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1)
처음에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랄까.
혹한의 얼음 여왕을 우리 스쿼드에 넣는 일까지는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협조적으로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 했다.
<윈> 결국 성공했네요.
<심연> 어, 기대 이상이야.
재중이 형도 예상치보다 훨씬 나은 결과에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용암지대의 왕 발록.
흡혈의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까지.
굳이 비교를 하자면…….
신체 단단한 근접 딜러에.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중거리 흡혈 딜러.
거기다 광범위한 딜을 책임질 강력한 마법사까지.
아마 이 정도면 어디 가서도 볼 수 없는 조합일 것이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탱커와 힐러의 부재 정도이려나?
잠시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뭐가 살짝 모자란 것 같은 기분 들지 않아요?”
“응? 왜? 드랍템을 덜 긁어모았어? 어지간한 건 다 쓸어 왔는데. 잡템 빼고.”
내 말을 오해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다시 말했다.
“아뇨. 저 조합이요.”
“문제 있어?”
“아, 그냥 조금만 더 있으면 딱 그거잖아요. 탱딜힐.”
탱딜힐이라는 말에 재중이 형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보면 좀 아쉽긴 해?”
“제 말이요.”
“어디 보자. 일단 탱커가 없는 거려나? 발록이 탱커를 겸할 수 있으니 딱히 상관은 없다만…… 그리고 힐러야 혹한의 얼음 여왕이 대신해도 될 테고.”
맞다.
저렇게 짜도 크게 무리는 없겠지.
사실 네임드 하나하나가 탱이자 딜러니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라.
“그 녀석은 어때요? 전에 패황 연합의 본거지에서 봤던…….”
“아, 리빙 아머 킹?”
“네, 그놈요.”
“하긴. 그 녀석이 몸빵 하나는 죽여주지. 방어력 하나만은 역대 네임드 중에 최강일 거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다시 셋을 바라보았다.
“딱 들어오면 좋은 조합인데 말이야.”
“역시 그렇죠?”
“그런데 그 녀석을 빼오려면 패황 연합의 유적지를 쳐야 한단 말이야.”
“아, 그건 쉽진 않겠네요.”
리빙 아머 킹은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과는 상황이 좀 달랐다.
그 녀석만은 유적지를 지키는 녀석이라.
사실 유적지 밖으로 빼올 수 있는지도 의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리빙 아머 킹이 패황 연합이 차지한 유적지 한 가운데 리젠 된다는 거다.
지금 초월 연합의 거점을 빼앗기 위해 빠진 본대 병력을 뺀다고 치더라도 유적지를 지키는 패황 연합 유저들 수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과 같은 방법을 쓰면 어떻게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레이드를 위해 일부 빠져나온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과.
아예 적진 한가운데 들어가는 건.
위험도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거기다가.
지금 우린 패황 연합의 아군처럼 행동하는 중이었다.
초월 연합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고.
이런 상황에 패황 연합을 뒤통수를 쳐 버리면……?
패황 연합으로 위장한 지금의 상황이 꽤 복잡해질 수도 있게 된다.
“아쉽네요.”
“어, 나도 좀. 리빙 아머 킹만 있으면 모양새 나오겠는데 말이야. 정말 마신이라도 잡을 수 있을 지도?”
“하하…….”
저게 농담처럼 안 들려서 말이지.
네임드 넷의 연합이면 어떻게든 안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거 네임드를 모으다 보니 어느새 완전한 레이드 파티를 만드는 것 같아 보여서.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건 꿈의 조합 아닌가.
서로 협력할 리도 없는 네임드를 이렇게 한자리에 모아 놨으니.
그리고 이걸 운영자가 지켜보고 있다면 지금쯤 뒷목을 잡고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쓰라고 배치해 둔 네임드가 아닐 텐데 말이야.
그런데 사실 실수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한 셈이었다.
얘들을 너무 자율적으로 풀어놨어.
이들 하나하나에 높은 지능을 부여한 건 알겠지만.
그 프리롤이 너무 과했단 말이지.
인간들의 사고방식과 유사한 형태까지 끌어올리려다 보니 실제 협박과 회유까지 먹히는 상황이었다.
그때의 상황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협력 관계인 아군이 될 수도 있었고.
이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건 아마…….
마왕 벨라를 포섭했을 때였을 것이다.
어쩌면 더 앞서서 마리아 가르시아 때일 수도 있고.
넒은 관점에서 보면.
이들 모두 비슷한 범주에 넣을 수가 있었다.
네임드는 몬스터 계열이라 가능성이 좀 낮긴 했지만.
실제로 시도해 보니 충분히 가능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네임드에게 대화를 시도해 보는 미친 인간은 아직까지는 없었으니 문제가 되진 않았을지도 모르고.
뭐 이런 것까지 전부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면…….
저들에게 박수를 보내 줘도 되려나.
덕분에 꽤 유용하게 쓰고 있단 말이지.
이 관계를.
이제 한 팀이 된 혹한의 얼음 여왕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불러 주면 좋겠어?”
“이름 말인가?”
“어, 불리고 싶은 이름 있어?”
애초에 발록은 그런 것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처음이라 굳이 시도해 볼 생각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발록으로 그냥 부르게 되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두 번째다 보니 여유가 생겨서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사실 부르기 편하게 하려고 바꾼 셈이지만.
띄어쓰기를 못 쓰는 것도 있었고.
사실 뱀은 내 마음대로 정한 거라서.
그래서 이번엔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앞으로 잘 키워야 하는데 최대한 편의를 봐줘야지.
“딱히 없다.”
“없어?”
“그대가 알아서 불러라.”
“흐음, 그러면 퀸 어때? 여왕이니까.”
“알아서 하도록.”
음.
생각 이상으로 무뚝뚝한 것 같기도 하고.
말투가 차가움이 몰아치는 설원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딱히 문제될 건 없지만.
재중이 형을 보자 피식 웃더니 귓말을 보냈다.
<심연> 큭,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윈> 좀 그래요? 좀 길게 지어 볼까요?
<심연> 흠, 아냐. 상관없겠지.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자동적으로 이름이 혹한의 얼음 여왕은 퀸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인벤에 있는 망토를 하나 더 꺼내 주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혹한의 얼음 여왕의 표정이 싹 변했다.
“이 거적대기는 뭐냐?”
“……마음에 안 들어?”
그러자 혹한의 얼음 여왕이 고개를 돌려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를 보더니 바로 한숨을 쉬었다.
얘도 한숨을 쉬긴 하는구나.
표정 변화가 없어서 속이 어떤가 했는데.
“너희들은 잘도 그걸 입고 있구나.”
그런데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혹한의 얼음 여왕을 바라보았다.
“움직이는 데 문제 있나?”
“그다지 상관없는데?”
그 둘의 대답에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는 여왕.
“하아…….”
흐음.
그러고 보니 혹한의 얼음 여왕은 마치 무도회라도 나온 것처럼 굉장히 화려하고 곡선이 강조된 하늘빛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보석 장식마저도 눈이 부시게 미려했고.
정말 로브가 거적대기로 보이긴 하네.
“음…… 일단 마을에 갈 때까지만 참아 주라. 너 지금은 너무 눈에 띄거든. 그 모습으로 나갔다가는 아까와 같이 귀찮은 것들이 달라붙을 거야.”
“……알았다.”
결국 납득한 듯 체념하는 모습.
여성형 네임드는 또 이런 게 어렵네.
내가 곤경스런 표정을 짓자 재중이 형이 옆에서 계속 웃음을 지었다.
“왜요?”
“아니, 잘해 보라고.”
“휴, 마을에 가면 로브부터 좀 이쁜 걸로 바꿔야겠어요.”
다양한 유저들의 취향에 맞게 화려하고 이쁜 외관의 로브는 얼마든지 있긴 했다.
성능은 둘째 치더라도.
흐음.
얼마든지 준비해 줄 수 있어.
그렇게 거적대기 로브를 뒤집어 쓴 네임드 셋과 함께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설원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도중에 딱히 다른 유저들의 견제를 받지도 않았고.
사실 이들의 목적은 혹한의 얼음 여왕이었지 지나다니는 다른 유저는 아니니까.
물론 그냥 보내준 것만은 아니었다.
중앙에 있던 초월 연합 유저들은 전부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가 정리를 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살아남은 녀석들은 재빨리 도망을 간 상태였고.
그런데 그와 달리 외곽에서 바리게이트만 치고 상황만 지켜보던 녀석들이 따로 있었다.
패황 연합의 잔당들.
몸을 날려서 대신 죽으려던 녀석들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자 외곽으로 빠져서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안쪽의 상황은 우리가 완전히 정리해 버렸으니 이들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레이드 장소를 둘러싸고 있던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그냥 걸어서 바깥으로 나오는 우리를 보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면서 무기를 들고 앞을 막아섰다.
좀 전까지 전투를 치뤘던 흔적이 가득한 출구쪽에서.
흐음.
이 빙산을 내려가는 출구를 막고 버틴 거였나?
우리에게서 도망가던 초월 연합의 유저들을 잡기 위해?
물론 그들을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나같이 일류에 실력이 출중했으니.
이들이 저지할 정도로 약한 게 아니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도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앞을 막았다.
“잠깐. 너 어디서 오는 길이냐? 어떻게 여기에서 살아 남았지?”
중간에 제지를 하다가 도저히 못 막고 뚫린 것 같아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괜히 우리에게 화풀이라도 할 생각인가.
그러자 그들을 보고는 바로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럴 때는 그냥 묻어 가자.
“아, 패황 연합입니까. 휴, 살았습니다. 안 그래도 안에서 초월 연합 녀석들과 붙는다고 개고생 했습니다.”
“어……? 너네들 우리 쪽 애들이었어?”
이미 전에 파악한 바로는.
패황 연합이 너무 많은 유저들을 끌어모으다 보니 아직까지도 아군들의 전력이 정리가 안 된 것으로 안다.
이건 전사 형이 확실히 확인시켜 준 일이기도 했고.
개판 오 분 전이랄까.
너무 짧은 시간에 덩치가 너무 비대해져서 서로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초월 연합이 자신들의 영역이 잘 정리가 된 반면에 이쪽은 한 마디로 구멍 투성이지.
사실 그래서 패황 연합의 그늘 안으로 연기를 한 셈이었다.
아까 초월 연합과 붙었을 당시에도.
이미 빡빡한 초월 연합과는 다르게 우리가 숨어들어갈 만한 자리를 얼마든지 있으니까.
“으음. 이번에 너희 길드는 보고 못 받았는데?”
“아, 그게 중간에 착오가 좀 있나 봐요. 아시잖아요. 지금 계속 들어오는 길드들 많은 걸요. 우리도 신청은 해 놨는데 아직 처리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가득이나 여기 바로 차출되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러자 의심의 눈초리를 세우던 녀석들의 눈이 살짝은 풀려 버렸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건 정말 패황 연합에 들어오고자 하는 녀석들일 테니.
그리고 한순간 우리를 제지했던 녀석이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아씨, 너희도 그렇게 끌려왔어? 우리도 다짜고짜 끌려와서 말이야. 아까 지나간 녀석들 상대한다고 개피 봤다고.”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저희도 죽을 뻔했거든요.”
그러자 이젠 아예 아군이 된 것처럼 우리를 바로 반겨 주었다.
“잘 살아왔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 또 우린 움직여야 하거든.”
“네?”
“당장 따라오라고. 밀리고 있는 거점 방어하라고 당장 튀어오란다. 미친 것들.”
호오.
이것 봐라?
의외로 일이 잘 풀리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