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49화 (939/1,404)

#949화 마왕성 구축 (4)

전혀 수리가 되지 않아 금방이라고 부서질 것 같이 삭아 버린 비공정의 갑판 위로 한 발짝 발을 떼놓기 무섭게 불안한 소리들이 귓가를 울렸다.

끼익~!

끼이익~

“혹시 이거 날다가 분해되진 않겠지?”

이어지는 내 감상평에 암흑상인이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금붕어처럼 꿈뻑거리기만 했다.

“왜 말이 없어? 정말 부서지려나?”

그러면서 발을 들어 다 삭아진 갑판을 발로 퉁퉁 치자 암흑 상인이 화들짝 놀라 나를 말렸다.

“그, 그만!!”

“아, 미안.”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구도가 심각하게 내려가 있던 모양이었다.

이 정도로 상태가 불안한 무역선을 끌고 수송을 하고 있다니…….

“목숨이 여러 개 되나 봐? 아무리 봐도 중간에 떨어질 것 같은데.”

“누가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이게 다 네 녀석 때문에……!”

“아, 그건 미안하다니까.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내 사과에 부글부글 끓는 표정으로 암흑 상인이 나를 노려보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이렇게 쫄딱 망해 버렸으니 칼침 정도는 놓을지도 모르겠는데.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진 않지.”

음.

뒤끝 있네.

아무래도 저 녀석과의 호감도 시스템은 이미 저 바닥에 처박힌 모양이었다.

“음, 하지만 계속 이대로 할 건 아니겠지? 당장 마지막 상행이 될 것 같잖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역선의 타르 엔진이 크게 진동하면서 다소 듣기 불편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끼기긱!!

크드득!!

이건 완전히 터지기 직전의 딱 그런 소리랄까.

얼마나 수리가 없이 굴렸으면 이렇게까지 되는지.

“……정말 필요할 땐 실컷 잠수하더니 이제 와서 이러는 이유가 뭐지?”

음.

아무래도 방금의 엔진 소리가 암흑 상인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끔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아까 말 했잖아. 상인이면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어?”

“……이미 네 녀석에게 한 번 속았는데?”

이거 참.

안 믿어주는 눈친데.

그렇다면 적당히 둘러댈 수밖에.

“이거 봐. 이 무기 때문에 내가 잠시 봉인 비슷한 걸 당했다니까?”

그러면서 테르타로스를 꺼내 보여주었더니 암흑 상인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이 엄청난 존재감은……!”

썩어도 준치라더니.

부자가 거지가 됐음에도 안목은 그대로 살아있는 모양이었다.

이 물건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보자마자 느끼는 걸 보면.

암흑 상인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아직 완성이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실제 완성품을 보는 건 처음이다.

“어때? 이 정도면 이유가 되려나?”

그때 암흑 상인이 더 없이 화끈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걸 내게 팔아……!”

얼씨구.

곧 죽어도 상인이라고 바로 본능이 꿈틀거리는 모양이었다.

“살 순 있고?”

“얼마…….”

“됐고. 이건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애초에 누군가에게 줄 수도 없고.”

마신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다른 이에게 양도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흠, 영혼에 귀속된 물건인가.”

“뭐 비슷하다고 해 두지.”

아니라고 하면 득달같이 달라붙어서 팔아달라고 할 테니.

“그 정도의 물건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었겠군.”

조금 납득한 표정의 암흑 상인이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 거지?”

역시 상인은 상인.

불필요한 소모전은 여기까지였다.

“단순해. 넌 돈을 벌고. 난 내가 필요한 구하면 돼.”

그러자 암흑 상인의 로브 안쪽으로 번쩍이는 안광이 피어났다.

“무슨 수로 돈을 벌 생각이지? 전에 하던 타르 수송은 이미 불가능하다. 마왕성도 없고 타르 광산은 다른 녀석들에게 다 넘어갔으니까.”

“아,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 타르 광산은 내가 몇 개 소유하고 있거든.”

비록 속이 텅텅 빈 타르 광산이지만.

소유권 자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딱히 누군가에게 팔지도 않았으니.

“흠, 마왕성은? 그건 네 녀석이 어떻게도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인데.”

“뭐 일단은 네 말이 맞아.”

적어도 마왕성이 있어야 신성 제국으로부터 하르를 대량 이동해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다시 타르로 변형시켜 팔면 꽤 큰돈이 된다.

돈을 벌려면 결국은 마왕성이 필요해.

“아, 그래서 말인데. 정보 좀 찾아줄 수 있어?”

“무슨 정보 말이지?”

그러자 암흑 상인을 보면서 한 마디를 꺼냈다.

“마왕 벨라.”

“뭐?”

“지금 마왕 벨라가 어디에 있지?”

우리와 우호적인 유일한 마왕.

모든 일의 시작은 마왕 벨라를 찾아야 시작할 수 있었다.

“흐음, 아쉽지만 그 정보는 돈이 꽤 들 거야. 마왕 벨라가 사라진지도 오래 되었고. 마왕 벨라가 사라졌을 때 다른 마왕들이 꽤 찾아다녔으니.”

“그래, 그리고 넌 그 정도를 살 돈이 없지.”

“지금 놀리는 건가?”

“아니, 그런데 그 돈이 난 꽤 많거든.”

이건 사실이다.

이번에 거점을 팔아서 나온 돈만 해도 엄청난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돈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곧바로 인벤에서 뭔가를 꺼내 암흑 상인을 향해 던졌다.

“이건…….”

“돈. 당장 이 무역선부터 좀 고치라고. 날아가다가 떨어져 죽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말이야. 수리비로는 충분할 거다.”

“하…….”

그러자 게 눈 감추듯 돈을 품에 넣은 암흑 상인이 눈빛을 반짝였다.

“받기는 하겠지만 이걸로는 날 움직이기에 불가능…….”

그런 암흑 상인을 향해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무역선 다섯 대를 추가로 대여해주지.”

“흠!”

지금 무역선 한 대의 값어치가 과연 얼마나 할까?

못해도 억 대는 가볍게 넘어간다.

거기다 유저들에게는 무역선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풀기만 해도 부르는 게 값일 테고.

그리고 이런 무역선의 값어치가 NPC라고 해도 다를까.

그걸 무려 다섯 대나 대여해준다고 하자 무역 상인의 태도가 바로 돌변했다.

《 암흑 상인과의 호감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

《 암흑 상인과의 호감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

.

.

“하하…… 이거 내가 알던 그 큰 손으로 돌아왔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심지어 반말에서 바로 존댓말로 변경되기도 했고.

역시 호감도 시스템은 정확하다.

연이어 올라가는 호감도를 보며 만족하면서 미소 짓자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버렸다.

<불멸> 돈 앞에 장사 없네.

<주호> 저야 좋죠.

“일단은 수리를 위해 다시 마왕성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같이 가겠습니까?”

“마왕 스티어 말이지?”

“네, 이번에 새로 마왕이 된 녀석입니다. 서열상 마왕 중 말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강해?”

“전대 마왕성의 세력을 단독으로 눌렀으니... 아마 시간이 지나면 상당히 위로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는 말이네. 당신과 관계는 어때?”

“당장은 우호적입니다. 새로 생긴 마왕에게 줄을 대는 건 생각보다 부담이 크기 때문에 다들 좀 꺼려 하는 편이라.”

나쁘진 않네.

오히려 암흑 상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 이곳에 줄은 대다가 꽤 우호적인 관계가 된 모양이었다.

“우리와 함께 들어갔을 때도 괜찮을까?”

“물론입니다. 제 투자자라고 하면 충분합니다.”

이거 참.

졸지에 투자자가 된 건가.

“뭐 그건 좋을 대로 하고. 일단 가보자고.”

* * * * *

암흑 상인의 장담대로 마왕 스티어의 마왕성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보장되어 있는 프리패스랄까.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어, 나쁘지 않아.”

주변을 쭉 둘러보니 마왕성의 풍경이 이전의 마왕 벨라의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보는 것처럼 꽤 문제가 있어 보였다.

“돈이 안 도는 걸까요.”

“전쟁을 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니까. 원래대로 복구하기는 좀 걸리겠지.”

확실히 파손되어 복구가 안 된 성벽이나 건물들에서 이 마왕성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이거 잘하면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당장 마왕 벨라가 없는 상황에 언제 마왕 벨라를 찾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온 마왕성이라…….

“형, 여기 이용할 수 있을까요?”

“이 마왕성을?”

“네, 주력은 아니고. 중간 지점 정도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해요.”

마왕 스티어라는 녀석을 믿을 수 있는가의 문제는 당장의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써먹을 수만 있다면야.

“뭐, 나쁘진 않겠네. 우리도 당장 돈 굴릴 곳이 필요하고. 마왕 벨라를 당장 찾지 못하는 문제도 있겠지.”

재중이 형도 딱히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때 도크에 무역선을 맡기고 온 암흑 상인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수리를 맡겼습니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군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급하게 엔진 구동 계통과 부양 시스템 정도만 손봤습니다. 나머지는 천천히 해도 되겠더군요.”

역시 암흑 상인은 눈치가 있어.

우리가 곧 마계 경매장에 가야 한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떻게 아셨죠?”

“상인 경력만 몇 백 년입니다. 당장 무역선이 필요한 이유는 급히 가야할 곳이 있기 때문 아닙니까?”

“너무 정확해서 할 말이 없네요. 네, 맞아요. 마계 경매장. 거기에 가봐야 하거든요. 그것도 안전하게.”

“흠, 우리 상인들은 비룡들이 날지 않는 비행 코스를 잘 알고 있으니 충분합니다.”

그 말에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상인들이네.”

“네, 예상했던 대로에요.”

비룡들이 저렇게 많은데 상인들이 무역선을 가지고 어떻게 무역을 할까.

그건 그들만이 가진 뭔가의 코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암흑 상인에게 원하는 것도 그 코스였고.

“아, 그리고 무역선 다섯 대는?”

“네, 대리로 전체 수리를 맡겨두었습니다.”

일처리가 깔끔하네.

이러니 유저와는 다르게 NPC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때 암흑 상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좋네요. 그럼 혹시 마왕 스티어를 우리가 만나볼 수 있을까요?”

“마왕 스티어 말입니까?”

“가능하다면요.”

“흐음, 돈 냄새가 갑자기 막 나는군요.”

“하하……. 어느 정도는요.”

잠시 고민을 하던 암흑 상인이 내게 물었다.

“혹시 이곳 마왕성에 투자하실 생각이십니까?”

역시 암흑 상인.

“네, 혹시 제가 인간이어서 불가능한가요?”

듣기로 마왕은 인간을 그야말로 길거리 돌아다니는 돌멩이처럼 취급한다.

우리라고 딱히 다를 것도 없었다.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암흑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인간들을 마왕이 만나주진 않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가급적이면 투자자로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총알이 굉장히 많아서요.”

“하하, 좋습니다. 저도 이곳과 거래를 더 키워야 하니까요. 준비해보겠습니다.”

솔직히 암흑 상인이라는 중간 다리가 없으면 이런 제안은 마왕 쫄따구에서 바로 커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암흑 상인이라는 대리인이 있다면…….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암흑 상인을 보며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잘 되겠죠?”

“한 번 믿어봐야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흑 상인이 돌아왔다.

옆에 수십의 몬스터들을 데리고.

이야기가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모르겠네.

한참을 위압적으로 우리를 노려보던 몬스터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결국 우리에게 말을 꺼냈다.

“마왕 스티어 님께서 부르신다. 따라오도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