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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24화 (1,012/1,404)
  • #1024화 에센시아 제국 (3)

    용병 길드 1층 벽 한편에는 이런저런 현상금이 걸린 벽보가 잔뜩 붙어져 있었다.

    여기 있는 용병들이 의뢰를 하거나.

    혹은 다른 귀족들이나 필요에 의한 의뢰인들이 올려놓은 각종 정보들의 모임.

    그런 벽보들에 가까이 시선을 맞추자 곧 눈앞에 반투명한 시스템 창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각 의뢰에 대한 세부 사항들이 나온 시스템 메시지들.

    그리고 그 벽보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스쳐지나가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쭉 몇 가지 내용들을 살펴본 후.

    좀 전에 내 귓가에 들려온 정보들과 비교를 해보았다.

    어쩌면 이거…….

    가능할 수도 있겠는데?

    다시 시선을 돌려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형, 분명 여기가 400년 전의 크루아 대륙이라고 했죠?”

    “그랬지.”

    재중이 형이 고대 마수의 탑이 일종의 시간 여행이라는 사실을 말해준 뒤에 약간의 의아함이 있었다.

    “그런데 굳이 우리 하나만을 위해서 이렇게 큰 시스템을 만들었을까요?”

    계속 이상했던 점.

    하나의 제국을 만들어 내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거의 에피소드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내는 자원이 들어갈 텐데.

    단순히 이 고대 마수의 탑이라는 게 우리만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래. 이 정도 규모라면…… 아마 조만간 전체 서비스를 할 예정이겠지.”

    우리만을 위해 이렇게까지 거대한 시스템을 만들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결국은 다른 유저들도 시점은 다르지만 언젠간 이곳으로 넘어올 것이다.

    혹은 이벤트 형식으로라도.

    한마디로 지금.

    우린 일종의 베타 서비스로 남들보다 먼저 들어와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전 성마 전쟁 시대라는 과거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뭐 죽으면 이탈한다는 아주 높은 난이도가 걸림돌이기는 해도. 버틸 수만 있으면 최고의 이벤트지.”

    확실히 재중이 형의 말이 맞다.

    만약 죽지 않고 버틸 수만 있다면.

    이곳보다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이 또 있을까.

    옆에서 전사 형이 나와 주변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용병들을 쭉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용병들을 비롯한 수많은 NPC들.

    이들은 이곳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제국성을 지킨다.

    그리고 그건.

    이번만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서든 데스 서버네. 죽으면 서버에서 튕겨나가는.”

    “네, 하지만 살아남기만 하면.”

    “최고지.”

    알아서 중도 포기하거나.

    혹은 이 이벤트 시대가 닫히지 않는 이상은.

    결국 살아남는 자가 최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주변에서 분주히 돌아다니는 용병들에게 시선을 줬다가 다시 수많은 벽보가 붙은 벽을 바라보면서 전사 형에게 빤히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전사 형, 일단 정보가 필요해요. 그것도 아주 방대한 자료가.”

    내 말뜻을 바로 알아들은 전사 형의 눈빛이 확연히 반짝였다.

    “하하, 이 녀석. 이 시대를 제대로 털어보겠다는 거구나?”

    그런 전사 형의 대답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정확한지는 몰라도. 어쨌든 여긴 ‘과거’의 크루아 대륙이잖아요. 그것도 그런 크루아 대륙의 중심인 에센시아 제국성이기도 하고요.”

    아마 과거 모든 사건 사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곳 에센시아 제국을 중심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만큼 해먹을 게 많다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우린 지금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 우리가 어느 시점의 과거에 와 있는지도 불확실했고.

    하지만 그런 단점을 커버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흐음. 알아보려면 좀 걸리긴 할 텐데. 시간이 될까?”

    “네, 어차피 접속 시간도 얼마 안 남았잖아요.”

    “하, 내 생애 가장 바쁜 로그아웃이 되겠네.”

    전사 형이 끌어모아야 할 정보는 정말 많을 것이다.

    그것도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다 짜깁기해서 쓸 만한 정보를 만들어야 할 테니까.

    과거의 크루아 대륙과 에센시아 제국.

    여기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면.

    무엇보다 관련 정보가 거의 남아있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예전 가르시아 제국에서 이전 성마 전쟁 시대의 정보를 알아보려고 해도 대부분 막혀 있거나 소실되어 있었다.

    평범하게 찾아선 나오진 않는다는 거겠지.

    그때 챠밍과 이쁜소녀도 내게 말했다.

    “오빠, 저도 찾아볼게요. 예전에 가르시아 도서관에서 봤던 기록들이 저장되어 있어요.”

    “저도 같이 찾을게요!”

    나르샤 누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나가면 전사하고 둘이서 최대한 맞춰서 찾아볼게. 그렇다고 너무 기대는 말고.”

    “네, 누나. 좀 부탁해요.”

    막내별도 한 손 거들었다.

    “전 방송 커뮤니티 쪽으로 한 번 뒤져 볼게요. 눈이 빨개지도록 영상을 뒤져야겠어요.”

    “너무 무리하진 말고요.”

    재중이 형 역시 손을 휘둘러 시스템을 불러냈다.

    “이거 참. 과거 기록 다 뒤지려면 죽겠는데?”

    “그래도 해야죠.”

    나도 마찬가지다.

    그땐 아무 의미 없이 저장해 놓고 펼쳐보지도 않은 가르시아 제국의 도서 정보들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재중이 형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찾아야 할 게 꽤 많아. 일단 이 시대에 나왔던 천사와 악마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고대 마수들 중에 잡히지 않은 녀석들에 대한 설화. 특히 400년 전쯤으로 언급되어 있는 마수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에센시아 제국에 대한 정보들도. 거의 남아있진 않겠지만. 제국 내 귀족 파벌이라던가 왕과 귀족들의 관계. 기사단, 마법사단, 특수 부대. 전체 군대의 규모와 편성 구조. 혹은 당시 강했던 NPC들의 기록 같은 것도 필요해. 군단장 같은 녀석들 말이야.”

    “휴, 할 게 많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냐. 이 시대에 숨겨진 특수 아이템들도 알아봐야 해. 특히나 영웅의 무구들을 비롯해서 그 이상 되는 제국의 아이템들. 네임드 템도 알아봐 주면 좋고. 천사나 악마들이 쓰는 아이템은 모르겠네. 정보가 있으려나? 그리고 천사 쪽 군대 규모와 악마군들의 정보까지 모두 필요해.”

    계속해 재중이 형은 앞으로 필요한 정보를 하나하나 짚어서 연이어 우리에게 알려줬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질려서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무엇보다 이 에센시아 제국성에서 일어났던 특수 이벤트들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해. 제국성의 방어전들은 언제 일어났는지. 내전이나 폭동. 반란 세력. 물가 시세 같은 것도 좋겠네. 가뭄, 폭풍, 물 부족, 식량 상황. 이상 기후의 영향. 유행하는 아이템들이라던가. 혹은 성마 대전 여파로 언제 망해서 피난을 가는지. 망하면 무엇 때문에 망했는지까지.”

    전사 형 말대로 알아내야 할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어차피 그중 대부분은 못 알아낼 거야. 자료 자체가 너무 부실하니까. 일단 부족한 건 사장님에게도 부탁해 놓을 거다.”

    “아, 확실히 도움이 되겠네요.”

    사장님이라면 인맥을 총동원해서 정보를 물어다 주실 거다.

    그러면 그걸 우린 최대한 추려서 필요한 것만 뽑아내면 되고.

    무엇보다 이 시대에서 나가지 못하는 우리와는 달리 사장님은 필요하다면 가르시아 제국까지 다녀올 수도 있는 노릇이라.

    우리가 놓치고 있던 정보까지 모두 물어다 주실 테지.

    “아, 제가 연결해 줬다고 하고 마리아에게도 다녀와 달라고 해줘요.”

    “여왕님 말이지?”

    “네, 아무래도 가르시아 제국의 여왕이니 우리보다는 많이 알겠죠.”

    표면적으로 알 수 없는 정보까지도.

    마리아 가르시아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원래라면 내가 직접 갔어야 하지만.

    우린 이곳에서 나갈 수가 없으니까.

    챠밍도 안심했는지 손을 모으고 말했다.

    “사장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역시 그렇지.”

    사장님이 이런 걸 좋아하시기도 하고.

    그러다 챠밍이 미소 지으며 전사 형에게 조언했다.

    “크게 한탕 할 수 있다고 전해드리면 아마 더 열심히 하실 거예요.”

    그 말에 전사 형이 배를 잡고 웃어버렸다.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내게 말했고.

    “쟤는 누구를 꼭 닮아가네.”

    “하하…….”

    부정할 순 없군.

    그리고 딱히 챠밍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이건 어쩌면 엄청난 기회일 지도 모른다.

    재중이 형도 그걸 잘 아는지 웃어 보였다.

    “우리가 하기 따라서 정말 제국 하나 살림을 거덜 낼 수도 있을 거야. 과거 사실을 안다는 건.”

    “네, 그만큼 엄청난 무기가 되죠.”

    “빙고. 어차피 제한적인 상황이라 전부 해먹을 순 없겠지만.”

    “알짜만 해먹자 이거죠?”

    “그렇지.”

    흘러가는.

    혹은 이미 흘러간 역사를 우리가 전부 해결할 순 없었다.

    사건은 많은데 우리 몸은 하나뿐이니.

    그래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이용해먹을 순 있겠지.

    만약 욕심이 넘쳐 이것저것 다 건들려고 하다가는.

    전부 놓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먹을 순 있는 건 초기뿐이야. 확정된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건들면 건들수록 바뀔 테니까.”

    재중이 형 말이 결코 틀리진 않았다.

    처음에야 우리가 가진 정보들이 어느 정도 들어맞겠지만.

    뒤에 어떻게 변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를 들어 죽지 않아야 할 인물을 우리가 죽어 버린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죽어야 하는 인간이 버젓이 살아 돌아다닐 수도 있고.

    그럼 이야기가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그 인물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정말 과정을 해서.

    에센시아 제국의 왕이 죽어야 하는데 우리가 살렸을 경우.

    혹은 그 반대로 살아야 하는데 죽었을 경우.

    이후 상황은 알던 역사와는 완전히 달라지겠지.

    상황도 급변할 테고.

    그럼 그때부터는 연관되어 있는 정보가 안 맞아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최대한.

    주요 인물에 대해서는 조심할 필요는 있겠어.

    반대로 반드시 일어날 일은.

    어떻게 하든 일어날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정해진 날에 마왕군이 쳐들어온다던가 하는.

    이런 경우는 어차피 제국성 내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확정된 이벤트랄까.

    그런 걸 잘 따져가면서 앞으로의 일정을 짜야 했다.

    고개를 들어 시스템을 보니 어느새 접속 제한 시간에 거의 근접해 있었다.

    전사 형도 확인한 듯 모두에게 말했다.

    “다들 나가서 쉬죠. 아마 내일은 꽤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으니까.”

    그 말에 이쁜소녀가 볼을 빵빵하게 만들고 말했다.

    “아쉬워요. 이제 시작인데.”

    “하하, 내일부터는 그런 말도 못 할걸?”

    그렇게 몇 마디 나누면서 주변 정리를 해두고는 하나둘 접속을 종료했다.

    VRS를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스쳐지나갔다.

    휴.

    이번엔 꽤 여러 일이 있었네.

    카르페디움 마왕성부터 에신시아 제국성까지.

    남들은 구경도 못해볼 곳들을 연이어 돌아다녔다.

    흐음.

    얼핏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다가 우리보다 뒤에 들어갔을 화련이 떠올랐다.

    지금쯤 비밀 창고에서 나왔겠네.

    아마 화련이라면 꽤 좋은 아이템들을 들고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화련이 우리와 같은 곳으로 떨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변수가 될 수도 있겠는데?

    혹시 방해가 된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름 큰손인데 좀 봐줘야 하나.

    곧 미리 우리 팀과 약속한 정보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꽤 힘들었지만.

    목적이 뚜렷했기에 지루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다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한숨 쉬듯 혼잣말을 했다.

    “대체 르아 카르테를 가졌던 영웅은 뭐 하는 놈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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