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화 폭주하는 네임드들 (7)
은신 상태는 공격을 해야만 은신 상태가 풀리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공격 자체를 하지 않았다.
정작 공격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발록이지.
그리고 메인 탱커는 뱀파이어 로드의 일격으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드랍템의 소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난 그 점을 노리고 드랍템에 달려들었고.
“메인 탱이 당했어!”
“젠장, 잔당이 남아 있었나…….”
“전부 다 쫓아간 거 아니었어?!”
당장 드랍템이 사라진 것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 보다는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가 더 맞는 말이겠지.
메인 탱이 후방에서 공격을 맞고 그 여파로 빈틈이 생겨 뱀파이어 로드의 공격을 허무하게 맞고 말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아이템보다 모두 후방에서 누가 공격을 했는지에 더 신경을 쏟았다.
당연히 후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발록?”
“뭐야? 저 새끼는. 어떻게 아직까지 저기 있어?”
“이래서 다른 길드 애들 섞으면 안 된다니까. 추적도 똑바로 못하는 놈들을…….”
“시끄러! 지금 그런 소리 할 때야?! 당장 뱀파이어 로드에 보조 탱 붙이고 저 녀석부터 죽여!”
“더 이상 빼면 유지 못 하는데…….”
“그럼 계속 공격당하기만 할래?”
“아, 오늘 진짜 왜 이러냐…….”
“저 새끼도 장비 엉망이니까 빨리 처리하고 와. 딱 보니 마법사인 것 같은데. 은신하고 있다가 나온 모양이다.”
“휴, 나중에 그 새끼들 다 죽었어.”
아마 녀석들은 패황 연합의 유저들을 추적하러 간 녀석들이 제대로 일을 못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인원을 억지로 분리한 건 그들을 잡기 위함이니까.
그런데 지금 멀쩡하게 서 있는 발록을 보니까 빡칠 수밖에.
결국 한숨을 쉰 초월 쪽 연합 유저들이 깊게 한숨을 쉬고 무기를 들고 후방으로 날아갔다.
장비가 엉망이라…….
사실 발록은 후드 하나만 걸치고 있는 수준이라 저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는데?
그리고 그런 판단은…….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빨리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남은 레이드 팀에서 셋을 빼서 발록에게 붙였는데…….
저건 미친 짓이지.
화르르륵!!!
바닥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불의 기둥.
그 기둥에 갇힌 녀석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면서 절규했다.
“끄아악!!”
“커억!! 무슨 위력이……!!”
그리고 그런 녀석들이 발록의 손짓 한 번에 그대로 숯덩이가 되어 버렸다.
당연히 바닥에 착용하고 있던 고가의 아이템들을 드랍한 채로.
유저가 유저를 죽이면 드랍 확률이 상당히 떨어지지만.
발록은 유저가 아니지.
다른 말로 발록에게 죽는 순간.
아주 높은 확률로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이 드랍된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있던 재중이 형이 은신한 상태로 그 아이템을 낼름 잡아먹었다.
<심연> 어이구, 감사.
이 상황이 꽤 흥겨운지 어깨를 들썩들썩 거리면서.
이건 거의 공짜로 아이템을 쓸어담는 셈이라.
“어?”
“뭐야?”
“죽었어?!”
솔직히 녀석들은 세 명을 붙인 것도 많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주변에 호위를 하는 유저가 없는 마법사 유저 하나 처리하는데는 꽤 과한 전력이니까.
그런데 그런 녀석들이 아무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순삭이 되어 버렸다.
물론 마법사 하나를 상대로 방심을 했다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문제는.
마법의 위력.
유저 셋을 한 번에 체력을 바닥으로 깎아 버릴 정도의 마법은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최소한 네임드가 주는 마법서 정도가 아니라면.
“뭐 이런…….”
“설마 저 새끼, 랭커였나?!”
“자살 특공대에 랭커를 보냈다고?”
“진짜 미친 놈들 아냐?”
이렇게 생각해봐도 미친 거고.
저렇게 생각해도 미친 건 마찬가지다.
“하아, 미치겠네. 일단 저 새끼부터 잡아!”
“그러면 뱀파이어 로드를 감당할 수 없…….”
“저런 랭커를 후방에 두고 레이드하자고? 미쳤어? 최소 인원만 빼고 다 붙어!”
이젠 발록을 확실히 랭커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거의 악에 받친 듯 남은 인원의 절반을 빼서 후방으로 보냈고.
차륜으로 돌아가면서 뱀파이어 로드를 상대해도 모자랄 판에 가득이나 모자란 인원에서 반을 뺀다라…….
이건 거의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뭐 이래 주면 우리야 땡큐지.
그리고 남은 인원의 절반을 뺏다고 한들.
발록은 절대 못 잡는다.
사실상 지금 눈앞에 있는 뱀파이어 로드보다…….
후방에 있는 저 발록이 훨씬 세니까.
레이드 하듯이 수백의 유저가 몰아 붙여도 될까 말까인데.
고작 저 정도 인원으로 발록을 어떻게 해본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지.
당장 발록이 힘을 전부 쓸 수 없기는 해도.
그렇다고 저런 숫자에 당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심연> 끝났네.
<윈> 네, 겁도 없네요.
애초에 유저를 한 방에 녹여 버리는 마법을 본 순간부터 손을 뗐어야 했는데.
지금이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이드를 두 번이나 연장해서 하는 상황에 습격도 당하고 메인 탱커는 죽어 버리기까지 했으니.
덕분에 우리야 좋지.
뱀파이어 로드를 상대하던 녀석들 중 절반이 빠져나가자 이전과 달리 곳곳에 빈틈이 넘쳐 났다.
특히 힐러와 마법사 쪽은 더했고.
원래라면 이 녀석들을 뱀파이어 로드의 랜덤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붙어 있는 녀석들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 그 녀석들은 전부 발록에게 달려가 버렸으니.
이건 마치 목을 닦아놓고 기다리는 모습이라.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그리고는 곧장 테르타로스를 여러 자루 복사해서 바닥에 하나씩 꽂아 두었다.
지금 녀석들은 뱀파이어 로드와 발록을 상대해야 해서 이쪽은 아예 신경도 못 쓰고 있었고.
하긴 은신 상태로 옆에서 뭔 짓을 하든 알 수 있을 리가.
일단 목표들은 지금 보조 탱에게 힐을 몰아준다고 정신이 없었다.
메인 탱이 존재하고 보조 탱이 존재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방어 능력이 그만큼 좋은 녀석이 메인을 잡으니.
다른 말로 지금 보조 탱은 어쨌거나 이전의 메인 탱보다는 방어가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보니 힐러들의 손이 더욱 바쁠 수밖에 없었고.
힐을 더 넣어야 겨우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 될 테니.
이쪽도 정신 없는 건 마찬가지지.
그리고 그런 힐러들의 목은 너무나 무방비했다.
자.
하나씩 정리해 볼까.
그대로 테르타로스를 한 자루씩 들어 힐러들의 목을 향해 집어던졌다.
아주 정확하게.
확실히 목을 뚫을 수 있도록.
푸욱!!
푸욱!!
푸욱!!
.
.
“크억!”
“켁!”
“으악!!
【 은신! 】
급소에 크리티컬을 넣었기에 다시 은신을 해서 기척을 완전히 지웠다.
당연하겠지만.
내구력이 약한 테르타로스는 이 한 번의 습격으로 흔적도 없이 그대로 박살이 나 버렸다.
누가 쭉 보고 있었다면 갑자기 검이 목에 박혔다가 사라지는 딱 그런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스킬로 보여질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직접적으로 접근해 목을 날리는 게 아니라서 조금 위력이 약한 면은 있었지만.
힐러 같이 움직임이 대체로 적은 유저의 목을 노리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네임드도 급소를 공격하는 마당에.
이런 거야 눈 감고도 하지.
그렇게 목을 관통당한 힐러들이 그대로 자리에서 픽픽 쓰러져나갔다.
계속 밀어 넣던 힐이 끊어지면…….
그다음은 뻔하다.
보조로 탱을 보던 녀석이 악을 쓰면서 뱀파이어 로드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 내다가 이내 한쪽 무릎을 확 꺾였다.
“크윽! 뭐해? 힐 빨리 안 넣어?!”
체력이 어느 정도는 받쳐줘야 뱀파이어 로드의 공격을 버틸 텐데.
그런 힐이 싹 사라졌으니.
거기다 뱀파이어 로드와 근접전을 하는 것은.
항상 체력 흡수 스킬이나 디버프를 염두에 두고 오버될 정도로 힐을 계속 부어넣어야 했다.
겨우 버티던 실이 끊어지는 딱 그런 상황이랄까.
“젠장. 힐러들이 다 당했어!”
당장 한 번에 죽은 건 아니라서 시간만 있다면 힐러들을 일으켜 세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뱀파이어 로드는 그런 시간을 줄만큼 넉넉한 존재는 아닌 것 같거든.
그대로 보랏빛으로 물든 손을 이전의 메인 탱커에게 했던 것처럼 보조 탱의 목을 잡아 틀어버렸다.
“끄아아악!!”
저 체력 흡수 효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고통스러워하는 것만 봐도 위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잡힌 지 몇 초 되지 않아 보조 탱이 마치 미이라처럼 바싹 말라서 쪼그라들었다.
흠…….
호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인데.
차라리 목이 날아가서 죽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전장에서 거리를 벌렸다.
추가로 공격을 해서 확실히 힐러를 죽이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것보다는 저 뱀파이어 로드의 공격권에서부터 떨어지는 게 더 중요했다.
지금껏 목을 죄고 있던 보조 탱 중에 하나가 사라진 순간.
녀석이 강하게 포효했으니.
“키아아아악!!!”
거칠 것이 없다고 해야 할까.
강렬할 충격파에 주변 대지가 우르르 떨려나갔다.
흠.
확실히 거의 마왕 급인 록보다는 약하긴 해.
그 하울링의 범위 안에 있던 초월 연합 측 유저들은 몸이 그대로 경직되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고.
애초에 하울링을 못하도록 어떻게든 끊어줘야 하는 탱커들과 딜러들이 다 저 모양이라…….
균열이 난 곳을 억지로 잡아 찢어주었더니 이젠 완전히 뱀파이어 로드의 독무대가 되어갔다.
보이는 족족 유저들의 목을 잡아 틀어서 그 자리에서 미이라를 연이어 만들어 냈다.
파아앗!!
그리고 그렇게 유저들을 잡아 죽이면서 뱀파이어 로드가 또 다시 레벨을 올려 버렸다.
지금껏 입은 피해 역시 한 번에 복구했고.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또 있었다.
화르륵!!
콰아앙!!
발록을 잡으라고 보냈던 유저들 역시 모조리 재가 되어서 그 자리에 흩어져서 사라졌다.
강력한 마법 폭발에 깜짝 놀란 유저들이 고개를 돌려 후방을 바라봤다.
“미친…….”
“뭐야? 다 당했다고?”
당연히 발록을 잡고 돌아와야 하는 유저들이 녹아서 사라지자 다들 안색이 파랗게 변해 버렸고.
그리고 이젠 확실히 인정했다.
“아……! 망했…….”
“젠장할, 레이드는 실패다! 빨리 이탈해!”
“템 드랍하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 나가!”
이미 뱀파이어 로드 레이드는 포기 상태.
거기다 이젠 더 이상 레이드가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이 문제지.
당장 이 자리에서 죽으면.
반드시는 아니지만 일부는 고가의 아이템을 드랍하게 될 테니까.
“다들 흩어져!!”
그리고 남은 유저들이 살아남기 위해 일제히 사방으로 몸을 날리려고 했다.
흠.
그렇게는 안 되지.
곧장 웨폰 카피로 테르타로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발을 붙들기 위해서.
그런데 그 순간.
뱀파이어 로드의 몸에서 찐득할 정도의 강렬한 붉은 핏물들이 회오리치듯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건……?
【 블러디 돔!! 】
그리고 강력하게 돌아가던 붉은 핏물들이 사방으로 확 퍼져나가며 주변에 완전한 돔을 만들어 냈다.
마치 피의 감옥이랄까.
“끄아악!!”
“커억!!”
그렇게 저 스킬의 범위 안에 들어간 모든 유저들의 체력이 동시에 빨려나가며 일대가 완전히 피로 물들어 갔다.
스킬 한 방에 전멸이라.
이거 참.
내가 손 쓸 필요도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