀 모자랐던 모양이군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추라는 말에 타란 제국 황제가 꽤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절대 안 된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카샤스 대공도 내가 뭘 꺼내놓을지 궁금한지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마찬가지.
거의 남의 집안싸움을 구경하는 꼴이라 참여는 못하고 있지만 그녀도 계속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놀랄 만한 제안을 꺼내들었다.
먼저 레오나 에센시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제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멀까요?”
그러자 그녀가 잠시 멈칫했다가 바로 답을 내놓았다.
누구보다도 내 의도를 잘 알고 있을 사람이라.
“아크 드래곤을 사냥했기 때문 아닌가요? 그런 경험과 지식이 타란 제국에 필요했을 테고요. 지금의 상황도 그것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역시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다.
과거의 대영웅이 빈말이 아니라는 거지.
아크 드래곤이 언급되자마자 타란 제국 황제의 느긋했던 태도가 바짝 굳어지는 게 보였다.
카샤스 대공 역시도.
저들에게 강력한 용이라는 건.
그것도 역사에 나올 강한 용의 존재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접대성 웃음을 보이면서 말을 꺼냈다.
“아크 드래곤의 잔해. 과연 지금 누가 들고 있을까요?”
그 말에 둘의 시선이 온전히 내게로 꽂혔다.
욕심?
욕망?
아니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갈망이 그들에게 보이는 듯했다.
“우리 쪽에선. 아크 드래곤의 잔해를 걸도록 하죠.”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 사이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이것도 서로 가져야 한다는 거려나?
“이 정도면 모자란 추로써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러자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타란 제국 황제가 답했다.
“부족하지 않지.”
카샤스 대공 역시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절대 부족하지 않다.”
고대 마룡은 아직 실체도 없는 물건이지만.
이 아크 드래곤의 잔해는 실재하는.
그것도 지금 당장이라도 얻을 수 있는 물건일 테니까.
뭐 생물이 아니라는데 좀 점수가 깎이긴 할테지만 그래도 아크 드래곤의 잔해로도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에게 넘치고 넘칠 테다.
이를테면.
전에 드워프 장로의 스승이 타란 제국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정도의 장인이라면 분명히 타란 제국 황실과도 연결이 되어 있을 터.
당장 아크 드래곤의 잔해만 가져도 상상을 초월하는 무구들을 준비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장인은.
분명히 타란 제국에서 관리를 하고 있겠지.
그에게 접근하려면 어차피 이것도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그 잔해를 두 분에게 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건 맹세를 이행하기 위한 조건일 뿐이니까요.”
단호한 내 말에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이 다소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욕심이 나서 날 죽이고 뺏으려고 해도.
저들은 아크 드래곤의 잔해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른다.
괜히 건드렸다가 벌집 건드린 꼴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날 건드리지도 못하겠지.
둘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음.
줄타기는 이 정도만 하고.
이제 진짜 협상을 해볼까나…….
너무 애만 태우면 잘 될 것도 망할 수 있다.
저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지금이 딱 적기겠지.
일단 딜을 넣어보자.
“아크 드래곤의 잔해 10%를 계약금으로 걸겠습니다.”
“10%?”
“으음…… 그건 좀.”
보아하니 저 둘은 아크 드래곤 자체를 얻기 원했던 것 같은데.
그건 욕심이지.
“고대 마룡을 그냥 제게 넘긴다고 하면. 50%까지는 고려해 보겠습니다만.”
“그건 무리겠군.”
“그 조건은 어렵다.”
이건 뭐 그냥 던진 말이다.
고대 마룡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하는 중인데.
통째로 넘기라고 하면 계약 자체가 안 된다.
그래도 확실한 건.
조건의 문제 일뿐.
이미 저들에게 용의 맹세를 할 거라는 답변을 받아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조금 무리한 조건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된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으니까.
<불멸> 크큭. 거래 잘하는데?
<주호> 형한테 보고 배운 거죠 뭐. 아예 저들의 포커스를 거래 조건의 수량 쪽으로 돌려놓으면…….
<불멸> 그래. 이제 안 된다는 선택지는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되겠지.
아크 드래곤의 잔해가 좀 아쉬운 감은 있지만.
우리 쪽에 확실한 패가 있다는 걸 안 이상.
잔해 좀 넘겨주고.
고대 마룡을 얻을 수 있다면.
이건 엄청나게 남는 장사지.
카샤스 대공에겐 좀 미안하긴 해도.
정 안 되면 나중에 다른 걸로 좀 챙겨주면 되는 일이다.
거기다 이렇게 아크 드래곤의 잔해를 막 소비해도 상관없는 건.
그 아크 드래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재중이 형 옆에 있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빤히 바라봤다.
입 모양으로는 딱 이렇게 말하는 듯하고.
‘내 물건 가지고 잘 논다.’
딱 이 정도?
자.
간 보기는 이정도면 됐고.
곧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꺼내들었다.
“두 분에게 각각 아크 드래곤의 잔해 15%씩을 드리도록 하죠. 물론 원하는 부위는 신청하시면 충분히 감안해 드리겠습니다.”
처음의 둘이 합쳐 10%가 아닌.
아예 개별로 15%.
그러니까 30%의 양을 한 번에 부른 것이다.
내 제안에 둘 다 꽤 놀란 듯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타란 제국 황제는 가만히 앉아서 아크 드래곤 잔해를 15%나 얻을 수 있기 때문인지 즐거워하는 표정이었고.
카샤스 대공은 반대로 내 상황을 고려해 주었다.
“30%는 과한 것 같군. 이건 단지 맹약일 뿐이다. 그것도 네겐 하등 이득이 없는.”
물론.
카샤스 대공의 말이 전부 맞는 건 아니었다.
이득이 없을 리가 있나.
지금부터 전부 벗겨먹을 예정인데.
카샤스 대공에게는 미안하지만.
타란 제국 황제에게는 전혀 미안하지 않다.
그러면서 타란 제국 황제를 바라보면서 제안했다.
“아.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죠.”
“말해보라.”
“타란 제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랍니다. 에센시아 제국에서 받았던 것만큼의 지원 말이죠.”
그 순간 레오나 에센시아의 얼굴색이 하얗게 죽어 버렸다.
내가 에센시아 제국에서 얼마나 긁어다 썼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 테니까.
당시 그 큰 제국이 휘청일 정도였다지 아마.
그러자 타란 제국 황제가 내게 말했다.
“내 비율을 20%. 카샤스 대공의 비율을 10%로 하면 한 번 고려해보지.”
곧 죽어도 카샤스 대공에게는 지기 싫다는 거냐?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한숨을 쉬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허락한다는 뜻이겠지?
어떻게든 이번 거래만 성사되면 고대 마룡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나오는 판단일 것이다.
둘 다 허락을 하자 나 역시 웃음을 보였다.
“좋아요. 그럼 날을 한번 잡아 보죠.”
타란 제국 창고를 싹 털어 줄 날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