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8화 신의 파편 (2)
신의 흔적이라는 메인 퀘스트가 나올 때부터.
아니 정확하게는 이곳 헤르마늄 광산에 신의 흔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금속의 정령을 떠올렸었다.
다른 유저들은 절대 할 수 없는.
오직 금속의 정령을 소유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그렇기에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눈을 속여 가면서까지 무리해서 헤르마늄 광산부터 최우선적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애초에 난 신의 흔적을 얻지 못할 불확실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봉인까지만 도달하면 됐고.
그렇게 지금 모든 난관을 뚫고서 이 자리에서 금속의 정령을 꺼내놓았다.
이제 내 마지막 패가 제대로 통할지는 직접 확인해보면 되겠지.
신의 파편을 봉인에서부터 빼올 수 있는지 물어보는 내 질문에 금속의 정령의 시선이 봉인 쪽으로 향했다.
혹시나 금속의 정령이 안 된다고 하면.
봉인을 억지로 파괴해서라도...
그런 각오를 하는데 금속의 정령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들어 봉인 쪽을 가리켰다.
“그냥 가지고 나오면 되는 거야?”
마치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나오는 것처럼 너무 쉽다는 듯 물어보는 금속의 정령을 보자 바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내가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금속의 정령도 알았다는 듯 내 주변을 빙빙 날아다녔다.
그러더니 금속의 정령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정확하게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본체로.
“쟤는 뭐야?”
“음. 사실 쟤도 좀 처리해야 하거든.”
“죽여야 해?”
처리한다는 게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란다.
그 말을 들은 마왕 헤르게니아의 이마에 바로 혈관 마크가 떠올랐다.
“야! 누가 누굴 죽여!”
“어…… 저 아줌마 화났다.”
“뭐라고?!”
아무리 봐도 둘이 친해지긴 이미 틀려먹은 듯한데…….
마왕 헤르게니아를 빤히 바라보던 금속의 정령이 다시 내게 물었다.
“마왕이 풀려나면 위험해지지 않아?”
“쟤가 마왕인 걸 알아?”
“응. 다 보고 있었어.”
음.
이미 다 알면서 장난친 거였나?
“애들이 번갈아가면서 시끄럽게 해서. 깼어.”
“아…… 걔들 말이지.”
마검을 비롯해 라페르나, 테르타로스까지.
여기서 와서 르아 카르테를 빼고는 죄다 꺼내서 전투를 벌여댔으니까.
금속의 정령 입장에선 조용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나만 빼놓고.”
그리고 마치 자신만 꺼내지 않아서 삐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 르아 카르테를 꺼내면 알아보는 녀석들이 많아서.”
“으응. 그럼 됐어.”
상황을 다 아는데 기분 풀이 삼아 물어본 거려나?
아무튼 금속의 정령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난 뒤 다시 물어보았다.
“쟤도 좀 빼내야 하는데 가능할까?”
솔직히 신의 파편만 꺼내갈 거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봉인 속으로 들어간 마왕 헤르게니아를 꺼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녀에게는 확신을 주듯 말했지만.
사실 금속의 정령에게 방법이 없다면 정말 봉인을 부수는 방법 밖에는 없으니까.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금속의 정령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봉인을 잠시 멈추면 돼.”
“그래?”
봉인을 멈춘다라.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이라 놀라는 사이.
나만큼 놀란 건 마왕 헤르게니아였다.
“봉인을 멈춘다고?”
“왜? 하지 마?”
순간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얼음처럼 변하면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음.
아무래도 여기선 금속의 정령이 이긴 것 같은데.
의기양양하게 허리에 손을 올리는 금속의 정령을 보자 아마 이겼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좀 도와줘. 쟤도 꺼내가야 하거든.”
그런데 금속의 정령은 전혀 다른 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만약 저 마왕이 배신하면? 이길 수 있어?”
금속의 정령이 걱정하는 건 마왕 헤르게니아가 봉인에서 나와서 우릴 배신하는 경우였다.
사실 나도 이걸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당장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그녀를 막을 만한 패가 현재의 내겐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이건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랄까.
그리고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도망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당장 이길 순 없어도.
적어도 죽진 않는다는 거지.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버럭했다.
“야! 정령! 넌 날 뭘로 보는 거야?”
“마왕으로 본다. 왜?”
마왕을 보고 마왕이라고 하는 게 맞긴 한데.
의미가 좀 많이 달라 보이기는 하네.
다시 한 번 금속의 정령이 날 보더니 곧장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난 또 이걸 믿네.”
“너 성격이 좀 변한 것 같다?”
“맨날 안에서만 있어 봐.”
“아. 미안.”
이건 할 말이 없군.
그런데 금속의 정령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흘리듯 말했다.
“…….”
응?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얼핏 들리기에…….
“뭐라고?”
“흥! 못 들었으면 됐어.”
그러더니 금속의 정령이 씩씩거리면서 봉인 쪽으로 날개를 흔들면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으음.
작은 소리지만 대강 알아듣긴 했는데.
또 사라지면 안 된다고 했나?
내가 전에 사라졌던 적이…….
아.
맞다.
예전에 5개월 정도 공백이 있을 때.
금속의 정령과의 호감도가 제로에 가까워져서 위험했던 적이 있었다.
뭐 꼭 그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긴 그렇지만.
아무튼 내가 죽으면 르아 카르테가 사라지는 건 마찬가지라.
혹시 그렇게 되면.
금속의 정령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건 나중에 물어봐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때야 정령신의 기운이 있다고 르아 카르테에 머물렀는데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휴.
이것도 혹시 모르니 대비를 해놔야겠는데.
르아 카르테야 한 번 잃어버리면 어떻게든 찾아오면 된다지만.
금속의 정령은 아니니까.
한참을 파닥거리면서 날아가더니 곧 봉인의 경계까지 다가간 금속의 정령이 심호흡을 가볍게 하더니 곧바로 두 손을 봉인의 경계에 가져다 댔다.
우우우웅!!
그러자 신기하게도 신의 봉인의 결계가 물결이라도 치는 듯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물결의 파동은 전체 봉인에 서서히 퍼지더니 봉인을 구성하고 있던 마법진들 전체에까지 나아가 영향을 미쳤다.
기이이잉!!
묘한 회전음이랄까.
돌아가던 수많은 마법진들이 일제히 속도를 줄이면서 느려지더니 이내 마치 멈춘 것 마냥 제 자리에 서버렸다.
그렇게 마법진이 멈추자 봉인의 결계 역시도 힘을 잃은 듯 점점 옅게 변해 갔다.
“갔다 올게.”
그리고는 금속의 정령이 봉인 안으로 쏘옥 들어가더니 곧장 봉인의 중간까지 날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신의 파편을 손에 쥐었다.
“미션 클리어!”
응?
쟤 저 말은 또 어디서 배워온 거지?
뿌듯한 듯이 날개를 파닥거리더니 고개를 휙 돌려서 마왕 헤르게니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당연하겠지만.
마왕 헤르게니아는 이 광경을 멍하니 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기도 안 찬다는 표정으로 말이지.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금속의 정령이 말했다.
“왜 멍 때리고 있어? 안 나갈 거야?”
“어…… 응. 나가야지.”
설마하니 마왕 헤르게니아도 금속의 정령이 이렇게 쉽게 봉인을 뚫고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처음 나도 딱 저런 표정이었으니.
“나도 오래 못 멈춰. 빨리 나가야 해.”
그러고는 곧장 신의 파편을 들고 봉인의 경계 쪽으로 날았다.
마왕 헤르게니아도 금속의 정령을 뒤따라 봉인을 빠져나왔고.
기이이잉!!
그렇게 둘 다 봉인을 빠져나오자 다시 기묘한 회전 소리가 들리더니 봉인이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아마 몇 초만 늦었어도 봉인이 닫힌 채로 갇혀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뭐 금속의 정령은 어떻게든 다시 나올 수 있을 것 같지만.
완전히 봉인을 빠져나온 마왕 헤르게니아가 멍한 눈으로 금속의 정령과 봉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국 허탈한 듯 웃어 버렸다.
“와씨. 이게 이렇게 쉽게 된다고?”
본인은 여기서 수백 년을 봉인당해 있었는데.
금속의 정령은 이걸 풀어버리는데 정작 몇 초도 걸리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이려나…….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를 본 금속의 정령이 환한 미소와 함께 한 마디를 했다.
“날 존경해도 좋아.”
“…….”
마왕 헤르게니아에게는 어이없겠지만.
아무튼 금속의 정령의 능력 자체가 사기라서 말이지.
그렇게 오래 갇혀 있던 봉인에서 나온 탓인지 갑자기 마왕 헤르게니아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와 금속의 정령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금속의 정령 말대로 그녀가 다른 마음이라도 먹으면...
하지만 그런 생각은 우려라는 걸 아는데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와아!! 자유다!!”
오히려 신나하면서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자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장 내게 달려오더니 날 확 끌어 앉고는 그 기쁨을 함께 했다.
“정말 고마워!!”
거기다 금속의 정령에게도 감사를 표했고.
“너도 고맙다! 이 언니가 너 부탁 하나는 꼭 들어준다!”
“수백 년 살았다면서. 언니야? 할머니 아니고?”
“……으득.”
와.
이빨 가는 소리 봐라.
살벌하네.
그리고 저 둘은 친해지기 꽤 어려울 듯 하다.
그때 내게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한두 개도 아닌 무려 십여 개의 호감도 상승 표시가 동시에 올라가면서 기존의 쌓아둔 호감도보다 월등하게 호감도가 올라가버렸다.
마왕 헤르게니아를 구해주는 미션이 이 정도까지 효과가 좋을 지는 몰랐는데.
이 정도 호감도라면 정확하게 모르긴 해도.
당장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칼을 들이만다고 해도 한 번 정도는 봐주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특히 마왕이라는 존재와 이렇게까지 호감도를 쌓은 적이 없어서 그런지 조금 더 좋은 느낌이었고.
마왕 중에서 굳이 찾자면 마왕 벨라 정도이려나?
아무튼 호감도가 높을수록 좋은 거니까.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를 먼저 배신하지 않는 이상은.
이 호감도는 거의 유지가 될 것이다.
원래도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옆으로 금속의 정령이 날아왔다.
그리고는 내게 신의 파편을 올려서 보여주었다.
『 신의 파편 - ? 』
역시나 상태표는 물음표였다.
다른 특수 아이템들이 그러하듯.
하지만 대략적으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미 마신의 파편으로 무기를 만들어봐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며 되는 거야?”
그리고 그걸 제일 잘 아는 건 바로 눈앞의 금속의 정령이었다.
그 기대를 부응하듯 금속의 정령이 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재료를 모아야 해.”
“역시 재료라는 거지.”
우리의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자 일단은 그냥 넘어갔다.
아직 이것까지 알려주기에는 무리가 있지.
당분간은 마왕 헤르게니아를 좀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그때 그녀가 바깥쪽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
그래.
아직 문제는 끝나지 않았지.
금속의 정령의 도움으로 일단 봉인 안에서 마왕 헤르게니아를 꺼내오긴 했는데.
정작 문제는 저 바깥의 빛의 문이었다.
마왕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대천사들이 쳐 놓은.
그 결계 말이지.
“하. 산 넘어 산이네. 이걸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