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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63화 (1,151/1,404)
  • #1163화 신의 파편 (7)

    이곳 헤르마늄 광산에 에센시아 기사단이 파견된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신의 흔적을 쫓아서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확실한 결과물을 가져가는 것.

    하지만 그 결과물은 이미 내가 꿀꺽해 버린 상황이란 말이지.

    만약 여기서 제국 황제의 명을 받은 아이라 루벤과 타룬 벡스터가 계속해서 탐사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게 된다면.

    내 선택지는 딱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된다.

    바로 이 두 기사단장들과 기사단을 여기서 몰살시키는 방법 말이지.

    이전에야 이들을 모두 죽이려면 나 역시도 상당한 각오를 하고 덤벼야 했지만.

    지금은 또 그게 아니니까.

    슬쩍 시선을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와 최상위 마족인 베인을 바라보았다.

    기사단을 쓸어버릴 전력?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거기다 이 지하 사원의 지형은 마왕 헤르게니아만큼 잘 아는 자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제집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인 곳인데 말이지.

    추가로 내겐 지하 사원의 지도까지 있었다.

    여러 함정들로 기사단을 유인해 처리하고 하나씩 목숨을 끊어놓는 건 일도 아냐.

    그것도 정면으로 붙는 것도 아닌.

    기사단을 이리저리 분산시켜 놓고 야금야금 잡아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게 기사단장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

    물론 아이라 루벤이나 타룬 벡스터 같은 우리에게 협조적인 기사단장들을 죽이는 건 꽤 아쉬운 일이긴 하나.

    굳이 일에 방해되는 녀석들까지 무리해서 끌고 가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 될 테다.

    다시 탐사에 나서는 시간도 시간이고.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여기에 더 낭비하는 것도 아까운 일이라.

    다시 시선을 돌려 아이라 루벤과 타룬 벡스터를 빤히 바라보았다.

    곧 그들에게서 나올 대답을 기대하며.

    바로 철수하자는 내 제안에 타룬 벡스터가 난감하다는 눈빛으로 아이라 루벤을 쳐다보았다.

    “이거 어떻게 할 거야?”

    “…….”

    일단은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명이라는 게 있으니 이들도 마음대로 철수하지는 못할 테지.

    신의 흔적이라는 결과물을 가져가지 못한다면 이들 역시 징계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잘못하면 바로 기사단장에서 물러나야 할 수도 있고.

    그때 3기사단장 아이라 루벤이 의도를 알기 힘든 감정 없는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반대쪽 문은 어땠지?”

    응?

    지금 우리가 들어갔던 문을 물어보는 건가?

    “이미 봐서 아실 텐데요?”

    2기사단과 5기사단이 전부 들어갔지만 돌아온 이는 고작.

    생존자 셋.

    나와 기사단으로 위장한 마왕 헤르게니아.

    그리고 5기사단장인 베인.

    나머지는 전부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아니 모두 내 경험치가 되어주었다고 해야 하나.

    내 대답에 아이라 루벤이 깊게 숨을 쉬고는 다시 내게 물었다.

    “설명이 더 필요해. 아무리 기사단장이라도 황제의 명이라는 건. 마음대로 깰 수 있는 게 아니다.”

    하.

    이거 참.

    살아온 것까지 굳이 설명을 해야 하는 거였나?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라 루벤으로서는 충분히 할 법한 질문이었다.

    2기사단장이 사망한 이상.

    그 다음 번대의 3기사단장인 아이라 루벤이 지금 남은 기사단들을 전부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 테니까.

    마냥 강하기만 하다고 기사단장이 된 건 아니라는 거지?

    일단 오면서 핑계거리를 만들어놓긴 했는데.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뭔가 어긋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걸 발견하면 저 아이라 루벤이 그냥 넘어갈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을 그냥 넘기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남은 기사단들이 모두 이쪽을 주시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골치 아프게 됐네요.

    <불멸> 옆에서 보니까 쟤, 보기와 달리 되게 깐깐하더라고.

    <주호> 그래요?

    <불멸> 지도대로 안 따라와서 꽤 고생했다. 지형 탐색 능력이나 판단력이 상상 이상이야. 시간이 더 끌렸으면 아마 다른 곳으로 움직였을걸?

    재중이 형이 말하는 다른 곳이라는 건 바로 신의 흔적이 있던 바로 그 최하층의 지하일 것이다.

    타이밍이 잘못 됐다면 정말 우리와 오다가다 마주쳤을지도 모르고.

    <주호> 너무 유능해도 문제네요.

    <불멸> 아아. 죽이기엔 꽤 아깝지.

    잔뜩 차가운 눈빛을 하는 재중이 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형.

    지금의 상황이 더 나빠졌을 때.

    내가 뭘 할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아이라 루벤을 죽인다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말이야.

    <주호> 형이 보기에 죽이면 많이 아까울까요?

    <불멸> 같은 편으로 두면 최상. 아니라도 최소한 발목 잡을 스타일은 아닌 듯한데.

    <주호> 지금 그 발목 잡히고 있어요.

    <불멸> 큭. 그런가? 일단 지켜보자. 정 안 되면…….

    그런 재중이 형의 뒷말을 내가 입가에 미소를 띄면서 이었다.

    <주호> 그냥 죽여야죠 뭐.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같이 갈 수 없다면 여기서 처리하고 가는 게 가장 좋았다.

    에센시아 제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지금처럼 손쉽게 죽일 기회는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여기서 죽이면 증거조차 남지 않는다.

    어차피 헤르마늄 광산이 무너져서 죽었다고 하면 그만이라.

    그걸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믿든 안 믿든.

    아이라 루벤이 나와 재중이 형의 귓속말이 못마땅한지 물었다.

    “대답에 시간이 더 필요한가?”

    “아. 그건 아닙니다만…… 어떻게 죽었는지 전부 설명하려면 꽤 어렵겠군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아이라 루벤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2기사단장의 사인이 궁금하다.”

    2기사단장?

    걔는 왜 물어보는 거지?

    아주 콕 집어서 물어보는 걸 보면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듯한데…….

    그런데 이어서 물어보는 질문은 꽤 의도가 달라보였다.

    “2기사단장은 절대 약하지 않아. 에센시아 기사단 내에서도 영웅에 근접한 실력자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자다. 그러니까 다시 묻지. 정말 그가 죽었나?”

    흐음.

    이것 봐라?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것 같지만.

    지금 아이라 루벤은 딱히 2기사단장의 사인 따위가 궁금한 게 아니었다.

    그가 정말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더 궁금할 뿐이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가져온 물건이 하나 생각나서 바로 인벤에서 그걸 꺼내 주었다.

    이건 딱히 쓸모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 에센시아 제국 2기사단장 증표 』

    “혹시 이거면 답이 되겠습니까?”

    죽어야만 나오는 증표인지 아님 평소 품에 가지고 있는 물건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어쨌든 녀석이 죽고 난 뒤에 드랍된 아이템은 맞으니까.

    내가 2기사단장의 증표를 보여주자 아이라 루벤이 다소 놀란 눈빛으로 그 증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에 지켜보던 타룬 벡스터는 정말 크게 놀란 듯 말했다.

    “하. 정말 죽었단 말이야? 그 사냥개가?”

    음.

    2기사단장을 사냥개라고 부르는 게 우리만은 아닌 듯했다.

    앞에 황제라는 단어가 빠지긴 했지만.

    그 의미를 못 알아들을 사람은 적어도 이곳 안에는 없었다.

    아이라 루벤이 이번엔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곳 지하가 2기시단장조차 살아남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더 투입해 봐야 기사단이 살아남을 확률이 너무 낮겠지.”

    아마 앞뒤 사정을 정확히 모르긴 해도.

    2기사단장에 대한 이들의 평가는 꽤 높아 보였다.

    그것도 실력 면에서 말이지.

    타룬 벡스터 역시 맞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바로 말을 이었다.

    “어, 그렇지. 그 녀석이 죽을 정도면 어지간한 녀석들은 다 죽을 거라는 말이니까. 그리고 난 내 기사단을 여기서 다 소모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어쩐지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은 표정이랄까.

    그리고는 한 마디 말을 더 붙였다.

    “철수를 가장 반대할 2기사단장이 죽었으니까.”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전에 분명히 그런 적이 있었다.

    탐사가 늦어지면 황제가 노한다고 하면서 2기사단장이 펄쩍 뛰었던 일이.

    한마디로.

    지금 2기사단장이 죽어서 자리에 없는 지금.

    철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태클을 걸 만한 녀석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 된다.

    자연스럽게 아이라 루벤과 타룬 벡스터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정확하게는 5기사단장인 베인에게.

    아이라 루벤이 곧장 명령에 가까운 말투로 물었다.

    “베인 테스. 철수에 이의 있는가?”

    여기서 굳이 반대를 청할 만한 인물이라고 치면.

    5기사단장인 베인 정도가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베인이 내 쪽에 시선을 잠시 주었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딱히 상관없겠지.”

    순간 아이라 루벤이 놀란 듯이 베인 녀석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베인이 반대할 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2기사단장과 더불어 5기사단장인 베인은 제국 황제의 충실한 부하일 테니까.

    “반대하지 않는 건가?”

    “기사단을 전부 잃은 내가 할 말은 아닌 듯하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반대하는 베인을 본 아이라 루벤이 다소 혼란스럽다는 듯 쳐다봤지만 곧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납득한 듯 답했다.

    “그런가. 알았다.”

    기사단장이 휘하의 기사단을 전부 잃었다는 말은 곧 그만큼 힘이 없어졌다는 뜻도 되니까.

    거기다 그만큼의 위험을 겪기도 한 상태고.

    아이라 루벤이 보기에는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일 테다.

    “타룬 벡스터는?”

    “난, 당연히 반대. 미쳤다고 죽을 곳에 들어 가냐.”

    다소 기사단장 같지 않은 멘트였지만.

    의외로 이 말은 같은 7기사단들에게 환호를 일으켰다.

    “오오! 역시 단장입니다!”

    “암! 목숨이 최고지!”

    “단장만 믿고 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도 어이없다는 듯 웃어 버렸고.

    “요즘 인간군은 기강이 개판이네.”

    “좋은 게 좋은 거지.”

    유저처럼 목숨이 무한인 녀석들도 아니고.

    다만 기사단이 저런 모습인 건 좀 의외긴 했다.

    그때 타룬 벡스터가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적들하고 싸워서 죽는 거라면 몰라도. 이런 장소에서는 개죽음이지. 그리고 전쟁터에서는 안 이런다고.”

    “아, 그런가요.”

    굳이 내게 설명을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7기사단에 들어와라. 너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제가 뭐 딱히 한 게 있나요.”

    “2기사단장이 죽은 곳에서도 살아왔잖아. 그걸로 자격은 충분해.”

    흐음.

    이 녀석.

    날 너무 좋게 평가하는데?

    그리고 넌 모르겠지만.

    그 2기사단장은 내 손으로 목을 날렸단다.

    속으로 그런 말을 하면서 아이라 루벤을 보자 그녀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의견을 받아들이겠다. 이대로 철수하도록 하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그리고 또 한마디 말을 속으로 삼켰다.

    나 역시 당신들을 죽이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그때 한 녀석이 내 옆으로 뛰어왔다.

    “살아서 왔네?”

    “아. 너도 살아 있었냐?”

    “뭐야 그게.”

    3기사단에 속해 있던 이 녀석.

    미래의 공작.

    라첼.

    절망의 기사가 언제 될 진 몰라도.

    성장 가능성 하나만은 무궁무진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라첼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그것도 엄청 놀랍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은 채.

    “헤에…… 하프잖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하프?

    잠시 빤히 라첼을 바라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한쪽으로 쭉 끌고 가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해 주었다.

    “저 애…… 절반은 마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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