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8화 타란 제국 (5)
용신검 아스카론.
이건 성마대전 시대에서 정말 자주 등장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전부 외우고 있을 만큼 유명한 물건이었다.
바로 타란 제국을 대표하는 신급 무구.
성마대전 역사상에서 표현하기로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의 완전 상위 호환이라고 해야 하려나?
용살검이라고 불리는 드래곤 슬레이어와는 그 성격이 좀 다르긴 해도.
어쨌든 신급의 아이템이라는 사실 하나로 모두의 관심을 이끌어내기에는 절대 부족함이 없었다.
이 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무구 중에 몇 가지를 딱 꼽으라면 이 용신검이 무조건 들어가기도 하고.
실제 다른 신급 무구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데 반해.
이 용신검은 성마대전에 수시로 등장한다.
그것도 바로 내 앞의 이 녀석에 의해.
용신검 아스카론의 원주인.
카샤스 대공.
고대 마룡과 더불어 용신검 아스카론을 들고 있는 카샤스 대공은 그야말로 무적으로 표현된다.
어지간한 마왕들도 한 수 접어 준다고 하는 판이니 더 말해 뭐할까.
영웅 중에서도 상위급인 카샤스 대공 스스로도 강한데.
심지어 신급 무기에 악몽이라고 불리는 고대 마룡까지 타고 다니니 마왕들도 피해 다녔겠지.
그런 카샤스 대공이 지키고 있는 타란 제국도 성마대전 후반부에 마왕군에 밀려 버린 건 좀 의외긴 하지만.
아마 그때쯤 되면 마왕들도 그만큼 강해졌을 테니 혼자 힘으로 마왕군을 전부 막는 건 어쩌면 꽤 버거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쪽은 혼자인 데 반해.
마왕들은 다수였을 테니.
다른 제국들까지 모조리 망해 버린 상황에 카샤스 대공 혼자 남아 싸우기에는 너무 외로운 싸움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만약 제국들과 많은 왕국들이 따로 놀지 않고 힘을 조금만 합쳤으면 조금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 저 타란 제국 황제가 하는 걸 보면.
딱히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용신검.
그것도 아스카론이라는 명칭까지 정확히 언급하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지.”
그러면서 카샤스 대공의 시선이 살짝 타란 제국 황제에게로 향했다.
흐음.
타란 제국 황제 앞이라 말을 조심하려는 건지.
아니면…….
잠깐 몇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 역시 타란 제국 황제 앞에서 대놓고 언급할 정도로 드러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때 황제 녀석이 내게 물었다.
“제안을 받아들일 건지 궁금하군.”
이 녀석.
아직도 제안 타령인가.
솔직히 나쁘지 않다.
타란 제국 황제의 제안은.
당장 돈방석에 앉고 싶다면 저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탁월한 선택일 수도 있다.
앞으로 이곳에 진출할 유저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에 있는 유저들 상대로 아이템 장사만 하더라도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쥘 수 있을 터.
하지만 이 이후에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아는 내가 그런 선택을 할 리가 있나.
그리고 굳이 지금 타란 제국과 정식 동맹을 맺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완전 이야기가 달라지지.
레오나 에센시아도 내 대답이 궁금한지 계속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대답 여하에 따라 그녀의 입장도 확연히 달라지게 될 테니.
타란 제국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건.
카샤스 대공을 등지게 된다는 뜻이 되고.
그건 곧 레오나 에센시아가 나나 카샤스 대공 사이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럼 과연 그녀가 누굴 선택할까 궁금하긴 한데…….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을 굳이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다.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려 퀘스트 창을 바라보았다.
아까 타란 제국 황제가 제안을 하는 순간 뜬 퀘스트 창을 보면.
아마 이건 시기와 상관없이 누군가는 받게 되는 퀘스트인 모양이었다.
《 메인 퀘스트 : 타란 제국 황제의 제안. 》
- 타란 제국 황제를 도와 고대 마룡 포획.
- 고대 마룡을 처치 시 실패.
- 타란 제국 황제가 사망하면 실패.
- 해당 퀘스트 수락 시 《 메인 퀘스트 : 고대 마룡 포획 (카샤스 대공) 》이 취소됩니다.
- 해당 퀘스트 수락 시 카샤스 대공과의 우호도가 적대 관계로 바뀝니다.
- 해당 퀘스트 거절 시 타란 제국 황제와의 우호도가 0으로 내려갑니다. 우호도가 낮을 시 적대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 퀘스트 보상
퀘스트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산정합니다.
다른 조건들은 다 빼고라도.
바로 저 카샤스 대공과의 우호도가 적대 관계로 변한다는 문구.
이걸 보고도 수락하면 미친놈이지.
반대로 수락하지 않으면.
이번엔 타란 제국 황제와의 관계가 적대 관계로 돌아설지도 모른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지 카샤스 대공이 날 빤히 보면서 말했다.
용신검 아스카론에 대해 듣고는 흔들렸던 마음을 이미 추스린 듯.
“네 선택을 존중하겠다.”
아니.
퀘스트에 따르면 존중은커녕 적대한다는데?
아마 정확히는 몰라도.
타란 제국 황제의 제안을 수락하는 순간.
바로 내 목을 날려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녀석이 생각하기에는 내가 고대 마룡을 잡을 확률이 그 누구보다도 높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 날 데려온 것도 있고.
“너 원래 황제하고 사이가 안 좋냐?”
내 물음에 카샤스 대공이 작게 한숨을 쉬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녀석이 이렇게 표현할 정도라면 정말 안 좋은 거겠네.
대외적으로는 사이좋게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서로 칼을 가는 사이라는 말이다.
어째 진짜 용의 턱 사이에 끼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미안하다는 듯 카샤스 대공이 말했다.
“괜한 일에 끼어들게 한 것 같군.”
“그러게.”
카샤스 대공의 말에 딱히 부정도 하지 않았고.
이건 대놓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강요당하는 꼴인데.
당장 목숨을 보장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은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니까.
나 역시 한숨을 쉬고는 낮게 소리를 낮춰 물었다.
“저거 거절하면 황제가 날 죽이려 하겠네?”
“당장은 아니다.”
“어쨌든 하긴 할 거라는 거잖아.”
“……할 말이 없군.”
이 녀석.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 날 데리고 왔다면 당장 목을 날려 버리고 싶은데?
“휴. 이거 잘못되면 네가 막아 줘. 난 저 황제를 막을 만큼 강하진 않으니까.”
확실한 대답이 나오자 카샤스 대공의 눈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고생길이네 진짜.
곧 고개를 들어 타란 제국 황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차피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건 무리다.
어설프게 둘 다 어떻게 해보겠다고 간을 보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아예 확실한 쪽에 배팅하는 게 낫겠지.
“제안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거절인가.”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순간 메인 퀘스트에 붉은 불이 들어오면서 퀘스트가 완료되어 버렸다.
그것도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동시에 울리며.
《 타란 제국 황제와의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타란 제국 황제와의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타란 제국 황제와의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
《 타란 제국 황제와의 호감도가 너무 낮습니다. 》
《 더 이상 하락할 경우 타란 제국 황제와 적대 관계가 됩니다. 》
이건 뭐 거의 최악이네.
원래도 없을 호감도가 바닥을 찍어버렸다.
아마 마이너스로 내려갔을 듯한데.
그럼에도 한 번에 적대로 변하지 않는 걸 보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솔직히 바로 치고받아야 하나 걱정했는데.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여기 사고 났어요.
<불멸> 타란 황제하고 틀어졌냐?
<주호> 어떻게 알았어요?
<불멸> 그 안에서 사고 날 만한 게 그거밖에 더 있어?
눈치 하나는 진짜 최고네.
심지어 내용마저 어느 정도 맞춰 버렸다.
<주호> 타란 제국 황제하고 카샤스 대공하고 사이가 썩 좋진 않았어요.
<불멸> 대충 알겠네. 양자택일?
<주호> 그렇죠.
<불멸> 그런 개떡 같은 제안을 해놓고 선택하라니. 황제가 멍청했네.
맞다.
정말 용신검 정도를 준다고 했으면 고려라도 해봤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정답이 나와 있는 선택지였다.
에센시아 제국에 사람을 보내 조금만 알아봤어도 충분히 나와 카샤스 대공, 레오나 에센시아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이 제국에서 내 제안을 거절하는 이가 있다니 놀랍군.”
나도 놀랍다.
그따위 제안을 하고 넘어오길 바란다는 것도.
어쩌면 자기 안마당이라 더 안일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당장은 저 타란 제국 황제가 우리에겐 너무 위협적인 상대가 되어 버렸다.
<주호> 조금만 낌새가 이상하면 치고 나가야 해요.
여긴 타란 제국성 한복판이다.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는 거지.
옆에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도 상황을 잘 아는지 표정이 확 굳어져버렸다.
설마 에센시아 제국의 황녀에게 위해를 끼칠 정도로 막 나가진 않겠지만.
그녀와 난 입장이 다르니까.
로가슈 왕국은 타란 제국에 비하면 정말 작은 나라다.
타란 제국 황제가 공격하길 꺼려할 이유가 전혀 없지.
그때 카샤스 대공이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도 울렸고.
《 카샤스 대공과의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
《 카샤스 대공과의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
《 카샤스 대공과의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
.
.
“로가슈 왕국의 왕자는 제 손님입니다. 황제.”
이건.
자기가 이미 침 발라 놨으니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경고이려나?
그런 카샤스 대공의 경고에 타란 제국 황제의 눈썹이 한쪽으로 치켜세워졌다.
뭔가 굉장히 불만이라는 듯이.
“내 성에 들어온 이상 내 손님이기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젠 아예 대놓고 선을 그어 버리는걸?
일단 타란 제국 입장에서는 누가 되더라도 고대 마룡을 가지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타란 제국 황제는 굳이 본인이 가지고 싶은 듯했다.
여기서 카샤스 대공을 적대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지.
이거 잘못하다가 정말 개판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여기서 누군가는 목숨을 내어놔야 할 수도 있었고.
그게 카샤스 대공이 되든.
저 타란 제국 황제가 되든 말이지.
만약 지금 카샤스 대공이 이기면 타란 제국 황제가 바뀌게 되는 셈인데…….
설마 그렇게까지 역사가 틀어질…….
“대공이 전장에 계속 나가 있다 보니 내가 황제란 사실을 잊어버린 듯하군.”
순간 타란 제국 황제가 기세를 확 끌어올리자 주변 공기가 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타란 제국 황제 뒤쪽의 용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이쪽을 매섭게 노려보며 하울링을 터트렸다.
캬아아악!
그러자 대전 전체가 어마어마한 진동에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미친.
이 안에서 저랬다가는 당장 다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이 진동이 바깥으로 전달되었는지 대전의 문이 열리며 타란 제국의 가드들이 우르르 뛰어 들어왔다.
거기다 우리 팀들도 그 틈을 타서 뒤따라 들어오고는 놀란 듯 나와 카샤스 대공, 레오나 에센시아를 쳐다보고는 바로 무기를 꺼내들었고.
이거 순식간에 개판됐네.
아마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제국성 내에 있는 가드란 가드는 죄다 들어와 포위할지도 모른다.
전사 형이 굳은 눈으로 상황을 살피며 내게 말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보다시피 좀 개판이죠.”
그리고는 식은땀을 흘리면 전사 형이 말을 이었다.
“이거 빠져나가긴 힘들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저쪽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쉬운 싸움이 되진 않을 듯했다.
에센시아 기사단이 도와주러 온다고 해도.
그사이 타란 제국의 기사단들 역시 도착할 테니까.
이젠 전면전이나 마찬가지였다.
타란 제국 황제의 명령 한 마디만 떨어진다면 말이지.
휴.
과연 여기서 얼마나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때 챠밍이 바로 내 옆으로 뛰어오더니 속삭였다.
“오빠. 상황을 바꿀 방법이 있어요.”
“응?”
“일단 타란 황제가 원하는 걸 들어줘요.”
그리고는 챠밍이 몇 가지를 알려주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챠밍의 말은 가능성 있어 보였다.
곧장 타란 제국 황제를 보면서 외쳤다.
“황제께 반대로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안?”
내 말을 들은 황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말해 보라는 듯 기세를 확 줄였다.
뒤에 있던 용도 기세를 누그러뜨렸고.
일단 들어는 본다는 거네.
잠시 숨을 가다듬고는 그대로 타란 제국 황제에게 말했다.
“고대 마룡의 주인. 일단 잡아놓고 난 뒤 정해보도록 하죠.”
“호오. 주인을 따로 정한다고?”
“네. 선택권을 주자는 겁니다. 고대 마룡이 누굴 주인으로 택할지.”
그게 넌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