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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73화 (1,161/1,404)

#1173화 신의 파편 (17)

내게 뜻밖의 말을 들은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바로 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레오나 에센시아를 죽일 거라는 말은 쉽게 믿기도 납득하기도 힘든 일이니까.

무엇보다 현재 레오나 에센시아는 아크 드래곤의 침공을 막아 낸 공로에 추가해.

그간 미공략된 비밀 던전 역시도 해결해 냈다.

이건 오히려 상을 줘도 모자랄 판이지.

죽이는 게 아니라.

당연히 카샤스 대공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제국 황제가 5황녀를 죽일 거라는 말은 쉽게 믿기 힘들군.”

“역시 그렇지?”

그런 의문에 동의하듯 대답해 버리자 오히려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그냥 던진 말이 아니었나?”

“우리가 이런 걸로 장난 칠 사이는 아니잖아?”

다른 식으로 대답을 했다면 분명 카샤스 대공도 그냥 의심하는 정도의 선에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대답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식의 동의는.

반대로 강한 긍정을 뜻하게 된다.

“하지만 제국 황제가 5황녀를 죽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아. 맞아.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없지.”

“숨은 이유가 있다는 건가?”

“그래.”

그 숨은 이유가 치명적이긴 하지.

순간 카샤스 대공이 뭔가를 떠올렸다가 내게 추측하듯 물었다.

“혹시 이번에 비밀 던전을 공략한 일 때문인가?”

“……눈치 빠르네.”

“그렇다고 단순히 비밀 던전 때문에 제국 황제가 나서진 않을 테니…….”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곧 카샤스 대공이 눈빛을 빛내더니 확신을 담아 말했다.

“아마도 레오나 에센시아가 얻은 그 무기 때문이겠군.”

이 녀석.

단서 몇 개 던져 줬을 뿐인데 벌써 결론까지 도달해버렸다.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굉장히 빨리 돌아가네.

뭐 타란 제국에서 대공을 해먹으려면 이 정도는 당연한 거려나?

“정말 빨리 알아내는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현재 레오나 에센시아의 주변 환경에서 변화된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

다른 녀석들은 앞에서 말해줘도 모를만한 걸 술술 찾아내다니.

대단하긴 하네.

그때 카샤스 대공이 내게 물었다.

“대체 그 무기가 뭐길래 제국 황제가 레오나 에센시아를 죽여 가면서 까지 얻으려고 하는 거지?”

“하. 몰랐어?”

이건 또 의외네.

난 당연히 카샤스 대공이 어떤 물건인지 알기 때문에 레오나 에센시아를 도와줬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지금 눈치로 보아하니 카샤스 대공은 정령신의 무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지.

만약 처음부터 알았다면.

카샤스 대공이 레오나 에센시아를 제국 황제에게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짧게 봤지만.

다 알면서도 보낼 만큼 카샤스 대공이 나쁜 녀석은 아니거든.

무엇보다 카샤스 대공은 레오나 에센시아를 직접 도우기까지 했는데.

죽을 자리로 일부로 밀어 넣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모르고 했다면 모를까.

“……생각 이상의 물건인가 보군.”

“그렇지. 제국 황제가 눈이 돌아갈 만한 물건이기도 하고.”

그리고 카샤스 대공도 알면 어쩌면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정령신의 무구라는 것 자체가 가지는 힘이 절대 적지 않다.

특히 성마대전이 한참인 지금은 더 그럴 테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카샤스 대공에게 말을 꺼냈다.

“혹시 신의 흔적이라고 알아?”

“들어본 적은 있다.”

그 순간.

카샤스 대공의 눈빛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놀라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카샤스 대공이 내게 바로 물어보았다.

“설마 레오나 에센시아가 얻은 무구가 신의 흔적이라는 건가?”

신의 흔적.

마신의 파편.

명칭은 좀 다르긴 해도.

어쨌거나 같은 급에 똑같은 최상의 무구를 뜻하는 용어다.

당연히 카샤스 대공도 알고 있을 수밖에.

아마 내가 알기로 지금 시점에서 신의 무기가 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테고.

카샤스 대공이 놀라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지.

이대로 역시가 바뀌면 풀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슷해. 조금만 더 머리를 써 봐.”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이내 결론을 찾았는지 답을 꺼내놓았다.

“정령신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레오나 에센시아의 혈통. 그리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장량을 가진 정령석의 던전.”

그리고는 확신을 더 해 한 마디 말을 더 했다.

“거기다 레오나 에센시아를 거부하지 않고 바로 받아들였던 무구의 성질까지. 모든 점이 정령신을 가리키는군.”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정확해서 할 말이 없네. 맞아. 제국 황제는 신과 관련 된 물품들을 구하려는 중이지. 그게 신의 흔적이 되었든. 정령신의 무구가 되었든 말이야.”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카샤스 대공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언가 급한 볼일이 있는 것 마냥.

응?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

그리고 한 손에는 자신의 대검을 꽉 쥐고 있는 걸 보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였다.

얼굴빛이 확 죽어 있는데다가 잔뜩 굳은 표정이라…….

“어디 갈려고?”

“레오나 에센시아가 위험하군.”

레오나 에센시아가 위험하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이렇게까지 한다고?

“너 지금. 여기가 에센시아 제국 황성 한복판이라는 건 알고 있어?”

“……상관 없다.”

이 녀석.

너무 당당하니 오히려 무서운데?

남의 집안.

그것도 황실 한가운데서 지금 깽판 치러 가겠다는 기세라.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손을 들어 만류했다.

“와서 앉아. 당장 죽을 일은 없으니까.”

“내가 아는 제국 황제는 이런 일에 손속을 둘 인물이 아니다. 그게 자신의 혈육이라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으니까.”

딱히 카샤스 대공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그동안 눈으로 목격한 에센시아 황실의 자손들만 해도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딱히 혈손에 그다지 애착이 없는 건 둘째 치더라도.

몇 명쯤 죽어 나가 봐야 제국 황제 입장에선 별 의미도 없다는 거지.

5황녀도 아마 그 범주 안에서 벗어나진 않을 터다.

그 혈통이 특이하긴 해도.

아직은 완전히 발현하지 못한 재능이니까.

이런 상황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정령신의 무구를 턱하니 얻어온다?

“네 말이 맞아. 제국 황제는 레오나 에센시아를 죽일 거야. 정령신의 무구를 얻기 위해서.”

“그러니까…….”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지.”

내가 너무 태연하게 말을 하니 카샤스 대공이 의아한 듯 그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냐.”

“아. 내가 잘 아는 거라.”

그래.

나보다 정령신의 무구인 르아 카르테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전 서버를 다 털어 봐도 없을 것이다.

그것도 NPC들까지 다 털어도 말이지.

여기서 말해주지 않으면.

당장 녀석이 에센시아 제국 황실로 달려가 제국 황제의 목이라도 딸 요량이라 일단 말을 꺼냈다.

“정령신의 무구는 처음부터 강하진 않아. 지금은 제국 황제가 본다고 해도 무슨 물건인지 전혀 모를 거다.”

“……정말인가?”

“아아. 모르지. 거기다 지금 레오나 에센시아도 그걸 들고 꽤 난감해하고 있을걸?”

솔직히 레오나 에센시아가 르아 카르테를 얻는 순간을 바로 옆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아마 조금은 웃긴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

“난감해한다고?”

“어, 그거. 처음에는 그냥 깡통이거든.”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다.

“너무 그렇게 보면 나 상처 받는데.”

“흠…… 그랬나. 조심하지.”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혀졌는지 바로 제국 황제의 목을 따러 튀어나가진 않을 것 같았다.

“깡통이라니. 설명이 필요하군.”

“말 그대로야. 그냥 처음에는 평범한 검일 뿐이야. 그것도 날도 제대로 안 드는. 당장 레오나 에센시아가 가진 어지간한 검들보다 훨씬 안 좋을걸?”

아마도 르아 카르테를 손에 쥐자마자 레오나 에센시아의 표정이 바로 황당함에 구겨졌을 것이다.

자신이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을 테니까.

무언가 대단한 물건을 바라고 있다가.

그 물건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실망감은 배로 돌아온다.

어쩌면 돌아오자마자 르아 카르테를 어딘가 처박아놨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쓸모가 없는 검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믿기 어려운데.”

그때 내 감각에 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 타이밍도 좋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한 인영이 무너진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럼 저기 멀쩡히 걸어 들어오는 황녀는 뭘로 설명할래?”

순간 카샤스 대공의 고개가 확 복도 쪽으로 돌아갔다.

이 녀석.

아무리 봐도 단순히 황위 싸움 때문에 레오나 에센시아를 도와준 게 아닐 지도 모르겠는데...?

어쩌면 챠밍의 추측이 들어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황녀가 아무 탈 없이 걸어오자 카샤스 대공이 안도의 숨을 쉬고는 내게 말했다.

“상태는 괜찮아 보이는군.”

“너, 날 너무 못 믿는 거 아니냐?”

그런데 레오나 에센시아가 가까이 오자 오히려 카샤스 대공은 침묵을 지키면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하.

방금 전까지는 곧장 튀어나갈 것 같이 굴더니…….

이걸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말해 주면 어떻게 되려나 갑자기 궁금해졌다.

“좀 전에 너 튀어 나가려고 하던 건…….”

그 말을 하자마자 바로 카샤스 대공의 눈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온몸에 기세를 한껏 끌어올리면서.

“말하면 죽인다.”

“하하…….”

이거 진심이네.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지.”

내 목도 지켜야 하고.

진짜 말했다가는 카샤스 대공의 대검이 내 목을 치고 들어올 테니.

그러자 카샤스 대공도 기세를 전부 걷어 들였다.

흠.

이럴 때 쓰라고 준 힘이 아닐 텐데 말이야.

완전히 다가온 레오나 에센시아가 나와 카샤스 대공을 번갈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아마 제국 황제와의 대면으로 꽤 고생한 듯 했다.

“두 분. 언제 오셨어요?”

“얼마 되지 않았다.”

“저도 뭐. 금방 도착했습니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먼저 카샤스 대공에게 감사를 전했다.

“대공 덕분에 새로 기사단을 편성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흠. 축하단다.”

글쎄.

아까 전까지는 기사단이 발목을 잡을 것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슬쩍 카샤스 대공을 바라보자 표정을 확 구겼다.

저건 아마도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하는 뜻이겠지.

그리고는 레오나 에센시아가 내 쪽을 보면서 물었다.

“따로 하신다는 일은 잘 되었나 모르겠어요.”

“음. 적당히 나쁘지 않았죠.”

“잘 되었나 보네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레오나 에센시아의 표정이 굳어져서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으음.

아무래도 저건 정령신의 무구 때문인 듯 한데.

사실 기사단을 새로 얻는 일 정도로는 원래 레오나 에센시아의 목표에는 전혀 닿지 못 했을 것이다.

정령신의 무구에 엄청난 기대를 걸었을 텐데 말이지.

그게 깡통이라는 걸 알고 난 뒤에는 어쩔 수 없는 반응이려나.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를 향해 내가 흘리듯 말했다.

“실망했습니까?”

“네?”

“정령신의 무구.”

내 언급에 레오나 에센시아의 몸이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바로 레오나 에센시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궁금하긴 했나 보네.

그런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정령신의 무구. 좀 쓸 수 있게 만들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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