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86화 (974/1,404)

#986화 마왕의 핵 (4)

쿠구궁!!

계속되는 뭔가의 거대한 충격에 마왕성 대전이 크게 흔들렸다.

마왕성 외부에서부터 전해오는 강렬한 압력에 대전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천장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크그긍!!

콰드득!!

그리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천장의 벽에 서서히 균열이 가며 암석 부스러기들이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가 한 말들과 그 모습을 바라 본 화련이 기가 찬 듯 내게 물었다.

“지금 마왕이라고 했어?”

그런 화련을 향해 마주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 마왕요.”

화련이 잠시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가 생각났는지 곧 알겠다는 듯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화련의 시선이 마왕 스티어에게 옮겨갔다.

내가 던진 대천사의 검, 라페르타를 손에 쥔 채 역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

“너.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잔머리 하나는 알아줘야겠어.”

“음, 그거 칭찬 맞죠?”

“좋을 대로 생각해.”

이미 화련은 내가 한 행동들로 인해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아낸 모양이었다.

정문의 결계를 부수기 위해 우리 팀을 비롯한 유저들이 몰려와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들로서는 이 결계를 부수는 건 무리였다.

당장 우리도 부수고 나가지 못하는 판에.

그럼 결국 답은 하나다.

재중이 형도 옆으로 오더니 내 등을 팡팡 치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짧은 순간에 아주 그럴싸한 그림을 만들어 놨잖아?”

“뭐, 거의 임시방편이죠.”

“그 임시방편이 완벽한 비수가 될 거다.”

재중이 형 역시도 내가 왜 마지막에 그런 행동을 했는지 눈치챈 듯했다.

전신 역시 내 쪽을 보고 바로 마왕 스티어를 보는 것을 봐선 역시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하여간 다들 눈치 하나는 정말 빠르다니까.

패황도 그런 우리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마왕 스티어를 발견하고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

아마 내가 화련과 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 마왕 스티어의 결계가 강력한 외부의 충격으로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

같은 마왕의 결계를 부수려면.

최소한 비슷하거나 더 강한 존재의 힘이 필요했다.

이전에 마왕 스티어의 결계를 마왕 올펠이 무시했듯이.

결국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더 강한 무언가.

그리고 그런 존재는.

최소한 이 마계에선 또 다른 마왕밖에는 없었다.

쿠쿠궁!!

여전히 이어지는 강력한 충격파에 마왕성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마왕 스티어의 결계가 강력한 외부의 충격으로 완전히 붕괴됩니다! 》

《 일대에 펼쳐진 마왕 스티어의 결계가 해제됩니다. 》

《 텔레포트가 가능해집니다. 》

《 가까운 귀환지로 귀환이 가능해집니다. 》

《 외부로의 귓속말이 가능해집니다. 》

그동안 검은빛으로 막혀 있던 기능들이 다시 빛이 들어오면서 활성화 되었다.

“이제 나갈 수 있겠네요.”

어쩌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뿐이다.

떠나려면 바로…….

그런데 뜻밖의 메시지가 울렸다.

《 마력 간섭으로 인해 같은 공간에 일시적으로 결계 설치가 불가능해집니다. 》

역시 이래서 아까 마왕 스티어가 바로 결계를 치지 못했던 건가?

마왕 올펠이 죽자마자 바로 결계를 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오히려 우리가 속은 것도 있었다.

녀석이 다른 마음을 먹었다고 판단하지 못했으니.

만약 바로 결계를 시도했다면 뒤도 보지 않고 빠져나왔겠지.

곧 마왕성 대전의 천장이 완전히 부서지면서 천장을 지지하던 커다란 암석들이 통째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피해!”

아무리 체력이 많더라도 저런 바위에 깔리면 볼 것도 없이 그냥 한 방이다.

재중이 형의 신호에 모두가 산개하며 빠르게 암석들을 피해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사이 마왕 스티어가 우리에게 뭔가 공격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녀석의 신경은 온통 대전의 부서진 천장에 가 있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아예 시선에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야겠지.

그럴 정신도 아닐 테고.

녀석은 우리에게.

정확히는 내게 원하는 것을 확실히 얻어낸 상태였다.

우리가 죽든 살든.

마왕 스티어에게는 이미 관심 밖의 일이라는 거다.

그 증거로 녀석의 부하들조차 우리에게 완전히 관심을 끊은 듯 역시 마왕 스티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화련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우릴 아예 신경도 안 쓰네.”

“네, 뭐. 목적을 이뤘으니까요.”

마왕 스티어가 관심을 끊어준 덕분에 이곳을 벗어나려고 하면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조금은 여유가 생긴 거려나.

그사이 하늘에서는 뭔가의 강렬한 기운을 줄기차게 내뿜는 존재가 서서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

이거 참.

저건 생각했던 것 이상인데?

부탁했던 일을 해도 너무 잘해 줬네…….

화련도 의아한 듯 내게 물었다.

“하나가 아니잖아?”

“확실히 그렇네요.”

“저것도 네 작품이야?”

“아, 예상한 것보다는 좀 과하긴 해도. 나쁘진 않아요.”

그래.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마왕 스티어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기 전에는.

만약 녀석의 특성 중에 하나가 내가 예상한 것과 같다면.

단순히 마왕 하나로는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저렇게 나서주는 편이 훨씬 내가 원하는 결과에 다가설 수 있을 터.

어느새 바닥에 내려선 마왕들을 보더니 마왕 스티어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마왕이 넷이다.

마왕 스티어가 단독으로 싸움을 걸기에는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거지.

그리고 싸움을 거는 순간.

녀석을 여기서 생을 마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마왕 스티어의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자신의 마왕성을 다른 마왕들이 억지로 침범했음에도.

딱히 제지를 하지 못하는 상황.

자세히 보니 마왕 넷 중에 하나는 이미 기억에 있는 녀석이었다.

마계 경매장에서 마주쳤던.

아마…….

서열 2위라고 했었지?

마왕 데미안.

암갈색의 피부를 가진 탄탄한 신체를 가진 마왕.

다른 마왕들이 강렬한 마기를 내뿜는 것과 달리.

유독 저 데미안이라는 녀석의 기는 차분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기를 내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녀석을 보는 내 두 손은 이미 땀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이건…….

본능적으로 알겠다.

마계 경매장에서는 힘을 내지 못하는 특유의 결계 때문에 일부러 힘을 누르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

저 녀석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

심지어 마왕 올펠을 잡아먹고 성장한 마왕 스티어보다.

저리게 느껴지는 감각이 오직 저 마왕 데미안만을 향해 경고를 보내는 걸 보면.

아마 이건 확실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내 감각에는 느껴진다.

녀석의 주변을 맴도는 실낱같아 보이는 예기가.

다른 녀석에 비해 사소해 보여도…….

잔잔하게 흐르는 저 기운이 얼마나 강렬한지.

아마 닿는 순간 바로 절단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째서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앞서 마왕 올펠은…….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녀석은 아니다.

그냥.

다른 마왕들과 사는 급수 자체가 다른 녀석이었다.

어떻게 마왕 올펠이 3위고 이 녀석이 2위일 수가 있지?

내가 지금 느끼는 격차는 그 숫자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였다.

솔직히 이건.

전에 봤던 대천사 루스와 비슷한 느낌인데…….

상위 마왕이라는 게 이렇게 강한 존재인 건가?

화련이 그런 내가 이상하게 보였는지 내 팔을 툭 쳤다.

“너 갑자기 왜 그래?”

“아…… 제가 좀 이상했나요?”

“어, 너 완전히 얼어 있던데?”

그때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와서는 말했다.

“이번엔 진짜 떠야겠다.”

그 말을 하는 재중이 형의 손 역시도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 다르죠?”

“어, 마왕 스티어 저 녀석. 순식간에 썰려 버릴지도 몰라.”

저게 확실히 뭔지는 몰라도 재중이 형도 비슷한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전신 역시도 안색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저놈도 저 모양이다.”

아마 일정 이상의 감각을 가진 사람들만 저걸 보고 위협을 느끼는 건가.

재중이 형이 쓴웃음을 지었다.

“2위하고 3위가 저렇게 차이 날 줄 몰랐는데?”

재중이 형도 마왕 올펠과는 붙어서 상당히 오래 버텼다.

그게 협공이든 어쨌든 적어도 싸울 만은 했다는 거지.

그런 재중이 형도 지금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날 바라본 재중이 형이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튀자.”

어지간해서는 튀자는 말을 하지 않는데.

내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정말 상대가 좋지 않았다.

“그전에 가져가야 할 게 있어요.”

적어도.

챙길 건 챙기고 가야지.

그 고생을 하고 잡았는데 그냥 갔다가는 계속 머릿속에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내게 신호했다.

“내가 챙길 테니. 일단 넌 빠져.”

재중이 형은 내가 죽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아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왕 데미안이 마왕 스티어를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이 마왕성에서 마왕 올펠의 기운이 끊겼는데 아는 게 있나?”

마치 마왕 스티어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나른한 말투.

그리고 그런 무시하는 녀석의 태도는 마왕 스티어의 자존심을 바로 긁어놓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마왕 스티어의 로브 안이 크게 울렁이는 걸 보면.

녀석을 오래 보진 못 했지만.

저건 분명히 기분 나쁘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다.

“난 모르겠는데? 갑자기 남의 마왕성을 부수고 들어와서는 할 말이 아니지 않나?”

전에 마왕 올펠이 쳐들어 왔을 때와 비교해보면 다소 누그러진 모습이긴 했다.

녀석도 머리가 있다면 마왕이 무려 넷이나 앞에 있는데 시비를 걸 순 없을 테니까.

특히 마왕 데미안의 존재감은 그중에서도 압권이었다.

같은 마왕이니 오히려 더 잘 알지 않을까?

그런 마왕 스티어의 말에 마왕 데미안이 고개를 돌려 마왕성 대전 내부를 한 번 스윽 둘러보았다.

대전 중앙에 가득한 전투 흔적이라던가.

정체 모를 스킬에 박살이 난 대전의 한쪽 벽이라던가.

시선이 닿는 모든 장소에서 전투가 있었다.

저게 그냥 흔하게 날 수 있는 흔적들은 아니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원하는 뭔가를 찾았는지 마왕 데미안의 표정이 나른함에서 무심함에 가까운 흥미로 변했다.

“마왕 올펠이 저기서 죽었군.”

그렇게 녀석이 가리킨 곳은 정확히 마왕 올펠의 잔해가 남은 자리였다.

마왕 스티어는 바로 인상을 구겼고.

그러거나 말거나 또 다른 흔적을 찾은 마왕 데미안에게서 약간의 감탄이 이어졌다.

순수한 호기심이랄까.

“그리고 천계의 스킬…… 아마 그랜드 크로스였던가. 대천사의 최종기. 마왕 올펠을 죽인 건 이 기술이겠군.”

그러고는 마왕 데미안의 눈빛이 점점 서늘하게 물들어갔다.

정확하게는 마왕 스티어가 뒤로 숨기고 있는 한 자루 검을 바라보면서.

“그런데 왜 네가 그걸 가지고 있을까? 마왕 스티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