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10화 (900/1,404)

#909화 폭주하는 네임드들 (11)

네임드들 사이에 오빠, 동생 사이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순서적으로 보면 어쨌든 맞는 것 아니겠어?

뭐 이것도 혹한의 얼음 여왕이 확실히 우리에게 포섭이 된다는 가정하에서다.

“크큭, 하다 하다 이번엔 여동생이냐.”

재중이 형은 여전히 재밌다는 듯 웃음을 감추지 못 했고.

“끼워 맞추면 대충 맞지 않아요?”

“맞긴 한데. 네임드 가족을 만들려는 건 아마 네가 최초일 거다.”

전무후무.

애초에 네임드를 하나라도 아군으로 데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이젠 가족 모임이다.

그리고 여전히 뱀파이어 로드는 벙찐 표정으로 나와 재중이 형을 쳐다보고 있었다.

발록은…….

음…….

좀 한심하게 쳐다본다고 해야 하나?

네임드에게 이런 시선을 받다니.

“발록은 싫어?”

“인간들은 웃기는 짓을 하는군.”

음…….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단 한마디 말로 나의 입을 막아버린 발록에게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아무튼. 마왕 떼거지들 하고 싸워 보려면 이쪽도 쪽수가 많은 편이 낫지 않겠어?”

대천사의 검의 봉인 해제 조건을 금속의 정령에게 들었을 때.

사실 처음에야 당연히 오버된 네임드들을 잡는 것에만 열중했었다.

실제로 그쪽으로 진행 방향을 돌리기도 했고.

그런데 이건 꽤 구현하기가 힘든 문제였다.

얼마나.

몇 녀석이나 되는 오버된 네임드들을 잡아야 봉인이 풀리는지 아무도 모르는데다가.

심지어 오버된 네임드를 만들어 내는 과정.

그리고 그걸 다시 죽이는 과정까지.

하나같이 쉬운 게 없어.

그래서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플랜 A가 어렵다면…….

플랜 B는?

굳이 오버된 네임드를 전부 잡을 필요가 있는가?

그 대답은…….

아니다.

꼭 오버된 네임드를 잡지 않더라도.

이 녀석들이 내 쪽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어차피 마왕 새끼들은 이미 한편 먹기에는 물 건너 간 듯 하고.

그럼 오히려 오버된 네임드를 내 손으로 죽이는 것 자체가 마왕들을 도와주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반대로.

오버된 네임드들이 내 편일 경우.

이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마왕과 대척할 수 있는 세력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심지어 이 네임드들은 유저들과의 전쟁에서도 써먹을 수 있었다.

대천사의 검 하나의 가치와.

오버된 네임드 다수의 가치.

이 둘을 비교하면?

내가 혼자 대천사의 검을 휘둘러서 전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오버된 네임드들이 한꺼번에 날뛰는 장면.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어.

압도적으로 오버된 네임드를 아군으로 만드는 쪽으로 기울었다.

대천사의 검은…….

정말 급하면 그때 가서 어떻게든 하면 돼.

만약 생각해 놓은 방법이 통한다면.

굳이 어렵게 돌아갈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이건 추측일 뿐이긴 한데…….

금속의 정령이 말해 주었던 말들 중에 걸리는 것도 있고.

나와 재중이 형, 발록을 번갈아 보던 뱀파이어 로드가 마치 졌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 두 손을 들었다.

으음.

얘는 한숨까지 쉬어 버리나.

생각해준 사람 마음 아프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자는 거지?”

“음, 일단 우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거야.”

“뭐?”

이번의 내 말에는 발록 역시도 의외라는 듯 한마디 했다.

“전처럼 저 녀석들을 죽여서 이 녀석을 키워 줄 생각이 아니었나? 네가 그동안 해온 걸 보면 두 세력이 싸우는 사이에 중간에 끼어들어 하나씩 정리할 생각이었을 텐데. 아닌가?”

그러면서 발록이 저 멀리 모이기 시작하는 초월 연합의 길드들과 패황 연합의 길드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발록의 그런 짐작은 재중이 형으로부터 감탄을 자아냈다.

<심연> 호오, 이 녀석 봐라? 생각보다 훨씬 습득이 빠른데?

<윈> 네, 확실히 그렇네요.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아마 그동안 내가 하던 패턴들을 중심으로 녀석도 내 행동 양식을 분석한 모양이었다.

이 정도까지 지능이 높다라…….

추측 수준이 유저들만큼이나 좋아 보였다.

뭐 멍청한 것보다야 훨씬 낫긴 한데.

그렇다고 너무 똑똑해도 문제.

이것들이 나중에 문제를 안 일으켰으면 좋겠다만.

일단은 지금 당장 필요하니까.

조금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맞아. 보통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겠지.”

아마 평소의 나라면.

주저 없이 방금 발록이 추측한 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곧장 발록을 바라보면서 넌 아직 멀었다는 듯 손가락을 흔들었다.

“하지만 말이야. 저 두 세력들을 죽일 기회라면 얼마든지 있어. 그렇지 않나?”

내 말에 발록이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니까.

오버가 된 발록.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

둘 다 하나의 군대나 마찬가지인 녀석들이다.

그렇게 이 녀석들을 이용하면.

언제 어느 때라도 지금과 같은 전장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른 말로.

전쟁을 할 때와 장소를 정하는 건 바로 우리란 말이지.

저 녀석들이 아니라.

그런데 지금은 굳이 이 장소에서 학살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하면 안 된다.

여기 온 목적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뭐지?”

그러면서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를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얼음 여왕.”

“얼음 여왕.”

이건 정답을 아까 말해 줬으니.

하지만 둘 다 어이가 없는지 여동생이란 단어는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부끄러워하기는.

“아무튼, 우리 목적은 명확해. 얼음 여왕. 그런데 말이야. 저기 있는 저 인간들을 지금 너희가 전부 쓸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흠.”

“……으음.”

이건 아마 생각에 없었겠지.

여기까지 예상할 수 있었으면 너희들이 그냥 랭커다.

“다 죽이는 건 좋다 이거야. 하지만 그러면. 결국 혹한의 얼음 여왕 혼자 남는다 말이지.”

그러자 뱀파이어 로드가 내게 물어보았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아, 답답하긴. 그러니까 원래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저들이 얼음 여왕을 공격을 해 줘야 우리가 짠 하고 나타날 것 아니야. 그런데 그전에 다 죽여 봐. 폼이 나, 안 나?”

“……하.”

“……허어.”

그런 둘의 어이없는 표정을 본 재중이 형이 배를 잡으면서 웃어버렸다.

<심연> 아놔, 쟤들 표정 봐라. 완전 넋 나간 표정인데?

으음.

갓 사회에 나온 네임드에게는 이건 문화충격이려나.

그래도 옛날 동화에도 자주 나오잖아.

위험에 빠진 공주님을 딱 하나 구해 주고.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처음에야 나도 뱀파이어 로드 때처럼 무대포로 밀고 들어가 무력으로 눌러 버리는 방법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 귀찮아.

일일이 다 설명을 해야 하고.

설득을 하는 과정도 그렇다.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은 방법은.

가급적 피해야지.

그리고 그 방법으로 했더니 뱀파이어 로드의 호감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지금이야 계속 유저들을 가져다 바쳐서 호감도가 좀 더 오른 상황이긴 한데.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극적이진 않단 말이야.

“자, 그럼 작전을 들었으면. 가보자고?”

* * * * *

우리가 중간에 방해를 하지 않으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까?

혹한의 얼음 여왕 레이드를 진행하려는 초월 연합과 그걸 방해하려는 패황 연합.

그리고 이번에는 준비가 잘된 초월 연합 쪽이 패황 연합의 수를 잘 제어하는 편이었다.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이거지?

애초에 패황 연합은 숫자만 많았지.

장비나 레벨대가 그렇게 높은 녀석들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봤듯.

혹한의 얼음 여왕에게 죽어 주러 온 녀석들이 제대로 된 장비를 착용하고 왔을 리가 만무하고.

그런 움직임을 잘 아는 초월 연합의 길드들은 철통같이 접근을 막으면서 패황 연합의 숫자를 하나둘씩 줄여 나갔다.

“호오, 초월 연합 애들도 바보는 아닌데? 레이드를 하는 척하고 전부 외곽의 녀석들을 죽이고 있잖아.”

“네, 똑같은 방법에 두 번이나 당할 정도로 멍청이들은 아니겠죠.”

나름 서버에서 날고 긴다는 녀석들을 모아 둔 건데.

같은 방법에 대처가 없다면 그게 더 웃긴 일이었다.

“뚫어!!!”

“젠장, 이번엔 가드가 너무 강하잖아.”

“이 새끼들 레이드는 안 할 생각인가?”

“일단 빠진다! 이대로면 피해가 너무 커!”

“여기서 빠지면 의미가 없어!”

“그럼 어쩔 건데? 그냥 다 개죽음 당할 거야?”

“아이씨. 죽으려면 여왕한테라도 죽으란 말이야!”

패황 연합 길드들도 상당히 많은 다수의 길드들이 포함되었기에 명령 체계가 생각보다는 잘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잘나가고 있을 때야 일사분란하게 처리가 될 테지만.

너무 막 모은 거려나?

지금의 모습은 그냥 중소 길드들이 마구잡이로 모여서 그런지 서로 명령이 엉켜 버려 혼란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 초월 연합 길드들은 차근차근 적들을 정리해 나갔고.

서로의 경험치가 확실히 다르긴 하네.

거점 하나를 그냥 통으로 뺏겼다고 해도 사실 그건 우리가 뺏은 거나 마찬가지라.

패황 연합에서는 한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그리고 정예에 가까운 녀석들을 숫자로 밀어붙여 봐야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지금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당황했을 때야 당해줬겠지만.

“꽤 어려워 보이네요.”

“어, 패황 애들 물러나기 시작한다.”

소득은 없고.

피해만 계속 누적되는 상황.

만약 내가 패황 연합에 속한다고 하면 바로 병력을 뺐을 것이다.

아니면 진짜 다 죽어 버릴 각오로 밀어붙여 틈을 만들어도 좋고.

저렇게 엉성하게 하면 될 것도 안 되지.

서로가 네임드 쟁탈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장이었는데 너무 허무할 정도네.

곧 재중이 형이 중앙에 선 초월 연합 길드의 정예들과 얼음 여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다시 레이드를 재개한다.”

사실 혹한의 얼음 여왕을 잡기에는 상당히 과도할 정도의 병력이 이곳에 왔다.

뭐 패황 연합 때문에 그렇게 모은 것도 있겠지만.

반대로 지금 거점을 공략할 병력이 그만큼 빠졌다는 건데…….

초월 쪽에서도 확실히 초조한 모양이겠지.

이미 뱀파이어 로드를 패황 연합에게 뺐긴 것이나 다름없으니.

비교적 강자인 초월 연합 입장에서는 네임드를 못 잡는 것 자체가 뺏긴 것과 마찬가지다.

레이드를 계속 진행하는 와중에 몇 번 패황 연합 길드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이미 기세는 기울어진 상태라 별 의미가 없는 방법이었다.

혹한의 얼음 여왕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입구 컷을 당해 버렸으니까.

“아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거야. 패황은.”

“정 안 되면 정예를 투입할까요?”

“음, 그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라 힘들 거다. 저 방법 자체가 손해를 감수하고 하는 거니.”

“하긴 그렇네요.”

뭐 패황은 패황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쪽 집안 사정까지 일일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도로 애정이 넘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가만히 은신을 한 상태로 초월 연합 길드들이 레이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재중이 형과 눈을 마주쳤다.

“슬슬 된 거죠?”

“어, 페이즈 완전히 넘어갔다. 최종기도 나오고. 조금만 더 지나면 얼음 여왕이 잡힐 거야.”

“네, 그럼 시작하죠.”

그러면서 혹한의 얼음 여왕 레이드를 과정 전체를 지켜보며 손이 근질근질한지 몸을 푸는 발록의 모습.

그리고 다른 네임드의 레이드를 처음 보는 뱀파이어 로드는 유저들에게 죽을 것 같은 여왕의 상황에 동변상련의 기분이라도 느끼는지 꽤 흥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네임드이긴 한데.

자기와 똑같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 뭐.

기분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겠지.

본인의 그때 상황과 겹쳐 보일 테니.

그런 그들의 목줄을 드디어 풀어 주었다.

“발록, 뱀. 이제 출동할 때다.”

가서 저것들을 싹 죽여 버리고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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