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5화 타란 제국 (2)
레오나 에센시아가 합류하자 기사단 전용 비공정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5기사단 전체가 경례를 올렸다.
원 5기사단장인 최상급 마족 베인 테스와 더불어 본인은 좌천되었다 말하는 라첼 역시 마찬가지였고.
바로 고개를 돌려 5기사단장 베인에게 말했다.
“타란 제국으로의 비행을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지금의 난.
기사단으로 위장한 상태가 아닌 로가슈 왕국의 왕자 신분이니까.
베인도 그에 맞게 눈치껏 잘 대응을 해주었다.
아까 라첼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나 했는데.
설마 제국 황제가 5기사단을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부여했을 줄이야.
전통적으로 5기사단은 황제의 직속 기사단 중에서 상위에 있는 기사단이었다.
그런 기사단을 평소라면 절대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쥐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평소라면 말이지.
원거리 비행을 위해 5기사단들이 비공정 위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는 옆에 있던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불멸> 이거 역사가 또 뒤집히겠네.
<주호> 네. 5기사단이라니…… 생각도 못 했죠.
솔직히 제국 황제가 넘겨주는 기사단은 중립에 가깝거나 혹은 어디 말단의 한적한 임무를 맡는 기사단을 내려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따고 보니 전혀 생각 못 한 5기사단이 튀어 나왔다.
<불멸> 5기사단이 헤르마늄 광산에 가서 전멸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다.
그런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장을 제외한 전원이 죽어서 돌아온 상황이라면.
5기사단도 이름만 남은 기사단이 되어 버린다.
물론 기존의 에센시아 제국 내에 남아 있는 5기사단원들도 꽤 존재하기에 완전한 전멸이라고 하기는 어렵긴 해도.
어떻게 보면 5기사단은 제국에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기사단이라 쉽게 주진 않았을 텐데.
<불멸> 이번 비밀 던전 공략 건도 있고. 마침 5기사단이 많이 죽기도 했으니까. 다시 5기사단의 인원만 채워 봐야 원래의 5기사단만큼 강해질 수도 없으니 아예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선심 쓰듯 내어준 거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카샤스 대공에게 시선을 옮겼다.
<불멸> 아마 제국 황제 입장에서는 생색내기도 좋았을 테지. 겉으로 보기에는 일단 제국의 5기사단이니까. 카샤스 대공에게도 마찬가지고.
<주호> 레오나 에센시아를 타란 제국으로 보내는데 5기사단을 붙여 나름 신경 썼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요?
<불멸> 겸사겸사. 쓰지도 못할 기사단을 잘 포장한 거지. 보기 좋게 말이야.
타란 제국으로 가는 마당에 핵심 기사단을 내어주긴 애매하고 그렇다고 너무 어설픈 기사단을 보냈다가는 에센시아 제국의 위신이 서지 않는다는 거려나.
그것도 타란 제국으로 보내는 일이라.
5기사단장을 그대로 배치한 건 아마도 질적인 면에서 너무 밀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 했다.
쭉정이들만 보냈다가 쪽팔리는 일이 생길수도 있으니.
무엇보다.
베인은 겉으로 보기에 제국 황제의 충실한 종이었다.
타란 제국으로 넘어가 각종 정보를 보내오기에도 절대 나쁜 패가 아니었을 것이다.
제국 황제는 실리와 명분 모두를 챙긴 행동을 한 셈이지만…….
아쉽게도 저 베인 녀석은 애초에 마족이란 말이지…….
황제 입장에서는 완전 헛다리를 짚은 셈이다.
차라리 3기사단장인 아이라 루벤이나 7기사단장인 타룬 벡스터를 보내는 편이 훨씬 나았을 터.
<주호> 5기사단장 베인이 우리 쪽 사람이라는 걸 알면 기절하겠네요.
<불멸> 큭. 그걸 알고도 보냈으면 제국 황제가 무서운 놈이겠지.
재중이 형과 마주보고 웃고는 바로 기사단 전용 비공정에 올라탔다.
레오나 에센시아는 카샤스 대공의 호위를 받아 비공정에 올랐고.
그런 둘을 보던 재중이 형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보이며 말했다.
<불멸> 은근히 둘이 잘 어울린단 말이지.
<주호> 뭐, 듣고 나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전이라면 몰랐을 수도 있지만.
챠밍의 말을 듣고 나니 계속 그런 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카샤스 대공이 레오나 에센시아를 대할 때의 미묘하게 다른 태도랄까.
나와 재중이 형이 올라타고 우리 팀들 역시도 뒤를 따라 오른 뒤 남은 기사단들 역시 모두 비공정에 탑승했다.
라첼 녀석이 계속 투덜거리면서 올라오는 건 덤이었고.
어지간히 좌천이 싫은 모양이네.
솔직히 에센시아 제국에 남아 있는 편이 이 녀석에게는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라첼 공작으로 성장하기에 말이지.
하지만 언제 다시 에센시아 제국에 돌아올지도 모르는 판에 이런 거물을 그냥 놔두고 간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라.
그리고 반은 마족 상태인 라첼이 불안하기도 했다.
현재 원 역사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중간에 무언가 하나라도 빗나가면.
라첼 공작이 되기도 전에 바로 공동묘지에 들어갈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거기다 3기사단이 성마대전에 출전하지 못한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였다.
헤르마늄 광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상.
제국 황제가 기사단을 다시 그쪽으로 보낼 건 안 봐도 뻔한 일이라.
라첼이 그곳에 머물러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잘 키워 줄 테니까 불만 그만하고 올라와.”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라첼까지 모두 탑승하자 기사단 비공정이 바로 에센시아 제국 상공으로 떠올라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에센시아 제국을 완전히 벗어나자 카샤스 대공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제국 황제가 얌전히 레오나 에센시아 황녀를 보내 줘?”
솔직히 레오나 에센시아가 우리를 따라간다고 하더라도.
제국 황제가 중간에 막아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타란 제국의 사절인 카샤스 대공에게 부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쉽게 일을 정리해 버릴 줄은 나도 몰랐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것도 꽤 놀랄만한 말을.
“상호 방위 조약을 맺었다.”
“뭐?”
“공통으로 방어할 수 있는 국경 지역에 한해서 에센시아 제국과 타란 제국이 협력해서 방어하는 걸로.”
“……미쳤네.”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은 아예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어이없다는 듯 웃기만 했다.
아마도 재중이 형 역시도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불멸> 이거 역사가 대체 얼마나 어긋나는 거냐.
<주호> 그러게요.
사실 원 역사에서는 에센시아 제국과 타란 제국 사이에서 상호 방위 조약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당장 국경에서 치고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두 제국인데.
그런데 그 두 제국이 상호 방위 조약을 맺었다고?
한마디로 역사상 절대 일어나서 안 되는 일이 지금 일어난 셈이었다.
그리고 나와 카샤스 대공의 대화를 들은 레오나 에센시아가 정말 놀란 듯 물었다.
“정말인가요?”
“그런가 보네요.”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 사이에서의 회의 내용을 내가 먼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당연히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모르고 있다가 지금 들었을 것이다.
놀라긴 이쪽도 마찬가지겠지.
레오나 에센시아가 복잡한 눈빛으로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타란 제국은 전통적으로 폐쇄적인 국가라 방위 협력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을 텐데요.”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카샤스 대공이 슬쩍 시선을 돌리고는 말을 꺼냈다.
“성마대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었을 뿐이다.”
“정말 그것뿐인가요?”
“만약 다른 이유가 있다면? 다시 무르기라도 할까?”
카샤스 대공이 오히려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되묻자 그녀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바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레오나 에센시아는 절대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지.
다른 이유라고 말한 것을 듣는 순간 대략적으로 이해를 했을 것이다.
굳이 카샤스 대공이 언급하지 않은 바로 그 이유를.
잠시 멈칫하던 레오나 에센시아가 이젠 멀어진 에센시아 제국 방향을 바라보며 흘러가듯 말했다.
“고마워요.”
“……흠.”
음.
둘 다 솔직하진 못하네.
그때 재중이 형이 내 팔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이럴 땐 슬쩍 피해 줘야지.”
“그런가요.”
둘을 피해 앞쪽 갑판으로 오자 우리 팀이 모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왕 헤르게니아도 멀찍이 혼자 앉아서 내 쪽을 바라봤고.
그런 그들에게 말을 꺼냈다.
“타란 제국으로 가면 바로 레이드를 진행해야 할 거예요.”
그러자 챠밍이 내게 물었다.
“이번엔 타란 제국의 협력을 얻을 거예요?”
“응.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받아야지. 아마 쉽지 않을 거야. 화련 쪽에서도 도와준다고 하지만.”
현재 우리와 화련.
그리고 타란 제국 역시 모두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질 수 있는 물건은 하난데.
다들 다른 생각을 하고 잇단 말이지.
화련이야 조금 다르긴 한데.
어쨌든 우리도 그쪽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니까.
슬쩍 흘리듯 말을 꺼냈다.
“베르탈륨 광산에 마신의 파편이 있을 확률이 아주 높아. 어쩌면 신의 파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쪽이 훨씬 가능성 있지.”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신의 파편도 같이 노리는 거예요?”
“글세. 그건 상황을 봐야겠지만. 최우선적으로는 고대 마룡.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거기까지 노려보자. 아직 확실히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고대 마룡이야 화련을 통해 확실히 확인이 됐지만.
마신의 파편은 존재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추측만 할 뿐.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녀가 얼마나 도와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판이다.
앞으로의 일을 회의하는 동안 기사단 비공정이 타란 제국 쪽으로 들어섰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용들의 보금자리. 타란 제국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고는 바로 미소지었다.
“호오. 용들의 보금자리라. 아예 대놓고 용의 나라라는 걸 알려 주잖아?”
“그렇네요.”
그 메시지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들 사이로 빠른 파공음들이 우리 비공정 주변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형……!”
“아, 봤다.”
그리고 우리 팀들도 모두 그 광경을 발견했는지 놀란 눈빛을 보냈다.
싸아아악!!
짙은 구름을 헤치면서 나타나는 거대한 용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무려 십여 마리의 용들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 기사단 비공정 주변을 활공하듯 스쳐가는 게 보였다.
딱히 비공정에 위협이나 공격을 하려고 접근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 일단 그대로 놔두었고.
그리고 용의 등에는 라이더로 보이는 녀석들이 안장 위에 올라타 있는 모습도 보였다.
확실히 길들인 게 맞네.
그것도 완전히 조정이 가능한 형태로.
곧 5기사단들도 용들을 발견했는지 각자 갑판의 위치에 서서 경계를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사이로 카샤스 대공이 갑판 정면으로 걸어 나왔다.
마치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올리며.
“모두 진정해라. 타란 제국의 정찰 부대다.”
곧 카샤스 대공이 몸에서 기세를 한껏 피어 올리자 사방으로 흩어졌던 용들이 일제히 날아들어 기사단 비공정 주변을 호위하듯 똑같은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카샤스 대공이 우리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모두 타란 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