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9화 신의 흔적 (12)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에서 얻은 아이템 중 전사 형이 마지막에 골라서 가지고 나온 건 바로 이 발뭉이라는 검이었다.
한 번밖에 고를 수 없는 상황에서 전사 형이 다른 좋은 아이템들을 모두 마다하고 이 아이템을 가지고 나온 건.
오직 하나.
무기에 방어력이 달려있다는 특이한 옵션 때문에.
기존의 방어구에 이 무기까지 더하면 다른 유저들은 따라올 수 없는 극강의 방어력 수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방어구만이 아니라 이 발뭉이라는 무기로 쉴드를 대신할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방어력이 달렸다는 말은.
곧 무기가 곧 방어구라는 뜻이 될 테니.
전사 형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이 발뭉이라는 아이템은 그 어떤 아이템들보다 값어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템이 무려 마왕의 아이템이란다.
그것도 들어보지도 못한 어떤 하위 마왕의.
맥크라이에게 마왕의 무기라는 말을 듣고 난 뒤.
전사 형이 발뭉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그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발뭉 님. 몰라봤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옆에서는 그 모습을 본 나르샤 누나가 이마에 손을 짚고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음. 제사는 그만 지내시고요.”
“흠흠. 그렇지. 어쩌면 된다고?”
“아무래도 전사 형이 쟤들 좀 맡아줘야 할 것 같다고요.”
현 방어력만 치면 최강이라고 칠 수 있는 타이탄 풀 플레이트.
거기다 마왕의 무구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베르탈륨으로 되어 있는 마왕의 무기인 발뭉.
이 조합이면 충분히 저 석상들을 상대로도 게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될까?”
“전사 형이 못 버티면 현시점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흐흐. 역시 그렇지?”
칭찬과 함께 의기양양해진 전사 형이 곧장 발뭉과 함께 강화석을 꺼내 들었다.
“이거 정말 아껴놓은 건데 말이야.”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은 현재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따금씩 이벤트로 뿌려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강력한 네임드를 잡거나 특수 이벤트를 달성해야 나오는 귀한 아이템이니까.
경매장에 한 번 나오기라도 하면 정말 묻고 따지지도 않고 돈 많은 유저들이 무조건 쓸어 담는 아이템 중에 하나였다.
전사 형은 혹여나 발뭉보다 더 좋은 무기가 나올 수 있어 아껴놓은 듯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사실상 마왕의 무기보다 더 나은 무기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대천사의 무기나 마신의 무구 정도가 되지 않으면.
곧장 강화석이 발뭉에 녹아들면서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방패전사 님이 【 +10 발뭉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시스템 메시지에 있었다.
10강화를 하는 순간 바로 서버 전체에 알림이 울리니.
- 어? 10강 떴다.
- 방패전사잖아?
- 발뭉?
- 야. 이거 스펙 안 뜬다. 특수 템이야.
- 캬. 또 하나 건졌나 보네.
- 진짜 저 길드는 어디서 저런 것만 구한데?
-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 좋은 거겠지?
- 그러니까 10강 강화석 썼겠지.
- 대체 무슨 무기여야 옵션이 안 뜨는 거야?
“휴. 다행히 스펙은 안 뜨나 보다.”
전사 형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방어력이 달린 무기라는 건 정말 특수 무기 중에 하나였다.
그건 전사 형에게 비장의 수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최소 마왕의 무기 이상은 옵션이 안 뜬다는 거네요.”
마왕 올펠의 방어구가 있긴 한데.
이건 전사 형이 안전 강화까지만 해놓은 상태였다.
괜히 더 올렸다가 확 깨질 수도 있는 노릇이라.
다시 구할 수도 없는 아이템을 가지고 도박을 해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 챠밍을 보자 챠밍 역시 눈빛을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챠밍> 제 무기도 아마 베르탈륨으로 되어 있을 것 같아요.
<주호> 그래. 그것도 마왕의 무기니까.
전사 형의 발뭉이 이번에 맥크라이를 통해서 알게 된 아이템이라면.
챠밍이 가진 스태프는 처음부터 마왕의 무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 그냥 주워온 발뭉과 다르게 습득 이벤트까지 있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무려 성마대전 시대 마왕 서열 2위의 스태프이기도 하고.
급수로 치면 마신의 무기 바로 아래급이면서 발뭉보다는 월등한 위치다.
원 소유자인 마왕의 힘과 비례한다고 가정했을 때 말이지.
상위 마왕과 하위 마왕은.
사실 그 능력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당장 마왕 바이카르와 하위의 마왕들을 비교해 봐도 그건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챠밍> 혹시나 했는데 저도 써도 되겠어요.
챠밍도 혹여나 스태프의 옵션이 새어나갈까 봐 기본 강화만 해둔 상태였는데.
전사 형의 경우를 보니 딱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주호> 그래. 최선을 다하는 게 좋겠지.
저 석상들의 능력이 어떨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선 우리 쪽도 최상의 상태로 나설 필요가 있었다.
곧 챠밍 역시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곤 바로 스태프를 꺼내 들고는 강화를 시도했다.
《 챠밍 님이 【 +10 아이셔스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아이셔스.
현 마왕 서열 2위의 스태프의 네임이었다.
그리고 이 네임은 그 마왕의 네임과 동일했다.
챠밍이 인챈트를 하자마자 다시 채팅창이 들끓었다.
- 이번엔 챠밍이네.
- 어? 뭐야? 오늘 무슨 날이야?
- 하. 이것도 옵션 안 보임.
- 미쳤네. 주호네 애들은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지?
- 모르지. 어디서 마왕 같은 거 잡고 있을지도.
- 부럽다 진짜. 챗창에 옵션 안 뜨면 최소 네임드 각인데.
아니.
네임드도 아니고 아예 마왕의 무기다.
그때 맥크라이가 날듯이 뛰어가더니 챠밍 앞에 무릎 꿇으면서 쓰러졌다.
“헉! 이건 또 뭔가.”
“뭐긴요. 그것도 마왕의 무기입니다.”
“허업!”
이 양반.
이러다 진짜 숨넘어가겠네.
스태프는 보통 마법 공방 쪽 무기이긴 한데.
이 정도 등급의 무기는 종류 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드워프들의 손을 거치는 게 정상이었다.
당연히 맥크라이 역시도 챠밍의 아이셔스를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 살다가 이런 무기를 볼 수 있게 되다니…….”
“대천사의 무기도 봤으면서 뭘 그렇게 놀래요?”
“흠. 몰랐나? 이건 자네의 그 대천사의 무기와 동급이야.”
“네?”
이건 꽤 놀랄 일인데?
라페르나와 동급이라니.
챠밍 역시도 깜짝 놀랐는지 맥크라이와 자신의 아이셔스 스태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천사들의 무구들의 정점에 있는 게 바로 대천사들의 무구거든.”
“그럼…… 이 스태프가?”
“그렇지. 마왕들의 무기들 중 거의 정점에 있는 무기다. 마계 전체를 통틀어 봐도 몇 개 안 되는 무기야. 그런데 어떻게 이런 무기가 여기 있을 수 있…….”
차마 말을 끝내지 못하고 흥분하고 있는 맥크라이를 보고는 바로 마왕 바이카르를 떠올렸다.
대체 이 녀석은 어떻게 이런 무구들을 이렇게 많이 모아둘 수 있었지?
그리고 대천사의 무구를 사기 쳐서 얻었을 때 봤던 대천사 루스의 능력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마왕 아이셔스의 능력을 얼추 가늠해볼 수 있었다.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오더니 농담 섞인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이거 마왕 아이셔스하고 마주치면 무조건 튀어야겠는데.”
“네. 대천사 루스하고 같은 등급이라는 소리잖아요.”
솔직히 지금 붙는다고 해도 대천사 루스를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때 보여준 능력을 고려해 본다면 말이지.
문제는 이 성마대전 시대에.
그 마왕 아이셔스가 실존하고 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결국 성마대전을 치르다 보면 마주치게 될지도.
“혹시 타이탄 부대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을까요?”
“난 그것도 자신 없는데?”
“역시 그렇죠?”
그 와중에 넋이 나간 맥크라이가 챠밍의 아이셔스 스태프를 잡으려는 걸 겨우 밀어놓았다.
“대체 자네들 이걸 어떻게 얻은 건가.”
“음…… 이쪽은 받았다고 해두죠.”
“뭐?”
그 답이 꽤 황당했는지 맥크라이가 챠밍을 쳐다보자 챠밍이 약간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포기한 듯한 모습으로 맥크라이가 크게 웃어 버렸다.
“허허…… 난 이제 자네들이 뭐 하는 인간들인지 모르겠어.”
대천사의 무기에 마왕의 무기들이 계속 나오는 파티라.
누가 봐도 황당한 조합이긴 했다.
허탈하게 웃는 맥크라이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저 석상들 상대가 될까요?”
“대천사의 무기에…… 마왕의 무기라. 아마도 가능할 걸세.”
확신은 못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는 뜻이려나.
곧장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여차하면 튀어야 하니까…….”
이 정도 조합으로도 안 된다면.
뭘 가져와도 안 된다는 뜻일 테니.
“퇴로는 준비해 놓지.”
그리고는 전사 형을 바라봤다.
“해보죠?”
“그래. 가자!”
막내별이 바로 달려와 전사 형에게 버프를 싹 돌렸다.
다른 종류의 버프를 한참 걸고 난 뒤 전사 형의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일단 걸 수 있는 건 다 걸었어요.”
“땡큐.”
곧 전사 형이 온몸을 번쩍거리며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가 잠깐 발을 멈추고는 슬금슬금 조금씩 거리를 좁혀 나갔다.
저게 정석적인 접근이랄까.
정체를 모르는 녀석들을 상대하는데 무조건 닥돌하는 건 죽여 달라는 말과 같았다.
그렇게 전사 형이 어느 정도 위치에 다다르자 석상들이 부르르 떨더니 제일 앞에 있던 석상이 주변에 떨어져 있던 파편들과 합쳐지기 시작했다.
“역시 장식은 아니었네.”
그런데 보다 보니 그 모습이 어디선가 봤던 것과 굉장히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형. 저건…….”
“아아. 그래. 그 녀석과 꽤 비슷하네.”
바닥에 떨어져 나간 석상이 모두 복구가 되자 거대한 날개를 네 장 가지고 있는 하얀 나체로 된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개를 제외한 신체는 마치 사람과 비슷한 형상이었는데, 정작 머리 부분은 전혀 달랐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쇠로 된 구속구가 잔뜩 박힌 길게 뻗어있는 유선형의 머리랄까.
그리고 곧 제일 앞에 있는 석상 중 하나가 고개를 전사 형 쪽으로 돌리는 순간.
구속구 사이로 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려 시뻘겋게 충혈된 여섯 개의 눈이.
동시에 머리의 절반이 찢어지면서 그 안에 커다란 이빨들과 혀가 뻗어져 나왔다.
기괴하게 생긴 그 모습에 약간의 혐오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르샤 누나가 살짝 표정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뭐야. 저게…….”
챠밍과 이쁜소녀, 막내별도 반응은 별반 다르진 않았다.
마치 장난기 있는 누군가가 이런저런 다른 종족을 막 짜깁기해 둔 것 같은 모습이려나.
녀석은 곧 허리 역시 구부정하게 구부러지더니 목이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각도로 꺾어지면서 지하 사원을 긁어대는 목소리가 나왔다.
“크에엑! 인간. 맛있는 냄새가 난다!”
동시에 뒤에 있던 모든 석상들이 앞의 녀석과 같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든 석상들의 눈과 입이 벌어져 갔다.
어둠 속에서 수백 개의 찢어진 붉은 눈이 한꺼번에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란.
그 자체로 소름 돋는 장면이었다.
그리곤 녀석들의 머리 위로 하나씩 네임이 뜨기 시작했다.
『 합성된 타락 천사의 잔해. 』
합성?
저게 천사라고?
아니.
그보다 여기서 왜 천사가 나와?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바로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평범한 사원은 아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