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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43화 (1,031/1,404)
  • #1043화 에센시아 방어전 (9)

    이미 아크 드래곤이 에센시아 제국 시가지를 쓸고 지나가서 그런지 제국 본성으로 가는 길은 온통 화염과 잿더미로 가득했다.

    쭉 시가지를 걸어가자 늦게나마 피난을 가는 제국민들이 보였다.

    이 상황을 바라본 비에른 자작의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얼핏 보면 자책하는 것 같은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곧 비에른 자작이 부하들에게 따로 지시를 내려 그들을 피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생각보다 괜찮은데?

    비에른 자작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내가 조금만 더 잘 막았어도…….”

    그런 비에른 자작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크 드래곤은 어차피 비에른 자작 혼자 힘으로는 막아 낼 수 없는 존재다.

    등장 시기 자체가 안 맞는 네임드가 쳐들어왔는데 일개 방어대장이 그걸 막을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럼에도 비에른 자작은 자신이 막지 못함을 탓하고 있었다.

    하긴.

    이러니 나중에 대단한 영웅이 되는 거려나.

    남 탓만 하고 넘어갈 녀석이었다면 절대 그렇게까지 강력한 영웅은 되진 못했을 것이다.

    <주호> 나쁘지 않죠?

    <불멸> 어, 싹수가 보이네. 좀 키워 봐도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재중이 형 역시 비에른 자작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뭐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굳이 키우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 크겠지만.

    당장은 에센시아 제국이 망할 판이라.

    일단은 제국부터 살려놓고 봐야 한다.

    비에른 자작의 부하들을 뒤로하고 쭉 걸어가자 점점 전투의 화끈한 열기가 중앙성에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했다.

    근처만 가도 이 정도인가.

    조금만 더 접근하면 정말 화마에 휩쓸려 그대로 죽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부터 지상으로 향해 뇌전과 화염 폭풍이 연달아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보이는 시야를 하얗게 덮을 정도로.

    휘이이잉!

    화르르륵!

    콰지지직!!

    《 화염 상태 이상 10단계가 적용됩니다! 》

    《 화염 상태 이상으로 체력이 급격하게 소모됩니다! 》

    《 뇌전 상태 이상 10단계가 적용됩니다! 》

    《 뇌전 상태 이상으로 체력과 민첩이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

    《 풍압 상태 이상 10단계가 적용됩니다! 》

    《 풍압 상태 이상으로 민첩이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

    전투 지역에 직접 들어간 것도 아니라 외곽에 다가온 것뿐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예전에 수룡이나 화룡이 주던 10단계 상태 이상 디버프가 걸려왔다.

    칫.

    이쪽은 제대로 된 플레이트도 없는데 말이지.

    기껏 해야 구시대 유물인 암흑 드래곤 플레이트 정도.

    얼음 계곡 플레이트도 있긴 한데 이건 냉기 특화라 그다지 의미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방어구에도 좀 신경 쓸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스템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방패전사> 어디쯤이야?

    <주호> 아, 중앙성 외곽 부근요. 전사 형은요?

    <방패전사> 여기 중앙성 방어 라인인데. 아무래도 이 이상은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주호> 빠져나올 수 있어요?

    <방패전사> 어차피 우리가 목적이 아니라서. 딱히 편제도 없고.

    아마 이 에센시아 제국성 자체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유저라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제한은 없는 듯했다.

    마침 잘 됐다는 생각에 전사 형에게 말을 꺼냈다.

    <주호> 그럼 우리 팀 데리고 빨리 빠져나와요.

    <방패전사> 오케이. 그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사 형이 저 멀리서부터 화염 폭풍을 가르며 달려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자신 주변으로 뭔가의 배리어를 써서 뇌전과 화염을 모두 상쇄해 가며.

    “저거. 올펠 풀 플레이트죠?”

    “어, 올펠이 우리 공격 막을 때 썼던 배리어네.”

    마왕급의 특제 방어구다 보니 저 아크 드래곤의 공격에도 잘 버텨내는 듯했다.

    덕분에 챠밍과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

    누구 하나 피해를 입지 않고 전투 지역을 잘 빠져나왔다.

    이쁜소녀가 먼저 달려와 말했다.

    “후아! 죽는 줄 알았어요!”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 주자 이쁜소녀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잘 버텼다.”

    “헤헤.”

    챠밍 역시 안도의 숨과 함께 내 옆에 섰다.

    “조금만 늦었으면 못 빠져나왔을 거예요.”

    “그래. 고생했어.”

    막내별은 계속 회복 스킬을 쓰면서 온다고 마력이 다한 듯했고.

    “전 잠시만 쉴게요.”

    바로 털썩 주저앉을 걸 보면 전사 형과 더불어 가장 고생을 하지 않았을까.

    나르샤 누나는 뒤를 흘깃 보더니 내게 물었다.

    “저들은……?”

    처음 보는 NPC를 달고 왔으니 궁금해할 수밖에.

    “이쪽은 에센시아 제국 외성 방어대장 비에른 자작이다.”

    그리고 나르샤 누나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주호> 아, 그리고 저 지금 왕자에요.

    <나르샤> 응? 뭐?

    왕자라는 말에 얼떨떨해하는 나르샤 누나에게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주호> 로가슈 왕국 있죠? 거기 왕자 됐다고요.

    <나르샤> 으음.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야?

    <주호> 나중에 따로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은 왕자인 걸로?

    <나르샤> 그 정도 눈치는 있어. 맞춰 줄게.

    바로 나르샤 누나가 허리를 숙이며 내게 말했다.

    “왕자님 오셨습니까?”

    “으응. 그래.”

    그렇다고 바로 적응하다니.

    역시 나르샤 누나답다.

    옆에서 멀뚱멀뚱 그런 나와 나르샤 누나를 바라보던 챠밍이 곧 알았다는 듯 역시 따라했다.

    “왕자님. 오신다고 고생 많으셨어요.”

    <주호> 아. 넌 왕녀 역할인데…….

    <챠밍> 네? 아…….

    “아, 오라버니. 오셨어요.”

    급하게 말을 바꾸며 미소 짓는 챠밍을 보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미리 설명을 좀 할 걸 그랬나.

    급하게 막 왕국 족보를 만들어낸다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쁜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역시 이쁜소녀에게도 말했다.

    <주호> 너도 공주다.

    <이쁜소녀> 헤에. 나도 공주예요?

    <주호> 왜? 하기 싫으면…….

    <이쁜소녀> 할 거예요!

    이쁜소녀 역시 공주 역이 마음에 드는 듯 한껏 웃는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나르샤 누나가 물었다.

    <나르샤> 난? 나도 공주?

    <주호> 음. 공주가 너무 많아요.

    <나르샤> 칫. 알았어. 그럼 공작부인?

    <주호> 어…… 그럼 재중이 형이랑 부인인데...

    <나르샤> 됐어. 다른 거 할래.

    나르샤 누나는 부인 역할보다는 백작이라는 직위와 적당히 왕국 궁수 부대를 이끄는 직책을 가지기로 했고.

    막내별은 왕국 내 최고 성직자 역할을 맡았다.

    전사 형은 자연스럽게 왕국 수호 부대의 대장 직책과 함께 후작의 직위를 가는 걸로 마무리했다.

    <주호> 급하게 만든 것치고는 나쁘지 않죠?

    <불멸> 큭. 족보가 개판이야.

    그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으려면 최소한 백작 이상의 직위는 가져야 했다.

    비에른 자작은 작위에 딱히 관심 두는 것 같진 않아 다행이었다.

    그때 챠밍이 꽤 놀란 눈빛으로 비에른 자작을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챠밍> 혹시. 저 비에른 자작이 그 비에른 공작이에요?

    <주호> 응. 바로 알아보네? 저 NPC가 그 통곡의 벽이 맞아.

    <챠밍> 세상에……. 거의 만나지 못할 거라 예상했는데.

    <주호> 꽤 운이 좋았어.

    아무래도 챠밍이 조사를 했다 보니 누구보다 빨리 눈치챈 듯했다.

    곧 나르샤 누나를 비롯해 모두가 들었는지 하나 같이 놀란 눈으로 비에른 자작을 바라보았다.

    그런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비에른 자작은 갑자기 쏟아지는 눈빛에 꽤 난처한 듯 고개를 돌렸고.

    뭐 이쪽은 그런저럭 된 건가.

    바로 전사 형을 보면서 물었다.

    “상황은 어떤가?”

    그러자 전사 형이 꽤 그럴싸한 제스처를 취하며 내게 보고를 올렸다.

    “현재 에센시아 제국의 비공정을 비롯해 왕국의 비공정들의 함포로 겨우 아크 드래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만…… 오랜 시간 버티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중앙성의 압축 하르포들 역시 최선을 다해 쏘고 있으나 아크 드래곤이 너무 빨라 견제하는 수준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역시 기존의 방어력으로는 아크 드래곤은 무리다.

    그렇다는 건 역시.

    방법은 하나뿐.

    “영웅들은?”

    영웅이라는 말에 전사 형의 눈빛이 빛났다.

    역시 아직 남아 있던 영웅들을 봤구나.

    “대부분의 영웅들은 성마 전쟁으로 자리를 비웠으나 방어를 위해 남아 있던 영웅들이 나서서 아크 드래곤을 막아 내는 중입니다. 그중에 중앙성 전체에 방어 배리어를 친 영웅 덕분에 겨우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 말에 제국 중앙성 쪽을 보자 확실히 아크 드래곤의 폭격 속에서도 중앙성만은 어떻게든 버텨 내는 듯했다.

    확실히 몇 겹으로 된 마법 방어막이 뇌전과 화염이 더 이상은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냈다.

    뭐 그것도 곧 균열이 가면서 깨질 것 같지만.

    고개를 돌려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물었다.

    “대현자……?”

    “네. 그렇습니다. 제국성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고위 영웅입니다.”

    그나마 저런 영웅이라도 남아 있어서 버티는 거라…….

    솔직히 대현자도 포섭 대상이긴 했는데.

    접근조차 불가능해 일찍이 포기한 녀석이기도 했다.

    일단은 전 대륙의 존경을 받는.

    학식의 끝에 도달했다는 NPC인데.

    만약 포섭만 가능하다면.

    최고의 우군을 가지는 셈이 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앞으로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런데 지금은 우군은커녕 이대로 제국과 함께 꼼짝 없이 죽게 생겼다.

    전사 형을 다시 보며 물었다.

    “황가는?”

    내가 물어보는 건 황가의 자식들이다.

    일명 영웅 후보들.

    애초에 시작부터 황가의 혈통과 함께 각종 풍부한 지원을 받고 시작하는 존재들이라.

    문제는.

    이들이 그다지 서로 친하지가 않다는데 있었다.

    원래 황위를 쟁탈하려고 싸우는 녀석들이라.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그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동시에 귓속말도 왔다.

    <방패전사> 개판이야. 손발이 하나도 안 맞아. 지휘 계통도 엉망이고.

    <주호>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같이 싸우긴 하지만.

    협력은 되지 않는.

    그리고 예상했던 대답 역시 나왔다.

    <방패전사> 서로 아크 드래곤을 죽이겠다고 난리던데?

    <주호> 하. 어쩐지 알 것 같네요.

    이 지경까지 와서도 밥그릇 싸움 중이다.

    그것도 저 아크 드래곤을 상대로.

    만약 이 상황을 비에른 자작이 들었으면 어땠으려나?

    자신이 죽자 살자 막아내는 동안 안에서는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그리고 원래 오늘은.

    황가에서 암살까지 일어나는 날이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쟁탈전이라는 거지.

    제국을 지켜내도 정작 안에는 저런 것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나 같으면 다 때려 칠 지도 모르겠다.

    휴.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준비는?”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묻자 옆에 따라 붙은 기사와 부관들에게 몇 가지 사항을 전달 받고는 내게 말했다.

    “준비할 물건이 많아 시간이 좀 걸립니다.”

    “뭐. 좋아. 기다려 보자고. 어차피 믿는 구석도 있는 것 같고.”

    아마 뭔가 여유가 있으니 저렇게 밥그릇 싸움도 하는 걸 테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갑자기 제국 중앙성 위로 날아다니던 아크 드래곤이 완전히 허공에 멈춰 섰다.

    계속되는 공격에도 중앙성이 무너지지 않자 뭔가 수를 낼 듯 했다.

    그 순간.

    아크 드래곤 주위로 수도 없이 많은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런 아크 드래곤의 시전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대체 마법진이 몇 개나 생기는 거야?”

    하늘을 뒤덮으며 끝도 없이 생겨나는 마법진의 개수에 나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대략.

    백여 개의 마법진이 형성되고 난 뒤.

    그 마법진들이 한꺼번에 풀리며 그 안에서 강력한 스킬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드래곤 브레스가.

    쿠르르릉!!

    순간 생각했다.

    정말 저 미친 괴물을 잡을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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