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27화 (1,015/1,404)

#1027화 에센시아 제국 (6)

전사 형이 이건 아니라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할 거냐?”

“다른 좋은 방법 있어요?”

“끙. 그건 아니지만.”

우리 팀과 나와 있는 곳은 에센시아 제국성의 시장의 한복판이었다.

긴급 소집령이 떨어져 다들 장사를 접고 있는 와중에 멀뚱멀뚱 서 있는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혹여 피해가 올까 자신들의 장사를 접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뿐이었다.

옆에서 이쁜소녀가 나를 보며 약간 망설이다가 말했다.

“오빠가 도둑질로 감옥에 들어가는 건…….”

“뭐 누구 하나 피해 안 주고 얌전히 들어갈 수 있잖아.”

“그래두…….”

“음, 그럼 누구 하나 패고 들어가야 하려나?”

“이잇. 그건 더 문제죠! 감옥에서 정말 못 나올 수도 있잖아요.”

이쁜소녀의 볼멘소리에 그저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러니까 이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에 알아본 바로는 이곳 에센시아 제국성에서 도둑질을 하면 감옥으로 잡혀 들어간다.

이후에는 재판을 받든지.

혹은 계속 잡혀 있을 수도 있고.

노역형 같은 것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다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감옥에 오래 잡혀 있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챠밍이 한숨을 짧게 쉬면서 말했다.

“하필이면 그 사람이 감옥에 있어서…….”

“그러게 말이다. 팔자에도 없는 감옥에 다 들어가 보겠네.”

현재 이곳 에센시아 제국성에는 수많은 영웅 후보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중에는 제국 직속의 녀석들도 있는 반면.

다른 왕국에서 온 녀석들도 즐비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죄다 자신들만의 세력이 있기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소한 뭔가의 연결고리가 있어야 접근이라도 해볼 텐데.

예를 들면 제국의 높은 직책이라던가.

같은 왕국 출신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방법은 써먹을 수 없는 방법이었다.

혹은 그들에게서 생성되는 이벤트라도 확실히 알면 그나마 접근하기가 쉬웠을 지도 모르지.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그들 중 하나에게 확실히 접근할 이벤트가 존재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면.

타 왕국에서 오는 사절단에 어떻게든 끼어들거나 동향 병사를 통해 길을 만들어 놨을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대와 맞지 않았다.

거기다 그 사절단은.

이전에 언급됐던 배신의 아이콘인 녀석의 왕국이기 때문에.

그런 왕국과 엮였다가는 나중에 어떤 식으로는 리바운드가 돌아올 터.

굳이 위험 부담이 있는 선택지를 고를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고 생각하다…… 마지막에 나온 것은.

“레온 브라이더.”

아니.

어쩌면 이게 첫 번째 선택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미리 알고도 선택하지 않은.

“우리가 만나야 하는 영웅이지.”

“무소속이기도 하고요?”

챠밍의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당 왕국에 대한 위험 부담이 없으면서도 제국 관련 귀족들과 인연이 없는. 어떻게 보면 우리이게는 최적의 선택지야.”

레온 브라이더 외에도 그런 형태로 남아 있는 몇몇 후보군이 있기는 했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어떻게든 만나볼 수 있는.

그런데 그런 그들과 비교했을 때.

시간이 지난 후에 영향력이 커지는 건 역시 레온 브라이더다.

아니.

유일하다고 할까.

성마 대전을 통해서 그 많은 영웅 후보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꼽히는 7 영웅에 속하게 되는 인물이니까.

옆에서 막내별이 조금 주저하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냈다.

“그런데 레온 브라이더 같은 거물은 건들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네, 그렇긴 하죠.”

막내별이 우려하는 건.

이전에도 말했듯이.

크루아 대륙 역사에서 중요점에 속하는 몇몇 인물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앞으로의 대륙 서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하나하나가 역사의 지지축이나 마찬가지인 셈.

그들을 중심으로 역사가 흐르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역사가 변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중간에 핵심에 가까운 그들 중 누군가와 접촉해 조금이라도 인과를 비틀게 되면…….

“지금 시점에서 주호 씨가 레온 브라이더를 만난다면…….”

“아마 바로 역사가 틀어지겠죠. 그것도 아주 큰 폭으로요.”

아직 레온 브라이더라는 영웅은 대륙 역사의 표면에 올라오지도 않은 녀석이다.

어떻게 보면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라는 거고.

그런데 이런 시점에 내가 그 레온 브라이더를 만난다?

심지어 르아 카르테의 전 주인과?

르아 카르테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해도 문제가 될 텐데.

둘이 만난다면 얼마나 역사가 틀어질지는.

안 봐도 뻔한 것 아닌가.

“그래도 이게 최선이에요.”

고민을 많이 했다.

르아 카르테의 전 주인인 영웅과 만나는 것에 대해서.

역사가 일그러짐을 감수하고라도 만나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결론은.

나쁘지 않다.

빠른 시간 내에 입지를 세우기에도 괜찮고.

에센시아 제국의 역사 속에 흘러 들어가기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변하는 주요 이벤트들에 대해서는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겠지만.

그럼에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

타지에서 온 이방인 용병이.

제국 사회에 주류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정도 편법은.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어차피 누군가의 영웅에게 접근해야 한다면.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영웅에 올라타는 게 맞는 것 아닐까.

접근하기 용이한 고만고만한 영웅을 택해서 이도 저도 아닌 이벤트에 끌려 다니며 시간과 자원을 날리는 것보다야.

이쪽이 몇 배는 이득이다.

고개를 돌려 나르샤 누나를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누나만 믿고 있을게요.”

“하아, 정말 대책 없네.”

“그러니까요.”

다시 시선을 옮겨 재중이 형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안에서 잘못되면…….”

“그래. 뒤처리는 내 몫이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재중이 형을 마주 보며 안심했다.

뭐 상황이 나빠지면.

재중이 형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

이런 확신이 있으니까 이런 미친 일을 벌이는 거다.

“그리고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르아 카르테?”

“네, 아무래도 르아 카르테를 지금 레온 브라이더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분명히 감옥 방향에서는 과거의 르아 카르테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건데…….

도통 이걸 찾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제국의 지하 어딘가에 있기는 한데.

그곳이 어딘지 특정할 수가 없었다.

뭔가의 결계에 갇혀 있는 것처럼.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결국 직접 확인해야 하는군.”

“그렇죠.”

무엇보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면.

내 쪽에서 레온 브라이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대폭 줄어들게 된다.

이후 전면에 나와 영웅이 된 레온 브라이더를 만나려면 나 역시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할 테니.

결국 기회는 지금뿐이다.

레온 브라이더가.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

잠시 우리 팀과 이야기를 나눈 뒤.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그럼 다들 이따가 봐요.”

“오빠 조심해요.”

챠밍의 마지막 말을 귀에 담으며 그냥 근처에 있는 상점 중에 하나에 들어가서 물건을 쓸어담았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고 들고 나오자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보던 주인이 곧 빗자루를 들고 날 따라왔다.

“도둑이다!!”

주인이 바로 알아채준 덕분에 두 번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곧 딱 한 명의 경비병만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아무래도 긴급 소집령 때문에 인원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이 새끼가 긴급 소집령을 틈타서 도둑질이냐!”

“아, 수고가 많으십니다. 얼른 잡아가시죠.”

그리고는 손을 내밀자 경비병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친놈 아냐?”

“포박이나 해주시죠. 감옥 들어가면 세 끼 밥은 주잖아요.”

“하. 요즘 힘들다더니 또냐.”

그러면서도 한숨을 쉬며 아무렇지 않게 바로 포박은 하는 걸 보면 의외로 나 같은 녀석들이 꽤 많은 듯 했다.

“어휴. 적당히 축내다가 나가. 봐주는 것도 이번뿐이야.”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잘못 걸리면 몬스터 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처리 못하는 죄수들을 전방에 세운다는 말이 있던데 아마 병사가 말하는 건 그건가 보네.

아직까지는 보는 눈이 있어서 대놓고 못하는 듯하지만.

나중에 정말 위험 수위에 달하면.

제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 된다.

그렇게 우리 팀을 두고 병사의 손에 이끌려 죄수들을 감금하는 감옥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보니 수많은 병사들이 성벽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봐요?”

“어휴, 안 좋지. 이번에 오는 녀석은 진짜 무시무시하다던데.”

벌써 소문이 돈 건가.

하긴 우리가 확인한 녀석들 정도라면.

멀리서도 충분히 인지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아직은 완전히 다가온 건 아닌 듯한데.

근처만 와 있어도 제국성이 통째로 흔들릴 것이다.

“쯧, 너 같은 녀석들 살리려고 저렇게 죽자 살자 막는 건 아닌데.”

“그런데 병사님은 안 가십니까?”

“미쳤어? 가서 죽으려고?”

나름 자기 분수는 아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꽤 오래 살 것 같기도 하고.

“곧 영웅님들이 막아 주시겠지.”

“아, 영웅…… 저도 되고 싶었는데요. 막 멋있는 검 들고 고대 마수도 베어주고요.”

“큭큭. 미친 새끼. 네가 영웅이면 난 제국의 왕이다.”

“뭐 그렇다는 거죠. 꿈도 못 꿉니까.”

“당장 몬스터 먹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야.”

으음.

이 사람이 내가 영웅 옆에 서서 같이 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갑자기 궁금해지기는 했다.

“영웅을 본 적 있어요?”

“있지. 우리 제국의 5황녀 님이 영웅 중 한 분 아니시냐. 아주 멀리서 봤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하며…… 여신이 따로 없다니까.”

“황녀님도 영웅인가요?”

“흐음. 너, 제국 출신이 아니구나?”

“네, 얼마 전에 가르시아 왕국에서 왔습니다만.”

“쯧. 그쪽도 다 됐나 보네. 여기까지 피난 온 걸 보면.”

이전에 동향 병사와 이야기 했던 게 이번에는 도움이 됐다.

가르시아 제국이라고 했었다면 지금쯤 다른 방식으로 곤란했을 지도.

미친놈 취급은 그만 받아도 되잖아?

그런데 5황녀가 영웅이었던가?

왜 기억에 없지?

끌려가는 와중에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전사 형. 혹시 에센시아 제국의 5황녀가 영웅이었어요?

<방패전사> 어? 아... 아마 맞을 걸? 그런데 정식으로 출전한 적은 적어서 기록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너도 전에 보지 않았어?

<주호> 아, 그러고 보니 자료를 넘기면서 본 것 같기도 하네요.

워낙 자료가 적어서 그런지 글자 몇 개로 스쳐 지나가며 본 기억이 떠올랐다.

영웅들 숫자도 워낙 많기도 하고.

거기다 내가 잊은 이유 중 하나는.

5황녀보다 훨씬 유명한 영웅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유명한 1황자와 3황자.

그리고 2황녀.

4황자도 마찬가지.

다른 황자나 황녀들 중에서도 영웅이 제법 된다.

이렇게 황가는 죄다 영웅 밭이다 보니 그냥 5황녀 정도는 발에 채인달까.

굳이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기억할 수가 없다.

아마도 이 병사는 5황녀가 이뻤기에 기억할 수도 잇겠지만.

그냥 내게는 역사에 스쳐가는.

수많은 황자나 황녀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그것도 후에는 죄다 죽어나가는.

“다 왔다.”

그렇게 병사에게 끌려서 들어간 감옥 안에서.

레온 브라이더를 만났는데…….

녀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을 가늘게 뜬 녀석이 날 노려보면서 말했다.

“뭘 꼬라 봐? 뒤지고 싶냐?”

으음…….

이 새끼.

그냥 죽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