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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17화 (907/1,404)

#916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3)

전투가 벌어진 후 줄곧 외곽만 지키고 있던 패황 연합의 유저들이 확인 차 다시 혹한의 얼음 여왕이 뜨는 위치로 들어갔다 왔다.

그리고는 다들 고개를 저으면서 난색을 표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보고에 이곳의 대표 격으로 보이는 유저가 버럭 화를 냈다.

“없어? 하나도?”

“네, 초월 연합 유저고, 혹한의 얼음 여왕이고 할 것 없이 싹 사라졌습니다.”

“아니…… 초월 애들이야 튀었다고 쳐도. 혹한의 얼음 여왕이 없다는 게 말이 돼?”

응.

말이 돼.

지금 니들 옆에 있거든.

흘깃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는 혹한의 얼음 여왕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한 명의 여성 유저일 뿐이지.

일일이 따져보지 않는 이상에야 전혀 알 수 없었다.

혹여나 확인해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

네임드가 이렇게 유저들 사이에 얌전히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상식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의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

“아놔, 그럼 위에는 도대체 뭐라고 보고해야 해?”

“저야 모르죠.”

“아씨,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할래?”

“에이, 단장이 알아서 가서 깨지고 오면 될…….”

“너 이 새끼 당장 이리로 와!”

그러자 보고를 했던 유저가 재빨리 도망가 버렸다.

단장으로 보이는 녀석은 한숨을 쉬기만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옆에 있는 예의 그 바리게이트를 지키던 유저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혹한의 얼음 여왕도 사라졌다니……. 혹시 녀석들이 잡은 걸까?”

음.

그거 아니라니까.

지금 네 옆에 있는데?

하지만 그 말은 마음속에 꼭꼭 숨겨 두었다.

사실 말해도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아서.

재중이 형도 옆에서 키득거리며 웃어 버렸고.

“네임드니까 어디론가 이동하지 않았을까요?”

“하아, 그러면 더 큰일이지. 안 그래도 레벨이 올랐을 텐데……. 예전에 발록 사건 몰라? 유저들 잔뜩 잡아먹고 괴물이 된 녀석 말이야.”

“아, 전 그때 없어서 잘 모릅니다.”

아뇨.

잘 안다.

네 바로 옆에 네가 말한 그 괴물 발록이 있다니까?

이것 역시 말하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웃음만 지었다.

“뱀파이어 로드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하던데 말이야.”

“흠…… 그랬던 가요.”

“어, 초월 녀석들이 못 잡게 한 것까진 좋았는데 없어져서 우리도 한참 찾았거든.”

그 녀석도 네 옆에 있어요…….

슬쩍 셋을 바라보자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우리를 바라보았다.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하긴.

이런 걸 신경 쓸 녀석들이 아니지.

“네임드가 사라졌다니 큰일이군요.”

“휴, 그래도 초월 녀석들이 잡는 것보다는 백배 나으니까. 어디선가 오버가 되어 나타나더라도 할 수 없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잡지 못하는 거 남도 잡지 못하면 된다는 거려나.

확실히 패황 연합 입장에서는 그다지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자자, 정리가 된 것 같으니까 우리도 이동하지.”

“아,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뭘 물어? 당연히 같이 가야지. 너네 길마한테는 알아서 말해 놔. 아니, 이미 명령이 갔을 거야.”

아뇨.

그런 명령 받을 일 없습니다.

너네가 가르쳐 줘야 우리도 움직인다고.

“아, 길마가 지금 접속을 안 해서요. 오늘 볼일이 있다고 어디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거참. 꼭 필요할 때 길마가 없는 건 우리나 너희나 똑같네.”

“그렇죠 뭐.”

전사 형.

미안.

이번에 한 번 팔아먹었어.

멀쩡히 잘 있는 전사 형을 부재중으로 만들어 놓은 걸 반성하는 중에 녀석이 내게 말했다.

“흠,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했군. 레스라고 한다.”

“아, 전 주…… 아니 윈입니다.”

“전주? 전주 살아? 나도 거기 사는데.”

“아하하…… 그건 아니고요.”

“에이, 아쉽네. 요즘 로스트 스카이를 같이 지역 사람들끼리 뭉쳐서 한다고 하더라고. 같은 지역이니 연고도 있고. 전주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저도 아쉽네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가끔 집에서 정모를 하는 판이라…….

“흠, 그럼 전달을 못 받았을 테니 우리와 함께 움직이자. 그쪽은 다섯이 전부인가?”

“네, 일단 저하고 여기 심연 님, 그리고 발록, 뱀, 퀸입니다.”

“흐음. 그런데 저 셋은 길드에 아직 안 넣은 거야?”

“아, 그게…… 길마께서 부재중이시라. 처리가 안 되네요.”

“쯧. 뭐 거기도 엉망이네. 암튼 그럼 따라오라고. 당분간 우리하고 같이 움직이자.”

“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러자 레스가 손을 휘저으면서 하나의 지도를 불러냈다.

“자, 봐봐. 지금 패황으로 이름 붙여진 이 거점으로 가려면 세 곳만을 거쳐야 해. 아니면 죄다 산맥에 낭떠러지인데 여기로 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거든.”

“그런가요?”

“어, 낭떠러지야 뭐 끝이 안 보여서 지나가려면 탈 것을 타고 넘어야 하는데 이게 쉽게 못 지나가. 가끔 정찰 도는 애들에게 걸리면 넘어보지도 못하고 개 박살 나니까. 그리고 산맥은 숨어들긴 좋긴 한데…… 반대로 지나가기도 힘들어서. 전에 알지? 산맥을 통째로 태워 버린 사건.”

슬쩍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맥을 못 지나가도록 불 지르는 건 일반적으로 하는 일이야. 적은 힘으로도 수많은 인원을 묶어둘 수 있거든. 그게 아니더라도 불만 지르면 산맥의 몬스터들이 길길이 날뛰니 조용히 지나가긴 힘들지. 가끔 네임드 뺨치는 고레벨도 나오기도 하고. 그런 녀석들이 떼로 몰려다니면 유저가 아무리 많아도 힘들어.”

흐음.

역시 공중 탈것이 제일 좋긴 한데.

마계에서 비공정 쪽은 죄다 막혀 있는데다가 탈것은 한정되어 있었다.

“공중은 안 되겠죠?”

“산맥에 서식하는 비룡이 너무 많아. 중간에 전부 격추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마계의 공중 몬스터들은 특히 강했다.

중앙의 인간들이 사는 쪽보다 월등하게.

그리고 테이밍 가능한 녀석들도 손에 꼽고.

드래곤 종류라면 어떻게든 넘어가 보겠는데.

그걸 모든 유저들이 다 가지고 있을 순 없으니까.

결국은 정해진 루트의 거점 지역을 통해야만 다른 지역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윈> 전신이 눈이 좋네요. 길목마다 거점이라니.

<심연> 그래, 통행료만 받아도 남는 장사지.

어차피 작위만 있으면 거점이야 만들 수 있으니까.

거점 몇 개 더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거점을 꼭 지나갈 수밖에 없는 위치에 만들어둔 건 이런 때를 대비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우리 대화를 들은 레스가 곧 손으로 한 곳을 찍으면서 말했다.

“우린 이쪽으로 간다. 현재 가장 많은 아군이 거점을 포위하고 있는 곳이지.”

“뚫기 위해서인가요?”

“방법이 그거밖에 없잖아.”

“흐음. 그렇단 말이죠.”

거점의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세 곳의 거점.

그건 각자의 길드들이 가지고 있는 거점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그 이름은.

거점 페가수스.

“여기가 페가수스 길드가 가지고 있는 거점이겠죠?”

“어, 잘 아네. 페가수스 연합의 중요 거점이기도 해.”

초월 연합의 동맹 격인 페가수스 연합.

여기는 연합의 장으로 명궁이 있었다.

규모로 치면 초월 연합보다야 작겠지만.

서버 내에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동안 대천사의 무덤에 어지간히 공을 들였나 본데…….

아니면 이 위치에 패가수스의 거점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마침 잘 됐네요. 어떻게 있나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명궁을? 혹시 아는 사이야?”

명궁을 아냐는 말에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하하. 그건 아니고요. 유명하잖아요. 전신과 더불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보고 싶었거든요.”

아.

놀래라.

말실수 할 뻔했네.

명궁을 알기는 잘 안다.

전에 열심히 치고받았으니.

우리 뒤통수를 친 전적도 있었고.

다시 보면 한 번 죽여주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된 건가.

“음, 그럼 초월 연합은 어디에 있는 거죠?”

내가 궁금한 건 페가수스 연합보다는 오히려 초월 연합이었다.

“흠, 잠시만. 그거 아까 들었는데 말이야.”

그러더니 다시 지도를 올려서 위치를 조정해 주었다.

대천사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거점으로.

“현재 여기를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까지 포위하고 있는 중이야. 꽤 길지?”

“확실히 그렇네요.”

일부러 그렇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선을 굉장히 길게 잡아놓았다.

마치 거점을 뺑 두르듯이 지켜보는 형식으로.

어지간해서는 그냥 몇 십이나 몇 백 단위로 인원을 뭉쳐놓지 않나?

“왜 이렇게 한 거죠?”

“음, 패황의 거점에서 계속 유저들이 몰래 빠져나간다고 하더라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네? 혹시 분열이라도?”

“아냐, 그랬으면 지금 여기도 난리가 났을걸? 무슨 작전이라고 하던데……. 아무튼 그거 때문에 초월 연합에서도 빈틈이 없게 포위한다고 저렇게 넓게 자리잡고 있는가 봐.”

흐음.

이것 봐라.

패황이 뭔가를 하긴 할 생각인가 본데.

그런데 그다지 유효해 보이는 수단은 아니지 않나?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수성 때 소수의 병력으로 나오는 건 적의 보급로를 치거나 후방을 치기 위함인데……. 여긴 보급이라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후방 공격밖에 없어. 혹시 병력이 얼마나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까?”

“음, 많아 봐야 수십일걸? 전에 듣기로 그랬어.”

그 말에 재중이 형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수가 너무 적은데…….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해도…….”

재중이 형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다가 다시 물어보았다.

“혹시 빠져나온 유저들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습니까?”

“아, 듣기로 초월 연합 본대 쪽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하던데? 그…… 대천사의 무덤으로 가는 산맥 방향?”

“어……?”

“어……?”

순간 나와 재중이 형이 눈이 마주쳤다.

<심연> 아무리 봐도 이상한 것 투성이잖아.

<윈> 네, 패황이 뭔가 알 수 없는 걸 준비하나 봐요.

대천사의 무덤으로 굳이 지금 이 시점에 움직일 이유가 있나?

그것도 소수 병력으로?

대천사의 무덤을 공력하기 위함이라면 전 병력을 다 끌고 가도 모자랄 텐데?

<윈> 혹시 대천사의 무덤이 위치한 산맥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는 걸까요?

<심연> 모르지. 일단 저 페가수스 연합의 거점부터 뚫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여길 뚫어야 녀석들에게 가는 보급을 막을 수 있어.

확실히 멀리 떨어져 있는 패황의 거점보다 우리에게는 당장 페가수스 연합의 거점이 문제였다.

재중이 형 말대로.

보급이라는 게 무겁게 이동하는 마차에 실어서 다니는 그런 종류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전투에 소모되는 물약.

부서진 장비 교체.

각종 소모품 구매.

그리고 죽었을 시 귀환 위치.

이걸 전부 고려해야 한다.

페가수스 연합의 거점이 뒤에 위치하니까 지금 초월 연합이 거리가 좀 있더라도 무리 없이 패황의 거점을 포위할 수가 있는 거였다.

세 개의 거점 중에 하나라도 박살 낼 수 있다면…….

포위가 풀리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초월 연합을 반대로 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수의 인원이 한참을 이동하자 드디어 페가수스 연합의 거점 부근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한 마디를 했다.

“개판이네요.”

“어, 개판이네.”

이미 전투가 한참 전에 일어났는지 난장판도 저런 난장판이 없었다.

하.

아주 죽여 달라고 다들 판을 깔아두었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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