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23화 (1,011/1,404)

#1023화 에센시아 제국 (2)

400년여 전의 크루아 대륙.

그때 당시 대륙의 중심지였던 에센시아 제국.

지금 우리가 들어와 있는 곳은 바로 그 제국성이었다.

그런데 에센시아 제국성에 들어오자마자 르아 카르테가 묘한 공명음을 내었다.

마치 저 멀리 있는 곳에 뭔가가 있다는 듯.

그리고 그 떨림은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의 떨림이었다.

잔잔하면서도 청량한 듯한 느낌의 공명음.

이제껏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있을 때만 울리던 공명과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

과거로 온 우리가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과 위치.

또 이런 르아 카르테의 공명이 알려주는 것.

그게 가리키는 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과거로 왔다는 건.

그것도 성마대전이 벌어졌던 당시라면.

아스티아가 예전에 스치듯 언급한.

그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성마대전의 영웅이었던.

그리고 이전 르아 카르테의 주인이었던.

바로 그가.

몇 번 공명음을 울리다가 잠잠해진 르아 카르테를 인벤으로 다시 집어넣자 옆에서 챠밍이 눈치챈 듯 물었다.

“여기 또 있다는 게 그 르아 카르테 맞아요?”

“응, 아마 르아 카르테가 맞을걸? 100퍼센트 확신은 할 순 없지만.”

잠시 생각하던 챠밍이 곧 눈을 빛냈다.

“그럼 영웅도 여기 있겠네요?”

“역시 그렇겠지?”

영웅 없이 르아 카르테만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러다 챠밍이 내게 물었다.

“으음, 그러면 상대방 쪽에서도 이쪽을 알아채지 않았을까요? 똑같이 공명이 일어난다면 알 것 같은데.”

“아, 그건 생각 못 했네.”

이건 챠밍의 추리가 맞을 확률이 높았다.

여기에서 공명을 느꼈듯이.

반대쪽 르아 카르테도 똑같이 울렸을 테니까.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 르아 카르테는 넣어두고 다녀야겠는데?”

일단 겉으로 꺼내놓지 않으면 표시는 나지 않으니까.

인벤 속에 있는 물품까지 알아내는 NPC는 보기 힘들기도 하고.

“그럼 그 마검은요?”

“아, 이거? 흐음. 모르겠네. 여기 사람들이 마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이 마검은 마신의 파편 중에 하나다.

그리고 지금은 성마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지.

누군가 이 마검에 대해서 알아보기라도 하면 여간 귀찮아지는 게 아닐지도 몰라.

거기다 테르타로스 역시도 마신의 파편이니.

인벤 속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마신의 파편까지 하면…….

남들은 하나 가지기도 힘든 마신의 파편을 한 사람이 무려 세 개나 들고 있는 셈이었다.

정말 누군가 인벤 속의 아이템을 확인이라도 하면.

당장 마왕급으로 분류되어 쫓겨날 지도 모르겠는데.

아니.

토벌한다고 당장 죽이러 들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하아. 골치 아프네.”

이러면 내가 대놓고 쓸 수 있는 무기는 여기에선 일단 하나도 없게 된다.

르아 카르테를 꺼내놔도 문제고.

테르타로스 역시 마찬가지.

마검도 문제인 건 맞고.

그러면 남은 건…….

“그럼 이거 하나뿐인가?”

대천사의 무기인.

라페르나.

뭐 이것도 사실 문제인 게…….

당장 성마대전이라고 하면.

천사들도 개입되어 있을 텐데…….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대천사의 무기를 들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다.

대천사가 인간들에게 이 무기를 주지 않았을 테니까.

재중이 형이 그런 날 보고는 두 손을 들었다.

“넌 맨손으로 싸워야겠다.”

“하하…… 정말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 상황이 그랬다.

뭔가 다른 무기라도 구해야 하나?

“그러는 형도 문제 아니에요?”

“응? 나? 뭐 난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은데? 마룡의 창은 애초에 마신의 무기로 분류되는 것도 아니고. 프로미넌스는 들고 있으면 여기 사람들이 더 좋아하겠네.”

“아…… 그렇죠. 발록을 잡고 나온 거니까.”

무려 발록급의 네임드를 잡고 나온 아이템이다.

여기 상황을 정확히 모르긴 해도.

에센시아 제국성에 들어설 때부터 마왕과 마족, 고대 마수 토벌 관련 시스템이 뜬 걸 봐서는.

지금 적대적인 포지션의 끝판왕인 녀석을 잡고 구한 아이템일 테니.

어쩌면 우러러볼 수도…….

“전사 형은요?”

내 말에 전사 형이 잘 모르겠다는 듯 일단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으음,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전사 형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저었다.

“뭐 이 시대의 마왕 올펠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모르겠죠.”

그러자 전사 형이 웃으면서 내 등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그럼 마신의 파편도 상관없지 않아? 천사들이라도 만나면 모르겠다만.”

“하긴 그렇겠네요.”

그렇게 치면 문제되는 아이템이 한둘이 아니었다.

챠밍은 아마 지금 시대쯤의 현 마왕 서열 2위인 서리 여왕의 스태프를 들고 있는 데다가.

나르샤 누나는 어느 영웅의 활.

이쁜소녀와 막내별의 새 아이템들도 어느 정도 이 범주 안에 들어간다.

“차포 다 떼고 어떻게 싸우냐.”

전사 형의 말이 딱히 틀리지 않아 이쪽은 최대한 들키지 않는 선에서만 조심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모두 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머쓱하게 우리를 보는 녀석이 있었다.

“하하, 그렇게 다들 갑자기 쳐다보면 부끄러운데?”

“따라오셨습니까?”

“초행이 여기 와서 불안해 보여서 말이지.”

우리를 따라온 녀석은 아까 성문에서 지키고 있던 바로 그 동향 병사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신경 쓰여서 따라온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굳이 여행자에 불과한 우리를 따라올 이유가 있나?

“아아, 너무 그렇게 안 봐도 돼. 지금 전부 다 전쟁에 투입되어서 도와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

그의 말대로 확실히 제국성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상당히 비어 있었다.

건물에서 장사를 하는 일부 NPC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병장기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뿐.

병사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이 용병으로 보였다.

간혹 기사로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전부 무기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나?

이건 아마 용병으로 착각한 듯해서 생긴 일인 듯했다.

덕분에 시선을 끄는 일이 없어서 좋긴 하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가는 누구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필 지금 시점에 이곳에 오다니 딱하구만. 그래. 다들 무기는 좀 쓰는가?”

동향 병사도 우리가 가진 무기를 보고는 용병쯤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용병이 아니었다면 들여보내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시인 제국성의 상황이 그렇게 녹록해 보이진 않으니까.

“한 몸 정도는 챙길 수 있습니다.”

“오, 자신감 좋아. 어차피 자네들도 일자리를 찾아서 온 걸 테니까. 날 따라오게나.”

그러면서 동향 병사가 먼저 앞장서자 슬쩍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까요?”

“이곳 상황을 알아보기에는 나쁘지 않겠네. 따라가자. 지금 우린 너무 정보가 없으니까.”

“그렇다면야.”

모두를 돌아보자 다들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향 병사를 따라 걸었다.

걸어가면서 동향 병사에게 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나마 우리에게 호감이 있는 이 병사가 정보를 얻기에는 가장 적합할 테니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이곳 제국성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여기? 흐음. 괜히 쫄까 봐 이야기 안 했는데…… 앞으로 여기서 터전을 잡을 거라면 말해 주는 편이 좋겠지.”

그러면서 조금은 침울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요즘 매일 병사들이 죽어 나가. 오늘 옆에서 싸웠던 녀석도 내일 보면 없는 경우도 많고. 매번 쳐들어오는 괴물들은 상대하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니까.”

“아, 그렇죠.”

무한히 살아날 유저가 없는 성이라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곧 병사들이 몸을 바쳐서 이곳을 지켜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요즘은 좀 잠잠한 것 같지만. 얼마 전에 저 멀리서 굉음이 울리는 걸 봐서는 또 엄청난 녀석이 쳐들어오나 봐.”

동향 병사가 가리키는 방향에 순간 어깨가 움찔했다.

우리가 온 방향이었으니.

설마 이건 아크 드래곤을 말하는 거려나.

아니면 타이탄일 수도 있고.

솔직히 둘 중에 하나만 와도.

이곳의 방어가 버텨 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당장 마왕이 문제가 아니라 저런 네임드가 더 문제일 수도 모르겠네.

“휴, 그나마 영웅님들이 있어서 버티는 거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벌써 제국성이 함락되었을 거야.”

《 고대 에센시아 제국의 영웅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

《 해당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

“영웅요?”

“아니, 자넨 영웅님들을 몰라?”

동향 병사가 깜짝 놀라는 걸 봐서는 정말 유명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때 전사 형이 나섰다.

“멀리서 오다 보니 아직 소문을 잘 모릅니다.”

“흠흠. 그렇군. 잘 알아둬. 곧 영웅님들을 멀리서 바라볼 기회가 있을 테니까.”

멀리서 바라본다라…….

“정말 대단한가 보네요.”

“그럼. 전에 쳐들어온 고대 마수들도 영웅님들이 힘을 모아서 물리쳤지 않은가.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지 휴.”

확실히 현재의 영웅이 강하긴 강한 듯했다.

하나도 아니고 고대 마수들이라고 표현하는 걸 봐서는.

적어도 그들이 한 개체 이상을 물리쳤다는 뜻일 테니까.

그리고 그 뒤로 동향 병사가 자랑이라도 하듯이 그들에 대해 칭찬하는 걸 그대로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자 하는 확실한 정보는 그에게서 나오진 않았다.

영웅들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물어보기에는 아는 게 많아 보이진 않은데.

아마 일반 병사들에게서 얻을 수 있을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인 것 같았다.

어떻게 생겼는지.

그들이 쓰는 무기의 형태 정도?

가끔 멀리서 보기에 어떤 식으로 싸웠는지 몇 가지는 들을 수 있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역시 직접 만나보지 않고서는 어렵겠는데.

특히 르아 카르테를 들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웅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왜 이렇게 모르지?

적어도 르아 카르테를 들고 있다면…….

최전선에서 싸울 텐데.

지금 이 병사가 말하는 것을 봐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혹시 아직 르아 카르테가 각성하지 않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영웅이 아직 약하다던가.

뭔가 내가 아는 그런 영웅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라 의아한 느낌까지 들었다.

좀 더 알아봐야겠네.

그렇게 얼마나 따라갔을까.

용병 길드로 보이는 건물로 우리를 안내한 동향 병사가 돌아보며 말했다.

“당장 먹고살 만한 일거리는 이곳에서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너무 위험한 일은 맡지 말라고. 조금만 선을 넘어가면 바로…….”

그러면서 동향 병사가 엄지로 목을 긋는 표현을 해보였다.

조금만 위험한 일을 하면 목숨을 날린다는 건가.

아마 이 동행 병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배려를 해서 한 말일 터.

그런 동행 병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용병 길드는 한참 다른 용병들의 일처리로 바빠 보였다.

바깥과 달리 이곳만은 활기가 넘쳐보였다.

“마수 토벌에 가실 분!”

“새 마족이 발견되었습니다. 귀족 토벌대에 참가하실 용병분 바로 신청해 주세요. 보수 쎕니다!”

“마왕의 정보를 제공해 주실 분 있나요? 중앙 귀족분이 비싸게 산다고 하네요.”

이런저런 정보를 서로 나누면서 바쁘게 있는 중.

내 귀에 하나의 정보가 흘러 들어왔다.

흐음.

이거.

괜찮겠는데?

곧장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