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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71화 (959/1,404)

#971화 대천사의 가호 (6)

연회장에 들어온 녀석들은 우리가 이곳 시아트 마왕성의 지분을 팔아넘겼던 유저들이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전신과 패황.

그 외의 중립 연합과 상인 연합의 유저들로 보이는 몇 사람 정도가 있었지만 딱히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리고 화련 역시 뒤쪽에 서서 뭔가가 못 마땅한 듯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좀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왕 스티어가 지분이 있는 유저들을 다 불러들인 건가?

화련이 내 근처로 걸어오더니 전신을 슬쩍 쳐다봤다가 다시 시선이 마왕 스티어로 갔다.

마왕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습.

강렬한 존재가 주는 기세에 기가 눌릴 법하기도 한데.

화련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역시 기가 세다니까.

“너, 생각보다 저 녀석에게 신용을 못 받고 있나 봐?”

“으음, 그렇게 보이나요?”

“아니면 우리까지 왜 부르겠어.”

화련도 이곳 시아트 마왕성에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참석 못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마왕 스티어를 소개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던가?

화련에게 꽤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다지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이상하다는 듯 물어보니 화련이 코웃음을 치면서 대답했다.

“저 녀석들이 없었다면 말이지.”

그러면서 다시 전신과 패황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서 도매급으로 묶이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야.”

흐음.

단독으로 만나길 바랐던 건가?

지금의 만남은 화련이 기대했던 장면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어쨌든 만났으니 한 번 이야기해 보시죠?”

“별로?”

들어올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더라니.

그런 화련을 지켜보던 전신이 나와 재중이 형에게 다가왔다.

“지분 경매 이후 처음이군요.”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인사를 받았다.

“그러게. 요즘 정말 자주 보네.”

전신은 모르겠지만 이미 나와 재중이 형은 가명으로 전장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직접 붙은 건 아니지만 자주 본 건 맞지.

재중이 형의 알 수 없는 말에 전신이 살짝 눈을 가늘게 내렸다.

흔히 있을 법한 인사인데 둘 사이의 대화라 그런지 진의를 파악하려는 모습.

잠시 재중이 형을 바라보던 전신이 곧 표정을 풀며 말했다.

“당신도 퀘스트를 받으러 왔습니까?”

그런 전신의 물음에 재중이 형이 마왕 스티어를 바라보았다.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호오, 그렇단 말이지? 왜 이렇게 우르르 몰려왔는지 알겠는데?”

전신의 말에 나 역시도 이해를 했다.

<불멸> 저 녀석. 꽤 고약한 면이 있어.

전신이 말한 퀘스트는 다른 게 아닐 것이다.

바로 조금 전 우리가 받은 퀘스트.

마계에 침략한 천사(?)를 찾아내야 하는 미션.

<불멸> 마왕 스티어 입장에서는 쓸 수 있는 패는 다 쓴다고 보는 게 맞으려나?

저 마왕 스티어가 어떤 생각인지는 이걸로 확실해졌다.

단순히 우리에게만 퀘스트를 맡길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다.

<주호> 아무래도 마왕 스티어가 우리를 경쟁시키려는 모양이에요.

한 가지 일을 동시에 맡기고 제일 높은 성과를 가져오는 녀석들을 포상하는 일은 어느 곳이나 비일비재했다.

이곳 역시나 마찬가지.

우리가 편하고 느긋하게 일을 처리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간 가만히 지켜보던 마왕 스티어가 강렬한 진동이 느껴지는 말투로 유저들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보는군. 인간 연합의 수장들이여.”

쿠구궁.

단지 한 마디 말조차 압력이 되는 마법.

이게 마왕들의 능력 중에 하나다.

듣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복종을 하게 만드는.

그런 마왕의 위엄이 연회장 내를 덮자 마왕 스티어를 그저 그런 몬스터 정도로 생각했던 녀석들의 안색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평범한 연합 유저들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압력에 버티다 못해 그 자리에 무릎을 내리 꿇었다.

하지만 전신은 곳곳이 서서 마왕 스티어의 압력을 정면으로 버텨냈다.

패황도 힘겨워 보이지만 꽤나 잘 버티는 모습.

그런데 의외인 건…….

화련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왕 스티어의 압력을 흘려버리듯 그 자리에 너무 편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는 전신을 보고는 하얀 미소를 내보였다.

마치 내가 이 정도다라고 자랑이라도 하듯.

확실히 전신과 화련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격차가 보였다.

마왕 스티어가 연회장을 슥 훑어보더니 흥미롭다는 듯 어둠이 일렁였다.

“재밌는 녀석이 있군.”

정확히는 화련을 보고 한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마왕 스티어라면 분명 이 자리에서 화련을 공격해볼 것이 뻔했다.

그 순간 손을 들어올렸다.

“그쯤 하면 될 것 같은데? 마왕의 위엄을 보이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화련은 어떤 식으로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예상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방법을 썼을 수도 있고.

내 품에 있는 테르타로스와 르아 카르테가 마왕의 격에 반응이라도 하듯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런 강렬한 파장들이 마왕 스티어의 압력을 몰아내듯 바깥으로 밀어내며 주인을 보호했다.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고유 무기들.

만약 지금 대천사의 검을 꺼내고 있었다면 아마 미친 듯이 저 녀석의 기운이 반발하지 않았을까.

너무 쉽게 자신의 기운을 견뎌내는 내 말에 슬쩍 나를 흘겨본 마왕 스티어의 어둠이 크게 울렁였다.

“날 방해하겠다는 건가?”

말단이라고 해도 이 녀석도 마왕은 마왕.

일개 유저가 만류한다고 들어 처먹을 녀석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생각도 없었고.

“흐음, 아마 이 녀석들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을 텐데 벌써 이러면 일은 제대로 하겠어?”

그 말을 들은 마왕 스티어가 움찔하더니 크게 일으켰던 어둠을 서서히 자신의 몸으로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흠, 이 정도면 됐겠지.”

기선 제압하는 걸로만 치면 꽤 좋은 시작이었다.

반대로 유저들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들이 거래하려던 마왕이 이런 존재라는 걸 아는 순간.

평범한 녀석들은 제대로 협상조차 해보지 못할 것이다.

화련이나 전신 같은 사람들은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지만.

잠시 우리들을 내려다보던 마왕 스티어가 곧 전체에 퀘스트를 전달했다.

전에 내게 이야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 서브 퀘스트 : 마왕 스티어의 천사 수색 의뢰. 》

- 마계에 침략한 천사의 흔적 조사.

- 마계에 침략한 천사를 포획.

- 포획 실패 시 사살 가능.

- 퀘스트 보상.

마왕 스티어와의 우호도 상승.

실패 시 우호도 하락.

다른 건 천사를 사살하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을 빼면 거의 동일했다.

“천사?”

“천계라니…….”

뜻밖의 내용을 담은 퀘스트가 떨어지자 미션을 받은 녀석들이 모두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특히 상인 연합 유저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돈이 된다고 생각한 거려나?

현재 업데이트될 거라 이야기는 되어 있지만 꽤 오랜 기간 베일에 싸여있는 시스템.

천계에 관련된 대부분의 시스템은 열리지 않는 상태였다.

그리고 전신은 천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손을 불끈 쥐었다.

<주호> 형, 그러고 보니 저 녀석. 대천사의 무덤을 공략하려고 했었죠.

<불멸> 아, 전신? 저놈?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 말했다.

<불멸> 뭐 녀석 입장에서는 꽤 구미가 당기는 퀘스트겠네.

이전부터 전신은 천사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모아왔던 걸로 안다.

대천사의 무덤 공략도 남들 몰래 진행할 정도로.

지금이야 그걸 함정으로 이용하려다가 자기가 당한 셈이었지만.

어쨌든 천계나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정보가 많을 것이다.

흐음.

저 녀석이 지금 내 인벤에 대천사의 검이 있다는 걸 알면 무슨 표정을 지으려나?

아마 꽤 보기 좋은 표정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마왕을 잡을 수 있는 무기.

이 녀석이 이걸 그렇게 원했던 건.

마계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지고 오기 위함일 것이다.

버젓이 마왕들이 돌아다니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유저가 주도권을 잡기란 쉬운 일은 아닐 테니.

지금만 해도 저 마왕 하나에 휘둘러지는데.

중립 연합과 개인 길드들을 대표해서 나온 유저들도 바쁘게 손을 놀려 어디론가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패황 역시 인상을 쓰면서 빠르게 어디론가 연락을 하는지 분주해 보였다.

<불멸> 다들 자신의 정보원들을 달달 볶고 있겠네.

<주호> 그러네요. 꽤 바빠 보여요.

지금 이 퀘스트는 단순히 하나의 보조 퀘스트가 아니었다.

적어도 저들이 보기에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계에 천사가 있다?

아주 이상한 일이긴 한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디선가 천사가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에서야 분명히 그 천사가 마계로 온 방법이 있다는 것.

모르긴 해도.

그 방법을 역으로 따라가면 천계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전부 다 하는 중이겠지.

나 역시도 이 퀘스트를 받는 순간 그 생각부터 했었으니까.

물론 그 천사가 나(?)이기 때문에 내게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들은 다르다.

아무도 이 퀘스트에 등장하는 천사 역이 누군인지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인지 마왕 스티어도 흡족해하는 듯했다.

그런 마왕 스티어를 보고는 말했다.

“꽤 기분이 좋아 보이는걸?”

“그렇게 보이나?”

어둠이 신나게 일렁이는 걸 보고 그렇지 않다고 하긴 어렵다.

“우리가 단독으로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내 말에 마왕 스티어가 눈을 내리깔면서 말했다.

“이쪽에서도 모험을 거는 일이다. 패는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그런 마왕 스티어의 말에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렇다면야.”

솔직히 별로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저 녀석도 저 녀석대로의 각오를 가지고 하는 일일 것이다.

딱히 이해해 주고 싶진 않고.

그럼 최대한 이 녀석을 이용해먹을 수밖에.

“다른 마왕들, 확실히 막을 수 있겠어? 저 녀석들까지 나서면 이 근처를 완전히 들쑤시고 다닐 텐데.”

분명히 수색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고 다닐 것이다.

그걸 다른 마왕들이 보면 꽤 귀찮은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안 그래도 의심스러운데.

마왕성 일대가 개판이 되면 자연스럽게 마왕들도 움직이게 되겠지.

그런 마왕들을 막아줄 만한 녀석은 아쉽지만 현재는 이 녀석뿐이다.

“그건 내가 장담하지. 넌 무조건 찾아내기만 해라.”

이 녀석을 정말 믿어야 하나 싶지만.

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 녀석을 믿어야지만 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대천사의 검을 봉인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우니.

마침 판을 깔려져 있으니.

최대한 쓸 수 있을 만큼은 써먹을 생각이었다.

“좋아. 믿어보지. 실망시키지 마라.”

어느 누가 마왕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마왕 스티어는 그다지 기분 나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미 우호도가 상당히 쌓여 있어서 그런지 딱히 화난 모습도 아니고.

내가 대놓고 마왕에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우호도의 영향이 컸다.

그런 나와 마왕 스티어를 바라보는 다른 유저들의 표정은 꽤 복잡해 보였다.

마왕과 대놓고 이야기 하니 신기해보이기도 할 테고.

누군가는 질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내게 귓속말이 들어왔다.

문제는 그게 하나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것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유저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호오…….

이 녀석들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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