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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39화 (1,127/1,404)
  • #1139화 헤르게니아 (16)

    카가각!!

    까드득!!

    마검들이 쉴 새 없이 휘둘러지면서 기사단 석상들 사이를 일직선으로 돌파하며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그렇게 휘둘러질 때마다 녀석들의 신체가 한두 곳씩 깊게 패어지며 기다란 검상들을 만들어내었다.

    동시에 마검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서 혈흔이 터지며 마검이 그 흔적들을 공중에서 모조리 빨아들였다.

    《 봉인된 마검이 높은 등급의 피를 대량으로 흡수했습니다. 》

    《 마검이 소유자에게 피의 회복을 시전합니다. 》

    《 마검이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잔여 체력 76/100% 》

    .

    .

    《 마검이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잔여 체력 98/100% 》

    녀석들을 돌파하듯 일직선으로 달리며 마검들을 휘둘렀기에 자잘하게 내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사단 석상들의 숫자가 많기도 하고.

    거기다 녀석들은 무기 역시도 자유자재로 변형해서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매번 다른 형태로 무기의 길이를 변화시켜 공격해 왔으니 아예 안 맞고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어 내게서 빠져나가는 체력보다 다시 되돌아오는 체력이 훨씬 많았다.

    체력이 빠지기 무섭게 다시 쭉쭉 차오르는 걸 보는 것도 쾌감이랄까.

    그리고 그렇게 몇 번 해봤더니 이젠 내 체력이 빠지는 것도 무덤덤할 지경이었다.

    어차피 다시 차오를 테니.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젠 신체를 움직이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무기가 휘둘러지는데도 그대로 돌파해 나갔다. 상체를 낮춰 어깨를 내어주고는 반대로 공격한 녀석의 허리를 두 개의 마검으로 뜯어내듯 갈라놓으며 지나가자 바로 기사단 녀석이 무릎을 꿇으면서 쓰러졌다.

    살을 내주고 뼈를 친다는 말이 아마도 여기에 쓰이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정말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자잘한 피해를 받아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마검들이 빨아들이는 피가 중간에 이리저리 몸 위로 겹쳐져서 이젠 뭐가 내 피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아예 피를 뒤집어쓰고 싸우고 있다고 해야 하나?

    지금 내 모습을 누가 보면 그야말로 혈인이나 마찬가지로 보일 것이다.

    기사단 석상 몇 놈을 더 쓰러뜨리고는 그대로 몸을 빼내서 바깥으로 나오자 어느새 상처가 다 아물어서 갑옷 위로 흐르는 피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대신 연이은 돌격에 입고 있던 갑옷은 꽤나 상했는지 성해 보이는 구석이 없었다.

    “흐음. 이건 못 쓰겠네.”

    그대로 보급품인 기사단 갑옷을 버려버리고 바로 주변에 널린 다른 기사단 갑옷을 들어 올려 착용했다.

    이러면 갑옷 문제는 해결이고.

    어차피 내구도 때문에 오래 입지도 못했을 텐데.

    바닥에 널린 게 기사단 석상들이 죽고 남긴 갑옷이라 교체하는데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렇게 다시 갑옷을 착용하는 동안 기사단 석상 쪽을 바라보자 녀석들도 악에 받쳐서 내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딱히 이성이라고 할 만한 건 없는 듯한데…….

    아마 녀석들의 보스라 할 수 있는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가 뭔가의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은 저 상태를 유지할 것 같았다.

    뭐 나야 고맙지.

    괜히 다른 곳으로 눈 돌리면 내 쪽도 꽤 귀찮아지니까.

    【 메가 힐! 】

    【 메가 힐! 】

    .

    .

    그때 저쪽 한 편에서 기사단 석상들에게 힐이 잔뜩 날아들어 녀석들을 회복시켜 주었다.

    회복술사 녀석들.

    꽤 귀찮게 해주네.

    한 번에 기사단 석상들을 죽이지 못하면.

    그대로 회복술사들이 회복을 시켜 원상태로 만들어놓을 테니.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형! 회복술사들 좀 처리해 줘요.”

    “이미 처리하고 있어!”

    고개를 돌리자 재중이 형이 회복술사들 사이를 누비면서 창을 크게 휘둘러 몇 마리의 회복술사의 목을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상대하던 적에게 힐이 좀 적게 들어온다 했더니.

    벌써 내가 만들어 놓은 빈틈을 치고 들어가 처리한 모양이었다.

    이래서 편하다니까.

    “그럼 전 기사단을 마저 몰아 볼게요.”

    “큭. 수고해라.”

    몰이 같지 않은 몰이지만.

    어쨌든 모는 건 마찬가지니.

    여기에 챠밍의 광역기 같은 게 몇 방 떨어지면 더 좋을련만.

    지금은 기사단 석상들에게 포위 당해 있는 상황이라.

    아쉽게도 그런 지원을 받긴 힘들어 보였다.

    “그럼 한 번 더 해볼까?”

    【 대쉬! 】

    재중이 형이 사기라 칭한 이 닥돌로 다시 기사단 석상들 중앙을 그대로 파고들면서 녀석들과 대놓고 치고받자, 역시나 체력이 빠지고 차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기사단 석상들이 하나둘 쓰러져 갔고.

    점점 내 주변을 압박하는 기사단 숫자가 확연히 줄어나가기 시작했다.

    《 봉인된 마검이 높은 등급의 피를 흡수했습니다. 》

    《 봉인된 마검이 높은 등급의 피를 흡수했습니다. 》

    .

    .

    그리고 그 와중에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높은 등급의 피를 일정 이상 흡수해 마검의 봉인이 일부 해제됩니다. 》

    흐음.

    이런 식으로 봉인을 푸는 게 맞긴 맞는 모양이네.

    메시지와 동시에 마검의 형태가 일부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피처럼 붉은색을 띤 뭔가 복잡한 문자열이 검신을 따라 쭉 문양처럼 새겨져 나갔다.

    거기다 마검의 눈 역시도 확연히 더 진한 붉은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또 울렸다.

    《 스킬 : 【 드레인 블러드 】가 마검의 옵션에 추가됩니다! 》

    《 스킬 : 【 피의 회복 】가 마검의 옵션에 추가됩니다! 》

    《 스킬 : 【 피의 축제 】가 마검의 옵션에 추가됩니다! 》

    《 스킬 : 【 블러드 스트라이크 】가 마검의 옵션에 추가됩니다! 》

    스킬 추가?

    이건 그동안 비어있던 옵션 중에 하나가 열렸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봉인도 풀렸다는 듯이 될 테고.

    『 +0 봉인된 마검? (전설)

    / 출혈 ? 타격 ?

    - ?

    - ?

    - ?

    - ?

    - ?

    .

    - 스킬 : 드레인 블러드

    - 스킬 : 피의 회복

    - 스킬 : 피의 축제

    - 스킬 : 블러드 스트라이크 』

    애초에 다른 마신의 파편인 테르타로스야 몬스터들에게 스킬들을 뺏어서 쓰는 형태라 전용 스킬이라는 게 없는 녀석이지만.

    이 마검은 달리 전용 스킬이 존재했다.

    무려 마신의 파편급 무기에 붙어 나오는 스킬이다.

    대천사의 검인 라페르나보다 윗등급인 무기인 걸 고려해 보면…….

    최소 그랜드 크로스보다도 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게 했다.

    혹시 지금 쓸 수 있으려나?

    내가 보기에 추가된 스킬 중 드레인 블러드는 아마도 지금까지 계속 써왔던 마검의 타격 시 흡혈하는 스킬을 뜻할 것이다.

    딱히 액티브 스킬도 아닌 듯했고.

    이건 항시 유지되는 패시브 스킬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리고 피의 회복은 이미 몇 번이나 받아봐서 잘 알고 있었다.

    드레인 블러드로 피를 흡수하면 그걸 피의 회복으로 내게 돌려주는 기본적인 마검의 시스템.

    물론 크리티컬을 넣어야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건 꽤 어려운 일일 테지만.

    내게는 그다지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피의 축제.

    블러드 스트라이크.

    느낌상 블러드 스트라이크가 액티브 스킬일 듯 한데…….

    그럼 피의 축제는 뭐지?

    써볼까 하다가 아무런 설명도 되어 있지 않는 스킬 설명을 보고는 잠시 난감함을 느꼈다.

    이거…….

    잘못 썼다가 이상한 방식으로 적용되기라도 하면?

    혹시나 싶어서 피의 축제를 시전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이건 나중에 좀 주변 여건이 허락되는 상황에서 써봐야겠지.

    그래서 먼저 블러드 스트라이크를 쓰려는데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선행 스킬을 시전하셔야 합니다. 》

    선행 스킬?

    그때 문득 대천사의 검인 라페르나가 떠올랐다.

    라페르나 역시도 선행 스킬이 있긴 했었지.

    그랜드 크로스를 쓰기 전에 써야 하는.

    대천사의 가호.

    이 스킬이 없으면 그랜드 크로스 역시 나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는 건 역시 피의 축제가 같은 용도라는 건데…….

    문제는 이 피의 축제가 어떻게 적용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이걸 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뭐 지금도 딱히 나쁠 건 없긴 한데.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기사단 석상은 내가 묶고 있고 재중이 형은 회복술사들을 천천히 녹여가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원래 목적한 바는 거의 이룬 상태랄까.

    굳이 문제를 찾자면.

    우리를 도와주었던 7기사단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죽을 거라는 것 정도인가.

    무리한 돌파로 인해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입어 지금은 전멸 직전이었다.

    그나마 내가 기사단 석상 일부를 끌어와 주었기에 지금 버티는 중이지만.

    게다가 7기사단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그렇게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7기사단이 빠지면서 받았던 기사단 석상들의 압박에 큰 피해를 입은 건 매한가지였다.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를 맡고 있던 기사단장들도 이젠 거의 초죽음 상태에 가까워 보였고.

    이렇게 보니 정말 개판이긴 하네.

    만약 지금 회복술사들을 처리하지 못 했다면.

    이 일대는 죄다 죽어나가 다시 일어난 기사단 석상으로 가득했을 터다.

    지금도 뭐 딱히 좋다고는 못하겠지만.

    잠시 고민 끝에 마검을 손에 꼭 쥐었다.

    “너 설마 주인을 물고 그러진 않겠지?”

    우우웅!!

    아니라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충분히 그럴 만한 녀석 같아서 또 문제다.

    차라리 라페르나를 꺼내서 그랜드 크로스를 쓸까 고민도 했지만.

    여기 있는 기사단 녀석들도 천사들을 보긴 했을 테니.

    그랜드 크로스를 썼다가 얼마나 문제가 될 진 안 봐도 뻔한 일이다.

    휴.

    결국 이 마검으로 해결을 봐야 한다는 거네.

    “형! 저 잠시만 여기 커버해 줘요.”

    재중이 형을 부르자 어느 정도 회복술사들을 정리했는지 여유있게 내게 달려왔다.

    “문제 있어?”

    “마검의 봉인이 좀 풀렸는데 쓸 만한 게 보여서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

    재중이 형이 내 앞을 굳건하게 막아서면서 말했다.

    “써 봐. 뒤는 내가 봐줄 테니.”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마검의 스킬을 시전했다.

    【 피의 축제! 】

    그렇게 피의 축제를 쓰자마자 내 체력과 마력이 동시에 바닥까지 끌려내려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마검으로 체력과 마력이 빨려나간다고 해야 하나?

    칫.

    역시 문제가 있는 스킬이었어.

    중간에 스킬을 캔슬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 등 뒤로 검붉은 빛의 날개가 확 펼쳐져 나왔다.

    흡사 대천사의 가호 같아 보이는 날개였는데.

    화려한 빛의 날개와는 달리 이번엔 불길하게 끈적이는 느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붉은빛의 날개가 펼쳐지더니 주변에 있는 모든 기사단 석상과 회복술사 석상들의 몸 전체에서 강제로 피를 빼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힘에 이끌려 억지로 피가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사방의 허공이 죄다 핏줄기로 변해 일제히 내 날개로 흡수가 되기 시작했고.

    피가 흡수된 기사단 석상들 전체가 그 자리에서 풀썩거리며 힘을 잃고 쓰러지거나 엎어지며 힘없는 괴성을 질러댔다.

    방금 전까지 에센시아 기사단들을 죽일 듯이 달려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우어어!”

    “으어!”

    그리고 이 모습을 본 기사단들 전부가 뭔가에 씌인 듯 내게 시선이 돌려졌다.

    문제는 이 에센시아 기사단들 역시도 내 마검에 체력을 잔뜩 빨아 먹히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기사단들 역시도 제자리서 풀썩 쓰러져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

    이거 조용히 넘어가긴 이미 틀린 것 같은데.

    설마하니 피의 축제라는 스킬이 이렇게까지나 이펙트가 요란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거기다 효과도 엄청나기도 하고.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타락 천사 석상을 한 번에 눌러 버렸으니.

    그때 옆에서 재중이 형이 앓는 소리를 했다.

    “그 스킬 장난 아닌데?”

    “네?”

    “지금 내 체력도 줄줄 샌다.”

    재중이 형 역시도 체력이 빨리면서 어이없다는 듯 내 마검을 보고 있었다.

    “아마 퍼센트 단위로 피를 빼가는 것 같은데? 속도가 장난 아냐.”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멀쩡한 건.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거다.

    굳이 또 찾자면.

    저기 있는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 정도랄까.

    신기하게도 이 마검은 저 네임드에게서도 체력을 계속 뺏어오는 중이었다.

    특히 녀석에게서 뺏어오는 핏줄기는 다른 녀석들보다 압도적으로 진하고 굵었다.

    여기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을 다 합쳐도 저 녀석 하나만 못하다고 해야 하려나.

    “형, 방금 퍼센트 단위라고 했어요?”

    “어. 아주 미친 듯이 빨아들이는데?”

    그렇게 내 시선이 재중이 형에게 갔다가 다시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로 돌아가자 재중이 형이 바로 눈치챈 듯 눈빛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이거 참. 진짜 괴물은 여기 있었네.”

    그때 마검이 웅웅 울리면서 내게 신호를 줬다.

    마침 괜찮게 피가 차올랐다는 듯.

    하.

    너란 녀석.

    그리고 내 시선에 한 가지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스킬은.

    지금껏 끌어 모은 이 피들을 쓰는 스킬일 것이다.

    심지어 저 네임드의 체력까지도.

    “그럼 다녀올게요.”

    그렇게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 쪽으로 걸어가자 그동안 녀석을 상대하던 네 명의 기사단장들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들 역시도 체력이 빨려서 쓰러져 있기는 마찬가지라.

    “잠시 실례하죠.”

    그리고는 마검의 검신을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 쪽으로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 블러디 스트라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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