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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77화 (867/1,404)

#876화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 못먹어 (4)

아무리 봐도 레벨이 오른 발록의 능력은 테르타로스와 르아 카르테를 동시에 든 나보다도 훨씬 윗급으로 보였다.

이걸 극복할 방법은 나 자신의 레벨이 오르거나 어떻게든 능력치를 더 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당장 레벨이 오르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고 이 이상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것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를 이용해 최대치의 스탯을 끌어올렸으니까.

거기다 마족화와 함께 오러까지 모두 동원했고.

일단 올릴 수 있는 능력은 다 올렸어.

그리고 여기서 더 차이를 극복하려면…….

결국 녀석을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커스 스파이더 필드와 팬텀 익스플로전을 사용해 최대한 녀석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다.

원래라면 폭발력에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하는 팬텀 익스플로전이지만 지금은 이쪽이 더 효과가 좋아.

어차피 팬텀 익스플로전의 폭발력으로 발록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그 결과 지금 발록의 움직임이 상당히 느리게 변해 버렸다.

“저게 통하네?”

전사 형이 놀랍다는 눈빛으로 발록의 발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거미줄과 발록의 신체에 덕지덕지 붙어서 늘어지는 유령들을 바라보았다.

“네, 이쪽도 나름 네임드 스킬이거든요.”

물론 발록보다야 레벨과 등급이 낮겠지만.

그리고 오랜 시간을 버텨 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갑니다.”

【 대쉬! 】

곧장 녀석에게 몸을 날려 간격을 좁혀 놓았다.

괜히 녀석이 날 잡겠다고 저 광역기들의 범위를 벗어나면 곤란하지.

내가 녀석에게 우세를 점할 수 있는 건 저 디버프 위에서뿐이다.

발록은 귀찮은 것들을 상대한다는 듯 느려진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계속 거미줄과 유령들을 떨쳐내려고 했다.

그래.

거기에 신경이 팔려 있어라.

그동안 르아 카르테를 들어 녀석의 허리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쐐액!

그러자 녀석도 나를 경계하는지 바로 팔을 들어올려 르아 카르테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카아앙!

역시나 쇳소리가 격하게 울려 퍼졌고.

저 갑옷 같은 팔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무려 오러를 6중첩한 르아 카르테와 정면에서 부딪혔는데도 불구하고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테르타로스를 휘둘러 녀석의 상단을 노리고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아예 다리를 크게 차올려 내 공격을 조기에 차단해 버렸다.

카아앙!!

이번에도 똑같은 타격음이었고.

흐음.

이것도 안 되나?

분명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는 꽤 높은 등급까지 성장을 해 있었다.

마지막으로 먹은 네임드가 레벨 400대의 리빙아머 킹이었으니.

하지만 지금 이 공격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이 녀석의 방어를 뚫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뭔가가 필요했다.

기존의 것을 월등히 능가하는.

반대로 나와 달리 재중이 형은 치고받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발록의 팔과 다리에 잔흔을 남겨 놓았다.

적어도 재중이 형이 들고 있는 저 발록의 무기 정도는 되어야 해.

그래야 이 녀석에게 확실한 대미지를 줄 수 있을 터.

물론 아예 공격 자체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테르타로스로 녀석의 복부를 노렸을 때, 조금이지만 대미지를 주긴 했으니.

뭐 그것도 이상한 갑옷화가 발동되어 막혀 버렸지만.

그래도 녀석의 빈틈을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했다.

이것도 안 되나 보자.

눈에 보이는 평범한 속도의 일격으로는 녀석의 가드를 뚫을 수 없기에 조금은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발록의 팔을 한 번 더 후려친 다음 반동을 이용해 뒤로 튕겨나오듯 빠져나왔다.

그리고 르아 카르테를 겨눠서 녀석에게 스킬을 시전했다.

【 트리플 템페스트! 】

쐐애애액!

휘이이잉!!

동시에 세 개의 폭풍이 녀석을 감싸면서 사방에서 몰아닥쳤다.

검사인 내가 최상급의 광역 마법을 쓰자 다소 신기한 듯 발록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선은 곧 폭풍 속에 갇혀 보이지 않게 되었고.

좋아.

이로써 시선은 차단했어.

후.

간다.

곧장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 녀석이 폭풍 속에서 어떻게 서 있는지 바로 내게 그림처럼 그려져 느껴졌다.

녀석은 폭풍 너머로 날 볼 수 없지만.

난 느낄 수 있어.

일단 세세한 움직임마저 이렇게 포착할 수 있다면 내게 무조건 유리한 싸움이었다.

거기다 트리플 템페스트 역시도 상대를 느리게 하는 디버프가 걸렸다.

폭풍의 압력으로 움직임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니까.

그렇게 녀석을 최대한 억제해 놓은 다음.

곧장 스킬을 하나 더 준비했다.

팬텀 나이트의 근접 최강 스킬.

만약 이걸로도 안 통한다면…….

바로 차징에 들어간 뒤 녀석의 움직임을 계속 살폈다.

딱 한 번.

날 포착 못 하는 한순간이면 된다.

【 은신! 】

혹시나 모를 잔상을 대비해 아예 은신까지 써서 모습을 감추었고.

녀석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때를 기다렸다.

아마 발록은 트리플 템페스트가 풀리기를 기다리는지 별다른 행동은 해오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얌전하게만 있어라.

쭉 빈틈을 찾다가 녀석의 등 쪽으로 돌아섰을 때.

간다!

【 허공 질주! 】

내가 아는 스킬 중 기척을 숨기고 접근할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이었다.

그렇게 허공 질주를 사용해 녀석의 등 바로 후방을 점해서 나타나자마자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를 동시에 찔러 넣었다.

【 칠성격! 】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검으로 펼치는 칠성격은 이전과는 달랐다.

무려 14개의 잔상으로 분화가 되었다가 다시 하나의 점으로 공격들이 압축되어 녀석에게 쏘아져 들어갔다.

심지어 운용하고 있던 여섯 오러까지 동시에 적용이 되어 더욱 강한 위력을 만들어 내었다.

가랏!

이 한 방으로 녀석을 무력화시킨다!

두 팔과 두 다리만큼 강력한 방어력이 아니라면.

충분히 뚫을 수 있어!

그렇게 칠성격으로 모아진 일격을 날리는 순간.

옆에서 재중이 형의 다급하고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피해!!”

응?

피하라고?

그 순간 바로 몸을 뒤틀면서 찌르고 있던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를 회수하려고 했으나 이미 너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어서 그런지 몸을 빼내기는 무리였다.

칫.

뭔지 모르겠지만.

【 앱소브 아머! 】

내가 가진 최강의 방어 스킬.

이걸로 어떻게든 버텨 본다.

그때 내 좌측에서 강렬하게 타오르는 묵직한 뭔가가 치고 들어와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의 검신을 후려쳤다.

카아아앙!

콰아아앙!!

동시에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 역시 격하게 튕겨나갔고.

칠성격이 적용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저 한 방에 모든 공격이 깨져 버렸다.

심지어 내 신체에까지 타격력이 밀려들어오면서 온몸을 뒤흔들어 놓았다.

“크윽!”

온몸이 진탕이 된 것 같은 충격에 순간 정신을 놓을 뻔했으나 앱소브 아머가 저 일격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어 그런지 완전히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겨우 막아 주었다.

젠장.

방금 뭐였어?

눈으로 보고 판단했을 때는 이미 늦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일격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팔이나 다리로 한 공격도 아니었던 모양이고.

스킬이었나?

그렇게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해 몸이 튕겨나가며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발록의 뒤에 흔들거렸던 길쭉한 꼬리였다.

이전과 다른 것은 지금은 시뻘겋게 달궈져 있는 하나의 쇳덩어리 같은 모습이었다.

저게 휘둘러졌던 건가?

그래서 후방을 그렇게 무방비로 두었던 거고?

단순히 균형을 잡기 위한 장식이라고 생각했던 꼬리가 그냥 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멀리 튕겨 나온 나를 전사 형이 바로 달려와서 받아주었다.

“아, 전사 형. 고마워요.”

“시도는 좋았는데. 저거 3페이즈 마지막 스킬이거든.”

“정말 말도 안 되게 세네요.”

“어, 저거 걸리면 무조건 한 방인데. 용케 잘 버텼다.”

무조건?

다른 말로 걸리면 그냥 죽는다는 말이었다.

만약 순간의 판단으로 앱소브 아머를 쓰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그만큼 저 한 방은 강력했다.

“스킬 같지도 않고 그냥 평타 같은 느낌이었는데.”

“어, 평타 맞아. 3페이즈에서는 죄다 저런 공격이라. 휘두르는 거 맞으면 그냥 죽는 거야.”

“……정말요? 그럼 대체 어떻게 깬 거예요?”

그때 재중이 형도 내게 다가오더니 앞을 경계하면서 말해 주었다.

“원거리로 야금야금 파먹었지.”

“아…… 원거리.”

확실히 저렇게 평타 한 방이 죄다 필살기급이면 접근하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칠성격이 한 방에 깨질 정도면.

휘두를 때마다 매번 최종 스킬을 난사한다고 생각해야 할 테니까.

똑같이 스킬을 난사하지 않는 이상은.

“괴물이네요, 정말.”

“괴물이지.”

이러니 마왕이 접근도 안 하지.

솔직히 말해 마왕이라고 저 발록을 어떻게 쉽게 이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왕도 정말 둘 다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들지 않는 이상에서야…….

최소한 저 녀석을 누르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단계로 올라설 필요가 있었다.

“이젠 형이 발록을 잡은 게 너무 신기해 보여요.”

“우리 때는 그냥 보통 네임드였다니까 그러네.”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재중이 형이 졌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흐음, 이젠 저걸 어쩐다? 잔뜩 화를 내게 만들어놓긴 했는데.”

아마 재중이 형도 내게 뭔가 기대를 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까 내가 준비할 때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벌어 준 걸 보면.

“역시 그걸로는 안 되나요?”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들고 있는 불로 만들어진 스피어를 가리켰다.

“말했잖아. 오래 못 쓴다고.”

“오래 쓸 수 있으면요?”

“그래 봐야 평수밖에 안 돼. 누르려면 내 레벨이 더 올라야 해.”

역시 발록을 잡고 나온 무기인 건가.

일단은 불가능하진 않다는 거네.

그리고 무기 성향상 발록의 속성에 밀리지는 않으니까.

그때 발록에게 걸려 있던 트리플 템페스트와 커스 스파이어 필드, 팬텀 익스플로전의 디버프 효과가 모두 흩어져 버렸다.

“흐음, 이걸로 다시 원점이군.”

전사 형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런 형을 내가 말렸고.

“어차피 못 잡아요.”

“알긴 하는데…… 방법 없어?”

“음, 방법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 녀석이 관심 가지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어요.”

“뭔데?”

“이거요.”

그러면서 테르타로스를 들어올려보였다.

르아 카르테를 꺼냈을 때는 그다지 녀석이 관심을 가지진 않았었다.

하지만 테르타로스에는 계속 녀석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적어도 이게 녀석의 관심을 끌만한 정도는 된다는 거겠지.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는 이제 알아봐야겠고.

“그럼 잠시 갔다 올게요.”

여차하면 도망가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전에.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확인해 봐야 해.

만약 정말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면…….

저벅저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녀석에게 걸어가는데 신기하게도 발록은 내게 공격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녀석을 계속 공격했음에도 이런 태도라.

조금이라도 공격성을 보이면 바로 튈려고 했는데.

결국 끝까지 확인하게 해 주네.

어느 정도의 거리만 남겨두고 걸어가서 멈추자 발록 역시도 내게 시선을 맞추었다.

저건 흥미롭다는 표정이려나?

재중이 형에게서 저런 표정은 너무 자주 봐서 잘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계속 내 테르타로스를 살피다가 결국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실망이군.”

실망이라…….

그럼 기대를 했다는 말인데.

그때 놈이 의외의 말을 했다.

“먹어치우기엔 너무 약해.”

먹어치운다?

마신의 파편을?

녀석이 계속 테르타로스에 관심을 가지던 게 그런 이유였나?

그리고 녀석은 딱히 내게 관심이 있던 것이 아니야.

오직 이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마신의 파편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러자 녀석의 눈빛이 이채를 띄었다.

“할 수 있나?”

여기서는 자신감 있게.

당연하다는 듯 발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해 주었으면 하는데?”

이건 도박이다.

녀석이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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