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3화 성마대전 시대 마왕과의 조우 (3)
대천사?
여기서 갑자기 대천사가 왜 나오는 거지?
그것도 한 명의 대천사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
대천사들이라고 했다.
“대천사라고?”
“그래. 대천사.”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이 지하 사원은 대천사들이 만든 건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질문이랄까.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대로 이곳에 신의 파편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 신의 파편의 결계를 건들면 대천사들이 날아온다고 하니 이건 당연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아니. 이곳을 만든 것은 누군지 나도 몰라.”
“……너도 모른다고?”
“알면 내가 이곳에서 이 꼴을 당하고 있었을까.”
신경질 내며 바닥을 팍 차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모르는 건 맞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대천사들이 온다는 거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푹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전에 그랬으니까.”
“전?”
“아씨. 봉인 당할 때 말이야. 그때 내가 그것들이 진 치고 있는 줄 알았으면 혼자서 여길 안 왔지.”
여기서 말하는 그것들이라는 건 아마 대천사들인 것 같았다.
몇 가지 걸리는 게 있기는 한데.
일단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하고 있는 건 대다수가 진실에 가까운 듯 했다.
헤르마늄이 넘쳐나는 이곳 지하 사원에서 갑자기 마왕이 튀어나오는 것도 그렇고.
상성상 보면 극과 극이라고 봐야 할 테니.
특별한 볼일이 없다면.
마왕이 이곳 헤르마늄 광산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이런 헤르마늄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본인에게 피해가 갈 텐데 미쳤다고 마왕이 들어올까.
거기다 대천사들까지 있는 판에.
자살하려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이곳 지하 사원에 대천사들이 있던 건 아니란 말이지?”
“흐응? 너 머리 좋네?”
“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니까.”
대천사들이 있는 줄 알았으면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은.
곧 처음엔 대천사들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신의 파편을 손에 넣기 위해 지하 사원을 찾았을 테고.
그 와중에 상황이 확 꼬인 듯하지만.
다른 말로 이 사원 자체가 대천사들이 만든 건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녀의 말처럼 말이지.
“그럼 네 봉인은 어떻게 된 거지?”
여기서 하나의 의문.
만약 이곳 헤르마늄 광산 안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수의 대천사들과 마주쳤다면 필히 전투가 일어났을 테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저 마왕 헤르게니아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대천사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헤르마늄으로 둘러싸인 지역의 이점.
그리고 쪽수 역시 자신들이 많았다.
다수라고 하는 걸 보면.
아무리 마왕이라고 해도.
같은 등급의 대천사들과 싸우면 피해가 적지 않을 터.
그것도 하나도 아닌 다수와 싸웠을 경우는.
백이면 백.
그 자리에서 죽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살아 있다라…….
대천사들이 정말 머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은 이상 그 상황에서 그녀를 봉인만 하고 끝내진 않았을 텐데.
차라리 죽이고 말지.
봉인하는 것보다는 그쪽이 훨씬 수월하고 간단한 일이니까.
굳이 후환을 남겨두는 일을 대천사들이 택했다?
이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은 힘든 일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 대천사들을 전부 상대하고도 남을 수준의 강자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해답을 말해 줬다.
“다 알면서 뭘 물어?”
“뭐?”
“아씨. 그 상황에서 안 죽으려면 지하 사원의 봉인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그 말에 순간 머리가 띵한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봉인 당했다고?”
“그래. 그 녀석들도 봉인은 못 건드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대천사들이 널 봉인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봉인 당한 거야. 안 그랬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녀석들은 봉인 안으로 안 들어오던데?”
“흐음. 같이 봉인 당하긴 싫어서인가?”
“아마 그럴걸? 그때 욕을 얼마나 해대던지. 온갖 쌍욕을 해대던데 난 또 대천사가 아닌 마신이라도 강림한지 알았네.”
대천사를 놓고 농담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긴장이 조금 풀렸다.
확실히 지금은 내게 적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적어도 이 상황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런데 봉인을 건들면 대천사가 온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 녀석들이 원래의 봉인 바깥으로 다른 봉인을 쳐놨거든. 혹시 내가 나올까 해서 말이야.”
“일종의 감시인가.”
“그래. 감시지.”
그 말에 무언가 떠올라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었다.
“그렇다는 건 네가 나왔다는 걸 대천사들이 알게 되었을 수도 있겠네?”
“아니. 전혀 모를걸. 지금 이건 내 본체가 아니니까.”
본체가 아니라고?
그리고 자세히 보니 마왕 헤르게니아의 모습이 약간은 흐릿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긴 하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동안 내 부하를 내보내서 봉인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제 거의 끝나 갔는데.”
“흐음. 저거 말인가?”
손가락으로 타락 천사를 가리키자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저거. 공을 들여 만들었는데 다 부숴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아.
그래서 이름이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였던 거려나.
처음에는 헤르게니아가 지역이나 어떤 특수한 명칭 같은 거라 생각했는데.
“그럼 굳이 타락 천사로 만든 건 대천사들에 대한 복수인가?”
“나도 화풀이는 해야지.”
보아하니 딱히 틀리진 않는 듯했다.
흐음.
이 녀석이 날 보자마자 바로 달려들지 않은 것도 지금 보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단 난 마왕이니까.
그리고 반대로 녀석은 본체가 아닌 일부가 봉인 바깥으로 나온 듯했고.
이 상황에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필히 녀석이 진다는 그림이 나왔을 것이다.
뭐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싸울 생각 자체도 없었던 듯했고.
어떻게 보면 녀석에게 난 조력자일 수도 있을 테니까.
솔직히 이렇게 규모가 큰 헤르마늄 광산 깊은 곳까지 마왕이 들어오는 일도 쉽지는 않을 터다.
그녀 같은 경우를 제한다면…….
“신의 파편은 왜 가지려고 한 거지?”
“으음.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긴 하지만.”
하긴.
계속 봉인될 줄 알았다면 나 같아도 들어오지 않았겠다.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뜻밖의 의뢰가 들어왔다.
“네가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 서브 퀘스트 : 마왕 헤르게니아의 봉인 해제. 》
- 마왕 헤르게니아를 봉인하고 있는 결계를 해결.
- 퀘스트 보상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절대적인 신임 획득.
신의 파편에 대한 추가 정보를 획득.
흐음.
서브 퀘스트인가.
이건 신의 파편을 구하는 메인 퀘스트를 할 때 충분히 병행할 수 있는 퀘스트이긴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퀘스트 보상이 마음에 들었다.
절대적인 신임 획득이라…….
시스템이 보장해 주는 신임이라는 건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을 테니까.
지금처럼 언제 달려들지 몰라서 간만 보는 게 아닌.
마왕 하나를 통째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해야 하나?
휴.
이런 퀘스트라면 못 먹어도 고다.
“좋아. 한번 노력해 보지.”
내가 허락하자 분신인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약속한 거다?”
“그래. 하지만 그러려면 너도 최대한 협조를 해줘야 해.”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뭐가 필요한데?”
“흐음. 보자…….”
모르긴 해도 그간 이 지하 사원은 이 마왕 헤르게니아가 제집처럼 드나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것도 타락 천사를 이용해서 말이지.
그렇다는 말은 이곳의 구조를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설마 이걸 여기서 해결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말했다.
“내가 좀 죽이고 싶은 녀석들이 있는데 말이야.”
* * *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모종의 대화가 끝난 뒤 그녀와 헤어졌다.
그리곤 마신과 마왕의 장비들을 기사단 장비로 바꾸고는 우리 팀과 에센시아 기사단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야. 살아 있었냐.”
날 가장 먼저 발견한 건 7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인 로메로였다.
아무래도 이번에 기사단에서 전사한 녀석들이 많다보니 그나마 멀쩡한 로메로가 직접 외곽을 순찰한 듯 했다.
“그럼 죽을 줄 알았어?”
“하…… 네 덕분에 다 살았다.”
그런 안도와 함께 로메로가 슬쩍 뒤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도 살았고. 그거 실패했으면 기사단장한테 바로 까였을 텐데 말이야.”
“아, 돌파 말인가?”
기사단장의 허가 없이 멋대로 그런 작전을 실행했으니 까여도 할 말이 없긴 했다.
그러더니 로메로가 내게 다가와 슬쩍 말해주었다.
“그래. 네 덕에 살아난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니 분위기는 꽤 좋을 거다.”
그 말에 상처를 치료 중인 에센시아 기사단을 쭉 바라보니 이전보다는 확실히 우호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를 못마땅하다는 듯 보는 녀석들도 존재했다.
어떤 녀석들은 사납게 노려보는 놈들도 있고.
아마 저 마크가 2기사단이었지.
제국 황제의 사냥개.
내 시선이 그쪽으로 멈추자 로메로가 할 수 없다는 듯 머쓱한 웃음을 보였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녀석들이라. 공을 네가 세운 게 못마땅할 거다.”
“목숨을 살려 줬는데도?”
“저 녀석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해. 아마 자기들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데 네가 끼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걸?”
“정말 할 말이 없네.”
로메로의 말을 들으니 저런 빳빳한 태도가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제국 황제가 귀여워하는 진성 귀족이라 이거지?
“역시 죽여야…….”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아니. 별말 아니다. 상황은?”
“보다시피 어렵지. 회복술사들을 다시 데리고 오지 않는 이상은. 피해가 너무 커.”
그런 로메로의 표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확실히 이번에 죽어 나간 기사단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그것도 실력이 다소 밀리는 낮은 넘버의 기사단은 더 그렇고.
반면에 황제의 직속 기사단들은 피해를 입을 지언정 거의 대부분이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기사단 사이에 팽팽하던 비율이 깨진 느낌이랄까.
전사 형이 3기사단이 앞으로 1황자의 세력이 될 거라 했던가.
7기사단은 3황자 쪽 사람이라고 했고.
표면적으로는 다 제국 황제의 기사단이지만.
실질적으로 2기사단과 5기사단이 황제의 직속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그때.
2기사단의 단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내 쪽을 바라보고는 쭉 걸어오더니 내 앞에 섰다.
정확하게는 내가 들고 있었던 마검을 찾는 듯 검 쪽을 계속 흘깃 거렸다.
“그 검은 어딧지?”
“뭐?”
어이없다는 듯 내가 되묻자 2기사단의 녀석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내 목 쪽으로 검을 들이밀었다.
이놈.
전에 재중이 형에게 검을 날렸던 그 새끼 아니었나?
“감히 하위 기사단 녀석 따위가 단장께……!”
그러자 기사단장 녀석이 손을 올려서 녀석을 만류했다.
마치 자신이 대단히 아량을 베푸는 투로.
“부단장. 됐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2기사단장 녀석이 다시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검은 어딧지? 네가 들고 있기에는 너무 과분한 검이던데…… 앞으로 2기사단이 쓴다면 더 잘 활용할 수 있겠군.”
하.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