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41화 (1,129/1,404)

#1141화 성마대전 시대 마왕과의 조우 (1)

구구궁!!

시스템 메시지가 울리자마자 지하 사원은 커다란 진동을 일으켰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으려는데 그보다 빠르게 연락이 먼저 들어왔다.

<불멸> 방금 시스템 메시지 뭐야?

<주호> 형한테도 떴어요?

<불멸> 그래. 무슨 갑자기 마왕이냐?

<주호> 모르겠어요. 저 타락 천사 네임드를 잡자마자 퀘스트 갱신되면서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뜨던데요.

<불멸> 호오. 그걸 잡았다는 거지?

<주호> 네. 이쪽에서는 제 장비를 전부 쓸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요.

<불멸> 큭. 잡아서 좋긴 한데. 지금 상황만 보면 딱히 좋아 보이진 않네. 마왕이라…… 일단 돌아와.

<주호> 네. 드랍된 템만 수거하고 바로 돌아갈게요.

시스템 메시지에 봉인된 마왕이 깨어났다고 했지만.

그게 내 앞에서 바로 나타나는 건 아닌 것 같아 일단 타락 천사를 잡고 나온 드랍템부터 빠르게 수거했다.

그중 몇 가지는 이전에 타락천사 석상들을 잡았을 때 봤던 아이템들이었는데 몇 가지는 아예 처음 보는 아이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거기다 타락천사의 특수템들과 더불어 강화 템들도 제법 보였고.

정확한 건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고생한 수고에 비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네.

사실 이 녀석을 잡는데 기사단장들과 기사단들이 들이받아서 몸빵을 해준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거기다 마검 덕에 어렵지 않게 잡았으니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이런 아이템을 창고 구석에 처박아놓기만 했다니.

뭐 생각해 보면 내가 아니었으면 마검을 이렇게까지 써낼 수 있는 녀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테지만.

애초에 마검의 성능을 발휘하기 전에 소유자가 먼저 죽어 버릴 테니까.

그렇게 드랍템을 전부 수거하고는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 돋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지하 사원 깊숙한 어둠 속을 노려보았지만 내 시야에는 어떤 존재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바로 감각을 퍼트려서 주변을 훑기 시작했는데 이 근처에는 내가 신경 쓸 만한 그 어떤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곧 내 감각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그것도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나와의 거리를 좁혀오는 중이었다.

휴.

이 정도 이속이라면…….

곧장 테르타로스와 마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원래라면 장비를 해제하고 일행들에게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지금 돌아서서 달린다고 해도 저 녀석을 따돌리는 건 무리 같아 보였다.

<주호> 형. 아무래도 지금 못 돌아갈 것 같아요.

<불멸> 뭐?

<주호> 이쪽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히는 녀석이 있어서요.

<불멸> 칫. 알았다. 애들 데리고 바로 간다.

<주호> 아뇨. 제가 상황을 봐서 어떻게든 빠질게요. 차라리 지금은 혼자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만약 재중이 형이 우리 팀을 끌고 움직이게 되면 당연히 기사단 역시도 움직이게 된다.

그러면 당장 내가 입고 있는 장비를 전부 벗어야 하는데.

그 상황에서는 저 녀석을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으니까.

정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 쪽에서 단독으로 움직이다가 되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감각이 경고를 울려댔고 곧 시야에 녀석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부터 강렬한 압박감을 일으키면서 달려오는 모습.

그 모습을 보자마자 온몸의 감각이 빠르게 고양되었다.

역시 마왕인 건가.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녀석이 달려오던 것을 멈추고 내 앞에 섰다.

본 모습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지 등 뒤로 뻗은 거대한 검은 날개와 함께 머리 위에는 마왕을 상징하는 칠흑색의 뿔이 여러 갈래로 뻗어져 날카로움을 보여 주었다.

거기다 길게 잔상처럼 흩어지는 녀석의 검붉은 눈빛이 나를 어둠 속에서 주시하고 있었고.

그런데 녀석에게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아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말이라 그런지 조금은 벙찐 기분이 들었다.

“에? 천사 새끼들이 아니잖아?”

무엇보다 거칠 것이라 생각했던 목소리도 전혀 아니었고.

오히려 낭랑하게 들려오는 하이톤의 목소리는 지금의 상황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느낌이라 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자세히 보니 녀석 역시 전신을 감싸는 유선형의 칠흑색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형태가 흡사 내가 가진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와 거의 유사한 느낌을 주었다.

뭐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긴 해도.

누가 봐도 마왕들이 입는 형태의 무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걸 발견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입고 있던 마왕 올펠 플레이트를 본 마왕 녀석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듯 깜빡거렸다.

뭔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다는 거려나?

잠시 나를 위아래로 빤히 훑어보던 녀석이 의아함을 가득 담아 내게 물었다.

“너 마왕이야?”

“…….”

여기서는 저 녀석의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하는 건지 안 해야 하는 건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아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쪽에서 대답이 없자 녀석의 시선이 내려가다가 이내 내가 들고 있던 두 개의 검들에 닿았다.

그리고는 굉장히 놀란 듯 두 눈이 부릅 떠지더니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신의 파편……?”

음.

역시 마왕들은 보자마자 아는 거려나?

그런다는 건 역시 대천사들 역시도 자신들의 무구를 들고 있으면 바로 알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천사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이쪽은 확실히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어차피 이미 보여준 걸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대로 들고 있으니 녀석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경계하는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달려들지는 않는다.

내 레벨은 이제 고작 400대.

하지만 저 녀석은 그보다는 곱절로 높을 텐데.

흐음…….

이거.

예상하고는 전혀 다른데?

솔직히 마왕이 봉인에서 깨어났다고 해서 보자마자 전투부터 일어날 줄 알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도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저 마왕이 마음을 바꾸는 순간.

언제라도 달려들 수 있으니까.

“으음? 내가 너무 오래 봉인되어 있었나? 마신의 파편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는 녀석.

그러더니 녀석이 내게 물었다.

“거기 이름 모를 마왕. 지금이 언제야?”

“어?”

마왕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이 녀석은 내가 마왕 중에 하나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양손에는 각각 마신의 파편들을 하나씩 들고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내가 착용하고 있는 방어구.

이건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였다.

한마디로 외형만을 보고 따지자면.

지금은 누가 봐도 난 마왕의 그것과 꽤 유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냐고.”

언제냐는 물음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내가 시대까지 완전히 다 알고 있진 않으니까.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전사 형. 지금 시대가 언제에요?

성마대전 시대라는 건 알긴 하는데.

몇 년도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전에 분명 듣긴 했지만 그것까지 기억하고 있진 못하니.

<방패전사> 어? 으음. 그러니까 크루아 대륙력 937년도. 에센시아 제국력으로는 315년. 그건 갑자기 왜?

마치 입력해 놓은 것처럼 바로 나오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전사 형이 이런 건 확실하지.

<주호> 음. 혹시 마왕이 이걸 알 수 있어요?

<방패전사> 에센시아 제국력까지는 모르더라도 크루아 대륙력은 알걸? 어차피 크루아 대륙력은 모든 나라에서 통일해서 쓰는 거니까.

<주호> 일단 고마워요. 자세한 건 조금 있다가 다시 알려 줄게요.

<방패전사> 알았다. 여기 다들 정리 중이니까 곧 움직일 수 있을 거야. 필요하면 바로 불러.

<주호> 네.

전사 형과 대화를 끝낸 뒤 마왕에게 말해 주었다.

“크루아 대륙력 937년.”

“그렇게 오래됐어? 아씨. 천사 이 새끼들 진짜.”

갑자기 녀석에게서 폭발적인 기세가 터져 나오며 사방으로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구구궁!!

또다시 울리는 지하 사원.

단순히 화를 내는 것만으로 이런 공간 전체를 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 주었다.

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대화였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알겠다.

이 녀석.

아마 천사들하고 엄청나게 친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뭐 마왕이 원래 천사들하고 친하지 않는 건 맞긴 한데.

지금의 저 말들은 그것과는 다소 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기세를 뿜어내던 녀석이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다소 누그러들더니 이내 기세를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내게 물었다.

“흐음. 천사 새끼들은 아닌 것 같고. 봉인, 네가 푼 거야?”

음.

아마도 선택지이려나?

여기서는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판단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내가 하는 한 마디 답이 과연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아무도 모르니까.

문제는 내가 잡은 녀석이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분명 그 녀석을 잡고 봉인이 풀렸으니 내가 봉인을 푼 건 맞긴 하겠지만…….

잠시 고민을 한 뒤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여차하면 말을 바꾸기에는 이 대답은 나쁘지 않았다.

혹시라도 녀석이 반발하면 바로 반대로 말을 바꾸면 되니까.

그 순간 내게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으음.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었던 걸까.

굳이 저 헤르게니아라는 마왕이 대답을 해주지 않더라도 이미 답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예상대로 메시지와 함께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투 형태를 풀기 시작했다.

역소환된 칠흑의 갑주 안에서 한 명의 주홍의 머릿결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주를 보고 여성형 마왕이라고 대충 짐작은 했는데.

실제로의 모습은 굉장히 매혹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지금껏 여성형 마왕은 과묵한 느낌의 벨라밖에 못 봐서 그런지 확연히 눈에 띄는 외형이라고 해야 하려나.

“난 마왕 헤르게니아라고 해.”

그런 소개에 잠시 기다렸다가 답을 주었다.

“마왕…… 주호라고 한다.”

휴.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은 것 같고.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마왕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상황에서 거기에 초를 치긴 지금 상황이 좀 애매하긴 했다.

당장 마왕이 아니라고 하면 지금 입고 있는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부터 해서 마신의 파편까지 죄다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올 테니까.

하지만 마왕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게 된다.

굳이 이걸 녀석에게 납득시킬 필요 자체가 없어지니.

마왕이 마왕의 무구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

뭐 마신의 파편은 좀 예외라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마왕이 마신의 파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부터 넣었다.

<주호> 형, 여기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불멸> 문제 생겼어? 마왕은? 쫓기고 있냐?

<주호> 아. 그게 지금 쫓기진 않는데요.

그리고는 잠시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누가 들어도 참 이상할 것 같은.

<주호> 휴. 아무래도 저 그 마왕하고 친구 먹은 것 같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