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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28화 (1,016/1,404)

#1028화 에센시아 제국 (7)

우리 팀과 짠 플랜 A는 누구보다 먼저 레온 브라이더와 접선하는 일이다.

아직 때가 타기 전 상태인.

역사 속으로 나오지 않은 영웅 중에 하나.

그중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레온 브라이더를 초기부터 만나면 일이 보다 쉬워질 것이라는 판단.

이건 충분히 해볼 만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건 우리 팀에게는 아직 말하진 않았지만.

혼자만 생각해 둔 플랜 B.

딱히 말하지 않은 건.

이쪽은 위험부담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었다.

역사 속의 인과 관계를 확 뒤집을 수도 있는…….

그럼에도 플랜 B인 것은.

그렇더라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것 역시.

영웅 후보인 레온 브라이더가 아직 1선에 나오기 전에만 할 수 있는.

딱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선택 중에 하나였다.

플랜 B는 바로.

레온 브라이더를 죽여 버린다.

아마 우리 팀이 들으면 당장 뜯어말렸을 법한 선택지일 테지만.

의외로 이 선택은 내게는 나쁘지 않았다.

그 레온 브라이더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제가 존재하니까.

또 다른 르아 카르테를 가지고 있는 나란 존재가 있거든.

여차하면 내가 그 레온 브라이더를 대체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누가 되든.

그 역할만 대신 하면 되는 일이라.

역사도 어느 정도 수집해 두었고.

같은 르아 카르테라면.

얼마든지 영웅 행세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저기서 날 아니꼽게 쳐다보는 녀석을 죽이면.

바로 플랜 B가 발동된다.

인벤의 무기에 내 손을 가져다 올리고는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 안에서 한정된 시야로 보이는 녀석의 모습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흐트러지고 푸석푸석해 빛이 바랜 옅은 은발의 머리칼.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회색에 가까운 색이긴 한데.

감옥에 있어서 그런지 얼핏 보면 은발 같기도 했다.

피부는 윤기가 없어 바싹 메마른 듯한 느낌.

어차피 입고 있는 옷이야 감옥에 갇혀 있다 보면 죄수들 사이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지만.

그럼에도 의아하다 느껴지는 건.

그 후줄근한 헤진 옷 사이로 보이는 얇디얇은 근육의 형태였다.

계속 녀석을 살피다 결국 고개를 갸웃했다.

이 녀석.

미래의 영웅 아니었나?

왜소한 체격까지야 어떻게 좋게 봐서 유전이라고 치자.

부계든 모계든 타고난 것이 좋지 않으면 그것까지 어떻게 할 순 없는 거니까.

그런데 이 정도까지 망가져 있다고?

이건 애초에 단련 자체가 안 되어 있는 그런 몸이었다.

그냥 좋게 말해서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죄수들하고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길을 걸어가며 볼 수 있는 5번 NPC 정도?

오히려 이 녀석과 비교하면 벽 쪽에 등지고 앉아 있는 덩치 큰 죄수가 더 영웅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뭘 계속 꼬라 봐?”

무엇보다 저 말투.

내가 기대하며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영웅과는 거리감이 거의 안드로메다급으로 벌어져 있다.

혹시나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녀석의 머리 위를 살피자 이름이 그대로 떠올랐다.

레온 브라이더.

분명히 이름은 맞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레온 브라이더가 지하 감옥에 있다는 건.

외부의 자료를 찾아보고 몇몇 NPC들에게 돈을 써서 수소문해서 알아낸 것이다.

흐음.

수집한 자료가 틀릴 리가 없을 텐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

외모야 어차피 은발에 호리호리한 체격이라고 묘사된 것밖에 없으니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오직 저 머리색뿐이었다.

잘생기고 못 생기고는 보는 사람마다 묘사가 다른 거니까.

잠시 한숨을 쉰 뒤 눈을 살짝 내리깔고는 녀석을 향해 물었다.

“레온 브라이더?”

그런데 내가 레온 브라이더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벽에 등을 걸치고 있던 덩치의 어깨가 순간 들썩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죄수들이 화들짝 놀란 듯 움찔하면서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내게서 거리를 벌리는 게 느껴졌다.

뭐지?

이 반응은?

단순히 레온 브라이더라는 걸 물었을 뿐인데.

거기다 더 가관인 건.

내가 이름을 물어본 녀석의 반응이었다.

뭔가에 깜짝 놀란 듯한 반응.

“무, 무슨 말이냐.”

이 생소한 반응이라…….

본인의 이름을 물었을 뿐인데.

말을 더듬는다?

보통은 자신의 이름을 물어오면, ‘넌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있냐’ 정도가 보편적인 반응 아닌가?

아니면 ‘왜 나를 찾지’라던가.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라는 좋은 선택지도 있다.

그런데 이런 모든 대답 대신 녀석은 무슨 말이냐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한껏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고는 녀석에게 물었다.

“너, 정말 레온 브라이더냐?”

아무리 봐도 이상해.

분명히 지금 확인한 NPC 이름으로는 레온 브라이더가 뜨긴 하는데.

내가 가져온 그 어떤 정보와도 이 녀석은 맞지 않는다.

가령 당장 신의 축복이라도 내리지 않는 이상.

이런 녀석이 영웅으로 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혹은 숨겨둔 엄청난 재능이 있다던가.

그래서 르아 카르테를 쥐자마자 바로 영웅처럼 변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일이긴 한데.

직접 쓰고 있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르아 카르테는 절대 그런 물건이 아니니까.

손에 쥔다고 바로 영웅이 될 만한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제대로 된 무기를 흡수하지 못해 없으니만 못한 무기지.

양질의 상위 랭크 재물이 없으면.

르아 카르테 단독으로는 제대로 된 무기가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지금 녀석의 옆에는 르아 카르테조차 없다.

곧장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여기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불멸> 왜?

<주호> 아무래도 이 녀석. 레온 브라이더가 아닌 모양이에요.

이건 순전히 감이었다.

내 눈앞에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내게 시선조차 맞추지 못하는 이 녀석은.

절대.

영웅 같은 게 아니다.

차라리 그냥 지나가는 NPC라고 하면 더 믿을 수 있겠네.

그때 어둠 속에서 내게 쇳소리와 비슷한 갈리는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온 브라이더는 왜 찾나?”

순간 등에 소름이 확 돋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덩치였나?

그 녀석에게서 감옥 전체를 누르는 듯한 투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마치 기세에 몸이 눌리는 듯한 느낌에 나 역시 감각을 해방하면서 녀석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녀석 역시 나를 마주 노려보면서 물었다.

“넌 누구지?”

“알려줄 필요가 있나?”

여차하면 내게 달려들려는 듯 녀석도 벽에서 등을 떼고는 자세를 일으켰다.

“그런가. 그럼 직접 알아낼 수밖에.”

이거…….

앉아있을 때하고는 다른데?

마치 커다란 몬스터를 보는 듯할 정도로 감옥 천장을 꽉 채우는 녀석의 덩치에 입가가 올라갔다.

일단 레온 브라이더는 아니지만.

그간 내가 봐온 급이 높은 NPC들만큼이나 강렬한 느낌.

적어도 이 녀석은 진짜다.

그것도 지금 반응을 보면 레온 브라이더를 알고 있는 녀석일 테고.

기세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자 녀석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는 레온 브라이더라고 알고 있었던 회색빛 사내에게 명령 투로 말했다.

“비켜라. 네 상대가 아니다.”

그러자 외소한 체격의 사내가 아무 반항도 없이 바로 옆으로 물어났다.

적어도 레온 브라이더는 미래의 영웅 후보다.

그런데 이런 정체도 모를 녀석의 명령에 찍소리도 못하고 따른다고?

아무리 초기 설정이 약하게 나온다고 해도.

너무 부자연스러운데.

최소한.

어떤 영웅도 이런 식으로는 시작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NPC 정도라면 또 모를까.

“역시 저 녀석은 레온 브라이더가 아니었나.”

“……알고 온 게 아니었군.”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이 덩치는 레온 브라이더와 상당히 연관이 있다.

거기다 일부러 정체를 숨겨주려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아예 모르는 사이라면 이런 식으로 반응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그때 녀석이 의외의 말을 해왔다.

“천사 새끼들 족속인가?”

“뭐? 천사……?”

뭐지?

방금 녀석이 천사라고 했었나?

이런 감옥 안에서 들을 만한 말이 아니라 순간 멈칫했더니 덩치에게서 바로 반응이 나왔다.

“……그쪽은 아닌 모양이군.”

너무 뜻밖의 말이라 제대로 반응을 못 했더니 녀석 역시 내 정체 중에 천사라는 선택지를 빼버린 듯 했다.

성마대전이 일어난다고는 알고는 있었는데.

벌써 천사라는 녀석들이 역사에 끼어들었던가?

왠지 모르게 미리 조사했던 원래 역사와는 뭔가 조금씩 어긋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장소에 저런 녀석이 있다는 것도 정보에 없다고.

역사를 겉으로 훑은 정보라 그런지.

너무 구멍이 많은데?

녀석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다시 전투 자세를 잡았다.

감옥 안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뒷일이 신경 쓰이긴 해도.

그렇다고 마냥 당해줄 순 없는 노릇이라.

여차하면.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 같은 무기들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고.

그냥 맨손으로 싸우기에는.

저 녀석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정도로 강해 보이는 녀석이.

왜 기존 역사에는 나오지 않을까?

혹은 다른 녀석인데 착각한 건가?

아니면 일찍 죽기라도 하나?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는 동안 녀석도 나를 탐색하려는 듯 계속 쳐다보기만 하다가 의아한 듯 말했다.

“꼬라지를 보니 황실 녀석들은 아닌 모양이고.”

“이번엔 황실이냐.”

정확하게 모르긴 해도.

이 녀석들.

천사와 황실.

양쪽 다 척을 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

보통 이런 경우는.

적이거나 적이 될 만한 녀석들을 입에 담을 테니까.

후.

황실과 적이라…….

이러면 상당히 곤란해지는데.

레온 브라이더와 손을 잡으려는 것도.

황실과 연관이 있는 주요 이벤트를 빠르게 선점하기 위함도 있었다.

영웅 후보라면 황실에 접근하기 좋고.

무엇보다 이쪽이 놀 수 있는 물이 훨씬 크니까.

이왕 구를 거라면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 이 레온 브라이더와 연관이 있어 보이는 녀석의 태도만 보면.

이미 천사와 황실과는 담을 쌓은 듯해 보였다.

혹은 적대 중이거나.

음.

레온 브라이더와 접선하려는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다 뒤집어야 하나?

이대로 진행했다가는.

잘못하다가 시작하기도 전에 역적 같은 걸로 몰려서 행동반경이 확 줄어들 확률이 높았다.

후.

역시 계획대로 잘 되게 두고 보진 않는다는 건가.

설마 레온 브라이더가 여기 없을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주호> 형, 감옥 안에 레온 브라이더는 없고. 이상한 녀석만 있어요.

일단 계획은 잠시 중지.

어차피 여기에는 없으니.

대신 저 덩치는 있다.

<불멸> 이상한 녀석?

<주호> 네, 레온 브라이더를 아는 것 같은 덩치요.

<불멸> 흠. 그럼 그 녀석이라도 조져봐. 뭐라도 나오겠지.

<주호> 문제는 이 녀석. 굉장히 강해 보이는데요? 무기 없이는 못 이길 것 같아요. 그리고 있어도 장담 못 하겠고요.

<불멸> 그래? 그 정도로 강한 NPC가 있어?

<주호> 네. 계획을 다 엎어야 할 판이에요.

<불멸> 알았다. 그럼 최대한 알아내고 있어. 빼내줄 테니까.

미리 약속한 대로.

계획이 꼬일 경우.

혹은 레온 브라이더와 제대로 협상이 안 됐을 경우에는.

플랜 C를 쓰기로 되어 있었다.

흐음.

지금 같으면 플랜 D이려나.

레온 브라이더를 납치하는 방법이 플랜 C였으니.

그때 덩치가 날 노려보더니 말했다.

“천사도 아니고. 황실도 아니면…… 역시 마족인가?”

“……마족?”

이젠 하다 하다 마족까지 나오네.

레온 브라이더.

이 녀석 대체 뭐 하던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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