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6화 대천사의 가호 (1)
비공정을 타고 시아트 마왕성까지 가는 길에 재중이 형만 몰래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갑판에 있어요?”
“어, 화련도 위에 있다.”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장 인벤에서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 +0 라페르나 - 대천사의 검 (에픽) 』
금속의 정령 덕분에 봉인을 풀긴 했는데 정작 내 손에 쥐는 순간은 거칠게 새하얀 스파크가 튀어 나왔다.
치지직!!
마치 네가 나를 쓰는 것을 반대한다는 걸 검신 전체로 역력히 피력하듯.
“정말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이네요.”
봉인도 풀린 김에 어지간하면 한 번 도와줄 법도 한데 말이야.
재중이 형도 한 번 들어 봤는데 역시나 녀석에게서 강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팔 전체로 퍼지는 전력에 재중이 형이 라페르나를 놓았다.
“거참, 까탈스러운데?”
손목을 탈탈 털어 정전기를 빼낸 재중이 형이 물었다.
“역시 할 거냐?”
“네, 이대로는 절대 못 쓸 것 같아요.”
그리고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손에 꽉 쥐었다.
치지직!!
역시나 날 거부한다는 듯 강력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것도 쥐고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욱 강한 전력이 생성되어 내 몸까지 타고 올라왔다.
몸이 타오르는 고통에 입을 꽉 깨물었다.
큭.
누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
바로 마력을 써서 스킬을 운용했다.
【 웨폰 카피!! 】
손에 쥔 모든 무기를 복사할 수 있는.
물론 그 형태는 카피형이라 내구도가 엉망인 녀석이 나오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웨폰 카피의 빛이 선실을 가득 메우며 환하게 빛난 뒤.
라페르나와 완전히 동일한 하나의 검신이 내 반대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 바로 원본의 라페르나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파츠츳!
내 손에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전격을 일으키며 시위하는 녀석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성질하고는.
몸에 떨어지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잠잠해진 녀석을 뒤로하고 내 손에 들린 또 하나의 검을 바라보았다.
『 +0 라페르나 - 대천사의 검 (에픽) / 복사품. 』
레플리카 라페르나라고 해야 하나.
과연 이 녀석도 원본과 같이 성깔이 더러울까?
잠시 쥐고 있는데 갑자기 이 녀석에게서도 거의 유사한 전력이 쏟아져 나왔다.
기존의 녀석보다는 약하지만.
역시 비슷한 성질을 가진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원본 라페르나가 마치 나를 보고 웃기라도 하는 듯 바닥에서 진동을 일으켰다.
“복사를 해도 저 특성은 그대로 따라오나 봐요.”
원본보다 버틸 만은 하지만.
그렇다고 디버프를 계속 먹어가면서 들고 있을 순 없었다.
전투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혹시나 싶어서 레플리카 라페르나를 들고 스킬을 시전해 보았다.
【 대천사의 가호! 】
치직!!
《 대천사의 검을 사용할 자격이 없습니다. 》
《 대천사의 가호 스킬 시전이 취소됩니다. 》
그리곤 곧바로 스킬이 캔슬되면서 약한 스파크를 내뿜었다.
“복사품도 똑같냐?”
“네, 이것도 안 되나 봐요.”
보통 같으면 여기서 포기할 만도 하지만.
아직 남은 패가 한 장 더 있었다.
대천사 루스가 알면 아주 환장할 만한 딱 그런 패가.
“그럼 이것도 안 되나 한 번 보죠.”
곧장 인벤에서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레플리카 라페르나가 르아 카르테를 알아보기라도 하는 듯 강한 진동을 일으켰다.
흡사 겁이라도 집어먹은 듯 한 딱 그런 느낌으로.
재중이 형도 그 반응이 신기한지 복사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호오, 이놈 봐라. 덜덜 떠는데?”
대천사의 검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지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들었다.
그리고 그런 떨림은 내 예측에 더욱 확신을 주었다.
“자아, 갑니다.”
르아 카르테의 검신 위에 레플리카 라페르나를 올려놓자 정말 불길 위에 올려놓은 오징어처럼 녀석이 전신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저기 바닥에 엎어져 있는 원본도 같이 떠는 걸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잘 아는 모양이다.
《 르아 카르테가 레플리카 라페르나에 반응합니다. 》
《 르아 카르테에 흡수시키겠습니까? 》
“르아 카르테. 먹어치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르아 카르테가 마치 웃는 것처럼 환한 빛을 내었다.
그리곤 기묘한 빛이 줄기줄기 뻗어 나와 레플리카 라페르나를 조각조각 분해하기 시작했다.
《 르아 카르테가 레플리카 라페르나를 먹어치웁니다. 》
키이이익!!
사라지기 싫다는 듯 발광하는 녀석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러게 진작 협조 좀 했으면 서로 좋잖아.
《 르아 카르테가 레플리카 라페르나를 탐식합니다. 》
《 레플리카 라페르나가 소실됩니다. 》
《 레플리카 라페르나의 옵션 중 두 가지가 르아 카르테에 랜덤 포획됩니다. 》
현재 라페르나의 옵션 대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당장 나오지 않아도 된다.
그냥 계속 탐식을 하다보면 한 번쯤은 걸려들겠지.
딱 하나만 나오면 된다.
첫 번째 결과물에 원하는 스킬이 나오지 않자 원본 라페르나를 다시 들어올렸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하지 말라는 듯 계속 반항하는 라페르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네 원래 주인을 원망하라고.”
곱게 갈 일을 이렇게 어렵게 가게 만들었으니.
그렇게 얼마나 복사를 하고 또 르아 카르테에 먹였을까.
어느 순간 원하는 옵션 두 개가 르아 카르테에 동시에 붙었다.
『 +15 르아 카르테 (유일) <정령의 가호>
/ 출혈 21(1+20) 타격 21(1+20)
- 근력 +75
- 민첩 +92
- 체력 +79
- 마력 흡수 15%
- 체력 흡수 15%
- 치명타 확률 35%
- 치명타 대미지 750%
- 관통 확률 60%
- 스킬 : 대천사의 가호 LV.1 ◀ NEW
- 스킬 : 그랜드 크로스 LV.1 ◀ NEW
- 오러 블레이드 사용 시 마력 소모 50% 감소. 』
정령의 가호에 대천사의 가호까지.
다른 어떤 무기에도 볼 수 없는 기묘한 조합.
무기 대미지는 어차피 낮아도 크게 상관 없었다.
나중에 더 높은 녀석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라.
요는 원하는 스킬이 뜨느냐 안 뜨느냐다.
“드디어 떴네요.”
대략 이백여 번을 반복했나?
그만큼 저 옵션을 뽑아오는 건 쉽지 않았다.
“오, 떴네. 그럼 한 번 써봐.”
르아 카르테는 라페르나와는 다르다.
안에 내장된 스킬을 쓰는 데 내가 자격을 가질 필요도 없고.
바닥에 떨어져 울고 있는 라페르나를 보고 씨익 웃어준 뒤 스킬을 시전했다.
【 대천사의 가호! 】
그 순간.
눈부신 빛 함께 내 뒤로 새하얗고 커다란 날개가 신성한 바람을 타고 활짝 펼쳐졌다.
그 무엇보다 투명하고 깨끗한 기운을 품고서.
그러면서도 사방으로 강맹하고 파괴적인 기세가 동시에 가득 내뿜어졌다.
옆에 있던 재중이 형의 몸이 순간 바닥에서 붕 뜨며 뒤로 밀려날 정도.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재중이 형이 가진 인벤 속의 프로미넌스가 갑자기 형태를 갖추며 인벤 밖으로 현신해 나타나더니 거센 반발력을 내면서 대천사의 가호와 부딪혔다.
키이이잉!!
마치 주인을 보호하듯이.
프로미넌스 자체가 발록의 전신 무기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악 성향이 강한 무기랄까.
“큭, 이거 이펙트만으로 사람 잡겠는데?”
프로미넌스가 갑자기 소환된 것도 의외인데 저렇게 잡아먹듯이 압박하는 모습이라니.
아무래도 이 대천사의 가호는 아무 때나 쓰긴 힘들 것 같았다.
곧 재중이 형이 크게 프로미넌스를 휘두르자 화르륵 타오르는 지옥의 정염이 대천사의 가호를 그대로 찍어 눌렀다.
단순히 스킬 정도로는 무기를 대체할 순 없다는 거려나.
어이없다는 듯 보던 재중이 형이 프로미넌스를 내리면서 말했다.
“주인 따라 스킬도 개판이네.”
“그거 저 말하는 거 아니죠?”
“글쎄? 누굴까?”
피식 웃은 재중이 형이 바닥에 널브러진 라페르나를 가리켰다.
“어때? 될 것 같아?”
“한 번 해보죠.”
다소 기운이 눌리긴 했어도 여전히 대천사의 가호는 시전되어 있는 상태였다.
살짝 긴장한 상태로 손을 뻗어 라페르나를 쥐었다.
과연 이걸로 녀석을 쓸 수 있으려나?
완전히 페이크이긴 해도 어쨌든 대천사의 가호를 쓰고는 있으니까.
그래도 안 된다면……!
“이번에도 안 되면 넌 용광로행이다.”
내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꿈틀거린 녀석이 내 손에 쥐어지자 시스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 대천사의 가호를 시전 중입니다. 》
《 대천사의 무기가 소유자의 자격을 심사합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천사의 무기에서 온화하고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왔다.
이전의 파괴적인 스파크와는 전혀 다른.
《 대천사의 격을 확인했습니다. 》
《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가 유저 『 주호 』를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
르아 카르테와 함께 반대편에 들린 라페르나가 환한 빛을 뿜어내었다.
얌전해진 정도를 넘어 처음부터 내 검이었던 것 마냥 손에 촥 감기는 느낌.
전체적인 무기 밸런스나 무게 배분 역시 휘두르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두 검의 무게도 거의 비슷해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적당한 가벼움과 묵직함이 함께 있는.
“생각보다 훨씬 좋은데요?”
정령왕의 검과 대천사의 검이 양손에 모두 쥐어져 있는 광경이라…….
누가 보면 사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 하나.
이전까지는 르아 카르테에 시커멓게 죽은 색으로 시전 불가가 뜨던 한 스킬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스킬 그랜드 크로스.
처음에는 단순히 대천사의 검이 아니기 때문에 못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두 개의 검 모두에 있는 그랜드 크로스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흐음.
괜히 궁금해지는데?
“형, 쓸 수 있는 스킬이 있는데요?”
“응? 뭐?”
재중이 형에게 보여주자 재중이 형도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검을 드니까 활성화됐다고?”
“네. 흐음. 혹시 한쪽만 있어도 되려나?”
바로 르아 카르테를 손에서 놓았는데 라페르나에 있는 스킬이 바로 검은색으로 비활성화되어 버렸다.
“이거 하나로는 시전이 안 되나 봐요.”
“거참. 신기한 스킬일세.”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스킬은 한 번도 없었다.
자격이 있을 때 활성화되는 스킬이야 많긴 했지만.
성질이 전혀 다른 두 무기에 이런 스킬이라…….
“한 번 써볼까요?”
“아서라. 여기서 썼다가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선실은 좁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을 썼다가 선실이 박살 나기라도 하면 암흑 상인이 꽤 난리를 치겠지.
그때 갑자기 선실 바깥에서 큰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특별히 문제가 될만한 일은 없을 텐데?
“무슨 일이죠?”
문을 열고 나가자 누군가가 뛰어가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전사 형?
“안 그래도 알리려고 했는데 나왔네요.”
재중이 형이 전사 형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마계 비룡들이 상당수 뒤에 붙었답니다. 전투 가능한 인원들 다 나오라고 해서요.”
“그래? 올라가 보자.”
전사 형을 따라 갑판으로 올라가자 갑판 위가 어수선함이 바로 느껴졌다.
마계 비룡과의 전투 준비를 위해 선원들이 타르포를 일제히 뒤로 돌리는 모습까지.
하지만 이건 상선이지 전투가 되는 비공정이 아니었다.
암흑상인이 어느새 다가와 인상을 구겼다.
“마계 비룡들의 비행경로가 바뀐 모양입니다. 보통 이쪽으로는 나오지 않는데.”
“격추 가능한가요?”
“……쉽지 않을 겁니다. 추락할 때를 대비해 놓으심이.”
뒤를 보자 거의 십여 마리에 가까운 마계 비룡들이 우리 뒤에 붙어 매섭게 추격 중이었다.
저 녀석들 하나하나가 일반 드래곤에 준하는 녀석들.
비공정이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재중이 형이 곧 가르가 주니어를 소환하면서 표정을 굳혔다.
“너와 내가 나간다.”
현재 공중 전투가 가능한 것은 재중이 형의 가르가 주니어와 내 아퀼라스 주니어뿐.
순간 머릿속에 내가 쥐고 있던 무기들이 스쳐지나갔다.
“형, 그 전에 한 번만 써 봐도 될까요?”
어차피 그 뒤에 나가도 되니까.
곧장 한 손에는 르아 카르테.
다른 한 손에는 라페르나를 들고 비공정 선미에 섰다.
“잘 부탁한다. 정체 모를 스킬아.”
두 개의 검을 들고 마계 비룡들을 겨누고 스킬을 시전했다.
【 그랜드 크로스! 】
순간 검들 사이로 천지를 가르는 환한 빛이 눈부시게 터져나갔다.
차마 눈을 뜨기조차 힘든.
그리고 이어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
이게 정말 스킬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