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화 신의 흔적 (2)
우리가 처음 이 성마대전 시대에 떨어졌을 때.
에센시아 제국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장소에서 시작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이 한참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네임드들끼리 싸움이 붙었다고 여겼지만.
어떻게 보면 네임드끼리 싸움이 붙는 건 꽤 자주 봐왔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 전투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대가가 걸린.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주호> 형, 아무래도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은데요?
<불멸> 방금 다 들었다.
그리고는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불멸> 이거 참. 아크 드래곤이 에센시아 제국에 있는 헤르마늄 광산의 파수꾼이었다니. 이제야 타이탄이 거기 있던 게 설명이 되잖아?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 네, 그땐 그냥 타이탄이 제어가 안 되어서 그곳까지 갔다고 생각했는데…….
<불멸> 흐음. 아마 제어가 안 되는 건 맞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지금 레오나 에센시아가 저렇게 나올 리도 없고. 맥크라이의 태도만 봐도 제어가 안 되는 건 확실해.
<주호> 그렇다면?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유추했다.
<불멸>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돼. 제어가 안 된다고 타이탄을 아예 못 써먹는 건 아니니까.
그런 재중이 형의 대답에 나 역시 곧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주호> 타이탄을 아크 드래곤의 영역에 던져두고 온다는 거죠?
<불멸> 그렇지. 에센시아 제국성 근처에서 제어가 안 된다면 큰 문제겠지만. 그냥 광활한 장소에서 날뛰는 건 상관없을 테니.
재중이 형 말이 맞다.
빼곡하게 각종 시설들로 인프라가 이루어져 있는 에센시아 제국성 한복판에서 타이탄이 제멋대로 날뛰면 아무리 황제라고 하더라도 감당 못할 피해를 입을 것이다.
반대로 근처가 날아가도 아무 이상 없을 장소에서는 타이탄이 날뛰든 말든 그런 피해는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날뛰면서 아크 드래곤과 전투를 벌여주면 금상첨화고.
실제로 우리가 이 성마대전 시대에 왔을 때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이 한 판 붙고 있었으니.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노림수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타이탄이 아크 드래곤을 압도하거나 잡진 못 했지만.
적어도 아크 드래곤에게 일정 이상 피해 정도는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놈의 황제는 처음부터 아크 드래곤을 노리고 타이탄을 그 장소에다가 풀어놓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처음에 예상했던 제어가 안 되는 타이탄이 제 발로 걸어가 그곳까지 간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주호> 제국 황제가 헤르마늄 광산의 파수꾼인 아크 드래곤을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나 보네요.
<불멸> 그래. 아마 타이탄으로 최대한 피해를 입히고 아크 드래곤을 잡아볼 생각이었겠지.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뒤따라온 아크 드래곤이 에센시아 제국성으로 와서 깽판을 치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
그렇게 제국 황제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가 이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원하는 바를 얻게 된다.
아예 계획에서 고려하지도 않았던.
우리가 아크 드래곤을 잡아 버렸으니.
<주호> 지금 생각해 보면 제국 황제가 왜 그렇게 퍼주었는지도 알겠네요.
단순히 레오나 에센시아 좀 밀어주라고 생색내듯 퍼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무려 헤르마늄 광산을 우리 덕에 공짜로 먹었는데 뭘 못 퍼줄까.
아크 드래곤을 잡는 과정에서 성유와 정령석을 죄다 가져다 쓰고.
비공정을 그렇게 많이 폭파시켰는데도.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그냥 웃으면서 넘겨 버린 건.
그놈의 배포가 그만큼 컸던 게 아니라.
그럴 만하니까 넘어가 준 것이었다.
<불멸> 타이탄까지 소모해가면서 얻으려 했던 헤르마늄 광산을 손에 넣었는데 어지간한 것들은 그냥 넘어갔겠지.
<주호> 그것도 매장량이 엄청나다는 광산을요.
드워프 장로인 맥크라이의 말에 따르면 타란 제국, 요하스 성국, 베르마 제국에 있는 광산들은 모두 매장량이 풍부하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이 에센시아 제국에 있는 헤르마늄 광산 역시 마찬가지.
어지간히 손해를 봤더라도.
이 헤르마늄 광산 하나면 다 이야기가 된다.
<주호> 소모된 타이탄은 헤르마늄으로 다시 거래를 하면 되겠죠.
<불멸> 아아. 그래. 천사 녀석들이 헤르마늄에 미쳐 있다니까.
지금 성마대전이 일어나는 이유도 그 헤르마늄과 베르탈륨 광산을 좀 더 가져보겠다고 천사들과 마왕군이 서로 치고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매장량이 엄청난 헤르마늄 광산이 툭 튀어나온다면?
잠시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불멸> 이 시점에 매장량이 넘치는 헤르마늄 광산이라…… 아주 피바람이 불겠는데?
나 역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마주 웃었다.
<주호> 만약 천사군이나 마왕군 쪽에 정보가 샌다면 말이죠.
작은 광산 하나로도 땅가르기를 하면서 치고받는 중인데.
맥크라이도 놀랄 정도의 매장량을 가진 헤르마늄 광산이면 더 할 말도 없었다.
이건 그냥 천사군과 마왕군의 전면전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군을 끌고 와서 치고받는.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전쟁의 서막이랄까.
어쩌면 우리가 그 도화선에 바로 불을 붙여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고.
뭐 당장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건 순전히 앞으로의 협상 결과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성의를 보이는가의 문제랄까.
<주호> 황제가 어떻게 나오는가 보고 결정해야겠네요.
<불멸> 아아, 그렇지. 녀석의 성의가 부족하면…….
<주호> 성마대전의 역사를 확 갈아엎는 거죠 뭐.
이쯤 되면 중간에 천사와 영웅이 어떻고, 마왕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다 잊어도 된다.
당장 성마대전의 본편으로 들어가서 죄다 죽어 나갈 테니까.
다른 말로.
성마대전 역사가 한 치 앞날을 모르는 개판이 된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기존 자료를 가지고 이득을 보려던 유저들도 죄다 새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재중이 형과 이야기가 끝내는 동안 레오나 에센시아와 맥크라이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오나 에센시아 같은 경우에는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 우리 사이에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고.
분명히 내 입으로 내 몫으로 받아야 할 것들을 못 받았다고 말했으니까.
그리고 드워프의 장로인 맥크라이는 온전히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제국 황제가 어떻든 말든.
맥크라이의 관심사는 실종된 드워프의 왕과 헤르마늄 광산일 테니까.
먼저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물었다.
“에센시아 제국에 있는 헤르마늄 광산. 제국 황제가 온전히 가진 상황이 아니었죠?”
그러자 순간 눈빛이 흔들린 레오나 에센시아의 시선이 맥크라이에게 돌아갔다.
“말해도 될까요?”
레오나 에센시아의 허락을 요하는 물음에 맥크라이가 결국 나섰다.
“흠, 그냥 내가 설명하지.”
그리고는 곧장 날 보면서 말했다.
“어차피 난 제국 황제와의 관계는 신경 쓰지 않으니까 사실대로 말해 주지.”
“제 말이 맞나요?”
바로 맥크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맥크라이에게서 의외의 말을 듣게 되었다.
“맞네. 사실 에센시아 제국에서 발견한 헤르마늄 광산은.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한 거니까.”
최초 발견이라…….
그렇다는 말은 그 누구보다도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특히 이곳 에센시아 제국에는 드워프의 대장로가 없는 것으로 보이니까.
거기다 아마도 이 맥크라이가 드워프 중에서는 최고 권위자일 확률이 높았다.
그것도 매장량이 높은 헤르마늄 광산을 발견할 정도의 능력이 있는.
차기 대장로 감의 드워프겠지.
제국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이 정도쯤 되니까 가능할 것이다.
곧 맥크라이가 말을 이었다.
“발견은 내가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쓸 수 없는 광산이었어.”
이건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아크 드래곤 때문이죠?”
“그렇지. 그 최강의 파수꾼이 있어서 차마 아무도 헤르마늄 광산에 들어갈 수 없었다네.”
그때 재중이 형이 맥크라이에게 물었다.
“혹시 드워프 왕이 에센시아 제국에 있는 헤르마늄 광산에 들어간 겁니까?”
재중이 형의 물음에는 맥크라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대장로 중에 한 분이 들어가셨지. 원래는 드워프 왕께서 들어가시려고 했으나 일정이 바뀌어서.”
만약 들어갔다면 십중팔구 드워프 왕이 바뀌게 되었을지도.
<주호> 일단 에센시아 제국은 아니라는 거네요.
<불멸> 아쉽게 됐지.
만약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에 드워프 왕이 들어갔다면 다른 광산들은 굳이 뒤져볼 필요도 없었다.
그냥 바로 이 광산에 진입해버리면 그만이라.
이미 파수꾼인 아크 드래곤이 사라진 순간부터.
헤르마늄 광산은 보물만 남아있는 장소일 뿐이었다.
곧장 맥크라이에게 물었다.
“그럼 드워프 대장로는……?”
“흠. 아쉽게도 이미 돌아가셨다네.”
“이미 가보셨군요.”
내 말에 맥크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 드래곤이 잡혔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드워프들을 파견했지.”
그런데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주호> 형, 파수꾼인 아크 드래곤을 잡았으면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불멸> 흐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혹시 이미 잡아버린 뒤라 퀘스트가 막혀버린 거려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진행에 다소 진이 빠지려는 중에 맥크라이게 내게 조심스럽게 한마디 말을 꺼냈다.
“자네. 아크 드래곤을 잡은 영웅이니까 특별히 말해주는 건데…… 왜 제국 황제가 그렇게까지 헤르마늄 광산을 얻으려고 했는지 알고 있는가?”
그러자 옆에서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 레오나 에센시아가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맥크라이를 잠시 만류했다.
“알게 되면 제국 황제께서 장로님을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지 않겠나. 빠르고 느림이 있을 뿐.”
“하지만…….”
“내 걱정은 말게. 모든 것은 드워프 왕의 뜻대로.”
역시 드워프들은 드워프 왕의 의지가 선행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황녀께서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러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짧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레오나 에센시아와 맥크라이에게도 꽤 민감한 상황인 것 같은데.
그런데도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건 맥크라이가 결심을 했다는 뜻이다.
곧 눈빛을 무겁게 하고는 내게 말을 꺼냈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단순히 헤르마늄 광산만을 얻고자 움직인 게 아니야.”
“그럼?”
“그보다는 더 높은 곳. 저 천계의 천사들조차 아직 닿을 수 없는 곳을 보고 있지.”
그때 바로 우리들의 귓가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메인 퀘스트 : 신의 흔적. 》
- 고대 신들의 흔적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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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예전에 습득했던 정령신의 흔적과 같은 계열의 메인 퀘스트였다.
곧 맥크라이가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신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