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09화 (899/1,404)

#908화 폭주하는 네임드들 (10)

뱀파이어 로드의 영역.

이곳의 지리는 누구보다 뱀파이어 로드가 제일 잘 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우리가 앞장서는 게 아니라 뱀파이어 로드가 더 나서서 길을 지시하는 중이었다.

“저쪽으로 가자.”

“이쪽으로 가자!”

“빨리 안 와?”

“어이, 거기 자꾸 느릿느릿하게 걸어 다닐 거야?”

……그것도 꽤 적극적으로.

이건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이놈 원래부터 이렇게 적극적인 놈이었나?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이렇게 날아다니는 꼴이라니.

그런 뱀파이어 로드의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배를 잡고 웃어버렸다.

<심연> 아, 진짜 이놈 완전히 빠졌는데?

<윈> 네, 음…… 어쨌든 좋은 것 맞죠?

<심연> 그래. 수동적인 것보다 알아서 열심히 해 주면 좋은 거지.

확실히 그렇긴 한데.

좀 너무 열성적인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오히려 뒤따라오는 우리가 너무 느리다고 타박까지 줄 정도라.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귀찮은 듯 뱀파이어 로드를 뒤따라가던 발록의 그 말에 내가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았다.

“너, 그거 무슨 말인지는 알고 쓰는 거냐?”

“음, 이럴 때 쓰는 말 아닌가?”

“맞긴 한데…… 아니다, 됐다.”

대체 누가 이런 말까지 넣어 둔 거야?”

프로그램 한 녀석들 다 잡아다가 정신 교육을 시켜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서 다른 유저들이 한데 뭉쳐서 싸우고 있는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거 쓰면 쓸수록 범위가 더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한데.

이젠 발록이 굳이 먼 지점을 찍지 않아도 어렴풋이 느껴질 정도니까.

거기다 마치 머릿속에 정말 그림이라도 그려놓은 것처럼 뚜렷히 잔상이 남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들으면 정말 미쳤다고 할 테지만.

실제로 그 정도의 감도가 나왔다.

이걸 범위를 좁히면.

조금 더 상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누가 무슨 병장기를 쓰는지 구분하는 단계랄까.

뭐 좋은 게 좋은 거려나.

처음에는 좀 무리라 생각해서 의식해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냥 마음 편히 쓰고 있었다.

새로 세팅한 VRS에서 리바운드를 거의 다 막아 주는 모양새라.

역시 비싼 게 좋은 거겠지.

“오, 저기다. 나 먼저 간다.”

그 말만 하더니 곧장 두 유저들의 싸움에 달려들어서 깽판을 놓는 뱀파이어 로드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 블러디 돔! 】

그리고는 아예 한 녀석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블러디 돔을 쳐놓고 야금야금 유저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거 참. 이젠 할 게 없네.”

재중이 형도 처음에는 스피어를 들고 빠져나가는 녀석들을 견제해 주려고 했으나 지금은 그게 거의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시작부터 블러디 돔으로 가둬 버리는데.

원래 네임드 스킬은 저렇게 막 쓰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필요한 순간.

쿨이 길다 보니 딱 한 번 필요한 때를 확실히 분간해서 써야 하는데.

이 녀석은 그런 것도 아니다.

유저가 아닌 네임드다 보니 쿨 자체가 짧은지 그냥 유저들이 보이면 바로 달려가서 써 버린다.

이걸 피할 수도 없는 게 대뜸 거적대기 유저가 갑자기 하나 튀어나와서 네임드 스킬을 써버리는데다가 심지어 그놈이 미친 듯이 강했다.

평타 한 방, 한 방이 거의 일반 유저들 스킬 수준이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네임드라는 건 탱딜힐을 다 갖추고 탱커가 앞장서서 공격을 대부분 받아 준다.

그런데 지금은 뒤를 잡힌 상태에서 전투를 시작하니 그런 전개 자체가 일어나지가 않았다.

네임드라는 걸 모르니까 그냥 일반적인 PK 대형으로 싸우다가 한 번에 뚫려 버리는 거다.

지금도 마찬가지.

“크악!!”

“커억!!”

뱀파이어 로드가 팔을 쭉 뻗어서 한 유저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는 순간.

그 유저의 핏기가 전부 한 번에 빨려 나가면서 그 자리에서 미이라처럼 변해 죽음의 빛으로 사라져 버렸다.

후방을 저렇게 무방비하게 내놓다니.

그것도 네임드에게.

정면에서 붙어도 버틸까 말까인데 하물며 후방 급소 공격이라…….

이건 그냥 죽여 달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 역시 속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속했다.

뱀파이어 로드의 타입이 힘과 파워로 승부하는 네임드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발록이 더 파워풀한 쪽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강렬한 신체적인 이점을 살려서 싸우는 발록.

민첩과 흡수 계열 마법의 연계가 좋은 뱀파이어 로드.

둘의 성향은 확실히 차이가 났다.

뭐 그렇다고 발록의 민첩이 느리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신체적인 강점이라는 건 육체로 하는 전투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이니.

그런 둘이 당장 붙으면 발록이 이기겠지만.

뱀파이어 로드가 더 성장하면 또 모르겠다.

지금도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녀석의 파괴력이 높아져 갔다.

이를테면 전에는 유저의 목을 틀어쥐고 한참을 흡수해야 했던 스킬이 지금은 그냥 한 번만 움켜쥐면 거의 빈사 상태까지 만들어 버렸다.

레벨이 오른 만큼 스킬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이게 바로 네임드의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성장치가 유저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야.

물론 그런 성장에는 그만큼 많은 제물이 필요하기는 했다.

지금처럼.

어느덧 유저들을 싹 녹이고 블러드 돔을 해제한 뱀파이어 로드가 흡족하다는 듯 얼굴 가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처음에 우리 제안을 꺼림칙하게 생각하던 녀석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심지어 녀석은 나를 보면서 더욱 많은 것을 요구했다.

“더 없냐? 몇 명 잡는 걸로는 영 감질 나는데…….”

<심연> 큭, 이 녀석 완전히 맛 들였네.

<윈> 레벨업이 그렇죠.

본인이 점점 강해지는 걸 싫어하는 녀석이 어디 있을까.

덤벼오던 유저들만 상대하던 뱀파이어 로드에게 있어서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신세계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런 신세계를 영접한 녀석은 뱀파이어 영역에 들어왔던 유저들의 씨를 말려 버리는 중이었다.

아마 처음에 우리가 파악한 유저의 절반 정도는 쓸어버렸을 려나.

특히 녀석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사냥 속도가 더욱 올라가서 지금은 몇 명의 유저로는 식후 간식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역시 이 녀석들로는 좀 그렇지?”

솔직히 이렇게 적극적으로 할 줄은 몰랐다.

너무 네임드를 과소평가했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좀 더 이쪽도 확실하게 풀어 줄 필요가 있었다.

잘 자라려면 녀석의 눈높이에 맞춰서 맞춤형 교육을 해 줘야지.

그사이 재중이 형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회수하는 중이었다.

뱀파이어 로드가 죽인 유저들이 드랍한 아이템들을.

그래.

이 녀석은…….

확실히 돈이 된다.

유저가 유저를 죽이면 드랍률이 그렇게 좋지 못한 것에 반해.

뱀파이어 로드가 잡으면 정말 우수수 아이템들이 드랍됐다.

효율 면에서는 이쪽이 몇 배는 위라는 거지.

그리고 그 드랍 템들은 우리 품에 고이 들어왔다.

뱀파이어 로드는 딱히 유저들의 아이템에 관심이 없어서.

덕분에 우리 인벤도 빵빵해져 가는 중이다.

거기다 아마 지금쯤.

초월 연합이나 패황 연합이나 둘 다 이상한 정보를 얻고 있을 것이다.

랭커 한 명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죽인다는 정보를.

문제는 이게 상대방의 전력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냥 상대측의 숨겨진 전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소통 자체가 안 되지.

오해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딱히 일부러 나서서 그 사실을 알려 줄 생각이 없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판을 키워 볼 필요가 있었다.

마침 녀석도 원하니까.

“형, 다음이 어디라고 했죠?”

“흐음, 보자…….”

재중이 형이 화면을 띄워서 시간을 체크했다.

“호오, 딱 좋은데? 마침 시간대가 맞는 녀석이 있어.”

“어디죠?”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얼음 여왕. 어때? 막 땡기지?”

“확실히 좋네요.”

혹한의 얼음 여왕.

이 녀석은 우리가 이미 한 번 스쳐지나 온 네임드였다.

발록이나 뱀파이어 로드보다는 다소 레벨이 낮긴 한데.

이 녀석의 타입이 결정타였다.

“얼음 여왕은 마법사죠.”

“어, 그것도 굉장히 파괴적인.”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도 강력한 광역기가 있긴 했다.

하지만 혹한의 얼음 여왕만큼은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타입 자체가 다르니.

그리고 그런 점은.

내가 결정을 내리는데 한 치의 고민도 없게 만들어 주었다.

“바로 가죠.”

이미 뱀파이어 로드로 가능성은 확인했다.

그렇다면.

혹한의 얼음 여왕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만약에 아니라고 하면…….

그냥 뱀파이어 로드의 경험치로 넘겨주면 되는 일이고.

우리가 손해볼 것은 하나도 없지.

* * * * *

뱀파이어 로드의 영역에 들어온 이방인들을 거의 정리하고는 더 이상 효율이 나지 않아 곧장 혹한의 얼음 여왕의 빙산 지대를 향해 자리를 옮겼다.

우리야 탈것을 이용해서 빠르게 움직였고.

그 뒤를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가 바싹 달려서 따라왔다.

녀석들은 애초에 마력이 넘치니.

가속 스킬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네.

부럽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계속 달리고 달려 빙산 지대에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지금.

이곳에는 초월 연합에서 보낸 유저들이 뱀파이어 로드의 경우처럼 똑같이 레이드를 준비 중이었다.

“여기도 마찬가지네요.”

“어, 하나라도 놓치면 손해니까.”

“그런데 의외로 침착한데요? 이미 뱀파이어 로드 쪽에서 박살난 걸 들었을 텐데.”

“아냐, 잘 봐. 전부 긴장하고 있잖아. 사방에 흩어져서 정찰하는 녀석들도 늘었고.”

“확실히.”

재중이 형 말대로 이전과는 다르게 얼음 여왕이 뜨기 전부터 사방팔방 모두 정찰하는 유저들을 보내 접근하는 유저가 없는지 확인을 하는 중이었다.

경계 수준이 한참 올라갔다고 해야 하나.

뱀파이어 로드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녀석들도 전멸했다는 걸 들었을 테니. 꽤 무리를 해서 휘하 병력을 끌고 온 듯한데?”

대략적으로 잡히는 숫자가 이미 전의 레이드의 두 배가 넘어갔다.

“뱀파이어 로드는 포기한 걸까요?”

“이미 잡긴 글렀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어. 레벨이 오른 것도 봤으니.”

한쪽을 포기하고 이쪽이라도 사수하겠다는 거려나.

“거기다 패황 연합 녀석들이 훼방 놓을 걸 뻔히 아니.”

“전력을 더 높여서 반대로 잡아먹겠다는 거죠?”

“그래, 패황에서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방해가 들어온다면 그냥 먹이가 될 뿐이지. 뭐 패황 역시 그렇게 멍청하진 않겠지만.”

그리고 재중이 형이 손가락으로 저 멀리를 가리키자 빙산 저 멀리 있는 입구에서부터 패황 연합 유저들이 개떼처럼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쪽수로 치면 패황이 위지.”

“더 데리고 왔군요.”

애초에 패황은 유저들이 방해를 하다가 죽을 걸 염두에 두고 보내서 그런지 딱히 전멸한 것에 신경을 쓰진 않아보였다.

오히려 이번에 다시 한 번 더 초월 연합을 물 먹이겠다고 더욱 준비를 해서 보냈고.

정체불명의 랭커라는 변수가 있더라도.

둘 다 양보는 없다 이거네.

“이쯤 되면 서로 못 물러나지. 그 순간 낭떠러지니까.”

흐음.

이거 참.

왠지 하늘이 도와주는 것 같기도 한데?

곧장 뱀파이어 로드를 보고는 물었다.

“어이, 뱀.”

“왜 그러냐?”

“너, 동생 하나 안 필요하냐?”

“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는 뱀파이어 로드를 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여동생 하나 만들어 줄게.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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