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화 고대 마수의 탑 (4)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위에선 타이머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한 시간에서.
지금은 조금 시간이 지났다.
52:19
어떻게 많다면 많은 시간이지만.
그만큼 적은 시간이기도 하지.
그래서 나와 재중이 형도 같이 걸어가면서 여러 아이템들을 눈여겨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차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선택은 신중하게 해도 모자라지 않다.
오히려 아이템들을 바로 골라온 이쁜소녀와 전사 형이 너무 빠른 편이었다.
그렇게 아이템을 고른 이쁜소녀와 전사 형은 다시 창고의 깊은 곳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정확하게는 전사 형은 두 아이템 중에서 고민 중이었고.
당장은 그 아이템들이 좋아 보였겠지만.
창고의 깊은 곳에는 더 좋은 아이템들이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얼마 뒤 두 사람이 보물찾기에 나선 중에 챠밍과 막내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챠밍과 막내별이 각자 두 팔에 한아름씩 들고 온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등급의 아이템들이었다.
어느 것 하나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재중이 형이 그 아이템들을 한 번 쓱 살펴보더니 혀를 찼다.
“하, 여긴 완전 보물 창고였네.”
“뭐 보물 창고는 맞잖아요.”
무려 마계 서열 1위 마왕의 창고다.
이곳에 아이템이 상상 이상으로 많아서 문제지만.
챠밍과 막내별이 차마 선택을 못 하고 나와 재중이 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중이 형이 난감한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이거 참. 뭘 골라 줘야 할지 모르겠네.”
대흑마녀 스태프.
오직 파괴를 위해 존재하는 대규모 광역 마법의 파괴력 증폭 아이템.
그냥 지력과 마력 증가 옵션 정도는 아주 평범한 측에 속했고.
크리티컬 확률 대폭 증가.
크리티컬 대미지 대폭 증가.
광역 스킬 사용시 시전 속도 대폭 감소.
광역 스킬 사용시 소모 마력량 대폭 감소.
광역 스킬 쿨타임 대폭 감소.
초고속 마력 회복.
등등.
마법사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옵션들이 죄다 몰려 있었다.
아마 바깥에서 이 정도까지 옵션이 동시에 들어간 스태프는 찾기도 힘들 것이다.
이 스태프를 가지고 광역 스킬만 쓴다면 거의 난사에 가까운 수준으로 뿌릴 수 있을 테지.
그야말로 대마법사를 위한 스태프.
그리고 다른 하나, 디아블로 심장은…….
네임드로 보이는 디아블로를 잡고 나온 아이템 같은데.
이쪽은 더했다.
무려 디아블로로 변할 수 있는 아이템.
재중이 형이 디아블로의 심장을 보더니 관심을 가졌다.
“이야, 이거 어지간한 아이템들보다 좋겠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디아블로라는 네임드는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최소한 지금의 우리 수준에서 만날 수 있는 네임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네임드로 변할 수 있는 심장이라니.
물론 그간 봐온 대로면 본체보다 상당히 능력치가 떨어진 상태로 변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다.
“이거 제가 써볼까요?”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는데 의외로 재중이 형은 말리지 않았다.
“너한텐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맞다.
이미 난 무기 하나만은 차고 넘칠 정도로 좋은 아이템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굳이 이곳에서 뭔가의 새로운 무기를 고를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해봐야 하는 건 두 가지.
지금 무기들을 받쳐 줄 수 있는 방어력을 가진 방어구.
혹은 충분히 마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악세서리 계열의 마력 증가템이나 회복템.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중에서는 이 정도가 내게는 최선일 것이다.
그런데 이 디아블로의 심장은 그런 점을 상당 부분 채워줄 수 있었다.
일단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간형의 모습일 테고.
그럼 무기를 쓰는 데 제약이 없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다 네임드라면 마력 수준은 이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질 터.
방어력 역시도 당연히 오르겠지.
재중이 형이 괜찮다고 하는 건 이런 점이다.
아마 챠밍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찾았을지도 모르겠네.
챠밍이 슬쩍 날 보더니 미소 지으며 권했다.
“오빠가 좋으면 써도 돼요.”
“넌 안 써도 괜찮아?”
그러자 남아 있는 아이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은 템이 이렇게 많은데요?”
“하긴 그렇네.”
챠밍은 굳이 이게 아니더라도 고를 아이템들이 너무 많았다.
“그럼 일단 후보 정도는 넣어놔야겠다.”
아직 아이템들을 전부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이 디아블로 심장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다음으로 본 건 티아메트 목걸이.
악세서리 중에 이 정도로 이름이 붙은 아이템은 오랜만인데?
당연히 다들 시선이 이 티아메트 목걸이에 몰렸다.
그리고 모두 감탄했다.
“옵션 죽이네.”
재중이 형의 평가.
“역시 그렇죠?”
“어, 누가 써도 이건 좋다.”
티아메트가 정확히 무슨 네임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옵션 중에 미친 옵션들이 다수 존재했다.
“마법 방어가 미쳤는데?”
“마법 치명타도요. 어지간해서는 마법으로 대미지를 주지도 못할 것 같아요.”
“디버프 방어 확률도 굉장히 높고. 기절 디버프도 방어해 주네.”
“이러면 다운 자체가 힘들겠죠.”
“그래. 이런 수치면 치명타가 터져도 안 쓰러진다.”
보통 마법 방어는 방어구에 달려 있는 건데 반해.
이 악세는 마법 방어를 추가로 올려주는 옵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수치로.
어지간한 좋은 방어구 몇 개를 걸치고 있어야 하는 옵션이 악세서리 하나에 들어가 있다니.
특히 다운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일정 이상의 대미지를 받으면 아예 몸이 움직이지도 않는데.
그걸 제어해 준다는 거다.
엄청난 피해를 받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몸이 움직일 수 있도록.
챠밍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옵션이 사기예요.”
막내별도 그렇고.
“옵션만 보면 아무리 쓰러뜨려도 안 쓰러질 것 같아요. 죽기 전까진.”
만약 이런 딱 하나만 아이템을 들고 나가야 하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무조건 들고 가야 하는 아이템에 1순위로 꼽아야 할 것이다.
이 티아메트 목걸이만 착용하고 있다면.
네임드와 싸우다가 다운될 상황에서도 버티고 일어날 테니까.
그냥 계열 자체가 다른.
특수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마법 공격이 강한 네임드를 상대로는 엄청난 효율을 발휘하겠지.
“전사 형은…… 메두사 세트가 아니라 이걸 들고 나가야 할 것 같은데요?”
내 의견에 재중이 형을 포함한 셋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쉴드나 무기 계열은 어떻게 구하다 보면 꽤 강한 아이템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악세는 아니다.
그야말로 탱커를 해야 하는 전사 형의 부족한 면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최상위 악세서리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재중이 형이 제일 먼저 언급했듯이.
이건 누가 써도 좋다.
없어서 못 쓰지.
하지만 만약 전사 형이 이 티아메트 목걸이를 가지게 되면.
어지간한 마법형 몬스터들은 대놓고 몸빵이 가능해질 테니.
육체 능력은 좋지만 가뜩이나 마법 방어에 취약한 탱커다 보니.
거의 필수라고 생각되었다.
마법 방어와 상태 이상을 동시에 방어하는.
값어치를 따지기도 힘든 악세서리라.
재중이 형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지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아주 눈이 빨갛게 아이템을 찾고 있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요.”
그 모습을 직접 안 봐도 상상이 된달까.
전사 형만큼 아이템을 사랑하는 유저도 없다.
여기 있는 아이템들로 도감을 만들라고 해도 할 사람이라.
아쉽게도 그런 전사 형의 아이템은 거의 확정이 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전사 형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면 말했다.
“가지고 오는 건 얘들이 가져왔는데, 주인은 엉뚱한 데서 찾네.”
“그러게요.”
챠밍과 막내별도 재중이 형 말에 같이 웃어 버렸다.
“자, 보자. 다음은 서큐버스 심안인가?”
서큐버스 심안.
심안 계열은 다 특이하긴 한데.
이건 또 꽤 특이했다.
“호오, 꽤 좋은데?”
“그렇죠?”
“아이템의 옵션을 감정하는 능력이라…….”
그야말로 번외편의 아이템이랄까.
서큐버스 심안은 게임 내의 능력이 아니라.
외적인 능력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물론 단순히 그런 옵션만 있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마법 방어나 상태 이상 방어도 가지고 있었고.
특히 현혹 계열의 디버프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효과적인 옵션이 들어가 있었다.
정신 계열의 디버프 마법.
예를 들면 이전에 저주로 잠시 동안 몸의 통제가 뺏긴다든가 하는.
그런 디버프가 걸리면 본인이 아무리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순간적으로 무방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혹은 저주에 걸려 아군을 공격한다던가 하는 상태를 방지할 수도 있고.
그런 능력들을 둘째 치고라도 아이템을 감정할 수 있는 옵션은 굉장히 희귀한 옵션에 속했다.
막내별이 재중이 형을 보고 말했다.
“특이해 보여서 가지고 왔어요.”
“확실히 특이하긴 해.”
그동안 옵션으로는 볼 수 없는 형태라.
그런데 문제는 이 감정 옵션이 얼마나 쓸모가 있느냐였다.
만약 내 대천사의 검 같은 숨겨진 옵션이 있는 아이템까지 감정할 정도의 능력이라면…….
“소유하지 말라는 거지, 써보는 건 되겠죠?”
그러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큐버스 심안을 내게 넘겨주었다.
“대천사의 검?”
“네, 되면요.”
그리고 바로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꺼내서 심안을 사용해 보았다.
딱히 1회성 아이템도 아니어서 소멸할 위험도 없었고.
서큐버스 심안에서 빛이 확 퍼져 나오더니 라페르나를 감싸면서 감정에 들어갔다.
《 서큐버스 심안의 감정 옵션을 발동합니다. 》
《 대천사의 검의 등급이 서큐버스 심안의 옵션 등급을 상회합니다. 》
《 서큐버스 심안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
《 감정에 실패하였습니다. 》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실패네요. 대천사의 검이 등급이 높다고 해요.”
“하긴 이렇게 쉽게 될 거였으면 그 고생을 안 했지.”
재중이 형은 크게 기대는 안 한 모양이었다.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써본 거였고.
그때 막내별이 생각이 있는지 말했다.
“혹시 서큐버스 심안보다 더 높은 등급의 심안도 있을까요?”
그 말에 재중이 형의 눈빛이 반짝였다.
“호오, 확실히. 심안이 있는 더 높은 네임드를 찾을 수 있다면 말이지.”
아직 이곳 창고를 다 뒤지지 못했지만.
막내별의 말대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시간 내에 찾으려면 엄청 돌아야겠어요.”
문제는 그걸 찾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아이템들을 포기하고 들고 나갈 확률은 또 낮은 편이었다.
나갈 때는 딱 하나만 가져갈 수 있으니.
“바이카르한테 더 달라고 졸라볼까요?”
“그전에 목이 날아갈걸?”
“하긴 지금도 대출혈 서비스긴 하죠.”
여기 있는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밖에 나가면 사기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 가져간다고 하면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지.
챠밍이 두 개의 아이템을 동시에 들어 올렸다.
“이건 정령왕의 아이템들이에요.”
『 정령왕 이프리트 혼 』
『 정령왕 나이어드 반지 』
하나는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 같은 수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물빛이 흐르는 반지 형태의 악세서리였다.
마계에서 정령왕의 아이템들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정령왕이라…….”
이미 최상급 정령은 한번 본 적이 있었다.
발록을 도와주던 녀석.
그리고 정령왕이라면 계열이 다르긴 해도 금속의 정령도 있으니까.
아쉽게도 이 녀석들은 옵션을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챠밍이 이 아이템들을 가져온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본인의 전투력 외의 전력이 된다는 것.
소환만 가능하다면.
압도적으로 좋은 아이템들이라는 거다.
챠밍이 날 보면서 물었다.
“쓸 수 있을까요?”
“으음, 글쎄. 솔직히 난 모르겠어.”
그런데 그때 르아 카르테가 진동을 하면서 반짝였다.
별인가?
곧 금속의 정령이 나오더니 우리를 보면서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것도 아주 당연하다는 투로.
“소환시켜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