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화 폭주하는 네임드들 (2)
대천사의 검.
이걸 손에 넣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이걸 과연 네임드인 발록이 쓸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
선심 쓰듯이 발록에게 대천사의 검을 넘겨준 것도 바로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발록은 대천사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휘에 타올라 차마 오래 잡고 있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걸 보자마자 바로 확신에 찼다.
이 대천사의 검은 어지간한 네임드에게는 다 통용된다.
마계의 마왕들에게도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발록이 마왕도 꺼려할 정도로 강하다는 걸 고려해 보면…….
분명히 어느 정도까지는 통할 거야.
이렇게 다른 일을 다 제쳐 두고 대천사의 무구를 가지기 위해 이 대천사의 무덤에 온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일어났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전우여.”
네임드인 발록의 호감도가 예상 이상으로 올라 버렸달까.
설마 대천사의 검을 그대로 넘겨주는 것으로 이 정도까지 호감도가 오를 줄은 나와 재중이 형도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었다.
아마 이건 발록의 성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재중이 형도 의외라는 듯 발록을 보며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심연> 호오, 이거 꽤 재밌게 돌아가는데?
대천사의 검을 주면서 우리가 예상한 결과는 두 가지 정도였다.
첫 번째는 대천사의 검을 가지게 된 발록이 지금보다 더욱 강력해져 마왕들을 뚜드려 잡는 것.
어차피 발록이 마계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마왕들을 제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대천사의 검이 들어왔는데 발록이 가만히 있을까?
아니다.
분명히 발록은 마왕들을 치고 다닐 것이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우리에게는 굉장한 이득이 된다.
마왕들의 시선을 돌릴뿐만 아니라.
몇몇 마왕들은 발록에게 잡힐 수도 있을 테니.
물론 발록이 너무 강해져서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당장 우리가 마왕 때문에 제대로 활동을 못하는 판국이라...
앞으로 발록이 마계에서 설쳐주기만 해도 충분히 좋았다.
그런데 이 플랜은 일단 보류.
이유는 발록이 대천사의 검을 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들고 있다가 아예 놓쳐 버릴 정도로 반발이 심한 상태여서야…….
전투는 불가능이지.
그러면 두 번째 플랜.
바로 우리가 대천사의 검을 가지게 되는 것.
이 경우에는 발록이 대천사의 검을 얌전히 우리에게 양보를 하는 상태여야 했다.
사실 발록이 안 준다고 떼를 쓰기라도 하면 우리도 피곤해지지.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 대충 예상은 했다.
발록 역시도 대천사의 검을 소유한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본인 대신 마왕을 견제해 줄 수 있는 전력이랄까.
그리고 여기서 약간의 변수가 일어났다.
바로 네임드인 발록의 호감도가 예상 이상으로 올라간 것.
뭐…….
우리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하나도 없지.
마왕만 빼면.
발록은 그 자체로 강력하다.
그런 전력이 넝쿨째 들어온다는데…….
“전우?”
내 물음에 발록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함께 싸웠으니 전우 아닌가?”
“……음, 전우 괜찮지.”
솔직히 대천사의 무덤에서 싸우는 건 발록이 다 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내지 않았다.
괜히 아니라고 했다가 발록이 말을 돌리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그렇게 대천사의 검이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윈> 여기까지는 괜찮네요.
<심연> 어, 그렇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내가 들고 있는 대천사의 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윈> 흠, 일단은 이 녀석을 어떻게든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아무래도 마왕은 우리 손으로 처리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심연> 결국 원점이군.
당장은 발록이 있긴 한데.
이 녀석을 백 프로 믿을 수 있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다.
결국은 우리 쪽의 전력을 더 올려야 해.
대천사의 검의 봉인이라…….
뚫어져라 대천사의 검을 보고 있는데 그때 르아 카르테가 웅웅 울기 시작했다.
음?
그리고 금속의 정령이 갑자기 휙 바깥으로 나오더니 대천사의 검 주변을 빙빙 돌아다녔다.
“와아, 대천사의 검이다.”
“아, 맞다. 약속한 게 있었지.”
그러고는 인벤에서 대천사의 검 복사본을 꺼내 금속의 정령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네 몫.”
아무래도 원본을 먹어 버리면 곤란하니까.
“우앙. 나도 대천사의 검은 처음 먹어봐.”
음.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금속의 정령이 세상에 있는 좋은 무기란 무기를 다 먹고 다녔으면 아마…….
이 세상에 제대로 된 무기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천사의 검은 그 정점에 있는 무기 중에 하나였다.
일단 먹기도 힘들뿐더러.
먹었다가는 당장 천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금속의 정령을 없애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금속의 정령 입장에서는 이게 아마 최고의 만찬이 아닐까.
“마신의 파편도 먹어 봤으면서 뭘…….”
사실 등급으로 치면 그쪽이 더 높지.
하지만 이미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한껏 행복한 표정을 짓던 금속의 정령이 이내 복사된 대천사의 검을 야금야금 맛있게 분해해 먹어치웠다.
“참 행복하게도 먹는다.”
“우웅? 햄볶아요?”
“아냐, 됐다. 많이 먹어.”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대천사의 검이 분해 되어 사라지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얘는 과연 호감도의 끝이 어딜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새로운 메시지가 나왔다.
《 금속의 정령과의 호감도가 일정 이상 올랐습니다. 》
호오.
이제 슬슬 끝이 보이는 거려나.
그때 만족스럽게 배를 두들기던 금속의 정령이 의외의 말을 했다.
“이거 봉인 풀고 싶어?”
“응?”
“대천사의 검. 봉인되어 있잖아.”
“봉인 푸는 법을 알아?”
“응, 흡수하면서 알게 됐어.”
이건 좀 굉장한데?
설마 완전히 물음표로 되어 있는 봉인 푸는 법을 알아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중에 천사에 대한 퀘스트나 다른 뭔가를 통해서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금속의 정령이라는 건가.
당장 대천사의 검의 봉인만 풀 수 있으면…….
지금까지 막혀 있던 일들을 전부 해결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되지?”
“웅, 간단해. 그냥 봉인을 부수면 돼.”
“부순다?”
“응, 대천사의 검을 감싸고 있는 봉인에 최대한 많은 마기를 접촉시켜야 해. 이 봉인은 대천사 루스가 임시로 씌워 둔 거니까.”
그때 재중이 형이 물어보았다.
“일종의 마모 같은 건가? 쉴드를 쳐내듯이?”
그러자 금속의 정령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거야. 마기로 대천사 루스의 봉인을 녹이는 거야.”
예상보다 간단하기는 한데…….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천사 루스가 걸어 놓은 봉인이 그렇게 쉬울 것 같지는 않거든.
“어느 정도면 돼?”
“우웅? 아마도... 대천사의 검으로 쟤 같은 애 몇 명 썰면 돼.”
그러면서 금속의 정령이 발록을 가리켰다.
네임드를?
그 순간 나와 재중이 형의 눈이 마주쳤다.
“설마 오버된 네임드는 아니겠지?”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아니겠죠.”
그러자 금속의 정령이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
“아닌데?”
“아니야?”
“아닌 게 아니라고.”
음…….
그럼 맞다는 건가.
순간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산 넘어 산이네요.”
어쩐지 난이도가 쉽다고 생각했다.
입수 난이도로 치면 전설 아이템인 테르타로스가 몇 배는 높긴 한데…….
마왕성 지하 내부의 검을 구하는 거니.
하지만 이쪽도 결코 쉬운 난이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당장 가장 가까운 해결책이 있긴 한데.
슬쩍 발록을 쳐다봤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하아.
발록에게 죽어 달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장 칼부림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때 재중이 형이 턱을 쓰다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바닥을 짝 쳤다.
“호오, 이거 생각보다 꽤 괜찮은데?”
“네?”
“잘 생각해 봐. 지금 네임드들. 누가 독식하고 있지?”
“초월 연합과 패황 연합…….”
사실상 두 연합들에서 유저들이 잡을 가능성이 있는 네임드들은 거의 다 양분해서 먹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번갯불이 튀듯이 여러 생각들이 확 이어졌다.
“아, 이런…….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죠?”
“그렇지? 나도 금속의 정령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생각 못 하고 있었으니까.”
“녀석들을 물 먹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있었는데 너무 돌아갔네요.”
“크큭, 그래. 이거 하나만 해도 당장 녀석들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어.”
그동안은 테르타로스로 옵션을 가져오는 것에만 집중했지 그 이상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재중이 형 말대로.
이게 되기만 하면.
두 연합의 전력을 최대한 깎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겸사겸사 우리가 원하는 일도 만들어 내고.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지금이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최적의 기회야. 초월과 패황 쪽 연합들의 시선이 온전히 거점 쟁탈전에 몰려 있으니까.”
“네, 확실히 그렇죠.”
여기까지 염두에 두고 패황 연합이 거점을 차지하게 만든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패황 연합 덕분에 우리가 움직이기 더욱 쉬운 환경이 되어버렸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흐음. 보자. 아무래도 초월 쪽 먼저 건드는 게 낫겠지. 그쪽은 정말 정신이 없을 테니까.”
“초월부터인가요.”
“그래, 일단 초월이 마왕의 영역 근처의 거점을 유용함 때문에 다시 찾아오려는 것도 있어. 그 부근의 모든 사냥터를 뺏기게 되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녀석들을 아프게 하는 건…….”
“그게 뭐죠?”
“자존심. 실리도 실리인데 자기들 안방 한가운데를 두들겨 맞고 빼앗긴 건 정말 타격이거든. 이걸 되찾아오지 못하면 동맹들도 하나 둘씩 흔들리게 돼.”
“초월 입장에서는 무조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네요.”
“어, 그러니까 쉽게 전력을 빼지 못하지. 반대로 어차피 패황이야 하다가 안 되면 대충 빠져도 되는 거라. 이미 한 차례 거점을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지지 세력들에게 충분히 보여 줄 만큼 보여 준 거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초월 연합이 제대로 한 방 먹은 상태라 반드시 거점을 되찾아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초월 쪽에서는 지금쯤 최대한 소수로만 네임드 공략을 하고 있을 거다. 리젠되는 네임드를 안 잡고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거기에 우리가 파고들 틈이 있는 거네요.”
“어, 한 번 균열을 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더 쉬워질 거다. 잘만 하면 녀석들의 견고한 지배 구조를 확 깨 버릴 수도 있어.”
이건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유저들이 올릴 수 있는 최대 스펙의 정점은 결국은 네임드에게서 나온다.
네임드 템을 차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그리고 그 때문에 초월이 네임드를 장악하고 놔주지를 않았고.
패황이 유저들을 모아서 녀석들의 허리를 흔드는 동안…….
“그럼, 이제부터 녀석들의 뿌리를 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