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5화 새로운 용사 후보 (14)
성마전쟁 시대의 크루아 대륙 역사를 보면 늘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용사라던가…….
또 용사…….
흔히 말하는 그 마왕을 물리친다는 용사가 여기서는 자주.
그것도 꽤 빈번하게 등장한다.
사실 마왕이 하나만 있다면 용사도 하나만 있는 게 맞겠지만.
알다시피 그놈의 마왕들이 마계에는 수도 없이 많아서 말이지.
당장 우리가 이전에 차지한 시아트 마왕성도 그런 수많은 마왕들 중에 하나의 거점이었다.
카르페디움 마왕성도 마찬가지.
그 외에도 마왕 올펠의 마왕성도 있었고.
또 다른 마왕들의 거점도 마계에는 다수 존재했다.
당연하겠지만.
그 많은 마왕의 숫자만큼이나 인간족 진영에서는 용사를 밀고 있었다.
마왕에 대적하는 대항마로서.
그 용사가 제대로 마왕을 이길 수 있는냐는 차지하더라도.
일단은 숫자를 맞춘다는 느낌이 강하달까.
그 증거가 각 제국과 왕국에 존재하는 수도 없이 많은 용사들이었다.
성마전쟁 시대를 대표하던 르아 카르테를 가지고 있던 용사인 레온 브라이더도 그런 인물 중에 하나였고.
뭐 멀리 가지 않더라도.
그런 인물은 여기 하나 더 있었다.
에센시아 제국에 레온 브라이더가 있다면.
타란 제국에는 카샤스 대공이 있다고 보면 되려나?
레온 브라이더만큼이나 용기사로 널리 알려진 타란 제국의 대표적인 용사 중에 하나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만난 그 어떤 용사들보다.
아마 옆에 앉아서 실실거리는 이 카샤스 대공이 강할 것이다.
용사들 사이에서도 그 격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감안할 때.
이 카샤스 대공은 용사들 사이에서도 거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인물이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봤던 상위 마왕과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좀 손색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용사가 강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중간에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용사 후보.
미래에 싹수가 보이는 용사가 될 만한 녀석들을 추려서 후보로 정해 둔달까.
일종의 예비 용사라고 볼 수 있었다.
용사가 죽어 나가거나.
공백이 생길 때를 대비한.
굳이 마왕군에 비교를 하자면.
상위 마족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왕은 되지 못했지만.
그에 준할 만큼 강한.
혹은 세력이 많다던가 하는.
당연히 이쪽도 예비군의 속성이 강하다.
다른 점을 찾자면…….
마왕 쪽은 죽여서 자릴 뺏는다는 게 다르다고 해야 하나?
언제라도 빈틈을 보이면 상대의 목을 가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게 마족들이다.
심지어 같은 마왕들끼리도 못 잡아먹어서 난리니…….
어쩌면 그래서 마왕들이 훨씬 강할지도 모르겠다.
죽지 않기 위해 항시 경쟁을 하며 능력을 키워야만 하는 쪽과.
그저 제국이나 왕국에서 밀어주는 용사들이 같은 레벨에서 싸운다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니까.
이러다 보니.
용사 후보는 정말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이 존재했다.
질이 안 좋으면.
양으로 밀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 눈앞에 있는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그런 용사 후보에 날 추천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용사 후보가 평가 절하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당연히 있으면 좋으니까.
용사 후보 특전.
이건 용사 후보가 되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특혜나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유저들은.
무슨 짓을 해서도 가질 수 없는 특혜.
물론 같은 용사 후보가 된다면 받을 수야 있겠지만.
과연 이 깐깐한 인간들이 그런 용사 후보를 마구잡이로 뿌릴까를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거든.
무엇보다.
이 용사 후보라는 건.
각 제국이나 왕국에 배정된 일정 숫자의 티오가 존재했다.
정해진 자리가 있다고 해야 하나?
다른 말로.
아무렇게나 막 뿌려댈 수가 없다는 거다.
그게 비록 이 크루아 대륙을 주무르는 제국 황제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 정해진 티오 안에 지금 나를 포함시킨다는 소리였다.
<주호> 설마 황제가 제게 용사 후보를 추천할 줄은 몰랐네요.
<불멸> 아무래도 빈자리가 많이 났나 보네. 이번에 아크 드래곤이 설치면서 꽤 죽어 나갔을 테니까. 운이 좋았어.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빈자리가 나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자리랄까.
보통 상태의 에센시아 제국이었다면.
아크 드래곤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용사 후보들이 죽어 나갈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인정하고 승인해야만 들어갈 수 있으니.
이렇게 자리가 비게 되면 각 귀족들이 추천하는 티오도 있을 테고.
결코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터.
외부인인 유저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 감고 바늘에 실 꿰는 난이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가 그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뭐 에센시아 제국을 구한 공로를 인정해 용사 자리를 준다고 하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일단은 빈자리가 존재해야만 한다.
흐음.
이건 아크 드래곤에게 감사해야 하려나?
녀석이 아니었다면 절대 티오가 나지 않았을 테니.
굳이 다른 방법을 찾자면.
로가슈 왕국의 사절로 왕국에 속한 티오를 내는 방법이 있긴 한데…….
문제는 내가 정식적인 왕자가 아니라는데 있었다.
이 방법 자체를 우리가 쓰지 못한다는 거지.
그래서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물었다.
“용사 후보의 티오를 내어주시겠다는 겁니까?”
굳이 내가 왕자가 아닌 것을 떠나.
로가슈 제국은 크루아 대륙 소속이 아니다.
당연히 용사 티오 자체가 없었다.
내 물음에 제국 황제가 긍정한다는 듯 살짝 턱을 움직였다.
“아직 로가슈 왕국은 용사 후보의 티오가 없을 터. 그대의 왕국에 용사 티오를 내어주도록 하지.”
이건…….
순간 놀라움에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 역시도 눈빛이 빛났다.
<불멸> 로가슈 왕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다는 뜻이군.
<주호> 네, 그것도 제국 황제가.
그때 제국 황제의 옆에 있던 그림자가 뭔가 불만인 듯 일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제국의 티오를 내어주시는 건…….”
당연하겠지만.
용사 후보 티오를 내어준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그 용사 티오라는 존재 자체가.
그 나라의 국격.
힘을 상징하는 일종의 과시니까.
현재 에센시아 제국은 다른 왕국과는 달리 꽤나 많은 수의 용사 후보 티오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타 왕국에 용사 후보 티오를 내어주는 건.
방금 저 그림자의 반응처럼 충분히 우려할 만한 일인 것이다.
당장 옆에 타란 제국의 대공이 뻔히 보는 앞이기도 하고.
자국의 힘이 약해지는 걸 보여주는 셈이라.
“제국을 구했는데 이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두 번 말하고 싶진 않군.”
“알겠습니다.”
이미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내게 용사 티오를 주기로 작정한 듯 했다.
《 유저 주호 님이 고대종 아크 드래곤의 처치에 지대한 기여를 하셨습니다. 》
《 퀘스트 기여도에 맞춰 보상이 산정됩니다. 》
《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해당 퀘스트 보상의 일부분으로 용사 후보 티오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
방어전 퀘스트 보상.
언제 주려나 했더니.
이런 식으로 주는 거였나?
그런데 난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갔다.
단순히 한 자리 얻자고 하기에는 좀 뭔가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에.
“이왕 주시는 거 좀 넉넉하게 주시죠?”
그러면서 제국 황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연하겠지만.
이 용사 티오는 공짜는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방어전 퀘스트의 보상이지만.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의도가 들어가 있다고 해야 하려나?
그건 바로 5황녀에게의 지원.
왜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이렇게까지 나를 붙여주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용사 티오를 주는 건 단순히 퀘스트 보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설명도 없이 진작에 보상을 주었을 테니까.
이건 일종의 당근인 셈이다.
앞으로 구를 것을 예상하고.
미리 땡겨 주는.
그렇다는 건…….
여기서 배팅을 더 해도.
괜찮다는 거다.
재중이 형 말대로.
아크 드래곤이 침략하는 덕분에 비어있는 용사 후보 티오는 넘쳐나는 상황이니까.
“재밌구나.”
보상 조건을 더 추가함으로 제국 황제가 성을 낼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껏 본 이 황제는 다른 쪽을 선택하리라 여겼다.
그리고 지금.
그 도박은 아주 잘 통하는 중이었다.
“얼마나 내어주면 만족하겠느냐.”
이건 딜이다.
5황녀를 확실히 도와줄 것을 약속받는 대가.
원래 정해진 퀘스트 보상을 확 뛰어넘는 도박.
“한 열 자리 정도 내어주시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멸> 큭, 잘하면 여기서 황제하고 한판 뜨겠는데?
<주호> 좀 과했나요?
<불멸> 아니. 잘했다. 처음에는 세게 불러야지.
솔직히 용사 후보 티오를 열 자리나 내어 줄 거라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제국 황제라도 쓸 수 있는 티오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게 비어있는 자리라 해도 말이지.
황제도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까.
타 귀족들의 반발을 누르는 것도 포함해서.
잠시 생각하던 제국 황제가 옅은 미소와 함께 제안을 받았다.
“다섯 자리 내어주도록 하지.”
“그럼 여덟 자리로 하죠.”
“한 왕국에 그 숫자를 내어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 텐데?”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5황녀를 말이죠.
내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크하하. 내 앞에서 딜을 할 담력이 있다니. 좋구나.”
그때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응?
이 시점에서?
뭐 이런 상황에서 호감도가 오르지 싶어 황제를 바라보니 정말 의외로 황제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었다.
“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는 황자와 황녀들만 보다가 왕자 같은 녀석을 보니 기분이 좋구나.”
<주호> 형, 방금 호감도 대폭 올랐어요.
<불멸> 큭. 저 녀석 성향을 대충 알 것 같은데?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그냥 숙이고만 들어오는 상대에게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오히려 당당히 제 의견을 피력하는 쪽을 선호한달까.
물론…….
선을 넘어가 버리면.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겠지만.
아마 지금의 딜은 황제가 정한 선은 넘지 않은 듯했다.
“좋다. 로가슈 왕국에 용사 후보 티오를 여덟 자리 내어주도록 하지.”
《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로가슈 왕국을 정식으로 인정했습니다. 》
《 크루아 대륙에서 정식으로 로가슈 왕국 국호를 쓸 수 있습니다. 》
《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로가슈 왕국 왕자 주호 님에게 『 용사 후보 특전 』 x8을 증여합니다. 》
《 로가슈 왕국이 해체되지 않는 이상 『 용사 후보 특전 』은 로가슈 왕국에 귀속됩니다. 》
《 로가슈 왕국 왕자 주호 님에게 제국에서 발행한 『 에센시아 제국 면책 특권 』이 발동됩니다. 》
《 에센시아 제국 귀족을 살해하더라도 정당한 이유가 있을 시 면책 받을 수 있습니다. 》
《 에센시아 제국 내 불법, 사기, 횡령 행위를 하더라도 면책 받을 수 있습니다. 》
《 『 에센시아 제국 면책 특권 』은 일정한 횟수와 기간이 존재합니다. 연장하려면 추가 포인트와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
《 『 에센시아 제국 면책 특권 』은 제국 내에서만 적용됩니다. 타 제국이나 왕국에서는 적용받지 못합니다. 》
보상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활동하기 좋은 기본적인 토대는 일단 만든 것 같고.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