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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42화 (1,030/1,404)

#1042화 에센시아 방어전 (8)

크루아 대륙의 현 시대상 비에른 자작은 아직 영웅 후보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아마 평범하게 대륙의 역사가 흘러갔다면.

꽤 시간이 흐른 뒤에 비에른 자작의 활약 여부에 따라 직위가 올라가고 모두가 우러러 보는 영웅으로 추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영웅 중에서도 꽤 상위에 위치하는.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렇게까지 성장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려.

알다시피 이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머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죽으면 아웃인 세상인데.

그런데 비에른 자작이 온갖 역경을 다 겪으면서 성장하길 기다려라?

이건 문제가 많지.

아쉽게도 우리는 이 비에른 자작이 온전히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영웅 후보들과의 접점만 존재한다면.

어떻게든 그 영웅을 빠르게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혹 미래에 주어져야 하는 전설적인 아이템을 미리 가져다준다든가 하는.

아니면 역사적 사건에서 주역이 되도록 밀어준다든가.

전자는 우리가 해먹을 게 줄어드니 일단 미뤄 둔다고 하더라도.

후자는 아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한 영웅에게 공적을 밀어줄 수도 있을 터.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비에른 자작은 그 조건에 꽤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성벽 방어 대장이 대단하긴 한데.

어차피 그것만으로는 비에른 자작 위로 있는 수많은 녀석들을 제치고 당장 주류에 편입되긴 힘들다.

아직 채 다 성장하지 못한 영웅 후보.

심지어 자신이 영웅이라는 것조차도 모르는.

지금은 일개 귀족 작위가 전부인.

거기다 앞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편이기도 하다.

이런 조건이 맞는 후보를 찾는 건.

아무래도 어렵지.

그러니까 지금 비에른 자작은.

내 손에 들어온 꽤 중요한 패란 거다.

“영웅 말입니까?”

영웅이라는 말에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의 비에른 자작의 모습.

아직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분명 이 녀석은 영웅이 된다.

“어, 나라를 지킨 영웅.”

“음. 하지만 영웅이 되는 건 쉽지 않은…….”

그 와중에 빛나는 비에른 자작의 눈빛을 보면서 속으로 미소 지었다.

<주호> 아주 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인데요?

<불멸> 큭, 그러게. 눈빛이 확 변했어.

바로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말했다.

“영웅이 별거 있어? 남들이 영웅이라고 하면 그게 영웅이지.”

“……그렇긴 합니다만.

“그것도 허울뿐인 영웅 후보들 말고. 진짜 영웅이지. 무려 제국을 아크 드래곤으로부터 지켜냈으니까.”

“아직 아닙니다만…….”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다.”

이쪽에서 확실히 자신감을 보여줘야 비에른 자작도 따라올 터.

그런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는지 비에른 자작이 한참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좋아.”

《 에센시아 제국 비에른 자작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에센시아 제국 비에른 자작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에센시아 제국 비에른 자작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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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호감도 상승 메시지.

비록 내 세력에 들어온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었지만.

지금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미래의 영웅과의 확실한 우호 관계가 형성됐으니.

무엇보다.

지금 이 에센시아 제국에서의 신분 보증이 가능한 존재가 생겼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확실하게 하지 않았네.”

“예?”

“로가슈 왕국은 테슬라 대륙에 있는 왕국이다. 알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말에 비에른 자작이 뭔가 떠올리는 듯 하더니 깜짝 놀란 눈빛으로 되물었다.

“테슬라 대륙이라면…… 크루아 대륙 남단의 다른 대륙입니까?”

“알고 있네?”

아예 모른면 어쩌나 했는데.

역시 귀족이라 그런지 어느 정도 소양은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다른 귀족들 역시도 테슬라 대륙을 인지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상당히 먼 거리와 바다의 거대 몬스터들로 정식적인 교류가 없긴 해도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넓은 크루아 대륙인데.

굳이 가기 힘든 다른 대륙까지 넘어가는 건 이 시대에서는 의미가 없는 일일 터다.

유저들이야 시작점이 테슬라 쪽이니 무조건 넘어와야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번에 국왕께서 다른 대륙과 교류를 좀 해보고 싶다는 뜻을 내보이셔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내 말에 비에른 자작이 한숨 섞인 대답을 했다.

“보시다시피 교류를 논하기엔 지금 상황이…….”

“개판이지.”

“…….”

그런 비에른 자작에게 말했다.

“우리 입장도 좀 고려해 달라고. 교류를 하러 왔는데 막상 와보니 멸망하기 직전의 제국을 보는 기분이 어떻겠나.”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잘 좀 말해 주라고.”

이건 미리 떡밥을 깔아두는 거다.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비에른 자작이 우리 신분 보증이 될 것이다.

“그렇군요. 걱정하기 마십시오. 이번 일이 잘 되면 테슬라 제국의 사절로서의 입지가 좋아질 겁니다.”

무려 망해가는 제국을 도와서 살려주는 일이다.

비에른 자작 말대로 앞으로 입지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물론 일이 잘 된다면 말이지.

떡밥은 이 정도면 충분한 듯 하고.

이제 일 이야기를 해야겠지.

저 날뛰는 아크 드래곤을 어떻게든 잡아야 뒤가 있다.

“일단 네가 일을 좀 해줘야겠어.”

그리고는 몇 가지 사항을 비에른 자작에게 전달하자 듣고 있던 비에른 자작이 처음에는 알겠다고 계속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느 시점부터 얼굴이 핼쑥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놀람과 함께 당황한 표정도 보이고.

경악한 모습도 간간히 보인다.

나중에는 입을 쩍 벌리고는 표정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불멸> 얘 완전 충격 받았는데?

<주호> 정말 별것 아닌데…….

<불멸> 큭, 우리가 보기엔 그렇지.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한 비에른 자작에게 손뼉을 치자 그제야 녀석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할 수 있겠어?”

“……미친 짓입니다.”

“왜? 제국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이게 잘못되면 저 하나 목 날아가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비에른 자작을 보고는 그저 웃음만 보였다.

그래도 안 된다는 말은 안 하네.

사실 내가 요구한 것들은.

비에른 자작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점을 아득히 넘어가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만약 이걸 수용한다면.

정말 비에른 자작도 자신의 목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안 할 거야?”

“성공 확률은…….”

“잘 알 텐데?”

당장은 외성 방어 대장이지만.

미래에는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그 기량이 아직 낮다고는 해도.

어지간한 녀석들보다는 훨씬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뜻이지.

심지어 앞으로 쳐들어올 마족들보다.

그들을 발아래 두고 주무르는 녀석인데.

이 작전이 요구하는 바를 모를 리가 없었다.

“휴…… 제국이 거덜나겠군요.”

“어차피 망하고 나면 없는 거잖아.”

“몇몇 대신들의 허가를 받아야 할 겁니다.”

“그건 알아서 하고.”

이래서 비에른 자작이 필요한 거다.

내가 나서 봐야 제국에서는 필요한 지원을 절대 내어주지 않을 테니까.

그나마 비에른 자작이 아직 파벌이 없다는 게 다행이려나?

만약 파벌이 존재했다면 반대쪽에서 극심하게 반대를 하고 나설지도 모르니.

그럼 일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망한다.

“시민들부터 피신시켜야겠습니다.”

“좋을 대로.”

시민들이 죽어 나가면 그것도 문제다.

이번 일은 인명 피해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미션이다.

만약 아크 드래곤을 잡더라도 시민들이 죄다 죽는다면.

뒤는 절대 장담하지 못한다.

곧 비에른 자작이 몇몇 기사들을 부르더니 빠르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너희는 시민들부터 소개시킨다. 최대한 제국성 중심부에서 멀어지도록 이동시켜.”

“명을 받듭니다.”

곧 기사들 몇몇이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자네들은 병력들을 끌고 바로 제국 물류 창고들로 가서 이 물품들을 가져오도록. 가급적이면 전부 다.”

그 말에 기사들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걸 전부 말입니까?”

“그래. 전부다.”

“……이 정도 물량이면 상부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비에른 자작이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했다.

“어차피 제국이 망하면 없는 물건이나 마찬가지다. 실행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 오더를 내렸다.

그걸 듣고 있던 기사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기존에 보지 못한 파격적인 오더들이 꽤 다수여서.

웅성웅성.

“자작님이 정신을 놓으셨나?”

“시키니 하기는 하는데…….”

“대체 뭘 하는데 이걸…….”

“이러다 우리까지 잘못되는 거 아냐?”

천여 명의 병사들이 동원되어야만 시간 내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저들이 보기에는 따로 놓고 보면 미친 짓 같아 보일 것이다.

“빨리 안 움직여?!”

하지만 충성스런 몇 기사들이 호통을 치자 바로 그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번 일이 끝나고 말이 꽤 나올 것 같지만.

고개를 돌리자 비에른 자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겠나?”

“하하…… 그렇군요.”

이젠 두 손 들었다는 듯 내가 준 오더를 착실히 다른 기사들에게 전달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미친 것 아니냐는 듯한 눈총이었으나 비에른 자작이 애써 무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재중이 형이 흡족한 듯 말했다.

<불멸> 이거 이러다 제국을 거덜 내는 거 아냐?

<주호> 뭐 어때요? 우리 것도 아닌데.

<불멸> 하긴.

<주호> 저 빡센 아크 드래곤을 잡으려면 이 정도 투자는 해 줘야죠.

그게 다 내 물건이 아니라는 게 함정일 뿐이지.

분명 퀘스트 시스템상에서 제국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걸 착실히 따른 죄밖에는 없었다.

갑자기 한 가지가 생각나서 비에른 자작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이건 확실히 해야겠네요.”

“무슨 일입니까?”

“아크 드래곤. 잡고 나오는 부산물은 우리가 가지는 걸로 하죠.”

그 말에 비에른 자작이 고개를 저어보였다.

“귀족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남아 있던 영웅들도요.”

“어차피 저들은 아크 드래곤을 잡지도 못하잖아요. 왜 잡지도 못하는 것에 욕심을 냅니까?”

“주호 왕자님 말씀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럼 이렇게 하죠.”

“네?”

그리고 멀리 아크 드래곤이 날뛰고 있는 제국 내성 쪽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그럼, 하는 데까지 해보라고 해요.”

“……설마, 저대로 그냥 두시겠다는 겁니까?”

“왜 안 되나요?”

“하지만 다 죽을 텐데…….”

“흐음,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옆에서 재중이 형이 웃는 걸 보니 내 말 뜻을 잘 아는 듯 했다.

<불멸>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주호> 네, 욕심도 낼 만한 물건에 내야죠.

어차피 저들은 아크 드래곤을 잡지 못한다.

그런데 내 물건에 욕심을 내려고 한다면…….

그냥 망하게 둘 수밖에.

난 자선 사업가는 아니니까.

거기다 남의 밥상에 숟가락 올리겠다는 녀석들을 두고 볼 생각도 없었고.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세요?”

“……네?”

“그건 바로 일 안하고 단물만 빨아먹으려는 녀석들이에요.”

비에른 자작에게 더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말 망할 때가 되면 알아서 기겠죠.”

그때가 바로.

우리가 나설 타이밍이지.

지금은 아니다.

한껏 느긋한 표정으로 제국 내성을 향해 걸어가며 미소 지었다.

“그럼 어디 불구경 한번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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