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0화 신의 파편 (4)
문득 궁금해졌다.
선 성향의 끝에 존재하는 대천사의 검을.
마찬가지로 악 성향의 끝에 있는 마왕이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당연하게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며 외쳤다.
“미쳤어?”
“아니. 꽤 정상이야.”
“아냐. 너 지금 미친 거야.”
음.
원래는 마왕이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마왕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니 꽤 기분이 섭섭한 것 같기도 하고 좀 그렇네.
마왕 헤르게니아가 정말 질색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마왕이 왜 대천사의 검이 떨어져 있어도 안 주워 가는지 고민해 본 적 없어?”
“음. 전혀?”
사실 한 번쯤 해본 적이 있긴 했다.
아마 긴 역사에서 마왕과 대천사들이 수도 없이 싸우긴 했을 텐데.
서로의 무구를 주워 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거기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마왕으로 알고 있을 때.
대천사의 검을 들고 있는 걸 보고는 상당히 놀라기도 했고.
“어휴. 넌 모르겠지만 그거 잡으면 내 팔이 대천사의 성화에 불타오른다고.”
“호오. 그래?”
어쩐지 날 보면서 놀라더라니.
대천사의 검을 들고도 멀쩡한 게 확실히 이상한 게 맞았다.
나중에 다른 마왕들을 보게 되면 이건 좀 조심해야겠는데?
그때 궁금한 점이 생겨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대천사들도 마왕의 무구를 들면 똑같아?”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잠시 멈칫했다.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녀가 아주 단호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미친 대천사는…… 아마 없을걸?”
음.
아무래도 이건 상식선에서 정리가 되는 내용인 듯했다.
그런 대천사를 바로 미쳤다고 하는 걸 보면.
“그렇단 말이지.”
“어, 그러니까 네가 지금 내게 대천사의 검을 쥐어주려는 이 짓은 미친 짓이 맞아.”
정말 정색하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마주보면서 웃었다.
그리고 다시 대천사의 검의 손잡이를 그녀에게 밀었다.
“응, 나 미쳤으니까. 일단 한 번 들어보자.”
“와씨…… 정말 돌았나 봐.”
내가 내미는 손잡이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뒷걸음질 하는 모습을 보니 꽤 재밌기도 했고.
세상 두려울 게 없는 마왕도 이건 정말 싫은 듯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거 잡는다고 죽지는 않지?”
“그 정도로 죽을 거면 마왕이 마왕이야?”
“아, 그런가?”
“그래. 네 말대로라면 싸우다 스치기만 해도 죽겠다.”
확실히 그건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이 맞았다.
정말 손대기만 해도 죽을 거라면.
싸우는 도중에 칼빵 한 대만 맞아도 바로 죽어버릴 테니.
“아무튼 안 죽는다는 거잖아.”
“아, 그래도 싫어. 절대 싫어.”
“왜?”
“아픈 거 싫다니까.”
“…….”
가끔 얘가 정말 마왕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마왕 아니지?”
“아씨. 마왕은 아픈 거 좀 싫어하면 안 되냐?”
“뭐 그렇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마왕 헤르게니아는 직접 전투형 마왕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였다.
예상했듯 제작에 특화되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정말 이런 수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고개를 옆으로 확 돌리면서 깜짝 놀란 듯 외쳤다.
“어? 저건…… 대천사……!”
“뭐?!”
내 말에 깜짝 놀란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는 순간.
바로 가속을 붙여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무방비가 된 그녀의 손에 레플리카 대천사의 검을 쥐어주었다.
환한 웃음과 함께.
“됐다.”
“어…… 어?!”
그때 대천사의 검을 잡은 손잡이를 중심으로 거센 빛이 터져 나오며 마왕 헤르게니아의 손을 강렬하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그 빛은 곧 마왕 헤르게니아의 팔을 타고 올라가며 계속해서 하얀 성화를 옮겨갔고.
고통스러운 듯 마왕 헤르게니아가 비명을 질렀다.
“꺄악!!! 이 미친놈아!!”
바로 대천사의 검을 내던지려는 순간.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상태로 외쳤다.
【 대천사의 가호! 】
정확하게는 다른 한 손에 원형의 대천사의 검을 든 상태였고.
내가 대천사의 가호를 시전하자 등 뒤로 커다란 빛의 날개가 화려하게 펼쳐져 나왔다.
그리고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봤는데 아쉽게도 마왕 헤르게니아에게는 빛의 날개까지는 피어오르진 않았다.
아마 마왕이라 그런지 대천사의 검에 내장된 스킬을 쓰지 못하는 듯했다.
뭐 여기까지는 어렴풋이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내게 걸린 대천사의 가호에서 뻗어 나오는 빛의 날개가 그녀까지 확 뒤덮을 정도로 커지자 고통스럽다는 듯이 외쳤다.
“악! 뜨거워!”
역시 대천사의 가호는 마왕에게 극상성이라 닿기만 해도 피해를 주는 듯했다.
거기다 대천사의 검까지 쥐고 있으니.
너무 오래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참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바깥으로 향하는 빛의 결계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
“뭐?!”
【 대쉬! 】
곧장 헤르게니아의 손을 잡은 상태로 빛의 문으로 몸을 날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놀랐는지 눈이 화들짝하게 커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예 대놓고 대천사의 결계로 달려들자 날 거부하려고 손을 빼려고 했지만.
“나 한 번 믿어 봐. 여기서 나가게 해줄 테니까.”
그 한마디에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씨. 이 미친 소리를 또 듣고 있네.”
곧 마왕 헤르게니아도 포기한 듯 몸 전체에서 힘을 빼버렸다.
저항하지 않으니 더욱 가속을 받아 빠르게 몸을 날릴 수 있었고.
의외로 포기가 빠른데?
입가에 미소와 함께 내달리자 옆으로 금속의 정령이 뒤따라 날아왔다.
꽤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누가 걱정한데?”
“그럼 됐고. 간다!”
그리고는 바로 빛의 문으로 뛰어들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잘못되면 대천사랑 치고받기밖에 더 하겠어!”
이게 잘못되면 진짜 대천사들에게 포위되어 싸워야 할 테니 그녀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
그런 그녀와 금속의 정령과 함께 빛의 문을 지나가자 바로 환한 섬광이 우리에게 뻗어져 결계처럼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과연.
이 수가 통할까?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리자 곧 내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대천사의 가호를 확인했습니다. 》
그렇지.
바로 고개를 돌려 나와 같이 레플리카 대천사의 검을 들고 있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가 나와 함께 잡고 있던 검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대천사의 가호를 확인했습니다. 》
《 대천사의 결계를 통과할 자격이 있습니다. 》
《 대천사의 결계가 접근을 승인합니다. 》
아마 그녀에게는 이 시스템 메시지가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알 수 없을 테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와 마왕 헤르게니아를 감싸고 있던 빛의 결계가 해제되면서 그 힘을 잃고는 그대로 허공에서 흩어져 버렸다.
“어라……?”
정말 당황한 눈빛의 마왕 헤르게니아가 눈을 크게 껌뻑거리며 날 쳐다보았다.
자신의 팔이 성화에 불타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이건 정말 놀란 게 맞다.
그리고는 자신이 잡고 있던 대천사의 검과 날 번갈아 보면서 입을 크게 벌렸다.
“이게…… 말이 돼?”
“어. 돼.”
솔직히 나도 반반이라.
완전히 확신하진 못했지만.
아마 대천사의 검을 들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할 거라 예상했다.
대천사의 가호는 내가 쓰면 되는 일이고.
나머지는 과연 저 대천사의 결계가 대천사의 검을 든 마왕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의 문제였는데.
전에 내가 지나올 때 대천사의 검이 열쇠였다는 걸 감안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판단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눈앞에 있었고.
“하…… 대천사들이 이걸 보면 뒤로 자빠지겠어.”
정말 신기한 듯 자신을 이리저리 내려다보는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거보단 네가 여길 빠져나갔다는 걸 대천사들이 모른다는 게 더 크지 않아?”
이 신의 파편의 봉인 외곽을 지키던 대천사의 결계가 반응하지 않았다는 건.
대천사들 중 누구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곳 헤르마늄 광산을 빠져나가는 걸 모른다는 뜻이 될 테지.
그건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앞으로 어디서 뭘 하든.
대천사들의 눈을 완전히 피할 수 있게 된다는 말과 동일했다.
원 역사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헤르마늄 광산에서 나온 그녀가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해 보면…….
아마 이번 일이 성마대전의 역사 자체를 확 뒤집는 사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맞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로 눈에 불꽃을 피우며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 보였다.
“대천사 새끼들. 다 주거써!”
역시.
얘도 당한 건 잊고 사는 스타일은 아닌 듯했다.
그러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가 붙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손을 확 떨어뜨렸다.
당연히 레플리카 대천사의 검 역시도 바닥에 떨어졌고.
카앙!
뭔가에 굉장히 당황한 듯 숨을 몰아쉬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쳐다보더니 곧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작게 소리 죽여 말했다.
“너…… 너.”
“응?”
“아니. 그냥. 이번 일은 잊지 않을게.”
마왕 헤르게니아의 작은 말이 흘러나오고 난 뒤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아까 신의 파편의 봉인에서 꺼내줄 때만큼 호감도가 많이 오르진 않았지만.
분명 지금도 상당히 많이 오르긴 했다.
확실히 그녀를 여기서 빼내준 보상이라고 해야 하나?
기존에도 호감도가 높았고.
거기에 대해 추가적으로 올랐으니 그녀가 다른 생각을 품고 날 공격한다거나 하는 걱정은 좀 덜어도 될 듯 했다.
그래도 일단 조심은 하겠지만.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잘 나오긴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앞으로?”
“너도 봉인에서 나오면 하려고 계획해 둔 것들이 있을 것 아냐.”
그동안은 딱히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이제 봉인에서 나온 이상.
그녀가 가려는 노선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굳이 마왕 헤르게니아의 계획을 알아야 하는 건.
원 역사에서는 이게 전혀 나오지 않거든.
아크 드래곤의 존재로 유추해서 예상할 뿐.
솔직히 마왕군에 속해 있는지조차도 몰랐는데 더 말해 뭐할까.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성마대전의 판도가 확 뒤집힐지도 모른다.
게다가 딱 그것만 집어서 말하기도 어려운 건.
그녀가 어디로 튈지 전혀 알 수 없는 점도 있고.
당장 여기서 혼자 박차고 나가서 사라진다면 내 쪽도 답이 없긴 마찬가지다.
무력만으로 보면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를 강제하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흐음.
호감도가 꽤 높으니까 부탁이라도 하면 되려나?
명색이 마왕인데 구해준 보답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좀 존재했다.
무엇보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대천사들에게 꽤 묵힌 감정이 깊다는 것도 한몫할 테고.
아마 내 쪽에서 말을 꺼내면 그녀도 마지못해 도와줄 확률이 제법 높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내게 먼저 제안을 했다.
“나. 결정했어.”
“응?”
“당분간. 널 따라다닐 거야.”
어?
이게 이렇게 쉽게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