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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66화 (1,154/1,404)

#1166화 신의 파편 (10)

에센시아 기사단 전용 비공정은 예상했던 대로 빠르게 에센시아 제국의 영공으로 접어들었다.

재중이 형이 슥슥 갑판을 만져 보더니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성능이 좋은데?”

탐난다는 말이려나?

아무래도 기사단의 비공정은 기존의 다른 비공정들보다는 그 속도나 성능이 월등한 편에 속했다.

우리가 가진 황실 비공정도 괜찮긴 했지만.

역시 성마대전의 그것보다는 좀 아쉬운 점이 많달까.

“그냥 한 대 달라고 할까요?”

그러면서 갑판 정면에 있는 아이라 루벤을 바라보았다.

재중이 형인 어림도 없다는 듯 대답했고.

“주겠냐?”

“역시 그렇죠?”

아마 내가 기사단장이 되지 않는 이상 에센시아 기사단 전용인 이 비공정을 가지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에 존재하는 비공정을 죄다 아크 드래곤에 들이받아 버려서 남는 수량도 거의 없을걸?”

그런 재중이 형 말에 살짝 양심이 찔리는 느낌도 없진 않았다.

“덕분에 제국은 구했잖아요.”

다시 아이라 루벤을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말을 꺼냈다.

“안 주면 그냥 사 버릴까요?”

지금 내 헤르마늄 광산 지분이 무려 절반이나 된다.

앞으로 들어올 돈이 무궁무진하다는 거지.

재중이 형도 그런 사실을 잘 알기에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였다.

“큭. 그것도 나쁘지 않지. 과연 기사단 전용 비공정을 팔지는 모르겠다만.”

아쉽다는 듯 나 역시 웃어 버렸고.

지금 드워프 장로 맥크라이가 여기 있었다면 한 대 더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하지만 맥크라이는 지금 우리가 남겨놓은 흔적들을 치운다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당분간 만날 일도 없을 테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라 루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

음.

무슨 일이지?

딱히 지금 얼굴을 볼 이유는 없는데.

우리 앞에 다가온 아이라 루벤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저 말인가요?”

응?

이걸 굳이 물어볼 이유가 있나?

어차피 지금은 기사단 출신으로 알고 있을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중이 형을 보자 딱히 아는 건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흐음.

그냥 때려 맞춰야 한다는 건가.

“좀 쉬었다가 복귀해야겠죠.”

“그런가? 그러면 내가 따로 우리 3기사단으로 전출 명령을 내릴까 하는데.”

그런 아이라 루벤의 말에 나와 재중이 형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불멸> 얘는 왜 이렇게 네게 집착하는 거냐?

<주호> 저도 모르죠.

<불멸> 하. 이거 귀찮게 됐는데?

나 역시 재중이 형과 같은 생각이었다.

애초에 나와 재중이 형을 비롯한 우리 팀은 기사단으로 위장한 상태니까.

무엇보다 원 소속인 기사단의 명단을 직접 찾아본다면 우리가 기사단 명단에 없었다는 사실 정도는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모를 정도로 3기사단장 아이라 루벤이 허술하진 않을 테니까.

일단 여기서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그러면 나중에 다시 접촉할 때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다.

<주호> 그냥 여기서 정체를 밝힐까요?

<불멸> 아니. 너도 알다시피 아이라 루벤은 1황자의 세력이다. 여기서 나중에 발목을 잡힐 빌미를 줄 필요는 없어.

정확하게는 루벤 공작가가 1황자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이라 루벤 역시 루벤 공작가의 사람이니까.

로가슈 왕자인 내가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에 몰래 들어다는 것 자체로도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걸 빌미로 1황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아이라 루벤 본인 입장에서는 보다 나은 인재 등용이라는 기사단장의 일 중에 하나겠지만.

이 상황 자체가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상황이라는 거지.

정확히는 아이라 루벤이 우리에게 관심을 끊어주는 게 가장 베스트다.

아쉽게도 이 기사단장은 자기 본분에 충실하고 싶은 듯했고.

<불멸> 일단 시간을 벌어.

<주호> 그래야겠네요.

그렇게 말을 돌리려는 순간.

나와 아이라 루벤 사이에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응?

이 녀석이 여기서 갑자기 왜 튀어 나와?

그런데 재중이 형은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불멸> 호오. 이 녀석. 아주 타이밍이 좋은데?

<주호> 네?

<불멸> 가만히 지켜 봐.

그렇게 우리 사이로 끼어든 녀석은 바로 5기사단장 베인 테스였다.

“5기사단의 전력이 많이 깎여서 이미 내가 불렀는데 말이지.”

그런 베인의 말에 아이라 루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다. 앞으로 이 녀석들은 5기사단으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본인들도 그걸 원했고.”

그러면서 베인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흘깃 바라봤다.

하.

이 녀석 봐라?

아예 우리를 5기사단에 넣어서 정체를 숨겨 주겠다는 건가?

그렇게 베인 녀석과 눈을 맞추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라 루벤의 입가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째서…….”

아마 아이라 루벤의 저 말은 우리가 굳이 5기사단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냐는 뜻일 테다.

무엇보다 5기사단 자체가 2기사단과 더불어 나를 죽이려고 수를 쓰던 기사단이니까.

그럼 일단은 이 상황을 넘기고 볼까나?

“차기 기사단장을 제안하던데요?”

“무슨?”

“자기가 물러나면 기사단장 자리를 물려준다고요.”

“그게 말이…….”

그런 아이라 루벤을 빤히 보면서 물었다.

아이라 루벤에게는 좀 짓궂을 수도 있는 질문을.

“그럼 3기사단장님은 제게 차기 기사단장 자리를 약속하실 수 있나요?”

내 말에 아이라 루벤의 입술이 바로 꾸욱 닫혀 버렸다.

이건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3기사단장이라는 자리는.

애초에 루벤 공작가의 후계에게 내정된 자리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자리를 내게 내어준다는 건.

루벤 공작가의 명성에 치명적인 일이기도 하고.

혹시라도 아이라 루벤이 차기 기사단장 자리를 내게 약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짓으로 약속을 해서.

하지만 지금껏 지켜본 아이라 루벤의 성향은 그런 쪽이 절대 아니었다.

곧 죽어도 거짓말할 스타일은 아니라는 거지.

그것도 무려 기사단장을 건 약속을 거짓으로 말할 리는 더더욱 없었고.

“하아…….”

답답함에 아이라 루벤이 한숨을 쉬었지만.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옆으로 7기사단장인 타룬 벡스터가 다가왔다.

“무슨 일인데 한숨을 그렇게 쉬나?”

그리고 나와 아이라 루벤, 베인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상황이 이상한 걸 느끼고는 내게 물었다.

“혹시 7기사단에 들어올 생각이…….”

“이미 늦었어. 베인 녀석이 낚아챘어.”

“……벌써?”

다소 놀란 듯 하지만 타룬 벡스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로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보면서 말했다.

“나중에 서로 칼질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말이야.”

아무래도 타룬 벡스터는 기사단 사이에 알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정확하게는 기사단들이 어느 세력에 속해 있는지 말이지.

하지만 딱히 여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앞으로 5기사단이 제국 황제에게 충성할 일은 없을 테니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쭉.

5기사단장 자체가 마족인 상황에.

그 휘하에는 나와 우리 팀.

거기다 마왕 헤르게니아까지 위장한 신분으로 들어가게 된다.

솔직히 이 정도쯤 되면 5기사단은 마왕군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베인 녀석이 놔두고 온 마족들까지 합류하면 더 그럴 테고.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그래도 넌 한 번은 봐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은 내가 생명의 은인이다 이건가?

아이라 루벤도 약간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정말 앞으로 충돌할 일 없다니까 그러네.

그렇게 스카우트 경쟁이 끝나고 난 뒤 비공정이 완전히 에센시아 제국 내로 들어와 지상으로 내려섰다.

“나중에 보도록 하지.”

각자의 기사단이 모두 흩어지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 쪽으로 붙었다.

신기하다는 듯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헤에. 이렇게 방해받지 않고 인간군 진형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몰랐어.”

“아. 너 마왕이었지.”

너무 쉽게 들어와서 솔직히 잠시 깜빡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마왕이라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아?”

“빛의 결계?”

“그래.”

“이 정도 결계는 마왕 정도면 그냥 무시할 수 있어.”

“딱히 도움이 안 된다는 거네.”

예전에 제국 황제 노릇을 하던 마왕이 어떻게 들키지 않고 활동했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위협 자체가 안 되는 거였어.

“혹시 다른 실력자가 널 보면 알아볼 수 있나?”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혹시라도 제국 황제라던가.

아니면 타란 제국 카샤스 대공.

또는 다른 영웅들 일 수도 있고.

그들이 마왕 헤르게니아와 마주치면 정체를 알아볼 지도 모른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품에서 뭔가의 큐브 아이템을 꺼내들고는 주문을 외웠다.

【 하이딩 데빌 포스! 】

【 트랜스 엔젤 포스! 】

응?

이건 또 무슨 스킬이지?

그런데 갑자기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신성력이 마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녀의 등 뒤로 하얀색의 빛의 날개가 뻗어져 나왔다.

“뭐…….”

이건 우리 팀 모두가 놀랐는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았다.

“나도 정체 정도는 바꿀 수 있어. 너처럼 동시에 두 힘을 쓰진 못해도.”

고개를 돌려 베인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넌 못 해?”

“기운을 숨길 순 있습니다만. 저렇게 천사의 기운을 내진 못합니다.”

이건 아마도 마왕 헤르게니아만 가능한 능력인 듯했다.

아니.

생각해 보니 헤르마늄으로 된 타락 천사 석상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던 녀석이 아니었던가.

마왕이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하는데.

그런 몬스터를 만들 수 있으려면 신성력을 제어할 수 있어야 가능할 테니.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했다.

하나 걸리는 점은.

두 가지 힘을 동시에 못 쓴다는 말인데.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어보았다.

“혹시 지금은 마왕의 힘을 못 쓰는 거야?”

“응. 조그만 써도 트랜스 상태가 풀려 버려.”

위장만 가능할 뿐.

저 상태에서 마력을 쓰는 일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재중이 형이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며 미소 지었다.

“천사들이 보면 기겁하겠군.”

무려 마왕이 자신들처럼 위장하고 다니는 상황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천사처럼 보이는.

그때 전사 형이 반쯤은 농담을 섞어서 말했다.

“천사 바로 뒤에서 칼침을 놓기 최적인데…….”

“헤에. 너 똑똑하네. 맞아.”

응?

설마 진짜 그런 용도로 만들었다고?

다소 황당해하는 전사 형과 우리 팀들을 돌아본 마왕 헤르게니아가 흘리듯 말해 주었다.

“봉인 안에서 남는 게 시간이라. 심심했거든.”

음.

몇 백 년 봉인당해 있으면 생각해볼 법도…….

그리고 천사들에게 복수할 마음도 있을 테니.

쓰기에 따라서 정말 유효타를 제대로 날릴 수도 있을 터다.

손에 든 큐브를 내려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계속 헤르마늄을 충전해 줘야 하는 것만 빼면 쓸 만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런 물건에 제한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헤르마늄이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걸 고려해 보면.

소모성으로 쓰기에는 너무 무리인 아이템이지.

반대로 헤르마늄만 충분하다면 꽤 괜찮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난.

그런 헤르마늄이 넘치지.

지하 사원에서 오다 가다 주운 헤르마늄 중 일부를 인벤에서 꺼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보여 주었다.

“앞으로 헤르마늄은 내가 제공하지.”

마왕을 위장시키는데 헤르마늄 좀 쓰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다 헤르마늄 광산도 반은 내 소유니까.

그렇게 우리 팀과 함께 완전히 정체를 변경한 마왕 헤르게니아를 데리고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의 성으로 들어갔다.

베인 녀석은 황제에게 보고하러 사라졌고.

그런데 그때.

압도적이고 패도적인 기운이 성 안쪽으로부터 우리에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주변 공기를 내리누르는 강렬한 압력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장 앞으로 나아가면서 우리를 노골적으로 반기는(?)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카샤스 대공. 오랜만이야.”

이거 잘못하다가 오늘 제사 치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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