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화 새로운 용사 후보 (1)
처음에 금속의 정령이 타이탄의 자폭 스킬을 알려주는 순간.
이건 충분히 먹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이탄의 코어에 내장되어 있는 건 정령석 중에서도 최상급이었다.
우리가 비공정을 폭파시키면서 소모한.
에센시아 제국 창고에서 흔하게 가져다 쓰던 그런 정령석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다.
아마 타이탄을 자폭 시키는 원리는 그런 정령탄의 원리와 그다지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이런 코어를 정령탄으로 소모하게 되면.
그 위력은 아크 드래곤이라도 절대 무시하지 못할 터.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크 드래곤이다.
거기다 타이탄의 일격으로 머리에 타격까지 입은 상태라.
저렇게 목숨이 질긴 아크 드래곤도.
이번만은 반드시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걸 성립시키려면 결국 타이탄을 자폭시켜야 한다.
그래서 내가 잠시 머뭇거렸던 거였고.
아크 드래곤을 잡는 것도 잡는 건데.
타이탄 역시도 어떻게든 남겨놓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비록 그건 움직이지 못하는 타이탄이겠지만.
최소한 외장을 뜯어낸다던가.
혹은 코어를 빼낸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렇게 속으로 저울질을 하던 내게 재중이 형이 한 가지 해답을 알려 주었다.
에센시아 제국의 존재.
어차피 타이탄은 이번 한 번을 끝으로 더 이상 운용할 수가 없게 된다.
금속의 정령이 확실하게 못을 박은 거라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이건 확실하다고 봐야 했다.
그럼 타이탄의 가치는 확연히 떨어지게 된다.
다시 움직이지도 못하는 고철은 그다지 값어치가 없으니까.
지금이야 저 아크 드래곤에 대항해서 싸울 정도로 팔팔하지만.
결국 이것도 눈속임이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것뿐.
반면에 에센시아 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데 핵심이 있었다.
우리는 어차피 못 쓴다는 걸 알지만.
제국 사람들은 절대 모르거든.
그냥 우리 왕국의 전력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실제 상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중이 형이 알려준 것이다.
앞으로 쓰지도 못할 타이탄을 내어주고.
그에 맞는 값어치를 제국에서 뜯어내라고.
처음에는 이걸 에센시아 제국에서 순순히 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 전시 상황이었다.
그것도 제국이 아크 드래곤의 자폭으로 날아가니 마니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특히 제국에서는 이 아크 드래곤을 막을 전력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완전히 나와 우리 팀의 임시방편에 매달려 있는 꽤 우스운 상황이긴 한데.
그러다 보니 당연히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요구 창고로 비에른 자작을 선택했고.
일부러 내 타이탄이라는 걸 강조까지 해가면서 비에른 자작을 압박하자.
곧 황녀에게 허락을 받아왔다.
우리가 소모한 타이탄에 맞는.
보상을 지급하겠다고.
그것도 황녀가 보장하는.
황가의 인장이 찍힌 계약서다.
결국 지금 황녀가 에센시아 제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에 이 순간만 허락할 수 있는 최적의 보상을 얻어냈다.
<불멸> 어차피 버려야 하는 타이탄으로 건질 수 있는 최고의 빅딜 아니겠냐.
<주호> 확실히 그렇죠.
역시 프로게이머를 그냥 딴 게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이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수준이라.
상대의 약점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우리의 약점은 완전히 지워내 장점으로 만들어냈다.
이젠 솔직히 타이탄이 없어진다고 해도 그다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에센시아 제국에 그만큼 뜯어내면 되는 거라.
솔직히 이번엔 제국 창고를 터는 정도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제국 창고 같은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걸 요구할 생각이니까.
그럼 이제 문제를 해결해야겠지.
이 모든 일들은.
저놈의 아크 드래곤이 죽어야만 성사되는 일이었다.
타이탄을 날려야 한다는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계속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아크 드래곤이 머리를 타격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서고 있는 중이니까.
지금.
여기서 녀석을 끝내지 않는다면.
정말 앞으로 다신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바로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명령했다.
“전 병력을 후퇴시켜. 당장 폭발에 휘말려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타이탄의 코어를 폭파시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건 비록 아크 드래곤의 자폭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일대를 날려 버리기에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폭파 범위에 따라 그안에 휘말리는 거의 모든 존재들이 일제히 증발하게 될 터.
이건 우리를 비롯한 에센시아 제국군도 마찬가지다.
괜히 일 잘해 주고 욕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얼마나 후퇴시켜야…….”
“도망갈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지금부터 달린다고 해도 과연 안전 범위까지 도망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거든.”
내 말에 비에른 자작의 표정이 사색으로 변했다.
“헙! 알겠습니다!”
내 표현에서 상황이 급박하다는 걸 눈치챈 비에른 자작이 바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전군 후퇴!! 성벽 방어포를 포기하고 바로 후퇴한다.”
그 말에 깜짝 놀란 병사들이 되물었다.
“정말 방어포를 포기합니까?”
“왜? 끌고 가다 같이 뒤질려고?”
“아, 아닙니다!”
보통 다른 지휘관 같으면 죽어도 끌고 가라고 했을 텐데.
확실히 비에른 자작은 다르다.
성벽 방어포도 분명히 비쌀 텐데.
그것보다는 병력을 살리는 것에 더 중점을 둔 모습이었다.
이러니 영웅 반열에 올라서는 거려나?
비에른 자작 역시 말에 올라타면서 빠르게 박찼다.
지휘도 좋은데 저렇게 본인이 살고 봐야지.
만약 지휘한다고 계속 남아 있었으면 발로 차서 쫓아낼 생각이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아도 됐다.
<주호> 너희들도 빨리 피해. 최대의 속도로 빠져나가야 해.
<챠밍> 네, 알았어요.
<이쁜소녀> 오빠도 얼른 피해요!
간단한 사정 설명과 함께 챠밍과 이쁜소녀에게 전달하면 모두에게 알려줄 터.
<주호> 형도 이제 빠져요.
<불멸> 아, 난 혹시나 모를 사태를 봐야지. 저놈 혹시라도 안 죽으면 남은 비공정 죄다 떨어뜨려야 하니까.
확실히 지금까지도 억세게 버티고 있는 아크 드래곤이 인상 깊긴 했나 보다.
타이탄의 자폭으로도 안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다니.
<주호> 네, 그럼 전 빠집니다.
다시 올라가기에는 시간이 다소 빠듯했다.
바로 아퀼라스 주니어를 불러내고는 전사 형을 불렀다.
“전사 형. 이제 타이탄이 폭발할 거예요.”
“옆에서 들었다.”
그러더니 전사 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퀼라스 주니어에 올라탔다.
“난 발이 느리거든.”
“잘 알죠.”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는 곧장 아퀼라스 주니어를 외곽으로 비행시켰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손을 뻗어 타이탄의 자폭 시스템에 손을 가져다댔다.
“후. 그동안 고마웠다.”
그러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정말 타이탄을 자폭시키겠습니까? 》
시스템이 굳이 다시 한 번 물어볼 정도로.
타이탄을 폭파시킨다는 건 큰 사건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시스템이 다시 물어보고 그러진 않으니까.
“그래.”
【 타이탄 자폭! 】
내가 타이탄의 자폭을 선택하는 순간.
아크 드래곤을 올라타고 있던 타이탄의 코어가 거칠게 웅웅 거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뜨거운 빛과 열을 동시에 방출하며 세차게 달아오르는 광경은 어쩌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리라.
앞으로 어떤 미친놈이 나오더라도.
타이탄을 자폭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저걸 돈으로 치면.
상상하기 힘든 값어치가 나올 것이다.
돈이 썩어나지 않고서야…….
자폭 버튼에 손을 올릴 녀석은 없겠지.
그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자폭을 선택하고는 하나의 폭탄으로 변해가는 타이탄을 애잔하게 바라봤다.
전사 형 역시도 마찬가지.
“역시 아깝긴 하네.”
“할 수 없죠. 그리고 저렇게 자폭되어 사라져 주는 편이 우리에겐 더 좋아요.”
에센시아 제국은 이 희생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그와 함께 나올 보상까지도.
이건 절대 손해 보는 게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엄청난 이득이지.
그으으으응!!
뭔가의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 점점 타오르는 타이탄의 코어에서 나오는 압력에 아크 드래곤도 이제 눈치를 챘는지 크게 포효를 하며 온 신체를 들썩이며 비틀었다.
날개를 크게 펼치기도 하고 꼬리를 써서 타이탄을 계속 쳐내며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정말 어떻게든 타이탄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처절한 모습이랄까.
하지만 이미 타이탄은 창대를 잡고 굳건하게 아크 드래곤의 등에 올라타서 떨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서로 완전히 밀착된 상황.
아크 드래곤이 뭔가를 더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자폭의 배리어를 쓰면서 다른 능력은 전부 스톱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물리적인 힘만이라면.
타이탄이 절대 아크 드래곤에게 밀리지 않는다.
크러러렁!!
이젠 아예 톱니바퀴 빠진 엔진처럼 크게 들썩이면서 폭주하더니 결국 눈이 멀어버릴 강렬한 빛을 뿜어내면서 타이탄의 코어가 번쩍였다.
쿠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큭.
일대를 마비시키는 어마어마한 빛의 항연.
거기다 귓가를 천둥처럼 울리는 찢어지는 굉음까지 우리를 덮쳐왔다.
아마 현실의 핵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폭발의 여파가 우리에게 밀려오는 순간.
아퀼라스 주니어의 동체가 확 뒤집히면서 후폭풍에 밀려 나갔다.
동시에 나와 전사 형, 아퀼라스 주니어의 체력이 동시에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무작위로 굴러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려나.
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거칠게 흔들리는 아퀼라스 주니어를 어떻게든 제어하면서 폭발의 흐름을 타고 바깥으로 계속 날아갔다.
“이얏호! 멋지게 터지는구나.”
폭발의 섬광에 눈이 안 보이는 와중에도 전사 형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크 드래곤이 터졌으면 그런 말 못 했을 걸요.”
아마 아크 드래곤이 자폭했다면 지금보다 수십 배는 더 폭발력이 컸을 것이다.
문헌에는 에센시아 제국 전체가 날아간다고 했으니까.
그 반경만 따져도 이미 열 배는 넘게 차이가 난다.
물론 타이탄의 폭발도 결코 규모가 작지 않았다.
전사 형이 거센 폭발을 쳐다보다가 평가했다.
“이걸로 제국의 십분의 일은 날아가겠는걸?”
전사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우리가 녀석과 싸우기 위해 유도한 곳이 외곽에 가까운 곳이라 다행이지.
잘못 위치를 설정했으면 황녀가 있는 중앙성까지 같이 날려버릴 뻔했다.
그러면 보상이고 뭐고.
다 날아가는 셈이라.
최소한 다른 이는 다 죽어도 황녀는 살아있어야 한다.
“과연 이걸로 죽을까요?”
“글쎄? 솔직히 나도 모르겠는데?”
전사 형 역시 그다지 확신은 없어보였다.
“사실 이 정도 폭발에도 살아남으면 우리가 그냥 튀어야지. 이걸 견디는 괴물을 무슨 수로 잡아?”
“하하…….”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고.
그냥 이번에 잡혀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마음 졸이면서 폭발을 피해 아퀼라스 주니어를 비행서 빠져 나오다가 전사 형이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어 외쳤다.
“오오!! 미쳤어!!”
그리고는 나 역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역시 두 손을 확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갑자기 시야에 떠오르를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으니까.
“드디어 잡았다아!!”
《 고대 성마대전 시대의 지배자. 고대종 아크 드래곤을 처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